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만주 마왕 '무장강도' 김좌진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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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thfinder12 작성일23-04-27 23:12 조회4,878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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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주 마왕 '무장강도' 김좌진의 실체
요약
김좌진은 한일 합방 직후 총 6회의 무장강도 및 절도 행위를 저질렀는데 마지막 사건은 미수에 그치고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살고 출소함.
이후 만주로 건너가 마적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 농민들을 갈취하며 살아감.
세금이라 칭하며 주지 않는 자들은 많이 죽고 상하게 하여 원한을 사다.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공산당의 도움을 얻어 김좌진을 암살함.
김좌진은 총 6회의 강도/절도 수행
- 1910/12/4 김좌진은 동지 안승구,민병옥 등과 함께 몽둥이와 쇠칼로 무장하고 서울 서부 반석방 우성모의 집 털어
- 두번째 강도 사건은 12/17, 북부 제동 남정철의 집에서 20원 빼앗아
- 기타 중부 청석동 신성균 집에서 물건 털고,
- 중부 교동의 최용환,김종근 집에 침입하기로 공모 하다가 미수 후 체포.
- 이에 2년 6개월 복역 후 출소한 무장강도가 김좌진.
당시 매일신보 기사 (1911년 3월7일자)
“남부 갑동 김좌진, 북부 삼청동 안승구 등 7인은 작년 겨울에 단도(短刀)를 가지고 북부 제동의 남정철씨와 서부 윤림동 우성모씨와 중부 청석동 신성균씨 등 집에 침입하여 금전과 물품을 강탈 분취(分取)하고, 그 후에는 중부 교동의 최용환 김종근 양씨(兩氏) 집에 침입하여 금전을 강탈하기로 공모하다가 미수(未遂)하였고…”라고 나와 있다.
[* 김좌진 기념사업회 등은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죄로 수형생활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남의 집에 침입해 허락도 없이 재물을 강탈했으니 그냥 강도이고, 체포돼 처벌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특이한 점은 김좌진이 이처럼 조선인의 집을 털었으나 일본인 변호사를 2명 고용했다는 점이다.]
또한 마지막 사건이 미수에 그친 것은 김종근의 집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고인 김좌진은 안승구 등과 함께 김종근 집으로 돌입해 재물을 강취할 것을 공모하고, 김좌진은 다른 자를 인도해 김종근의 저택 부근에 이르렀는데 그 집 안에 다수인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 착수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떠났다"고 언급했다.
(경북일보 2005년 01월 07일 '일제고등법원 판결록' 발췌 기사 https://archive.is/wip/k1kX3 )
[* 김종근은 김좌진의 증조부라고 하는데, 자기 증조부의 집을 털려고 한 것이다. ]
만주에서의 김좌진 활동 : 가난한 조선 소작농 착취
북만주 지역에 이주한 한인은 대부분 "무자력 농민"이었다고 한다. 기본이 되는 농기구조차 자기가 갖고 있지 못 했다. 또한 지주가 먹을 것을 제공해 주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게 생긴 사람도 많았다. 거기다 그런 이유 때문에 지주와 체결해서 소작관계를 맺을 때 농민은 처지가 너무나 불리했다.
그런데 김좌진 세력은 북만주 한인들에게 강제로 돈을 뜯어냈다. 돈을 내는데 제대로 협조하지않으면 협박과 테러를 하며 위협을 했다. 그랬는데도 끝내 따르지않고 거부하면 죽여버렸다. 이런 테러활동에 대표적인 사람에는 이백호 라는 사람이 있다. 이백호는 신민부 군인세력의 중심인물인데 김좌진에게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농민들을 살해하는 테러범을 김좌진 장군은 총애했던 것이다.
김좌진은 1924년 3월부터 부령 11호를 발표했다. 자신들이 군자금을 요구하면 돈을 줘야하며 주지않으면 "중형"에 처하게 할 것이며 본 군단을 외국 관헌에게 고소하면, 그 외국관헌이 적국이 아니면서(일본이 아니면서) 신고자가 친일반역자가 아니라해도 죽여버리겠다는 것이다.
당시 김좌진 측의 테러는 한반도의 언론인 동아일보에도 실릴정도였다.
「신민부원체포. 중국 연길도윤은 훈춘 방면에서 활동하는 신민부원들이 군자금을 구하다가 응하지 않는다고 조선인 다섯명을 살해한일이 있음으로 각현에 체포령을 내렸다가 며칠전에 잡히였다더라.」 (일본이 아닌 중국 경찰에게 체포됐다는 점)
측근의 증언도 위와 같아
김좌진의 측근 이강훈도 그 점을 증언했다. 측근조차 김좌진 측의 부당한 테러 활동을 증언하며 변호는 커녕 어떠한 변명조차 하지않고 있다. 또한 휴머니즘이 없는 테러리스트라고 말하기 까지 한다.
