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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철(491광수) 신문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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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08-16 23:13 조회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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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철(491광수)

 

아래 자료는 안명철이 1994년 한극으로 넘어와 2025121일 고소인 신분으로 그가 고소한 형사사건에 재판부에 나와 검사-변호사-피고인으로부터 차례로 질문을 받고 대답한 내용들을 요악한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려면 트로이목마 역할을 하는 이런 탈북자들의 정체를 알아야 할 것입니더. 

 

나무위키 약력

19692월 함경남도 홍원군 출생.

1985(16) 함경남도 홍원군 홍원고등학교 졸업.

1987(18) 홍원농업전문학교 졸업, 정치범수용소 경비대에 입대하여 국가안전보위부 11(함경북도 경성군) 경성 수용소에서 신병교육 받음.

19877~ 199012월 국가안전보위부 13(함경북도 종성군) 종성 수용소 근무.

19911~ 199110월 국가안전보위부 22(함경북도 회령시) 회령 수용소 근무.

199111~ 19923월 국가안전보위부 26(평양시 승호구역) 승호 수용소 근무.

19924~ 19949월 국가안전보위부 22(함경북도 회령시) 회령 수용소 근무.

19949, 22(함경북도 회령시) 회령 수용소를 탈출하였고, 중국을 경유하여 10월에 대한민국으로 망명.(25)

1997년 서울시 광진구 건국대학교 입학.(28)

 

 

피고인을 고소하게 된 동기

안명철은 2025.1.21. 고소인 증언대에 섰습니다. 변호인의 질문에 그는 아래 요지로 답했습니다. 자신이 491광수로 지목된 사실은 피고인의 홈페이지가 아니라 다른 인터넷 매체에 떠 있는 것을 지인이 알려줘서 처음 알았다. 이를 통해 피고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알게 더ᅟᅬᆫ 시기는 2018년이었다. 2019년 하태경이 지만원을 고소하자 권고하기에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 했었는데 다시 하대경 의원이 지만원이 과하게 주장하니까 바로 잡아야 하지 않느냐며 강력하게 권고해서 고소에 동의해주었다. 이후 경찰이나 검찰에서 이에 관해 진술한 적이 없다. 전화로 통화한 적도 없다. 이 사건을 맡은 세종시 류제화 변호사를 알지도 못하고 변호사 선임료를 지불한 적도 없다.

 

5.18에 대해 안명철이 북한에서 인지한 내용

 

1980년 당시 북한에서 5.18에 대한 보도가 있었는가에 대해 질문하자 안명철은 시위대가 무기를 들고 경찰을 습격하고 차를 타고 다니면서 경찰과 싸우는 장면을 비쳐주었고, 특전사가 곤봉으로 시위대를 때리는 모습 등을 보여주었다고 답했다.

 

안명철 나이

 

검사: 증인은 19805-6월 당시 몇 살이었나요?

안명철: 11살이었고, 인민학교 여기로 말 하자면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검사: 당시 증인은 어디에 살고 있었나요?

안명철:함경남도 홍원군 홍원읍 홍윈인민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5.18당시 저는 소년단에 입단해 행사들에 참여했습니다.

 

나무위키에 기재된 바로는 그는 19692월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출생해, 16세인 1985년 홍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18세인 1987(18) 홍원농업전문학교 졸업한 후 정치범수용소 경비대에 입대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2025.1.21. 증인신문에서 그는 검사에게 1980년에 11살이었고, 홍원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고 있었고 소년단 행사들에 동원된 적이 있다고 했다.

 

북한의 학제는 5살에서 유치원에 들어가 6-11살에 5년제인 인민학교를 졸업하고 11-17살에 중고등학교 6년제를 졸업함과 동시에 17세에 곧바로 거의 예외 없이 군에 입대한다. 그가 19692월생이라면 1980년에 11살로 인민학교(5년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해이다. 그런데 그는 검사에서 1980년에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2회에 걸쳐 똑같은 대답을 한 것으로 보아 이는 오류가 아니라 허위과정에서 발생한 착오라는 생각이 든다. 1980년에 그는 11, 초등학교 2년생이었기 때문에 자기는 광주 현장에서 491광수로 지목된 인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만일 그가 1980년에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면 초등학교 2학년으로부터 5년제 초등학교를 4년간 더 다니고 6년젠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10년을 더 다녀야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고, 그러면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는 1990년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나무위키 및 그 외의 증언들에서 16세인 1985년에 6년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답했다. 이는 나이를 속이는 혼동과정에서 발생한 착오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국정부가 탈북시켜 주었다

 

<녹취록 11>

 

피고인: 증인은 199410월 한국에 도착해서 국정원 신문을 몇 시간씩 몇 회 받았나요?

 

안명철:한국에 오기 직전 제가 수용소를 탈출했고, 이 탈출사실을 안기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한국정부(안기부)의 도움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따라서 제 신원이 확실하기 때문에 영등포 대성공사에서 일주일 있다가 구리시로 나왔고, 이후 안기부 조사는 전혀 없었습니다.

 

지만원과 원한 관계 없었다

 

구주와 변호인: 증인은 피고인을 알고 있나요?

안명철: 전혀 모르고 있다가 2018년 광수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이름만 알고 있었습니다.

 

구주와 변호인: 시스템클럽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나요?

안명철: 홈페이지는 모르겠고, 인터넷에 떠 있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하는 피고인과 안명철 사이의 질의응답

 

안명철의 입대 전 족적

 

<녹취록 15- 17>

 

: 증인은 1985년에 홍원고등중학교를 졸업했지요?

:

 

:졸업할 때 17살이었지요?

:그때 17살이었습니다.

 

: 북한에서는 17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군대에 가지요?

:

 

:증인도 그렇게 군대에 갔겠네요?

:저는 농업전문대를 18개월 정도 다니다가 군대 갔습니다.

(: 19세에 입대했다는 이야기)

 

:북한에서는 계획 하에 움직이는 곳인데 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졸업 몇 개월 남겨두고 입영을 시키나요?

:북한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17세이고, 그 나이에 곧바로 군대에 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북한 당국은 마음대로 합니다.

 

: 북한 시스템에 의하면 모든 북한인민은 17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마자 곧바로 징집이 되는데 어째서 증인만 다른가요?

: , 원칙은 맞는데 군대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북한당국은 계획에 의해 사회를 운영하는데 증인을 농업전문학교에 입학시켰으면 일단 졸업을 시킨 후 농업분야에 근무시키는 것이 원칙일 것 같은 데 왜 보위부가 중간에 군대로 데려갔나요?

: 북한 시스템이 그러하니까요. 저는 농업전문대를 다니는 도중에 보위부가 뽑아서 군대에 갔습니다.

 

: 북한의 대남방송에서는 증인이 19874월 홍원남자고등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입대했다고 밝혔는데, 그게 더 합리적으로 들리는데요?

:북한방송도 틀릴 때가 있습니다. 제 아버지 이름 끝 글자도 잘못 썼더라고요.

 

:북한 방송에서는 증인이 회령수용소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하는데요?

:북한은 수용소 존재 자체를 부인하니까요.

