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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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03-29 22:37 조회3,1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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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브리핑
5.18 사태의 일반적 성격
광주에서 1980.5.18-27까지 이어진 무장 폭동사건
5.18과 이어진 세트역사
10.26사건: 1979.10.26. 박정희 대통령이 KCIA부장 김재규에 시해당했다. 이로 인해 지역계엄이 선포되고, 계엄사령관은 정승화 육군총장이되고, 보안사령관인 전두환 소장은 계엄사 수사본부장이 되었다.
12.12사건: 1979.12.12. 계엄수사본부장 전두환 소장이, ‘김재규에 동조하여 정치적 행보를 보인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내란방조혐의로 구속한 사ㅣ건이다.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1980.4.3.부터 서울대학을 시작으로 김대중이 지휘하는 전국 대학생 시위가 전국적으로 격화되고 폭력화되었다. 김대중은 학생시위를 부추겨 무정부 상태를 만들어놓고 혁명을 하여 집권하기 위해 4회에 걸쳐 북학파크호텔에서 24명으로 구성된 비밀 혁명내각명단을 작성하였다. 1980.5.15. 서울역 10만 집회는 버스로 경찰을 깔아 죽이는 폭력 시위였고, 이로 인해 전국은 공포분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서울역 시위로 전국폭동이 어떠할 것이라는 시범을 보인 김대중은 1980.5.16. 최규하 정권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내각을 해산하고 계엄령을 해제할 것을 김대중에 통보하지 않으면 5월 22일 정오를 기해 전국적 봉기를 감행할 것이다.”
1980.5.17. 군이 나서서 전군지휘관회의를 열어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강화 확대하여 학생시위를 차단할 것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이를 최규하 대통령에 건의했다. 총리주재로 내각회의를 열었고, 내각은 만장일치로 군 지휘관들의 건의를 그대로 수용했고, 자정을 기해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24명의 Shadow Cabinet 요원들을 체포함과 동시에 계엄을 확대할 것을 선포하였고, 이에 따라 주요 국가시설에 계엄군 25,000명이 긴급 배치됐다. 5월 22일로 계획돼 있던 전국시위가 4일 앞당겨져 5월 18일에 광주에서 돌발했다. 전국이 살얼음판으로 꽁꽁 얼어붙었지만 유독 광주만 계엄군을 공격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5.18은 게릴라 특공작전
5.18은 순수한 데모가 아니라 심리전과 파괴, 살인을 내용으로 하는 군사 게릴라 작전이었다.
1 .5월 17일 자정, 광주의 전남대와 조선대에는 전라도 금마에 주둔한 7공수여단 1개 대대씩이 급파되었다. 광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주의를 요하는 시위 위험지역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어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이 파견됐고, 파견된 2개 대대 장병들의 40%는 전라도 출신들이었다.
2. 5월 18일,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는 젊은이들이 경찰의 눈에 뜨이지 않기 위해 꼭꼭 숨어있었으나, 광주에서는 고도로 훈련되고 눈이 반짝이는 300명의 어깨들이 학생을 가장하여 도서관에 가겠다고 시비를 걸어 공수부대를 형해 돌멩이 공격을 가하고 금남로로 달아나 건물과 차량들에 불을 질러 연기를 냄으로써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 준비된 유언비어를 살포했다. 조직화된 행동들이었다.
3. 유언비어들는 전두환의 살인명령이 들어있었다. “경상도 군인만 뽑아 환각제를 마시게 한 후 전라도 사람 70%를 다 죽여도 좋다, 애기든 노인이든 닥치는 대로 죽여라”는 명령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1960년 북한 황해남도 신천군에 지은 신천박물관 정문에 조각된 ‘워커장군의 살인명령’을 그대로 본 딴 것이었다. 신천박물관에는 미군이 1950년 북진하면서 저질렀다는 만행들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들이 가득차 있다. 그 중에는 미군들이 아름다운 여성을 묶어놓고 희롱하며 젖가슴을 도려내는 그림, 여성의 정수리에 대못을 박는 그림, 남자를 엎어놓고 머리를 톱으로 자르는 그림, 남자를 엎어놓고 팔을 벌려 각을 뜨는 그림 등 상상으로 그린 다양한 만행들이 그림으로 묘사돼 있다. 그 그림의 내용들이 20년 후인 1980년 광주에서 유언비어로 전환되어 5월 18일부터 확산됐고, 우언비어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흘러온 지역감정에 불을 질러 전라도 전체를 분노케 했다. 고도로 기획되;s 모략작전인 것이다.