「나는 북간도에서부터 동경하던 바와는 달리 민족 진영에 대한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국 광복이라는 대전제 밑에 모여든 인사들인만큼 항일의식은 욱일승천의 세를 이루고 있었으나 행동은 제각기였고 이율배반적인 모순들을 안고 있었다. 이점에 대해서는 내가 경애하던 김좌진 장군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사람을 선택하는 면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름지기 적을 없애는 데는 용기와 예지, 기술 모두 필요하지만 특별히 없어서는 안될 것이 참된 휴머니즘이다.
이백호라는, 총을 잘 쏘는 자가 있었다. 그는 어떤 인연에서인지는 몰라도 신민부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지방 출장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동빈 지방에 가서 거류 동포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총을 난사하여 여러 사람을 사살한 일이 있었다.
같은 아나키스트 정화암의 증언: 세금 걷고 착취했다
이것은 정말 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합시다. 그 가운데는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더란 말입니다. 악한이라고 부를만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뭘 하는고 하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넓은 지역에서 자기네가 중앙총본부라 해가지고 각 지역을 다니며 우리 농민들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중앙총본부에 세금을 내라> --- 그래서 그것 갖고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저 중국의 사천성에서는 10년 뒤의 세금까지 미리 거뒀다더니.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놈들이 총들고 와서 계집도 빼앗아가고 소도 잡아가고 하는, 이런 일들이 있었거든요. 공산당원들 눈으로 볼 때는 이런 종자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싸움이 났는데...」
[* '아나키스트'는 김좌진 측에 해당하며 공산당과 세력다툼을 한 것으로 보임]
(참고) 정화암의 부가적인 증언: 왜놈보다 동포가 무서웠다(공산주의자)
「만주에 있을 때 왜놈보다도 우리 동포인 공산주의자가 무서워 잘 때도 신을 신고 옷을 입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을 보초로 세워놓고 두가지를 경계하게 했습니다. 우리 동포 공산당원이 넘어오느냐? 왜놈이 넘어오느냐? 이 두가지를 경계하게 했습니다. 그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 쪽이라도 온다고 하면 신을 신고 옷을 입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대처해야 했습니다. 내가 만주에서 몇 해 동안 직접 겪은 일입니다.」
* 원본 문헌 : 「3부 정화암」, 면담: 이정식; 편집해설: 김학준; 수정증보: 김용호, 『혁명가들의 항일회상 : 김성숙·장건상·정화암·이강훈의 독립투쟁』, 서울: 민음사, 2005, 371쪽
원홍기의 증언 : 북로군정서 이탈자 찾아내 암살
김좌진 부대에서 이탈한 신청룡을 암살하기 위해 김좌진이 2-3차례나 암살대를 보냈다. 본인이 학교에 있을 때 갑자기 중국 족도리 모자를 쓰고 다부산즈를 입은 조선사람이 교실에 불쑥 들어오더니 선생과 학생을 모두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다른 암살대는 원재룡(원홍기 아버지)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의 뺨을 후려치며 총을 내라고 협박했다. <당장 대놓지 않으면 집에 불을 지를테다> 갑자기 떨어진 불호령에 한 농촌녀인이 어찌 버틸 수 있었겠는가. 이불속에 감추어두었던 두 자루의 권총(부로링과 6철포)을 내놓았다. 이제 혁신군에는 신청룡의 쌰즈 한 자루 밖에 없다는것까지 알고 신청룡의 집을 습격해 신청룡을 죽였다.
김좌진 피살
1928년 11월, 김좌진에게 돈을 계속 뜯기던 북만주 빈주현은 주민 대회를 열고 더이상 김좌진의 신민부에게 돈을 줄 수 없다고 통지했다. 김좌진의 부하들은 무장을 하고 빈주현에 들이닥쳤고 주민대회장에 총탄을 퍼부었다. 류연동, 김봉진, 황혁은 곧바로 죽었고 윤필한, 김유문, 장문숙은 중상을 입었고 그 밖에 여러사람이 총탄에 맞았다.
이에 김좌진에게 원한을 가진 빈주 사람들은 김좌진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고 김좌진은 1930년 1월 24일에 산시참에서 공산주의자 박상실(본명 이복림)에게 총탄을 맞고 살해됐다. 일본내부기밀 문서에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김좌진 일파에 대한 지방의 반감으로 특히 빈주사건의 피해자 가족들 그리고 재중청년동맹의 일파는 계속 김좌진의 살해를 계획해 왔다. 지난 달 25일 그는 중동로 산시참에서 암살당했다.」
미화된 김두한
김두한은 종로에서 활동하던 깡패였는데 원래는 해방 후 좌익 청년단(조선청년전위대)에서 폭력배로 활동해왔으나 우익 사람으로부터 아버지 김좌진이 공산당에게 암살됐다는 얘기를 듣고 우익 폭력배로 역할을 바꾼 뒤, 자신의 오랜 친구 정진용과 척을 지고 좌익 폭동이 있을 때 충돌하다가 주먹과 발로 때려 죽였다.
김두한은 명백히 사람을 죽인 죄로 미군에 의해 사형을 당할 뻔 했는데 이범석 등이 '그는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면서 미 군정청에 탄원서를 내 간신히 사형은 면했다.