 

< 녹취서 17-20)

 

:증인은 이만갑 프로에 나와 말하기를 어느 날 보위부가 집으로 찾아와서 증인을 차출해 갔다고 했는데 북에서는 울히의 국정원과 같은 부서인 보위부가 대학생 중에서 군인을 차출해가나요? 방송을 보면 보위부가 증인에게 묻기를 당시 3년 근무하고 정치대학 갈래?” 했다는데 그러면 3년 군복무하고 정치대학 갔나요?

: 김정일이 중간에 제도를 바꾸어버려서 제가 10년 동안 군에 있었습니다.

 

: 북에서는 수용소 경비병 한명을 뽑는데 북한판 CIA요원이 직접 가정에까지 와서 입영자의 의사까지 물어가면서 뽑아간다는 것인가요?

: 제가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위부가 비밀리에 와서 뽑아갔습니다. 홍원군에서는 저 한사람만 그렇게 뽑혀갔습니다.

 

: 앞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마자 군에 갔다고 해놓고는 여기 방송에서는 농업전문학교를 다니다가 특별히 뽑혀갔다고 했네요?

:저는 대학에 다니다가 뽑혀갔습니다.

 

: 동아일보에서 증인은 증인은 증인의 부친이 양정사업소 바서였고, 모친이 상업관리소 지도원이어서 부모가 모두 노동당원이었고, 이런 가문은 매우 드물기 때문애 핵심계층으로 대우박았다고 밝혔네요?

:

 

: 핵심계층이 전체 인구 중 몇 %나 되나요?

: 그런 잘 모르겠는데, 여기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아머지-할어버지 쪽은 백정이었고, 어너니쪽은 배꾼이었기 때문에 핵심계층(북한인구의 25%)으로 올라간 거 같습니다.

 

:핵심계층은 당에 공을 세웠거나 김일성과 함께 항일전을 했고나, 6.15전투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혁명계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요?

:일반 주민들도 토대가 좋으면 핵심계층이 되는 데 그것은 설명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증인의 저서(완전통제구역) 256쪽으로 보면 증인은 애초에 경비병으로 뽑힐 수 없었지만 어머니기 당간부들과 군관들에게 내 자리를 특별히 부탁해서 경비대로 갈 수 있었다고 했지요?

:

 

:앞에서는 부모가 모두 당원이기 때문에 핵심계층이 되어 계급적 대우를 받아 특별히 뽑혀갔다고 해놓고, 여기에서는 원래는 증인이 수용소 경비대로 갈 처지가 못 되었는데 어머니가 군관과 당간부들에 로비를 해서 로비로 인해 경비대에 갈 수 있었다 했네요? 위와 왜 이야기가 다른가요?

:핵심계층이라 해도 뇌물을 써야 좋은 데 갑니다.

 

:북한에서는 뇌물 주면 가고 싶은 곳에 가나요?

:토대가 좋아야만 뇌물도 줄 수 있습니다.

 

: 부모가 뇌물을 줄 만큼 잘 살았나요?

: 부족한 것 없었습니다.

 

: 무슨 직책인데 돈이 그렇게 많았나요?

: 아버지는 식량권을 다 쥐고 있었고, 어머니는 홍원군이 막고사는 것을 다 해결하는 직책이었습니다.

 

: 앞에서는 가문이 핵심계층이기 때문에 좋은 곳에 뽑혀갔다고 해놓고는 여기에서는 원체 갈 수 없는 처지였는데 어머니가 뇌물로 당간부와 군관들을 움직여 수용소 경비대에 갔다고 하니 말이 다르잖아요?

:저는 입대하기 전에는 제가 홍원군에서 가장 잘나가는 집안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군부대에 와보니 제가 가장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경비대원 모두가 중앙당 간부, 보위부 지도원, 항일투사 아들 다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 뇌물을 얼마나 주었나요?

:어머니 이야기로는 세이코 시계 2개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세이코 시계 가격이 1,500원이었거든요. 3,000원이면 큰 돈이었습니다. 달시 노동자 월급이 80원 했었습니다.

 

<21- 25>

 

: 북한 방송에 의하면 부친은 양정사업소 노동자였고, 모친은 벌목(갱목) 사업소 노동자였다 하는데 어떤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 할아버지가 음독자살을 했다 했지요?

:

 

: 북에서는 음독자살을 하면 반동을 넘어 반역으로 취급받지요?

: 그래서어머니가 뇌물을 써서 기록을 바꾸었습니다.

 

: 뇌물만 주면 반역 가족이 핵심계층으로 둔갑할 수 있나요?

: 할아버지가 농부여서 소를 키우셨는데 6.25 이후 나라에서 소를 빼앗아 가자 칼로 목을 찔러 자살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등을 보면 부친도 양잿물을 드시고 음독자살하셨다고 말씀 했는데, 자살을 한유가 식량배급제도를 비판했다가 그것이 반역 정치범으로 몰려 자살했다고 했네요?

: 당중안에서 배급소마다 식량조사를 나와 지방 간부들의 책임을 따지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술 한 잔 하시고, “지금 쌀이 없는 게 밑에 간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다 위에서 잘못해서 그런 것이다. 배급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라 말하신 것이 당정책 위반죄에 걸려 조사를 받던중 음독자살을 하셨습니다.

 

: 증인의 저서 261쪽을 보면, 증인의 부친이 강냉이를 훔쳐다 이웃사람들에 나누어주다가 절도범으로 몰려 억울해서 음독했다고 되어 있는데요?

:

 

: 양곡 절도범으로 몰려 음독했다는 말과 북한의 배급제도를 비판해서 조사를 받다가 음독했다는 말은 죄질의 치이가 다른데요?

:아닙니다. 다 묶어서 한겁니다.

 

: 어떻게 묶어 지나요? 하나는 훔치다가 발각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을 비판한 것인데, 두 개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데요?

: 당비서를 잡으려고 하면 다 그렇게 합니다.

 

: 이것은 당에서 죄를 씌운 게 아니라 증인이 증인의 책에 쓴 내용이예요.

: , 알고 있습니다.

 

: 어쨌든 한군데에서는 음독한 이유가 당을 비판했다고 했고, 또 다른 군데에 가서는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려다 절도범으로 몰렸다 다르게 말한 건 맞지요?

: 같이 보시면 됩니다.

 

: 같이 보시면 된다는 말은 증인의 말이고, 객관적으로 보면 이 두 개의 말은 전혀 다른 말이 아닌가요?

: 그것은 그만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증인의 저서 254쪽을 보겠습니다. 할아버지는 홍원읍 소작농으로 작은 땅과 소 한 마리를 마련했는데 1960년 당이 소를 빼앗아 갔다. 속이 상해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고 돼 있습니다. 북한은 언제 건국됐나요?

: 194899일입니다.

 

: 1960년이면 건국한지 12년인데 그때면 북한에 사유재산제도가 있었나요?

: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저는 할아버지 알굴을 모릅니다.

 

: 1960년이면 북한에서는 밭도 소도 개인이 소유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가 개인재산을 소유했다는 말인가요?

