북한군 개입사실을 증명한 11개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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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12-17 12:36 조회5,2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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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개입사실을 증명한 11개 존재들
5.18을 북한군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존재는 아래와 같이 11개다. 지만원 혼자만 증명한 것이 아니라 지만원 말고도 10개의 다른 존재들이 북한군개입 사실을 증명해준 것이다.
1. 지만원이 증명한 것들: 극비사항인 20사단 이동계획을 미리 알아가지고 300명의 날랜 어깨들이 아시아자동차공장 가까이에서 매복해 있다가 습격하여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해 14개의 지프차와 총기를 탈취한 행위, 아사이자동차에 600명이 침입하여 출고 대기 중인 신형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를 탈취해 불과 4시간 만에 17개 시-군에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털어 2개 연대 분의 총기를 탈취한 행위, 다이너마이트로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한 행위, 교도소공격, 사망자의 80%가 계엄군 없는 곳에서 발생, 총상사망자 116명 중 70%에 해당하는 80명이 시민군 총에 의해 사망, 명령에 의한 집단발포는 없었다. 광주시위를 조직하거나 기획한 사람도 한국에 없고, 지휘자도 한국에 없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2. 윤장현[광주시장]이 증명한 것: 2017년 당시 광주시장인 윤장현은 광주교도소는 절대로 광주시민이 공격하지 않았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1997년 대밥원 판결문에는 1) 교도소에는 간첩수 170명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 2) 광주교도소는 제3공수여단이 방어하고 있었다는 사실 3) 무장한 광주시위대가 5차례에 걸쳐 교도소를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살상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기재돼 있다. 결국 윤장현은 교도소공격을 북한군이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3.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타임라인이 증명해 준 것: 1980년 5월 22일 오후 3:08분 사울서 온 대학생 500여명 환연행사 거행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5.18기년재단 상임이사 김양래는 2018년 10월 12일 서울지법 서관 525호 법정에서 500명의 실체에 대해 5월단체들은 규명한 바 없다고 답했다.
4. 김양래[5.18기념재단 상임이사]가 증명한 것들: 그는 2018.10.12. 서울 형사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광주현장 사진 12개를 보여주며, 단련된 몸매에 총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무전기들을 들고 유니폼을 입고 지휘체계가 갖추어지고 조직화돼 있는 현장 주역들이 광주시민이냐고 물었더니, 광주시민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그 현장주역들이 전두환이 투입시킨 편의대인지 앞으로 연구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또 북한이 1982년에 살포한 삐라에 기재된 5구의 시체얼굴을 광주시민의 얼굴이라며 사기를 쳐서 1987년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이라는 제목의 화보집에 수록했다. 그리고 이 얼굴들이 공수부대가 잔인하게 학살한 시체라고 모략했다. 광주와 북한이 내통하고 있는 것이다.
5. 강상우 영화 감독이 증명한 것: 강상우 영화감독이 2019년 5월에 독립영화 [김군]을 출품했다. 가장 유명한 제1광수를 찾겠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였다. 그의 촬영팀들이 만 4년동안 광주와 전남을 뒤졌지만 광주폭동의 로고인물인 제1광수는 없었다. 그러나 증언은 있었다. 막걸리집 딸로 당시 21세였던 주옥이라는 여성이 나타나 상세하게 증언한 것이다. 제1광수는 7~8명 단위로 광주천변 다리 밑에 천막을 치고 양아치로 생활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페퍼포그 차량 위에 있는 제1광수에게 음료수와 주먹밥을 주었다는 사실 그리고 사태가 종결되자 흔적 없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을 함께 증언했다. 결국 북한군은 남들로부터 의심받지 않는 양아치 신분으로 위장하여 자유롭게 지형정찰을 한 후 작전을 지휘했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해 준 것이다. 그리고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5.18유공자가 5,801명이지만 그 중에 제1광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자기가 광수라며 사기소송에 나선 14명 중에도 자기가 제1광수라고 주장한 자가 없다. 결국 영화 [김군]은 제1광수팀이 북한군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공식화해준 영화였다.
