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합철자냐 통합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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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08-06 00:45 조회3,8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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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합철자냐 통합자냐
필자의 생각으로 나폴레옹, 드골, 박정희 대통령 등은 합철자(Stapler)가 아니라 통합자(Integrator)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부하들이 올려오는 건의를 하나씩 승인해준 합철자가 아니라 그들 자신들이 확고한 비전과 발전 모델을 가지고 부하들의 힘을 융합한 통합자들이었다. 최고 경영자가 스스로 종합적인 비전을 가지고 부하들을 활용하는 것과 참모들의 건의를 개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천지 차이가 있다.
자동차는 2만 여개의 부품들로 구성돼 있다. 이 부품들을 일렬로 나열하는 사람은 합철자인 것이고, 이 부품들을 자동차 완성품의 설계도에 따라 조립을 하는 사람은 통합자가 되는 것이다. 무슨 제품을 생산하든 제품을 생산하는 절차(Process)는 자동차라는 완성품을 생산해내기 위한 조립절차(Integrating Process)가 시스템화 되어 있고, 이러한 시스템통합절차 없이는 훌륭한 자동차가 생산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이해를 한다. 그러나 기업을 경영하고 국가를 경영하는 데에도 이런 시스템통합절차(System Integrating Process)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공장에 가면 조립라인이 설치되어 있고, 모든 부품이 자기 차례에 따라 각기의 위치로 조립된다. 그런데 공장 밖에서 경영과 관리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부서와 사람들의 역할은 차례에 따라 조립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경영의 맹점이자 핵심인 것이다.
통합자(조립자)는 종합적인 설계도를 가지고 협력업체에 부품 생산을 위임한다. 하청업체에서 생산되는 부품이나 구성품에 대해서도 품질 리더십을 행사한다. 조립과정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협력업체가 만든 부품이 불량품이면 그 완성장비는 불량품이 되기 때문이다. 협력업체들로부터 부품을 납품 받으면 통합자는 이들 하나하나를 설계도에 따라 조립해서 제품에 생명을 불어넣은 후 시험평가를 실시한다. 만일 조립자가 설계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들은 분해된 부품들을 차곡차곡 나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장장이 공장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듯이 CEO는 공장 밖에서 모든 간부들의 능력을 조립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공장 밖에서 모든 간부들의 능력을 제대로 조립하여 효율을 극대화하는 CEO를 발견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결함은 어떤 자동차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목표설정과 설계도면에 해당하는 청사진을 마련할 줄 모르는 데 있다. 여기까지를 읽고 필자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경영인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필자의 경험한 사례들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국방연구원이라는 국방경영을 연구하는 연구소에서 7년간 일했다. 그 연구소에서 필자는 운영유지비 관리 시스템, 방위산업의 경영효율화, 무기체계 획득절차의 현대화, 조달계약 및 원가정산제도의 개선, 전투력 평가 등 다양한 과제를 수행했다. 필자는 15명 정도의 연구원들을 관리하면서 1개 팀을 3-4명으로 쪼개서 과제팀을 만들었고, 각 과제팀은 연간 1-3개의 과제를 수행했다. 필자 역시 3명의 연구원을 별도의 연구팀으로 구성하여 연간 2-3개 정도의 과제를 수행했다.
과제수행자는 팀의 CEO가 되는 셈이다. 이 사례는 합철자 식 CEO가 무엇이고, 통합자식 CEO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과제 CEO는 과제 제목을 부여받자마자 스스로 장절 편성을 한 후 3명의 연구원(주로 석사)들을 불러 1인당 1-3개 정도의 장을 할당했다.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연구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다가 해당 장절에 대해서만 1대1로 토의를 했다. 연구원과 연구원 사이에 만리장성이 설치됐다. 같은 팀에 있으면서도 각자는 이웃 동료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각 연구원들이 맡은 장절을 개별적으로 토의할 때에는 그럴 듯 했지만 과제가 마무리 될 때 모든 연구원들이 작성해온 장.절을 합철해 보니 맥이 없고 철학이 없었다. 3인이 만들어 온 장.절을 합철만 한 것이다. 문체도 3인의 문체, 이런 연구 보고서에 생명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과는 다르게 과제를 수행했다. 연구원에게 장.절을 편성해 주지 않고, 2주 동안 연구원들을 모아놓고 토의를 했다. 자동차를 만들 것인지 라디오를 만들 것인지, 만들면 어떤 모양의 것을 만들 것인지를 찾아내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무슨 문제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 군에는 어떤 임팩트를 줄 것인지? 처음에는 농담들처럼 시작했다. 무슨 상상이든 거침없이 말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 농담들 속에는 지혜와 아이디어들이 들어 있었고, 이웃 동료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또 다른 지혜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토의에 의해 보고서의 목표와 개념과 스펙들이 명확하게 규정됐다. 다른 연구팀의 경우에는 연구원들이 전체 과제에 대한 개념을 전혀 알 수 없이, 오직 자기가 맡은 장절에 대해서만 연구했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모든 연구원들이 과제의 목표와 설계와 스펙을 잘 알고 있기에 나누어서 일을 할 수 있었고 올코트프레싱도 할 수 있었다. 각 연구원들이 가져오는 자료는 공동으로 토의했고 모든 자료와 개념들은 또렷한 목표와 설계도면에 따라 시스템적으로 조립되었다. 보고서에 개념이 일사분란하게 통합되었고 생명력이 있었다. 전자의 연구방식에 의해 생산된 보고서는 3인의 연구원이 쓴 세 개의 글을 합철했지만, 필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필자의 문체로 쓰인 한 사람의 보고서였다. 이것이 바로 통합자식 CEO가 따라야 할 경영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30세에 월남에서 포대장을 했다. 대개의 지휘관들은 간부들에게 자기가 생각한 사항들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건의할 것 있느냐 묻고는 즉시 해산하여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필자는 매일 저녁 간부들을 모아놓고 토의를 했다. 내일 무엇을 할 것인지, 그것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낼 것인지(스펙),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수행 중 사고가 날 수 있는 경우가 있는지, 예방하려면 무엇을 주의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 하루도 쉬지 않고 토의를 했다. 처음엔 말을 더듬던 하사관들이 나중에는 착안점과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에도 달인이 됐고, 의견을 단시간에 요령 있게 발표하는 데에도 달인들이 됐다.
포대의 분위기가 연구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전투를 하는 데에도, 부대 환경을 가꾸는 데에도 분대단위 막사에서 자기들끼리 토의들을 했다. 포대장에게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서도 포대장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어 결재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전보고보다 사후보고가 많았다. 매복 나간 아군과 베트콩의 접전에서 1,800발의 대포를 베트콩의 예상퇴로에 날려 18명을 사살하는 동안 필자는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포대장이 조치할 일을 물어보지 않고서도 다 알았다. 그래서 필자는 자다가 훈장을 탔다. 필자가 지금 기업을 경영하거나 그 어떤 조직을 경영한다 해도 필자의 경영방식은 이와 같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지휘관들, 연구중진들, 행정부의 각급 지휘자들, 기업의 CEO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통합자가 아니라 단순 합철자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9.8.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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