:해방되자 처음에는 사유재산을 인정했다가 다시 빼앗았는데 1960년이 아마 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설사 그렇다 해도 소한마리 빼앗아 간다고 목에 칼을 찔러 자살할 수 있나요?

: 억울하니까 그랬겠지요.

 

: 그렇게 못 사는 집에서 어떻게 증인을 좋은 데로 보내기 위해 뇌물을 쓰나요?

: 지주가 망하고 머슴이 뒤비집힌 세상이 되었고, 열심히 일하니까 좋은 보직도 받았겠지요.

 

: 증인이 말했듯이 북에서는 자살이 반역죄에 해당하고, 반역죄는 3대에 걸쳐 처벌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증인의 할아버지가 자살했을 때 증인의 부모와 중인도 연좌제에 걸려 바로 그때 수용소에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자살의 이유에 따라 처벌이 달라집니다.

 

: 할아버지처럼 자살하면 처벌이 안 된다는 것인가요?

:할아버지는 억울해서 자살하셨고, 아머지는 당정책을 비판했다가 조사받는 도중에 자살하셨습니다.

 

:자살하면 다 반역죄가 아니라 자살의 성격에 따라 죄질이 다르다는 것인가요?

:

 

: 19941, 증인의 부친이 음독자살을 했는데 그때는 증인 말에 따르더라도 모친과 군복무중인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 모두가 3월에 곧바로 요덕수용소에 수용되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때 한참 조사받고 그럴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자실이 반역죄로 분류되었는데도 부친과 모친은 처벌받지 않았고, 자유의 몸으로 요로에 뇌물을 써서 자살 기록을 지우고 그 자리에 사망이리고 기록하게 만들어 부모의 출신성분을 반역계층’(적대계층)에서 최상위 계층인 [핵심계층]으로 둔갑하고 부부가 다 노동당원이 되었다고 했는데 북한에서 정말로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건가요?

:, 가능합니다.

 

:누구에게 뇌물을 주었나요?

:저희 어머니가 준 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어떤 사람입니까?

: 문서고를 가지고 있는 경찰문서고겠지요. 보위부는 아니고 경찰이나 당기관이겠지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노밀을 쓰면 반동가족도 혁명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저희 가족은 반동가족은 아니지요. 아저지의 자살은 반동이 맞고 할아버지는 반동이 아니라 억울한 죽음이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 억울하게 자살하였기 때문에 반역이 아니었다면 구태여 그런 자살기록을 뇌물을 주어서 사망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나구요?

:바꿀 수 있습니다.

 

<26-34>

 

:증인의 저서 256쪽입니다. 22수용소 경비대에서 8년을 근무했는데 초기 3년은 경비병으로, 5년은 운전병으로 근무했다 했네요?

:

 

: 운전병이 된 배경이 운전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나요?

:아닙니다. 충성도와 사격실력, 열성적인 근무 때문이었습니다.

 

:경비병에서 운전병으로 바뀐 동기가 사회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운전실력 때문이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 그것도 좀 참고가 되었지만, 600명 부대원 중에서 3명이 뽑혔는데 그 3명 중 제가 된 것입니다.

 

: 운전을 어디서 배웠나요?

:농업전문대학교 다닐 때 트랙터 운전을 배웠습니다.

 

: 그것은 어깨너머로 배운 게 아니라 정식으로 배운 것이잖아요?

:그렇다고 면허를 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 그래서 면허를 받았나요?

:아닙니다.

 

: 여기 증인의 책에서는 어깨너머로 베운 실력으로 운전병이 되었다고 했는데, 어깨너머로 배운 운전실력으로 군대 운전병에 뽑힌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수용소 운전병이 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운전실력이 있어서 뽑히는 게 아니라 훈련을 열심히 받고 사상이 투철해야 합니다.

 

: 경비대의 인력은 얼마인가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600명입니다.

 

: 수송부고 그 600명에 포함됐는가요?

:

 

: 수송부는 몇 명인가요?

: 8명입니다.

 

:차가 8대 밖에 안 되나요?

:그렇습니다. 포차 4대와 수송차 4대입니다.

 

:8명의 숙소는 경비병 숙소와 딸로 있나요?

:아닙니다. 같이 생활합니다.

 

: 증인의 저서 257쪽을 보면, 증인이 초기 경비병이었을 때, 정치범에게 헌 신발과 고깃덩이를 가져다 주었다고 했는데.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던 당시 고깃덩이는 어디서 났나요?

: 수용소 경비대와 보위원은 일주일에 두 번씩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신발은요?

: 군인이 신던 폐 신발입니다.

 

: 고깃덩이를 정치범들에게 나누어주다가 발각되었을 때 노물을 써서 해결했다고 했는데요?

:뇌물이 아닙니다. 근신처벌을 받았습니다.

 

:여기 이 책에는 뇌물을 써서 무마시켰다고 기재돼 있는데 그러면 책이 거짓말로 쓰였다는 것인가요?

: 근신처벌을 받았습니다. 군대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남한에도 북한에 대한 상식이 많은데 반체제 반역범에게 시혜를 베풀다 걸리면 근신 정도의 처벌이 아닌데 그걸 알면서 고깃덩이를 주었다는 것인가요?

:당연히 주면 안됩니다(동문서답).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19944, 부대에 전보가 왔다. 아버지가 사망했으니 집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휴가를 내서 집으로 갔다. 집은 절반이 부서져 있었고, 어머니가 보위부에 잡혀간지 한 달이 넘었다. 12세 여동생 혼자 있었다라고 되어있는데요, 모친이 3월에 잡혀갔다면서 누가 증인에게 이런 전부를 쳤는가요?

:친척이 쳤습니다.

 

: 정리하면 부친이 자살하신 날이 1994.1.22. 어머니가 보위부에 끌려간 때가 3, 증인이 휴가를 간 때가 4, 맞지요?

:

 

: 여동생은 1980년생이라면서요?

:

 

:1980년생이 1994년에 어떻게 12살 밖에 안 되나요?

:뭐 나이가. . .

 

: 책에는 부대에 복귀한 후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어머니는 보위부에 끌려갔다가 15호 관리소(요덕)로 가셨다. 12세의 여동생과 군복무중이던 남동생도 함께 요덕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고 돼 있는데, 어떻게 증인 혼자만 처벌받지 않고 5개월씩이나 무사하다가 5월에 포상 휴가를 갈 수 있나요?

:제가 부대관리소장과 수용소 소장을 찾아가 저는 아버지하고 다르다, 나는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썼습니다. 그 과정에 김일성이 죽어서 100일 동안 모든 행정이 스톱되었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고 있다가 9월에 탈북한 것입니다.

 

:김일성이 죽은 날이 언제인가요?

:78일입니다.

 

:그러면 증인의 모든 가족은 3월에 모두 다 보위부에 끌려갔는데, 어떻게 증인만 78일 이전까지 어떻게 3개월 이상 무사했는가요?

:저희 부대가 좀 특수성이 있었습니다.

 

: 그러면 동생은요?

:거기는 일반부대니까요.

 

: 동생도 좋은 부대에 갔다고 했는데 그러면 동생은 왜 요덕에 끌려갔나요?

