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국운(國運)을 개척하라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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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사논객 작성일24-01-28 00:37 조회6,397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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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전두환 그는 난세의 영웅이요, 구국의 영웅이었다. 1980년의 난세에 국가 영도자가 되어 국운을 개척하였기에 그는 구국의 영웅이었다. 이순자 자서전 제5장 4화에 서울의봄 실화가, 30년간 군인으로서 국가에 충성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난세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최규하 대통령은 광주사태 상황직후인 6월 12일에 국가기강확립에 관한 담화 연설을 하였는데, 위 영상 9분 36초부터 들어보면 최 대통령은 광주사태 주동자들 중에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에 협조하는 자들이었음을 "조국이 분단되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북한 공산집단의 이른바 대남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에 동조하는 언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바로 그런 시대 배경이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장군을 불러 안보를 챙기며 국운(國運)을 개척하라는 사명을 부여한 이유들 중 하나였다.
youtube.com/@KoreanAudiobook
https://www.study21.org/isun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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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북한과 광주사태 주동자들의 공조에 대하여 처음 언급한 인물은 최규하 대통령이었다. 최 대통령은 광주사태 발생 직후였던 6월 12일의 국가기강확립에 관한 담화에서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북한 공산집단의 대남 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에 동조하는 언동을 하였음을 넌지시 시사하는 연설을 하였다. https://youtu.be/_JGxElokDJ8?t=577
jmok님의 댓글
jmok 작성일
1980년 5.18 당시 정부는 광주로의 입.출을 외부와 차단했고, 정부는 헬기를 동원하여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선무방송을 했고 폭도들은 신원미상 여인이 가두
방송으로 시민을 선동하였으며, 대부분의 국민은 북한이 잠입한 북괴의 폭동을 즉각적으로 의심 했었다. 모든 폭동에 북괴가 개입하지 않은 폭동이 있기나 했었나 ?
김영삼이 역사를 바로 세운다며 역사 뒤집기 전까지 광주 5.18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었다. 이를 뒷 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는 지만원 박사의 북괴군(광수)
침투 42개 증거로 요약되어 있다. 광수를 부정하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역사의 죄인, 대한민국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모두는 요 게시판을 읽어야! ,,.; 1968.1.21사태, '김 신조'소위, 방차대. '전 두환'대위의 60[mm] MOT 10문의 조명탄 준비. 즉각 대응 전비 태세 완비, 차려포 발사 24시간 대기! 작두, ,,. 31명. 모든 분들이 열람해야! 특히 빨갱이들,,. ///// http://www.systemclub.co.kr/bbs/board.php?bo_table=12&wr_id=21362&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B%8B%A4%ED%81%90%EC%86%8C%EC%84%A4+%EC%A0%84%EB%91%90%ED%99%98++%EB%B0%A9%EC%B0%A8%EB%8C%80+%EA%B9%80&sop=and&keyword=%09%5B%EB%8B%A4%ED%81%90%EC%86%8C%EC%84%A4%5D+%EC%A0%84%EB%91%90%ED%99%98+%3B+%EB%B0%A9%EC%B0%A8%EB%8C%80%2C+%EA%B9%80 /////////.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의[쟁점] 5.18재단에서 홍보용으로 이용하는 장갑차주인공
조사천씨를 사실데로 공개하지않았기때문에 뒤집을수 있었다는것!
그러나 그큰 비극을 어찌 왜곡 시킬수 있겠는가!
정보화시대가 되어 들통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