4. 5월 18일, 광주에 파견된 공수부대는 불과 2개 대대, 공수부대에 대한 지휘권은 광주지역에 소재한 제31향토사단장에 있었다. 31사단 사단장은 정웅 소장이었고, 전라도지역을 관할하는 계엄사령부인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 사령관 윤흥정 중장도 전라도 사람으로 사상이 의심스러워 시위 도중 교체되었다. 5월 18일 오후, 사단장 정웅은 2개 대대 대대장들에게 금남로를 가득 메운 청년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체포하라는 무리한 명령을 내렸다. 공수부대원 수는 잘해야 400명, 시민은 수만 명, 젊은이들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어 곤봉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 장면을 미리 예측하여 수많은 옥상을 미리 점령한 사진사들이 사진을 찍어 공수부대를 모략하였다. 곤봉으로 내려치는 사진들은 다 옥상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들이다. 유언비어는 심리전이며 사진을 찍는 것은 모략전이었다. 이 모략전을 31사단장이 주도한 모양세가 되었다.
5월 20일과 21일의 상황은 고도의 정밀한 계획과 신출귀몰한 군사작전이었다. 공수부대들은 이른바 시민군(북한 표현 의용군)이 이끄는 게릴라전을 당할 수가 없었다. 공수대원들이 포위되어, 차량돌진 공격들을 당하면서 심리적인 괴멸상태를 당하자 여단장들이 임무를 교체해달라고 호소했다. 계엄당국은 20사단을 배치하기로 하고 5월 21일 새벽 20사단을 파견했다. 이 정보를 미리 입수한 시민군은 300명으로 구성된 2개 팀을 이용해 21사단의 광주진입을 차단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300명 A팀은 광주공원을 중심으로, 또 다른 300명의 B팀은 유동삼거리(증심사 부근)에 자리를 잡아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5월 20일, A팀은 21사단 주 병력이 기차를 타고 광주역에 진입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광주역을 지키던 공수 3여단 5개 대대를 몽땅 포위해놓고, 집합해 있는 공수부대 대열을 향해 대형 화물차들을 지그재그 궤적으로 돌진시켜 하루 종일 공포에 떨면서 탈진케 했다. 이는 마치 고양이가 쥐를 놀리는 게임과도 같았다. 결국 21사단은 광주역으로 오지 못하고 송정역에서 하차하여 광주시로 진입하지 못했다. 또 다른 B팀은 5월 21일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08시에 광주톨게이트로 진입한다는 극비정보를 입수해가지고, 21일 08시에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를 습격하게 위해, 20일 오후부터 수많은 중장비를 동원하여 ‘군분교’라는 작은 하천 교량 부근에 대형차량들과 콘크리트 구조물 등을 올려 쌓아 함정을 만들어 놓고, 매복하고 있다가 5월 21일 오전 8시 경 정확하게 시간계획대로 진입하는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를 습격하여 사단장용 지프차 14대를 탈취하여 인근 군납업체로 진입했다. 장갑차와 트럭 등 군용차량을 제조하는 아시아자동차 공장이었다.
21일, 09시에는 이 공장에 A팀 300명과 B팀 300명, 계 600명이 집결하여 한 번도 출고된 적이 없던 신형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400대를 이끌고 나와 그것들을 타고 광활한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비밀로 위장돼 있는 44개의 무기고를 향해 시행착오 없이 예행예습을 많이 한 듯이 곧바로 달려가 불과 4시간 만에 5,400여정의 총기와 수류탄, 실탄,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하였다. 600명의 특공대원이 5,400여정의 총기를 탈취한 목적은 이를 광주시민들에게 나누어주어 무장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공수부대가 끝까지 사수했던 도청은 오후 5시에 시민군 손으로 넘어갔고, 도청은 이후 시민군의 작전지휘소로 사용되었다. 도청 지하에는 2,100발의 다이너마이트 폭탄이 조립돼 있었고, 5월 21일 밤에는 여러 차례의 교도소 야간 공격이 있었다. 공수부대에게 실탄이 지급된 시점은 바로 공수부대가 시 외곽으로 쫓겨나가면서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공수부대에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시민군의 야간공격으로부터 교도소를 방어하기 위해 그날 밤 계엄군이 소비한 실탄은 54만 5,400여 발이었다. 이 때 많은 시민군이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시체는 밤중에 모두 도청으로 옮겨져 2014년 북으로 갔을 것이라는 정황증거들이 현실감 있게 나타나 있다. 교도소 공격으로 주력을 잃은 북괴군은 5월 24일 정오경까지 안개처럼 사라졌고, 비어진 도청에는 아무런 조직도 없고 개념도 없는 모래알인 젊은이들이 각자 들어가 허세를 부리다 5월 27일 점조직 특공작전에 의해 모두 투항했다.