: 동생 부대는 국경에 있었으니까요.

 

: 북한의 행정처분이 어느 부대에는 빨리 가고, 어느 부대에는 늦게 가나요?

: 수사를 하여면 기간이 필요하지요. 보통 예신기간이라고 6개월이 있습니다.

 

: 모든 가족은 다 3월에 요덕으로 끌려갔는데 증인 혼자만 9월까지 안 끌려 갔다는 것이잖아요?

:여기에 왔으니까 안 끌려간 것입니다.(동문서답, 요설)

 

: 5월에 표창휴가를 다녀오자마자 증인은 부대에 돌아와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 김정일 장군에 충서ᅟᅩᆼ하겠다라고 맹세도 하고 혈서도 쓰면서 별거 별거 다 했는데도 돌아온 반응은 딱 하나 그 애비에 그 아들이다 라는 차가운 시선만 돌아왔고, 그래서 탈북을 결심했다고 기재한 것 맞나요?

:

 

:경비부대원이 600명이라 했는데, 그중 누구를 상대로 맹세하고 혈서를 썼나요?

:수용소 정치부장 앞에서 썼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안 쓰고요?

:

 

: 부대 앞에서 안 쓰고요?

:우리 소대 앞에서 썼습니다.

 

: 소대가 몇 명인가요?

:우리 소대가 20명입니다.

 

:20명 앞에서 혈서를 썼다는 것인가교?

:

 

:103호 유튜브에서 증인은 군복무 8년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갔다. 집에는 초등하교 다니는 여동생하고, 엄마하고 아버지가 있어야 했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반면 동아일보에서는 부친이 사망했으니 집으로 오라는 전보를 4월에 받았다 했습니다. 그러면 증인은 부친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4월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되는데, 어떻게 증인이 5월에 포상휴가로 집에 처음 갔을 때, 집이 텅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비로소 부친이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나요?

:부대에서 안 알려주었습니다.

 

: 부대에서 안 알려주었다는 예기는 증인의 저서에 쓰인 이야기이고, 여기 동아일보에서는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왜 말할 때마다 다른가요?

: 아닐 텐데요

 

:증인이 직접 저술한 책 257쪽에서는 “19943월에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왔다. 절대로 집에는 오지말고 장기복무를 지원하라는 내용이었다. 영문을 말랐지만 그냥 지냈다. 그러나 5월 중대장이 내에 편지 한 장을 전해주면서 출장준비를 하라 했다. 2월에 도찰r한 편지에는 부친이 122일 돌아가셨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되어있는 데 이 모친의 편지를 중대장이 증인에게 주지않고 보과해 오다가 5월에야 주었다는 이야기인데 중대장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했나요?

:안 알려주었습니다.

 

:2월의 편지에는 부친이 자살했다는 내용이 있는 편지고, 4월의 편지는 장기복무를 하라는 어머니로부터의 편지인데, 중대장이 부고의 편지는 본인에 전달해주지 않고, 장기복무를 지원하라는 편지만 준 이유가 뭐냐구요?

: 그것은 저야 모르지요

 

:증인의 저서 269쪽입니다. 5, 특별휴가를 갔다가 부대에 복귀하자 부친의 음독자살 사실이 알려져 감시의 눈초리들이 사망에서 빛났다고 돼 있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눈추리였나요?

:제가 쇼크가 와서 자꾸만 쓰러졌고, 그때마다 눈을 뜨면 위생소에 누어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자꾸만 따라다니기에 멘붕상태에 빠진 저를 도와주는 걸로 알았는데 며칠 후 한 친구가 정치부에서 너를 감시하라고 허던데 무슨 일 있느냐물어보기에 제가 감시받고 있는 중 랑았습니다.

 

: 아까 소대원 20명 앞에서 혈서를 썼다고 했는데 그 20명 이외에 정치원 장교들이 있었나요?

:. 있었습니다.

 

:몇 명 있었나요?

: 두 명 있었습니다.

 

:누구누구인가요?

: 소대장과 정치부장입니다.

 

: 정치부장은 계급이 무엇인가요?

상사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대령입니다.

 

:소대에 대령이 있나요?

: 정치부장이 매주 돌아다니면서 생활총화를 합니다.

 

:소대장은 소위인가요?

: 중위입니다.

 

: 증인이 쓴 첵 269쪽을 보면 증인은 중대원, 정치지도원, 군관들이 보는 앞에서 가로 20cm 세로 30cm의 하얀 천에 [말로만 충성심을 보이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이 20자의 글자를 혈서로 썼는데, 처음엔 칼로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냈다가 중간에 피가 멈춰서 이빨로 다른 손가락을 물어뜯어서 20자 글자를 다 썼다고 했는데 맞나요?

:

 

: 이 혈서를 쓰자 장내가 숙영해지고 정치지도원과 군관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고, 감시가 사라지면서 그 뒤로는 칭찬만 받게 되었다고 했는데 맞지요?

: , 맞습니다.

 

: 이것은 굉장한 얘기인데요?

: 살아야 하니까 그랬습니다

 

:가로 20cm, 세로 30cm이면 딱 A4 사이즈인데 그런게 작은 천에 20자를 썼다는 것인데, 20명은 어디에서모였고, 증인은 어느 앞에 섰나요? 앞에 나가서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

 

:가로로 썼나요, 세로로 썼나요?

:아마 가로로 썼던 것 같습니다.

 

:헝겊이면 어디다 받쳐놓고 썼을텐데요?

: 책상에 놓고 엎드려 쓴 것 같습니다.

 

:이 작은 A4 사이즈의 천에 손가락에 피를 내서 썼는데 20자를 모두 다 썼다는 말인가요?

:, 썼습니다.

 

: 20자의 글씨가 다 보이나요? 여기에서 재판장님 계신 공간 정도에서 A4지에 썼다는 20자가 다 보이겠느냐구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34-40>

 

:증인은 탈출 날짜를 917()로 잡았다. 경비대의 모든 휘발유관을 잘랐다고 했는데 무얼로 잘랐나요?

:펜치로 자르면 됩니다.

 

: 연료탱크에서 엔진으로 들어가는 파이프를 자르면 영원히 못 쓰지요?

: 아닙니다. 러시아차는 쓸 수 있습니다. 교체해서 씁니다.

 

: 수리부속을 금방 갈이낄 수 있나요?

:수리하면 되겠지요. 고무관으로 연결해서도 쓸 수 있습니다.

 

:본닛을 열면 연료관이 보이나요?

: 우리나라 차와 러시아 차가 다릅니다. 엔진에 들어가는 연료주입구가 보입니다.

 

:파이프가 수리부속에 있나요?

:그것은 잘 안 합니다.

 

:한번 자르면..

:수리소에 가야합니다.

 

:어디로 가나요?

: 정치범들의 차 수리소가 있습니다.

 

: 어디인데요?

: 수용소 안에 있습니다.

 

: 거리가 얼마나 되나요?

: 3km 정도 됩니다.

 

:모두 자른 이유가 증인이 도망을 가도 추적해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면서요?