김좌진, 김두한 두 사람은 활동당시 주변 사람들에겐 테러로 악명이 높았고 분명한 사료들도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재 우리나라 사극에서는 이런 면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 예가 야인시대다. 위의 정진용 세력 납치 테러 사건만 봐도 가해주체를 완전히 왜곡해 놓고 있다. 드라마와 달리 실제 사건은 명백히 김두한이 연속으로 납치행위를 한 뒤 살인을 한 테러사건이다.
또한 김좌진 문제도 그렇다. 그냥 공산주의측에게 죽은 것만 나오고 어쩌다 죽은건지 무슨 활동을 한건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 전체 참고자료: 북만주의 마왕 김좌진과 아들 김두한의 테러활동 ( https://www.dogdrip.net/132907416 , https://archive.is/wip/yzV64 )
댓글목록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재단 설립자 윤한봉은 5.18광주사태 마지막수배자!
미국망명생활 12년후 귀국을하면서도 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늕 철저한 좌익이었고.전과가 화려합니다.
5.18광주사태주동자 윤상원은 철저한 공산주의자!
5.18유공자들은 대다수가 살인자가 아니던가!
5.18주동자 윤상원은 시민군 박남선의 M16유탄발사기에 맞아
사망했다고합니다.그밖에 27일새벽 사망자들도
도청안에서 날아온 시민군들이 쏜 총에맞아 사망했다니
고의적이던 타의적이던 살인자가 명확한것인데
5.18은 절대 "민주화운동"이 될수없다는것!
1980년 5월27일새벽 4시경 도청앞에서 사망한자들!
문재학.안종필.김동수.김종연.이강수.
박성용.유동운.민병대.홍순권.문용동.외등등등!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무정부주의자 ; 애너키스트!', '만주지역 마적단들', '만주지역 (자칭 독립군) 유사 군벌 단체'들, ,,. 이들의 공통점은 '좌익성!' ,,.
각설코요: 전북 정읍 출신 작가 '채 만식'의 단편 소설 _ '泰平 天下 태평 천하'에서 마지막 부분 거론된 '일본 유학간 아들'이 '반일성 운동'타가 검거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한탄하는 내용이야말로 '명문장'입니다, ,,. 말인 즉 옳음! ,,. 言則 是也 언즉 시야! ... '아들 녀석을 원망하면서 울부짓는 소리'는 참으로 옳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누구도 평가하는 글이 않 뵘이 딱한 노릇! ,,. '채 만식' 작가는 훌륭하신 사상가! ,,. 각설; '김 두한'도 본분을 망각, 빨갱이 '민주당'에 잔뜩 이용만 당하다가는,,,. 까불다가 ... 해방후 '좌우 대립 사건'들 재조명 평가해야! ,,. 고맙읍니다. 추천! ///// P.S. '시라소니 _ 이 성순'도 멋 모르고 '신 익희' Body Guard 노릇했지만! ,,. 호남지역 유세 열차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함으로써, '손 인호'의 '비 내리는 호남선'을 덩룩 유명하게 만든,,. 비록 매우 짧은 기간이었었지만, 이용은 당했지만, 제대로 행동하셨음. 공수단 창설 요원 노릇도. ,,. 1981년 동아일보 발행 단행본 '시라소니' ,,. 깨알보다 작을 활자로 두껍게 단행본 발간된 상세한 내용! ,,. 가장 감동적. 효시였었음. 이어서, '김 두한 _ 大義대의' 1.2; '유 지광 _ 大命대명' 1.2; '거지왕 김 춘삼'. 1.2.3; 모두 1983년 ~ 1985년 경 발행되어져 성공리 판매. ,,. /////
Pathfinder12님의 댓글
Pathfinder12 작성일
감사합니다. 태평천하라는 소설이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네요.
말씀하신 "망진자 호야"도 위키에 나와 있는데 "진나라를 망하게 할 사람은 2세황제 호해 이다" (사회주의에 빠져 집안을 망하게 함)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채 만식'의 명작 단편 '태평 천하'에서의 언즉 시야!' ,,. ♣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 넌 다 지내 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착착 깎어 죽일 놈!… 그 놈을 내가 핀지 히여서 백 년 지녁[1]을 살리라고 헐 껄! 백 년 지녁을 살리라고 헐 테여… 오냐 그 놈을 삼천 석 꺼리는 직분히여 줄려구 히였더니, 오―냐, 그 놈 삼천 석 꺼리를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다가 주어 버릴 껄! 으응, 죽일 놈!"[번역2]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 소리에 가깝습니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어섭니다.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 놀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 가득히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 말할 바를 잊고 몸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
- 마지막 장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니라'[3] 중 윤 직원의 대사. /////
한국롬멜님의 댓글
한국롬멜 작성일
이게 바로 소위 말하는 독립군이라는 사람들의 민낯이겠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들 거개가 김좌진과 비슷하거나,
김좌진이보다 더한 짓도 한 걸로 알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