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좁은 판결의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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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9-17 21:35 조회4,8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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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은 판결의 후유증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여 무엇을 얻고 무엇을 빼앗겼는가? 금전적 손익계산을 먼저 다음 일본에 대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금전적인 손익계산서 아이템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바로 ‘귀속재산’(Vested Property)이다. 귀속재산이라는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한국사람들 중에서 이 금전적 항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믈 것이다. 이 귀속재산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는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
조선은 후대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소멸했는가? 거짓말하고 속이고 음모하고 훔치고 강탈하는 등의 더러운 DNA 뿐이었다. 북조선은 일본으로부터 27억 달러의 일본재산을 물려받았고, 푸른 산림을 물려받았다. 남한은 일본으로부터 24억 달러의 일본재산과 푸른 산을 물려받았다. 남한이 받은 24억 달러의 일본재산은 이승만 정부 전체 경제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일본이 조선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러시아나 중국이 먹었을 것이다. 만일 그 어느 나라도 조선을 먹지 않았다면, 조선 역사는 610년 째 이어졌을 것다. 그랬다면 우리 대부분은 지금도 북한의 노동당 간부와 같은 양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2005년 공개된 외교문서에 의하면 우리 정부는 일본에 “징병,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액을 계산해 3억 6,40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일본은 이 중 우수리를 깎아내고 3억 달러를 준 것이다. 그 후 정부는 이들 징용자들에게 배상을 여러 차례 해주었지만 이들은 그 액수가 적다며 다 달라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정부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추가로 1인당 평균 8,100만원을 배상했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 대해 법원은 기각판결을 냈다. 그러나 대법관을 포함해 사법부에 좌익 판사들이 들어차 있게 되자 2012년 김능환이라는 대법관이 사고를 쳤고, 김명수라는 좌익이 대법원장이 되면서 오늘의 대일전쟁에 단추를 눌렀다.
1980년대에 한국은 아시아의 4마리 용중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 속도를 자랑했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화려한 경제지표에 만족해하며 한국경제가 곧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들떠 있었다. 지금의 문재인 종족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일본경제에 탯줄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문재인을 꼭두각시로 부리고 있을 검은 간첩세력은 한국경제가 곧 IMF외환위기보다 더 비참하게 추락할 것이란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이 경제적 탯줄을 끊으면 한국경제는 수개월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1980년대 후기였다. 한국 경제학자들이 지표 경제에 들떠있던 바로 그때 미국의 어느 한 시스템학자는 한국이 머지않아 용의 그룹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미국 LA 심포지엄에서 발표됐고,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예언은 당시 한국 경제학자들의 상황판단과 정반대였다. 그리고 한국경제는 그가 예언했던 코스 그대로 추락해왔다. 한국경제는 1980년대가 끝나면서 용의 그룹에서 탈락했고, 지금은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입버릇처럼 한국경제의 기초 즉 펀더멘탈이 튼튼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학자들은 한국경제의 기초가 취약하다고 말한다. 같은 학자들인데 와 선진국 학자들과 한국학자들의 경제진단이 이토록 정반대일까? 한국경제학자들은 경제를 지수와 추세로 판단했고, 선진국 학자들은 시스템을 분석했다. 그래서 판단이 정반대인 것이다. 1950-60년대의 한국경제는 매우 비참했다. 사회 전체가 미국의 원조로 연명했다.
앞이 캄캄했던 한국경제가 1970-80년대에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서양 학자들이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에는 분명 엘리베이터 식 수직 상승이 있었다. 한국 학자들의 분석방법에 따른다면 한국경제는 설사 상승하는 길을 걸어왔다 하더라도, 엘리베이터처럼 수직상승하지 않고 에스컬레이터처럼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을 것이다. 그것이 추세분석이고 거시경제 치수 분석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박정희 시대에 엘리베이터 식으로 수직상승했다.