:

 

:그 차량들은 노천에 있었나요?

:차고가 따로 있었습니다. 포가 견인돼 있는 포차 4대는 다른 곳에 있었고.

 

: 거리가 얼마나 되나요?

: 우리 바로 옆 사무실입니다.

 

: 그러면 두 군데 다 다니면서 관을 잘랐나요?

:아닙니다. 포차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포차로는 증인을 따라올 수 있잖아요?

: 포차는 거리가 말어서 제가 자를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포차 4대가 저를 따라왔습니다.

 

: 그러면 책에 쓴 것과는 달리 모두 다 자른 것은 아니네요?

:, 다 자를 수는 없었습니다.

 

:4대를 자르는 동안 순찰도 없었나요? 자르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 10분 걸렸습니다. 4대가 아니라 3대만 잘랐습니다.

 

: 모두를 잘라야 증인을 못 좇아오지 않나요?

:포차들은 포가 견인돼 있어서 바로 출동이 불가능합니다.

 

: 포차가 출동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아무리 빨라도 1시간은 걸립니다. 포차는 훈련할 때만 사용하기 때문에 고장이 잦아 바로 출동이 불가능합니다.

 

: 그러면 포차가 증인을 잡으로 두만간변에 오오기까지는 두 시간 이상이 걸렸겠네요?

:아마 지체되었을 겁니다.

 

: 출동을 시작하기까지 1시간 걸리고, 두만강까지 오는데 45분 걸린다면서요?

:.

 

:2시간 안에만 탈출하면 된다고 생각했나요?

:시간까지는 고려를 안했고, 최대한 시간을 볼려고 한 것입니다.

 

:부소대장의 계급은 무엇인가요?

: 상사입니다.

 

: 증인의 계급은 무엇이었나요?

: 하사였습니다.

 

:어머니가 증인에게 뭘 희망하라 했나요?

: 초기병입니다. 여기로 말하면 원사입니다.

 

: 하사, 중사, 상사가 아니고요?

: 아닙니다. 그것은 일반병들입니다.

 

:상사도 일반병인가요?

:, 상사도 10년 근무하면 제대합니다.

 

: 초기병이 어떻게 갑자기 특무상사가 되나요?

: 제대 안 하고 장기복무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그것도 그냥 되는 게 아니고. .

 

: 10년이고 20년이고 올라가면 원사가 된다는 것인가요?

:, 맞습니다.

 

:부서대장이 상사라면서 그 부소대장에게 하사인 증인이 정문을 통과할 예정이니 내무반에 가서 술을 담아 올 배낭을 하나 가져오라 심무름을 시켰다 했는데, 하사가 감히 상사에게 이런 잔 심부름을 시키나요?

:운전병은 내무반에서 입김이 좀 있습니다.

 

:상사가 하사의 심부름으로 20분씩이나 시켰다 했는데 하사와 상사는 하늘과 땅인데 가능했나요?

:제가 대대장 운전병을 했기 때문에 대다장 계급이랑 맞먹었습니다.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 대대장 차량부터 몰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 당직실은 어떤 건가요?

:야간 보초를 서는 곳인데 우리로 말하면 법원 정문에 해당하고 그기에는 무기가 있습니다.

 

: 무기고를 여는 열쇠가 증인에게 있었나요?

:아닙니다. 직일관 책인장교가 가지고 있습니다.

 

:장교가 열쇠를 가지고 있었는데 증인이 어떻게 무기고 문을 열었나요?

: 잘 때는 책상 위에 놓고 자니까요.

 

:거기에 권총을 차는 장교는 몇 명이었나요?

:장교들이 집에 가면 무기를 직일관에게 맡기고 갑니다.

 

:장교가 몇 명인데 권총이 다섯자루나 있었나요?

:거기다 놓고 집에 가니까요

 

: 한국에서는 일반 졸명도 그렇게 허술하게 하지 않는데 굉장히 허술하네요

: 그야 모르겠습니다.,

 

:완전 당나리 군대네요?

: 그건 평가하기 나름이지요

 

: 당직관인 상사가 증인에게 배낭을 가져다 준 후 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증인은 미리 숨겨놓았던 AK소총과 실탄 60발을 새벽 230분에 차에 길어놓았다 했네요?

:

 

:60발이면 탄창이. .

: 2개입니다.

 

: 거기에다 7kg짜리 쌀과 송이버섯을 차에 실어놨다고 했네요?

:

 

:쌀은 무슨 용도였나요?

:중국 산속으로 들어가야 할 경우를 대비해 식량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 송이버섯도 그런 건가요?

:

 

: 송이버섯은 소나무가 많아야 하는데 수용소에 소나무가 그렇게 많은가요?

: 나무가 많이 자랍니다

 

:운전병이 개별행동을 통해 송이버섯을 딸만큼 자유롭나요?

:근무하면서 딸 수 있습니다.

 

:북한의 산은 민둥산인데요?

:특수구역에는 다 나무가 많습니다.

 

:탈출하는 사람이 4.5kgAK 소총과 무거운 탄창, 1kg이나 되는 권총 5자루면 그것도 5kg인데, 훔친 권총이 5자루였나요? 6자루였나요?

: 4정인가 아마 그랬을 겁니다.

 

: 왜 권총이 많이 필요했나요?

:죄수들 데리고 나와야야 하니까 한 자루씩 주려고 했습니다.

 

:죄수는 몇 사람인가요?

:두 명이요.

 

:그러면 3자루면 안 되나요?

:집어넣다 보니까, 그리고 총기가 고장 날 수 있으니까요.

 

: AK소총은 따라오는 병사를 대비한 것인가요?

:권총은 호신용이었습니다.

 

: 호신용으로 권총이 6개나 필요했나요?

:4개였던 것 같습니다. 중국 공안에 보니까 4개로 나오더군요.

 

<40-44 >

 

:평소 안면이 있다는 초소장의 계급은 무엇인가요?

:상사였습니다.

 

: 분대장은 계급이 무엇인가요?

:중사입니다.

 

: 분대장 생일이라 밖에 나가 술을 가져오려하니 부하들에게 내가 나가면 차단봉을 올리게 해달라라고 중인이 초소장에게 얘기했더니, 초소장은 그러면 술만 말고 쌀 20kg까지 가져다 달라고 했다고 했는데, 1개 소대에 수많은 분대장이 있고, 분대장은 내무반의 일원일 뿐인데, 하사인 증인이 분대장 생일을 핑계대고 감히 상사계급인 부소대장에게는 내무반에 가서 배낭을 하나 가져오라 부탁하고, 또 다른 상사 계급인 초소장에게도 분대장 생일 파티에 사용할 술을 가져오겠으니 부하에게 초소 문을 열어놓게 하라고 하사가 부탁할 정도라면 이건 군대도 아니네요?

: 군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군기가 많이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 북한군은 군대도 아니네요? 북한군을 조금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네요?

: 여기에 비하면 복무기간은 길지만 전투력 수치는 낮다고 봅니다.

 

: 그때가 고난의 행군 기간인데 어떻게 졸볍이 쌀을 20kg/식이나 가져올 수 있나요?