5.18의 성격이 날치기 당한 과정
1981년 1월 23일 판결,5.18은 김대중의 내란
1997년 4월 17일 판결,5.18은 전두환의 내란
수사기록 팩트는 1981년 팩트와 1997년 팩트가 동일했지만, 판사들의 해석이 정반대로 뒤바뀐 것이다. 재심의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심 절차 없이 특별법을 급조하여 일사부재리 원칙을 위반하여 어제의 충신과 역적을 뒤바꾸어놓았다. 이는 국가체제가 바뀌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군력의 횡포였다.
연구내용
1980년대에는 물론 1997년 대법 판결 당시까지도 5.18을 북한이 주도했을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초기 연구자료는 18만쪽에 해당하는 [전두환 내란사건 수사기록]이었다. 수시기록에 나타난 숫자정보들을 통계자료로 전환하니까, 비로소 5.18은 광주시민들이 수행할 수 없는 성격의 군사작전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연구를 해보니, 5.18은 북한이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600명의 코만도와 그 정도 규모의 또 다른 민간인 조연그룹을 파견하였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 600명 중 5월 21일 밤 교도소를 향해 축차 공격하는 과정에서 475명이 전사하였고, 이 475구 중 430구가 청주 야산에 가매장되었다가 2014년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 타고 온 김정일 전용기에 실려 갔을 것이라고 추정할 만한 논리적 정황증거들이 반견되었다. 600명의 코만도 숫자는 남한의 상황기록과 북한 문헌들에 다 같이 표시돼 있고, 475명이 동시에 몰살당했다는 표현은 북한 문헌 3개와 북한이 1980년에 제작한 기록영화에도 표현돼 있다. 북한군이 광주에서 떼죽음을 당해 무등산의 진달래로 피어났다는 노래 [무등산의 진달래]가 있다. 북한에서는 해마다 28개 전 도시에서 5.18기념행사를 거행한다.
거물 증언자들의 핵심 증언들
1. 전 국정원장 및 차장의 증언: 2024.6.13 및 7.3일, 전 국정원장 권영해 및 1차장 최명주가 2회에 걸쳐 일간지 스카이데일리에 증언했다. “5.18은 북이 통일차원에서 수행한 군사작전이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위관 급 코만도 490명이 광주에서 전사했고, 사망한 날짜는 모두 1980.6.19.일로 통일돼 있다. 이들 명단이 이름, 계급, 출생일, 출생지, 소속부대명 순으로 확보돼 있다. 그 명단이 탈북단체 명의로 발행돼 있다.”
2. 김경재 전 평민당 의원의 증언: 2023.5.10. K-news에는 김경재 전의원의 증언이 수록돼 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물밑접촉이라는 명분으로 김대중은 그의 심복인 김경재 당시 평민당 의원을 1999년 12월 6일부터 14일까지 무려 8박 9일 동안 비밀특사로 평양에 보냈다. 그를 안내한 북한인은 김경락. 유럽 국가들의 대사, 남북 적십자 회담의 북한 단장등을 역임한 거물이었다. 김경락은 김경재에게 “5.18은 북이 주도한 통일작전이었고, 그 과정에서 애국 열사들이 전사했다”며, 묘지를 보여주었다. 북한은 김경재에게 달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경재는 돌아와 이 두 가지 사실을 김대중에 보고했고, 이후에 김대중은 국민 몰래 4억 5천만 달러를 정상회담 뒷거래 가격으로 제공했고, 이후 북한 퍼주기가 통치행위라는 명분으로 지속됐다.
3. 1998년,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 김대중 시대의 국정원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가운데 이 두 사람은 월간조선 편집장에게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5.18은 북이 수행해놓고 남한에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대남사업부의 많은 간부들이 사태가 끝난 다음 훈장을 받고 술파티를 했다.” 이 증언이 2013년 5월에야 5.18은 북이 주도했다는 채널A와 TV조선의 방송 분위기에 편승하여 월간조선 기자에 의해 공개되었다.