한국경제가 용의 그룹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 미국 학자는 경제성장의 엔진을 보았다. 다른 3마리의 용, 즉 싱가포르, 홍콩, 대만은 "두뇌기술"에 의해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한국은 기능공의 "손끝기술"에 의해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두뇌기술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국제시장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제품이 끊임없이 나와야 일자리가 계속적으로 창출된다. 그러나 손끝기술은 남이 설치해준 공정에서 남이 가르쳐준 방법을 손끝에 익혀 기계를 돌릴 수 있는 기술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일자리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기존 기술로 먹고 살다보니 한국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중국 등 미개한 시장에 나가 싼 임금으로 연명하다가 중국으로부터 발가벗겨 추방당하는 신세들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의 그 미국학자는 폐쇄됐던 한국시장이 개방되고 한국의 임금 이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는 순간부터 한국에는 대량 실업사태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한국이 이러한 딜레마를 비켜갈 수 있는 길은 하루 빨리 OEM 체제 즉 "선진국 제품을 원숭이 식으로 생산해서 납품하는" 하청 생산체제에서 벗어나 독자기술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한국 경제학자들 중에서 이런 구조적 진단을 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
이러한 OEM 생산체제를 일본 오마에 겐이치 박사는 "통과경제"(transit economy)라고 표현했다. 한국경제학자들은 그의 표현에 서운함을 나타내지만 그의 표현은 100% 옳다. 한국은 아직도 20년 전에 어느 한 미국인 학자가 내렸던 정확한 처방과, 어느 한 일본인 학자가 가르쳐 준 정확한 진단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몇 개의 거시경제 수치만을 가지고 한국경제가 곧 일본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이 오늘날의 경제를 어떻게 일으켜 세웠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일본을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를 몇 가지만 알아보자.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1943년 2월 21일 ~ )는 일본의 경제학자이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韓, 자국민에 미움받는 불쌍한 나라"
첫째, 일본인들은 역사로부터 배우고 자타의 잘못으로부터 배울 줄 알지만, 한국인들은 5천년 역사만 자랑했지 어제의 문제들로부터 배울 줄 모른다. 일본인들은 묻혀있는 문제를 발굴해 내려고 노력하지만, 한국인들은 스스로 솟아난 문제들까지도 은닉하려 한다. 일본인들에게 어제의 문제는 곧 오늘의 지혜요 교훈이지만, 한국인들에게 어제의 문제는 곧 처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둘째,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설계에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민족이지만, 한국인들은 설계에 돈을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설계에 투신하면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 좋은 학생들이 법대를 선망한다. 설계는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낳는다. 그래서 설계에 돈을 쓰지 않는 민족에겐 희망이 없다.
셋째, 일본은 1946년도부터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품질관리 거장들의 지휘를 받아가면서 과학적 품질관리에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일본은 지금세계 제1의 품질 1등국이 돼 있다. 한국인들은 그런 노력들을 생략해왔다.
넷째, 기술에는 '문서에 담긴 기술(paper technology)'과 '생산기술(production technology)'이 있다. 미국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문서에 담아 놓으면 일본인들은 그것을 가장 먼저 생산기술로 전환하여 돈을 번다. 이는 엄청난 기술 소화력이다. 그러나 한국은 독자적인 생산 기술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든 제품을 원숭이식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핵심 기술이 담긴 부품과 소재는 대부분 수입한다.
다섯째, 일본의 기업들은 ‘개선’(Kaizen)을 목표로 한다. 이윤은 개선의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들은 이윤을 극대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일본 기업은 과학화를 통해 이윤을 얻지만 한국기업들은 속임수와 정경유착 등의 파행경영을 통해 단기 이윤을 얻고 있다.
여섯째, 일본 기업은 모든 의사결정을 수리공학팀의 분석에 의존하지만, 한국에서는 기업주의 후각에 의존하고 있다.
일곱째, 일본 기업들은 치열한 국내 경쟁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배양하지만, 한국기업들은 정치적 연줄을 가지고 몸집을 키우기에 집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정한 경쟁시스템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다.
여덟째, 일본에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훌륭한 경영인들이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큰 몸체를 가지고 있는 기업인들은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기업인들을 위한 배움의 모델이 없는 것이다.
아홉째, 일본 기업인들은 경영을 통해 훌륭한 경영 후계자들을 길러내지만, 한국 기업인들은 후배들을 몸종으로 부리며 퇴화시키고 있다.
열째, 일본은 누가 뭐래도 세계 제1의 품질국가요 신용국가다. 미국도, 영국도 일본의 품질관리 노력을 배우고 있다. 일본은 지난 100여 년간의 끈질긴 노력과 창의력으로 일본 고유의 품질 이론과 시스템을 창조해 냈지만 한국인들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일본을 쉽게 따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일본과 한국과의 이러한 차이점들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음미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경제정책에는 수학적 깊이와 논리가 없다.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핵심관리들은 어린 나이에 공무원 사회에 들어와 일생을 묻은 사람들이다. 시스템적으로 보면 한국 공무원 조직은 사람의 능력을 진화시키기는 게 아니라 퇴화시키는 조직이다. 그래서 공직의 연륜이 높으면 높을수록 고정관념의 벽도 높아진다. 이론적 체계 없이 경험만 많이 쌓으면 그 경험은 매우 위험한 고정관념으로 타락하기 쉽다. 그래서 소니사의 모리타 아키오 회장은 절대로 경험 있다는 사람을 뽑아 쓰지 않았다.
모리타 아키오(일본어: 盛田昭夫, 1921년 1월 26일 ~ 1999년 10월 3일)는 이부카 마사루와 함께 소니 주식회사(당시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東京通信工業株式会社))를 창업한 일본의 기업가이다. 오사카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출처 위키백과)
한국 경제를 시스템적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경제의 위기는 국제경쟁력 차원의 위기다. 둘째, 국제경쟁력을 길러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토양은 선진국형의 시장경제 시스템이다. 아담스미스의 가격이론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 시스템이 한국에는 없다. 시스템 황무지인 것이다. 셋째, 시장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과학적 접근방법이 없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일본을 따라 잡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2019.9.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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