:부대에서 공급해주는 게 있습니다.

 

:밖에서 가져와달라 했다면서요?

:아닙니다. 부초소장이 밖에다 20jg을 준다고 부대에서 가져다 달라고 한 것입니다.

 

: 술은 밖에서 들여오는데. .

: 술은 밖에서 들여오고 쌀은 안에서 갖다 달라한 것입니다.

 

: 초소를 향해 달리기 전에 증인은 20대 남녀를 차에 태웠는데 초소에 도착하기 직전에 그들에게 총 한 자루씩 주면서 같이 싸우자고 했더니 무서워서 뛰어내렸다면서요?

:

 

:탈북이라는 것은 혼자 하기도 어려운 것인데 남들을 달고 다니면 주체스럽지 않나요?

:살려주고 싶었습니다.

 

:25호증 4쪽에서 증인은 탈출할 때 교전이 벌어질 수 있다. 교전이 벌어지면 혼자 싸우는 것보다 셋이서 싸우는 게 유리해서 남녀를 데리고 나왔다고 했는데요?

:아무래도 총이 여럿이면 좋지요.

 

:동아일보에서는 증인이 남매를 살려주고 싶에서 차에 태웠다고 했지요?

:

 

: 그런데 증인의 저서 270쪽에는 예기가 전혀 다른데요. ‘남좃선에 가면 증인을 증명할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증거로는 비밀문건이라든지 사진이라든지 이런 게 있어야 되는 데, 비밀문건은 탈취하기 어렵고, 사진은 사진기가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고, 그래서 궁리 끝에 두 남매를 남한에 데려가서 이 두 남매를 증거로 삼아 증인의 탈북동기를 남한당국에 밝힐 생각을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제 탈북동기에보다는 그들을 이용해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초소를 향해 달렸고, 남매는 뛰어내렸고, 차단봉을 올리라는 지시를 받은 병사가 차단봉을 막 올리려는 순간, 안에 있는 병사가 전화를 받더니 차단병을 올;lfu 하던 병사에게 소리를 질러서, 증인이 벌써 눈치챘구나, 벌써 틀렸구나하는 생각에 차단봉을 치고 나갔다 했습니다. 평소 40분 걸리는 두만강 변에 15분만에 도착했다고 했지요?

: 시간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엄청 밟았던 것 같습니다.

 

: 북한에서 가장 삼엄하다는 회령 수용소가 겨우 치고나가면 부러지는 그런 차단봉으로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인가요?

:

 

: 그런 차단봉은 있으니마나 한 것이 아닌가요?

:초소에까지 올라오기가 힘이 든 것입니다.

 

:수용소에 고압선이 흐르고 건너 뛰지 못하게 두덩이까지 파놓고 있다면서요?

:

 

: 고압선, 구덩이로 이루어진 담장에 치고나가면 부서지는 차단봉이 정문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데요?

: 제가 경비시설을 만들지 않아서 저는 모르겠습니다.

 

: 초소를 치고나와 40분 거리를 달리는 동안 검문이 없었나요?

:사회지역이라 검문이 없었습니다.

: 증인은 앞에서 차단봉을 치고 나갈 때 차단봉이 분명히 부러졌다고 했지요?

: .

 

:그런데 증인의 저서 273쪽에는 세천초소를 향해 달리자 초소장이 약속대로 차단봉을 올려주고 있었다고 기재돼 있네요?

:예 같이 있었습니다.(동문서답)

 

: 치고나갔다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차단봉을 올려놓고 있었다고 돼 있는 데 왜 말이 다른가요?

:근무를 서야 하니까 그런겁니다. 초소장이면 근무를 서야지요. (동문서답)

 

:앞에서는 눈치를 채고 차단봉을 안 올려줘서 치고 나갔다해놓고 여기서는 차단봉을 올려놓고 있었다 했나요?

: 차단봉은 전기로 하는 것이 아니고 끈으로 당겼다 놀렸다 하는 겁니다. (동문사답)

 

< 45- 49 >

 

: “차에 실어 둔 AK소총, 권총, 7KGDML , 송이버섯, 배낭을 양어깨에 짊어졌다.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물이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라고 했는데 총과 실탄만무게만 합쳐도 20KG 되는데 거기에 7kg의 쌀과 송이버섯을 어깨에 메고 9월의 두만강 거센 물결을 헤치고 건널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급한 마음에 뛰어들었는데 물에 빠져 죽을뻔했고, 총 다 버리고 나왔습니다.

 

:중국으로 도망가는 사람이 그게자루의 권총과 AK 소총까지 가지고 있다가 중국공안에 걸리면 나 죽여라하는 신호인데 그 위험한 걸 가지고 중국으로 갈 생각을 했다는 게 이해가지 않는데요?

:제가 탈북할 때 이미 체포조가 따라붙었고, 죽기살기로 싸우다 죽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두만강에서 AK소총은 버렸습니다.

 

: 물속에 다 비리고 권총이 들어있는 배낭 하나만 가지고 물에서 나와보니까 도로 북한이라 했네요?

:

 

: 칠흑의 밤인데 물에서 떠밀려나온 곳이 북한 땅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요?

:제가 지리를 좀 알고 있어서입니다.

 

:실패한 다음에 눈에서 눈물이 났다. 내 생애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라고 했는데, 쫓기는 몸으로 실패했으면 다시 금방 시도를 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텐데, 증인은 왜 날이 샐 때까지 울기만 했다는 것인가요?

:빠져 죽을 뻔해서 물이 무서웠습니다.

 

:9월에 먼동이 트려면 6시 정도일텐데 3시에 도착해서 6시까지 3시간을 울고 있었다는 것인가요?

:시간은 잘 모르겠고. . .

 

: 부대에서는 비상이 걸려 증인을 뒤쫓아 올 텐데 다급한 마음이지 울마음이 아닌 것 같은데요?

: 박사님도 물에 빠져서 죽을 고비를 겪어봤습니까?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 그렇게 무서운 물을 어떻게 금새 건넸다는 것인가요?

:죽기 살기로 . .

 

: 그러면 실패 후 죽기살기로 또 시도해야지, 3시간 동안이나 울고 있었나요?

: 차라리 물에 빠져 죽은 게 나으니까요

 

:추격대 차량은 몇 대였나요?

: 2대인가 3대인가 정확히는 모릅니다.

 

:증인의 저서 275쪽입니다. ‘중국 땅이었다. 팬티만 입고 농가에 들어가 권총을 세웠다. 그런데 다행이 말이 통하는 조선족이었다. 남자는 살려달라 빌었고, 부인은 욕을 했다. 부인에게 옷을 가져오라 햇허 입었다. 남편에게 열길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라고 기재돼 있는데, 여기가 어느 지역인가요?

:개산툰 지역이라고 회령 맞은편입니다.

 

: 투먼이 아닌가요?

:투먼, 개산툰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투먼에서 멀리 가야 연길이지요?

 

: 조선족 남자가 증인에게 택시비는 있느냐 해서 없다 했더니 권총 두 자루를 달라 해서 주었다고 했네요?

:, 돈이 없었습니다.