연구내용과 증언 내용이 정확히 일치
함부로 무시될 수 없는 위 인물들의 증언 내용은 지만원의 연구내용이 사실과 일치함을 공증한 내용들이다. 단지 광주에서 전사한 북한 코만도 숫자에 대해 북한의 문헌들과 기록영화의 내레이션 내용은 5월 23일까지 광주에서 사망한 코만도 숫자가 475명인 것으로 언급된 반면, 권영해는 6월 19일까지 사망한 숫자가 490명이라 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는 광주에서 당한 중상으로 인해 북한에 가서 6월 19일까지 죽은 숫자가 15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후유증
1. 5.18의 성역화로 전라도 지역이 특수계급 화되어 대한민국 위에 군림
연구결과는 42개 증거들을 모두 모아놓고 연구자가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 5.18은 북한이 주도한 군사 게릴라 작전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고, 전 KCIA 수장 및 부수장의 공동증언 내용은 “5.18이 남침의 마중물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이 주도한 군사작전이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처절한 심정으로 부르는 5.18 노래의 제목은 [무등산의 진달래], 그 가사 내용에는 북한의 사랑하는 자식들이 동강난 조국을 하나로 다시 잇자며 광주에서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해 무등산에 피어났다는 내용이 있다. 5.18은 북한이 통일의 마중물로 주도한 군사작전이었다는 것이다.
5.18은 전라도 정치세력(민주당)이 휘두르는 이권의 마패이며, 전라도는 5.18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룩한 제2의 마그나카르타라 주장하면서 국민위에 군림한다. 민주화의 성역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주화를 짓밟은 악의 세력이 있어야만 하는 데, 그 악의 세력이 전두환이고 공수부대라는 것이다. 그 어느 나라에서든 국군은 나라와 국민을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로 존중되는 것이 정상인데, 유독 전라도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군을 살인마라 하고, 성폭행을 일삼는 집단이라며 증오하고 저주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헌법 11조에는 평등권이 보장돼 있다. 그런데 5.18을 정치-경제적 이권으로 악용하는 전라도는 평등권을 무시하고 특수계급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 한 예가 5.18유공자에 대한 특별대우다. 국가에는 수많은 종류의 국가유공자들이 있다. 5.18유공자를 제외한 모든 유공자들은 보훈부에서 자격을 평가하고, 유공자 종류에 관계없이 일원화된 유공공적 급수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5.18유공자만은 광주시장이 별도로 선정하고, 5.18유공자특별예우법을 따로 만들어 다른 유공자들에게는 없는 억대의 일시금을 주고, 다른 유공자들보다 더 많은 대우를 받는다.
많은 국민들이 재판을 걸어 5.18유공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 공적내용을 공개하라 애원해도 사법부를 점령한 좌익법관들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5.18유공자들을 비밀지대로 성역화하고 있다. 국민은 이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내면서도 5.18유공자가 6천 명인지 1만 명인지 모른다. 심지어는 1992년 태어난 전라도 사람들이 유공자로 대우받고 유공자에게 주어지는 취직시험에서의 가산점을 얻기 위해 양자관계 거래가 다반사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유공자 수가 늘어날수록 5.18이 점점 더 강력하게 세력화되고 있다. 이렇게 확대된 특수신분 때문에 국가의 주요직들이 좌익들에 점령당했다.
2. 5.18의 진실 표현하는 국민을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는 이른바 ‘국민 재갈법’으로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고 있다. 일반국민은 전라도를 향해 진실을 말할 수 없다.
3. 전라도 세력은 5.18을 마패로 하여 경제적 정치적 이권을 누리고 있다. 국민은 많은 세금을 유공자들은 물론 전라도세력에 바치면서 노예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4. 5.18단체들은 건국을 부정하는 이념적인 반국가단체들이다.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좌익세력이고, 좌익세력의 성지가 5.18이고 전라도이다. 전라도가 곧 민주당이다.
안내말씀
이 글은 5.18을 무기로 대한민국을 호령하는 좌익세력과의 전쟁을 해야만 하는 애국국민들을 위해 간단히 요약한 브리핑 자료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두 권의 책에 자세히 정리돼 있다.
1. 5.18작전 북한이 수행한 결정적 증거 42개
이 책은 광주의 가처분 소송으로 인해 2심과 3심 결과에 따라 곧 절판된 예정이다.
2. 다큐소설 전두환, 1980년 전후사는 전두환 역사다. 전두환 역사는 형대사의 핵이다. 이것을 모르고 좌익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무장 없이 막대기 하나 들고 싸우겠다는 것이다. 전두환 역사의 진실은 오로지 수사기록에만 있다. 대한민국에서 수사기록을 가지고 연구한 사람은 오로지 지만원 한 사람뿐이다. 그래서 이 책이 중요한 것이다.
주문처: 교보, 예스24, 알라딘
문의처: 02-595-2563
2025.3.2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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