6. 통일부가 중명해준 것들:통일부가 매주 발간하는 [주간북한동향보고서]에는 해마다 5월이 되면 북한은 전지역의 시-군-도시 단위로 5.18기념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기재했다. 이와 아울러 북한에서 최고인 것들에는 최고의 영예를 의미하는 5.18글자를 상으로 수여한다는 사실도 기록해왔다. 5.18청년호, “5.18단조공장” “5.18영화연구소”,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을 비롯해 10여개의 5.18 글자를 단 명물이 소개돼 있다.
7. 북한의 대남공작서들이 증명해 준 것들:1982년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과 1985년 조선노동당출판사가 발행한 [광주의 분노]에는 다 같이 광주에서 활동한 600명을 강조하고 있고, 시위 곳곳에서 상황을 기획하고 관찰한 세세한 내용들이 수록돼 있다. 시위전략도 기술돼 있고 시위전술 그리고 교훈까지고 기술돼 있다. 현장에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1985년에 작성된 안기부 자료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8. 북한과 남한이 제작한 영화가 증명한 것: 5.18영화를 가장 먼저 만든 존재는 김일성이다. 1989년 김일성은 황석영과 윤이상을 데려다 5.18영화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작하여 1991년 개봉했다. 남한에서는 2007년 10월 [화려한 휴가]가 제작되었고 그후 10여개의 영화가 더 제작됐지만 남북한 모든 5.18영화에 주인공은 지휘자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광주에는 남한 지휘자가 없다는 뜻이다. 17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싱크로나이징 된 시위에 지휘자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구나 김일성이 어째서 황석영과 윤이상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면서 마국과 남한정부와 공수특전단을 모략하는 거작의 영화를 만들어 해마다 북한주민에게 상영해 주는 것인가? 이는 지휘자가 북한에 있다는 뜻이며, 5.18은김일성이 저절렀다는 뜻이다.
9. 탈북자 증언집(450쪽 2009)이 증명한 것들:탈북자 16명이 작성한 상세한 증언내용들이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 수록돼 있다. 이 내용들은 모두 나의 연구내용, 수사기록, 통일부 보고서 등과 사실, 취지, 맥락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탈북자들에게는 5.18이 북한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상식화돼 있다.
10. 5.18 제1급 유공자들이 증언해준 것들: 2002년 12월 전남대 출판부가 펴낸 [5.18항쟁 증언자료집]에는 5.18의 최고 영웅들이라는 사람들 모두가 5월 21일 총소리를 듣고 각자도생하자며 숨어 다녔다는 기록들이 있다. 북한군이 전남도청을 점령하고 있었던 5월 24일 정오까지 도청에 들어간 광주사람은 없었다는 내용이 중복돼 있다. 5월 23일, 도청에 들어가려 했지만 낯설고 위엄 있는 사람들이 거부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고 증언들 했다. 5.18유공자들은 한결같이 무기고를 누가 털었는지 모른다 했고, 광주교도소를 누가 공격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11. 국방부와 국회가 증명해 준 것:가장 최근의 국방부와 국회는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었느냐에 대한 조사를 한 바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2019년 2월 12일 국방부는 대변인을 통해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었는지에 대해 국방부는 조사한 적 없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2018년 3월 13일 법제화된 약칭 [5.18진상규명법]에 따라 진상규명 위원회가 앞으로 밝혀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국회는 또한 [5.18진상규명법] 제3조 6항에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군개입여부]라는 규명항목을 설치했다. [북한군개입여부]를 조사하는 업무는 국방부의 배타적 업무영역이다. 따라서 광주판사들이 연이어 [북한군개입]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은 타 기관의 업무를 침해하는 불법적 월권행위이며 동시에 증명이 없는 것들에 근거하여 재판을 한 판단유탈행위다. 1997년의 대법원이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고 판결했다는 주장도 허위이고, 여러 차례의 진상규명 과정을 통해 북한군개입이 없었다고 판명됐다는 정홍원 전 총리 등 일각의 주장도 허위다.
결 론
이상의 11개 존재 모두는 상호 배척하는 것들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그 결론은 정확히 [북한군 개입] 사실을 명백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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