 

:실탄도 주었나요?

: 권총에 실탄이 다 장전돼 있습니다.

 

: 새벽 5시에 택시를 타고 나갔다 했는데 그 집에서 밥먹고 머문 시간이 얼마인가요?

:아마 한 시간이 좀 안된 것 같습니다.

 

:강을 건느는데 팬티만 입고 권총 6자루를 가지고 가는 것보다 권총을 버리고 옷을 입고 가는 것이 더 좋이 않았나요?

:잡히기 전에 자살을 해야 하니까요.

 

: 권총 한자루면 되는 데 왜 6자루씩 가져갔나요?

:오다가 두 사람 도망갔으니까 실패했지 않습니까? (동문서답)

 

: 강폭이 얼마나 되나요?

:50m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50m가 안되면 그건 강이 아니라 내지요.

: 두만강이 원래 그렇습니다. (참고: 두만강 회령 지역은 하류에 속하며 넓게는 폭이 8km)

:물살이 세잖아요?

:

 

: 때는 9월 장마가 바로 끝난 시점이라면서요?

:

 

:물살이 세고 수량이 많아서 죽을뻔했다면서요?

:

 

: 물 흐르는 소리도 요란했을 거 아닌가요?

:

 

: 새벽 5시에 택시를 타려고 나갔더니 강 건너편에는 증인을 잡으러 온 동기도 부하도 있었고, 관리소장과 군관들이 핏대를 올리는 소리가 다 들렸다 했는데, 강가에 바로 택시 도로가 있었다는 것인가요?

:

 

: 아무리 도로가 강가에 있다 해도 물로부터 돌바닥과 숲이 있고, 중국경비 구역이 있고. .

: 중국 지형이 높아서 북한쪽을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 경비대 병력이 강가에 와서 이 새끼들이 빨리 빨리 해, 관리소장의 핏대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새끼들이 빨리 빨리 찾아, 못 찾으면 너희들 모두 죽을 줄 알아, 야 그리고 대다장 이새끼야, 너는 부하관리를 왜 이렇게 못해,! 너 안명철이 이 개새끼 못 잡으면 너 옷 벗을 줄 알아아, 무조건 잡아 알았어? 대대장 강소남의 기가 죽은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습니다. 소장 동지! 절친한 친구의 얼굴도 보였다. 그는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냥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증인의 저서에 쓰인 그대로입니다. 강물이 세차게 흘렀는데 중국 땅에서 북한쪽에서 떠드는 소리를 이렇게 자세히 들었다는 말인가요?

: 예 들립니다. 그쪽은 인가가 없어서요.

 

: 강원도에 가면 10m 개울인데도 물소리 때문에 개울 건너에서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데요?

: 거기는 계곡처럼 물이 흐르지 않는 곳입니다.

 

:장마 직후라면서 두만강 물살이 세지 않나요?

:다 세지는 않았습니다.

 

:물살이 세니까 첫 번째 실패했잖아요.

:떠서 밀려내려온 것입니다.

 

:강물이 시퍼렇게 흐르고 무섭게 흐르는데 공포에 휩싸이지 않겠느냐고 증인의 입으로 금방 말했잖아요?

:소리 지르고 하는데 새벽에 다 들립니다.

 

<49-53>

 

: 동아일보에서 증인의 얘기로는 엔지까지 가는 데 권총 두 자루를 조선족에 주었다. 하얼빈까지 데려다 주는데 권총 한 자루, 밥 한 끼 사준 대가로 권총 한 자루, 담배 한 갑 사준 대가로 또 한 자루 그리고 남은 권총 한 자루는 허리에 차고 기차에 올랐다이렇게 기재돼 있는데 맞나요?

:

 

: 증인의 저서 279쪽입니다. 조선족 하고는 헤어지고 증인 혼자 하얼빈 행 열차를 탔다고 돼 있는데, 어디에서 탔나요?

:연길에서 탔습니다.

 

:하얼빈과 엔지는 얼마나 먼가요? 열차로 몇 시간 걸리나요?

:길림에서 내려 하룻밤 지내다가 하얼빈 가는 기차가 있어서 탔습니다.

 

: 연길에서 길림과 하얼빈은 반대쪽인데요?

:기차가 그렇게 갑니다.

 

: 기차가 동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가나요?

: 어쨌든 그렇게 탔습니다.

 

: 옌지에서 조선족과 헤어지고 혼자서 하얼빈행 열차를 탔는데 그 하얼빈 행 열차가 반대쪽인 김림으로 먼저 갔다가 다시 빠구하여 하얼빈으로 갔다는 것인가요?

:

 

: 중국공안이 열차표를 검열했다. 공안이 표를 보여달라 했다고 했는데 중국공안이면 경찰인데 경찰이 열차표 조사를 했다는 것인가요? 공안이 표 검사를 하나요. 신분검사를 하나요?

: 그때는 신분검색이 아니라 순찰하듯이 다녔습니다.

 

: 공안은 경찰인데 경찰이 무슨 열차표를 검사했다는 것인가요? 증인은 표를 검사하는 공안에게 손을 주머니에 넣고 권총을 겨눈 채 열차표를 보여주었다고 했어요. 권총을 주머니 안에서 상대방을 겨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설사 공안 한 사람을 죽였다 해도 증인은 곧바로 죽는 것인데요?

:죽을 각오로 했습니다.

 

: 무엇 때문에 그러나요?

: 북한에 잡혀가는 것보다 . .

 

: 공안 한사람 죽이고 탈출할 수 있나요?

: 저는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 주머니 안에서 권총을 공안을 향해 겨눌 수가 없는데요?

:45도 정도는 가능합니다.

 

:열차표를 검사하는 공안에게 증인은 벙어리 흉내를 내서 통과했다고 했는데요?

:

 

:공안은 이런 검사를 몇 번 했나요?

:한번뿐이었습니다.

 

: 증인의 저서 280쪽에는 길림에서 하얼빈 행 열차를 탔다고 되어 있는데 동아일보에서는 연길에서 하얼빈 행 열차를 탔다고 하니 이해가 안됩니다.

: 아마 기차를 길림에서 갈아타고 하얼빈행 표를 끊었던 것 같습니다.

 

: 하얼빈행 열차에 오르니 조선조ᅟᅥᆨ 몇 명이 있었다. 그중 60대 할아버지가 있었다. 남한에 가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김일성 욕을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의 뺨을 때렸다. 나도 모르게 사상교욱이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지요?

:

 

:그런데 증인의 저서 268쪽을 보면, 증인은 19947월에 부대에서 치러진 김일성 애도행사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아 침을 바르고 우는 시늉을 했다고 했는데, 이는 사살교욱이 안 돼 있는 것이 아닌가요?

: 우리 동료들이 다 그랬습니다. 김일성이 죽은 것과 김일성을 욕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 김일성을 그렇게 신봉했는데 왜 탈북을 했나요?

:충성한 집안을 다 박살내 버렸으니까요.

 

: 그러면 이때는 이미 증인의 마음이 돌아선 상태였는데 왜 뺨을 때렸나요?

: 그래도 면전에서 김일성을 욕하는 것은 다르지요.

