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눈 감으면 자유도 없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인강11 작성일25-10-18 21:53 조회32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역사에 눈 감으면 자유도 없다.
- 건국전쟁 2 영화를 보고 -
6·25 남침도 북침이라고 오리발 내밀던 북한이 내부에선 남침 전후의 대남공작을 노동신문 특집으로 찬양하고 있었으니 그 보도의 제목은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싸운 통일혁명 렬사”였고 발행일자는 1997년 5월 26일이었다.
건국전쟁 2 영화에서는 “성시백”이란 이름이 세 차례 들리는데 6.25발발 이틀 후인 1950년 6월 27일, 서울에서 간첩죄로 처형되었던 그가 사망 47년 후인 1997.5.26에는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로 찬양되고 있었던 것이다.
재향군인회와 국방부추천으로 최초의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으로 위촉(2000.8)됐던 필자는 왜곡된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채택을 거부하며 사퇴(2003.10)를 해야 했고 4·3 발생의 역사적 배경과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사퇴 4년 후에 이 특집보도문의 기사를 확인하며 크게 놀라야 했다. 발간 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그 특집보도의 존재를 언급한 학자나 언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국민들이 북의 대남공작에 경계의 큰 눈을 떠야만 나라를 구한다는 걱정에서 그때부터 “10년 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 전문” “대한민국 위기의 시작은 1997년 5월 26일”, “국가불행의 예방과 퇴치를 위해” “새빨간 거짓말에 누가 속았나?” 등등의 제목으로 많은 글을 썼으나 관심을 못 끌어 온 나라가 오늘 힘든 위기의 순간에 직면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북의 대남공작에 대해서만은 즉각적 중단부터 강하게 요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공부 장관(박지원)은 입을 다물고 신문사 사장단을 인솔하여 북한을 다녀왔고 대통령 세 명은 대남공작을 허용한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했었으니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6·25 발발 1년 전, 휴전선을 넘어 월북했던 8사단 예하 보병 2개 대대가 평양시내에서 행진하는 장면을 영화의 영상으로 본 필자는 북의 대남공작이 6.25 남침 전부터 최전방의 군부대까지 미치고 있었음을 실감해야 했으며 제주 무장폭동의 평정을 위해 국방경비대 11연대장으로 부임했던 박진경 대령을 영내의 숙소에서 암살(1948.6.18.)했던 휘하 프락치 군인들의 행동을 애국심이 투철한 것으로 보도했던 신문이 “성시백”이 운영했던 ‘조선중앙일보’였음을 상기하며 그의 영향력이 남쪽의 제주도까지 미치고 있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에게 사형과 무기징역이 선고됐던 5·18 2차 재판일(97.4.17)로부터 39일 후인 97.5.26에 “성시백” 찬양 특집보도가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많은 국민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건국전쟁 2 영화를 관람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좌·우, 진보·보수를 떠나 온 국민이 이 영화를 보게 되면 건국과정과 그 후의 역사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무엇에 속았으며 어떤 어려움을 극복해 왔는지를 깨닫게 되어 경계의 큰 눈을 뜨게 됨으로서 우리들 자유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유는 튼튼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군의 항복접수를 위해 38선 이북을 점령했던 (구)소련군은 소련군 대위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인민위원회의를 구성(46. 2. 8.)하고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46. 3. 6.)과 조선은행권의 화폐개혁(47. 12. 1.)을 단행했었는데 토지개혁 사실은 알려 저서 4·3사건의 기폭제가 되었는데 5·10선거 이틀 전의 제주 발 동아일보 기사(1948.5.8.)가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 군대가 목포까지 도래했다.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있으니 친일경찰을 사살하라’. 그리고 당시의 제주 발 ‘조선중앙일보’에서는 경찰관 살해 현상금으로 순경 1만원, 형사 3만원, 총경 100만원이 걸렸던 것이 발견된다. (당시 쌀 한가마니 가격은 300원)
일제로부터의 해방 직후 대한민국 건국초기의 우리 군과 경찰의 선배들이 남로당 무장대원들의 살상, 방화, 폭력행위 등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양민들의 희생은 분명히 발생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던 국군과 경찰 선배들이 결코 양민학살의 주범이 아니었음을 영화를 관람하는 많은 국민들이 직감하게 되면서 현역의 국군장병들과 경찰들의 움 추렸던 가슴을 힘껏 펴지고 저마다 군과 경찰 본연의 임무 완수에 더욱 매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만세!
본연의 임무완수에 더욱 매진할 현역의 육해공 해병, 국군장병 만세!
그리고 6·25와 월남전에서 함께 싸운 우리의 동맹국 미국군장병 만세!
2025. 9.29/10.18
(예) 육군 소장 한광덕
(전)재향군인회 정책실장
(전)4·3사건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
(현)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고문
** 첨언: 추석밥상머리 주제가 되기를 바라면서 제목에 유언(?!)을
붙여 개인 명의로 지인들의 카톡방 으로만 급히 전파했던 9.29의
글은 최근 며칠 동안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간부 몇 분의
조언을 받아 직함을 붙이면서 제목도 바뀌고 내용도 보완되었습니다.
위 글에서 “00000”의 내용은 검색 됩니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