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주장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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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08-14 12:27 조회2,7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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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주장의 근거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데 대한 광주의 주장
1. 5.18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판결을 통해 전두환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내란행위였다고 판결을 했다.
2. 5.18은 이미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어 국가가 해마다 기념하고 있다.
3. 이미 5.18관련 특별법, 예우법, 보상법이 설치되어 유공자들이 보상과 사회적 예우를 받고 있다.
4. 위와 같이 5.18은 이미 범사회적으로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인정이 돼 있다.
5. 이러한 시대에 5.18에 북한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5.18역사를 폄훼하여 민주화유공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불손한 행위다.
5.18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광주의 주장
위와 같이 5.18은 광주의 어린 하층계급들이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서 자유를 억압받고 있는 불쌍한 타지역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되찾아주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전두환 정권에 항적한 민주화운동이었기 때문에 여기에는 북한군이 절대로 개입할 수 없었다. .
5.18이 민주화운동일 수 없다는 나의 생각
운동(movement)이라는 것은 새마을운동이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운동처럼 지도자가 있고, 조작이 있고, 슬로건이 있고, 장기간의 꾸준한 계몽활동이 전제돼야 사용할 수 있는 용어다. 그런데 5.18에는 지휘자도 없고, 조직도 없고, 민주화를 나타내는 표어도 없었다. 광주시내를 가득 채운 슬로건은 계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두환을 찢어죽이자’는 정치투쟁 구호였다.
5.18은 대한민국과 전라도가 맞붙어 싸운 폭력과 폭력간의 충돌사건이었다. 그런데 광주 현장 사진에는 한국군이 아닌 분대-규모의 수많은 무장 괴집단을 지휘하는 지휘자들이 많이 보였다. 충돌사건을 광주시민이 지휘한 것이 아니라 특수훈련을 받은 30-40대의 날렵한 어깨들이 지휘를 했다. 하지만 그 지휘자들이 광주에는 1명도 없다. 북한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믿으라는 것은 아버지를 자식으로 믿으라는 정도의 과격한 억지다.
민주화운동이기 때문에 북한군 개입이 있을 수 없었다는 광주 주장의 허구
5.18이 ‘거룩한 민주화운동’이기 때문에 북한군이 올 수 없었다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정치구호다. 5.18관련 재판은 1996년에 시작되어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종결됐다. 이 기간에 한국 사회 전체에는 북한군 개입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고, 북한군 개입은 상상 범위 저 말리에 있었다.
대법원 판결서에는 ‘판사시항’이 20개 있다. 법관들은 판시사항에 한해서만 판결한다. 그런데 그 20개 판시시항에는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한 판시사항이 없다. 대법원이 북한군 개입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광주는 1997년 대법원이 마치 북한군 개입이 없었다는 판결을 내린 것처럼 이제까지 국민을 향해 눈알을 부라려왔다. 광주가 그동안 국민을 바보로 알고 귀족행세를 하면서 국민 세금으로 호의호식하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귀족 행세를 해온 것이다.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것은 당시 3당 합당에 목을 매야 할 노태우가 광주를 대변하는 김영삼의 요구를 받아들여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호칭하기로 타협한 것이 그 시발이었다. 결국 민주화운동이라는 낱말이 붙은 것은 정치적 이해에 얽힌 정치꾼들이 흥정하고 야합한 결과물에 불과한 낱말이었다.
2025.8.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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