 

:죽을 위치에서 도와주겠다는 하늘 같은 할아버지를 때릴 수 있나요?

:저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습니다.

 

: 할아버지에게 즉시 잘못했다고 빌었더니 금방 용사해주었다구요?

: 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

 

: 할아버지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라고 했는데 집이 어디인가요?

: 오상현이라는 동네입니다.

 

: 하얼빈 시대인가요?

:하얼빈 가기 전이입니다.

 

: 그 집에서 하얼빈이 먼가요?

:얼마 안 떨어졌습니다

 

: 속옷과 같옷을 꺼내 주었다. 잉어매운탕도 끓어주었다. 할아버지는 하얼빈에 다녀올 테니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고 했는데 하얼빈이 거기서 몇 정거장 되었나요?

:얼마 안 멀었던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증인은 북한 수용소 실태와 내가 처한 상황을 장황하게 썼고, 중국 공안이나 북한 보위부에 잡히면 권총으로 자결할 것이라고 썼다. 아버지는 곧장 하얼빈으로 가서 편지를 팩스로 한국 영사관으로 보냈고, 답장까지 받아왔다라고 했는데 그 할아버지의 정체가 무엇인가요?

: 그냥 평범하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 아까 그 조선인은 담배 한 겁 사주면서도 권총 한 자루를 달라하고. . .

: 나쁜 사람도 있비만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 다음 날인 920, 나와 할아버지는 북경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라고 했는데, 답장에 뭐라고 돼 있었나요?

:답장 내용은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북경에 가자 해서 따라갔습니다.

 

:이미 보위부쪽에서 무장군인 탈출사실을 접했는지 열차 단속이 무지 심했다고 돼 있는데 단속을 어떻게 몇 번 했나요?

: 기차에서 아마 한번을 했는데 저는 벙이리 흉내를 . . .

 

: 몇 시간 걸렸나요?

: 8시간 걸렸던 것 같습니다,.

: 하얼빈에서 북경까지는 18시간 18분이 걸린다고 인터넷에 떠 있습니다. 그런데 검문을 한번밖에 안했다구요?

:

 

: 그러면 열차단속이 배우 심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개찰구 빠져나올 때 공안이 왔다갔다 했으니까요.,

 

:열차 안에서 공안이 단속을 어떻게 심하게 했나요?

:공안이 계속 다녔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아파서 병원간다고 하고, 저는 아픈 척하고 그러니까 공안이 그냥 갔습니다.

 

:앞의 조선인은 엔지까지만 데려다 주면서도 권총 5자루를 가져갔는데, 60대 할아버지는 권총까지 소지한 위함한 탈북자를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면서 발각되면 자기의 생명도 위험해지는 일을 비싼 여비까지 들여가면서 1,300km 나 되는 거리를 에스코트 해주었다는 말인가요?

:

 

: 천사네요?

: 생명의 은인입니다.

 

<54-57>

 

: 증인의 저서 282쪽입니다. ‘기차역에 설 때마다 차표조사와 신분증 검열이 있었지만, 매번 벙어리 흉내를 냈고, 할아버지는 손자가 중병에 걸려 북경의 큰 병원에 데리고 가는 중이라고 둘러대면서 북경역에 도착했다. 북경역 검문은 더욱 삼엄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담요를 뒤집어 씌운 후 중환자라며 역 검색대를 빠져나왔다고 했는데, 걷는 사람에게 담요만 씌워놓고 이 사람 중환자라고 하면 그게 통과가 되나요?

: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그러헤 중국말을 해서. . .

 

: 걸어다니는 중환자도 있나요? 담요만 쓰면 걸어다니는 사람도 중환자 취급을 받는가요?

: 뭐 그렇게 해서 나갔습니다.

 

: 더구나 증인은 중국 전역에 현상금이 걸려 있는 수배대상이었다면서 매번 역에서 그렇게 했는데도 빠져나갔고, 그 대신 증인을 수배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탈북자 140명만 전부 붙잡혀 갔다는 것인가요?

:

 

: 증인을 찾으러 다니는 보위부가 정작 범인인 증인은 잡지 못하고 엉뚱한 탈북자 140명만 잡혀갔다는 것인가요?

: 탈북해서 숨어다니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잡혔다고 들었습니다.

 

: 그때까지 권총은 계속 가지고 있었나요?

:

 

: 몸 수색 같은 것도 안 하나요?

:

 

: 신분증 보자는 소리도 안 하고요?

: , 그때는 기차표만 내면 개발구로 나가고 그랬습니다.

 

: 동아일보 내용은 좀 다른데요. ‘노인은 북경 한국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권총을 차고 온 북조선 군인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 이에 영사관 직원은 당장 그 사람을 데리고 베이징까지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라고 되어 있는데, 아까는 노인이 하얼빈까지 가서 증인이 써준 편지를 팩스로 보내서 답이 온 것을 가지고 베이징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노인이 북경에 있는 한국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네요? : 베이징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 팩스가 아니라 전화라?

: 그게 아니고 하얼빈에서 북격까지 오면 전화를 하라 해서 할아버지가 연락을 한 것입니다. : 영사관직원이 당장 그 사람을 데리고 영사관으로 와달라고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했다는데, 영사관 직원은 증인을 어떻게 알고 권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데려와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인가요?

: 한군정부에서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한국정부에서 증인을 어떻게 알고요?

: 체포하라 난리가 나고 중국공안도 움직이고 하니까 한국 정부에서도 이 사람을 데리고 와야 하지 않느냐 했던 것 같습니다.

 

: 영사관 직원은 (위장한) 국정원 직원이 맞지요?

: 저는 모릅니다.

 

: 영사관 직원이 나와, 증인이 권총을 차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 총이 뭔데 총가진 사람을 암호 확인하듯 확인하나요?

: 제가 총을 분해해서 탄알 빼고 책상 위에 올려놨습니다.(동문서답)

 

: ‘그리고 103일 한국에 왔다라고 했는데 영사관의 그 직원이 증인을 한국으로 안내한 것이네요?

: 그분은 아니었습니다,

 

: 직접 데려다 준 것은 아니지만 증인을 남한으로 보내주도록 조치해준 사람인 것이지요?

: 정부가 연락을 했고, 그래서 영사관이 움직였겠지요.

 

: 증인의 경우는 일반탈북자들과는 전혀 딴판이네요. 일반 탈북자들은 영사관은 물론 대사관에서도 박대를 당하는데요.

: 당시는 탈북자가 많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 도대채 어떻게 영사관직원이 증인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확인하고 한국으로 보내주었다는 것인가요?

: 제가 편지를 썼고, 중국TV에 수배가 떴고. . .

 

: 북한이 수배하는 사람은 남한이 수배해서 데려온다는 말인가요?

: 그건 제가 모르지요. 우리 헌법에는 북한주민도 한국국민으로 되어 있지 않나요?

 

: 제가 볼 때 그 할아버지는 국정원의 브로커 같은데 어떤가요?

: 아닙니다. 그분은 사골에서 농사만 짓는 순수한 분입니다.

 

 

2025.8.1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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