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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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10-21 23:50 조회3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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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길
진보는 무엇인가?
[진보]라는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 별로 없다. [진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사람은 김일성이다. 김일성의 용어들 중에는 [보수반동]이라는 말도 있다. [진보]의 반대말이다. 김일성이 북한대사전에서 정의한 [진보]는 무슨 뜻인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진보된 사상을 가진 사람이 진보학생이고 진보정치인이다. 반명 보수반동은 무슨 뜻인가? 주체사상을 외면하거니 알지 못하고 미국의 식민주의에 굴종하고 미국의 앞잡이인 남한 정부에 굴종하는 반동들이다. 이를 깨부수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다. 이 말은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북한 사전에 있는 말이다. 북한의 모든 정치역사 도서에는 남조선 역사가 설명돼 있다. “남조선 역사는 북조선의 대남공작 역사와 이에 대한 반동의 역사로 구성돼 있다.”
보수의 길은 국가혼을 살리는 길
보수의 길은 국가 혼을 복원하는 길이다. 국가 혼은 무엇인가? 애국의 혼이다. 애국의 혼은 어디에 기초하는가? 뿌리에 기초한다. 뿌리는 무엇인가? 국가의 정통성이다. 정통성의 뿌리는 무엇인가? 역사다. 매우 무서운 말이다.
국가혼이 어째서 중요한가? 국가혼을 잃으면 국가가 멸망한다. 국가혼은 무엇으로 표출되는가? 애국심으로 표출된다. 국가혼을 잃으면 애국심이 사라지고, 애국심이 사라지면 국가가 점령된다. 1807년 독일이 나폴레옹 군대에 패했다. 독일 국민들은 절망 속에서 날로 타락해 갔고, 사회에는 이기심만이 충만했고, 독일인의 영혼이 추하게 타락했다. 도덕과 정의가 실종된 사회가 바로 당시의 독일사회였다.
이때 한 지식인이 나타나 ‘독일국민에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피를 토하는 설교로 계몽을 했다. 청년들이 대거 호응했다. 그 철학자가 피히테(Johann Fichte, 1762~1814)였다. “독일이 왜 패망하였는가? 군대가 약해서가 아니다. 국력이 약해서도 아니다. 패한 것은 독일인 모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 혼’을 상실했다. 국가혼을 기르자”
그 후 64년이 지난 1871년, 독일의 대원수 몰트케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독일국민들이 개산하고 돌아오는 영웅 몰트케(Helmuth Karl B. von Moltke, 1800~1891) 대원수를 연도에서 열렬히 환영했다. 과묵한 사상가로 알려진 몰트케 대원수는 말했다. “독일의 승리는 나와 군인들의 공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준 학교 선생님들의 공이다. 이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린다”
보수의 길은 계몽의 길
덴마크는 1813년부터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려 곤궁할 대로 곤궁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또 다시 영국 및 독일과의 7년 전쟁을 치르면서 홀스타인 등 넓고 비옥한 땅을 모두 빼앗겼다. 남은 것은 바다보다 낮은 습지대와 노약자들 그리고 부녀자들뿐이었다. 망연자실, 너무나 속이 터지고 절망이어서 일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국민들은 타락할 대로 타락했다.
이때에 '그룬트비히' 목사와 달가스 예비역 대령이 나타났다.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 토질이 나빠 나무를 심어도 자라지 않았다. 수십 년간의 노력 끝에 그 땅에서 잘 자라는 나무를 찾아냈다. 농산물을 농산물 상태로 수출지 않고 가공 처리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낙농으로 전환했다. 국민 모두가 냉담했지만 ‘하면 된다’고 설득했다. 국민정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국가도 바뀌었다. 그것이 전기가 되어 덴마크는 오늘날 1인당 국민소득이 7만 달러에 이른다.
보수 청년의 표상
1970년대, 나는 미국 공군사관학교 역사 교수 한 사람의 가정에 여러 날 묵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시원하고 선이 굵고 스케일이 장엄했다. 사관생도들에 영혼이 배어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강의를 들으면 호연지기가 생길 것 같았다. 그의 부친은 뉴욕증권시장 부회장으로 미국에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는 유명 인사였다.
아버지가 공군 소령인 아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 싶다 제안했다. 그러자 아들은 이를 거절했다. 손자를 낳은 기념으로 은그릇을 나누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아들은 이마저 거절했다. “저를 대학에까지 보내주신 것에 대해 아버님께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아버님으로부터 재산을 받으면 제 정신이 타락합니다. 그리고 주신 것 위에 제가 아무리 높이 쌓아도 그건 제가 쌓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저는 무슨 프라이드로 세상을 삽니까?”
아시아 10대 인물이자 일본 국민의 스승으로 알려진 소니의 2대 회장 아키오 모리타의 아버지도 일본 굴지의 부자였다. 그러나 그 역시 혈혈단신 혼자 나와 천막을 치고 초대 회장인 이부카와 함께 발명에 몰입했다. 오늘날의 소니는 바로 모리타가 이룩해 놓은 자수성가의 금자탑이었다.
2025.10.2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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