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사기꾼이 지만원 광주재판에서 무고죄로 승소하였다는 또 하나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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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사논객 작성일23-03-08 16:01 조회5,590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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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서 양동남은 우측에 있는 소년무장폭도가 자기라는 주장으로 지만원 박사를 고소하여 승소하고, 손해배상금을 받았으며, 지박사는 감옥에 수감되셨다. 그러나 바로 이 사진이 양동남의 무고죄가 성립한다는 법적 증거물이다.
이 사진에서 세 명의 무장폭도가 모두 동일한 삼색무늬수건으로 복면을 하였다는 점이 양동남의 주장에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정희문은 사진 오른쪽의 장발무장폭도가 고등학생 빡빡머리 시절의 당시 광주상고 3학년생이었던 자기라고 증언한다. 그렇다면 사진 속의 무장폭도들은 광주상고 학생들로 구성된 조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 후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적이 없었던 당시 20세의 양동남은 광주상고 학생들과 어울려서 무장단체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63rsg55G4&list=PLy1djSD3FaRwEvMy82QjMtbhz3zPO5cdd
댓글목록
jmok님의 댓글
jmok 작성일
5.18 광주폭동은 군사작전이었다 : 1) 20사단 광주진입 피습당함 + 2) 아시아자동차 트럭 및 장갑차 탈취 당함 + 3) 전남도 44개 무기고 총기류+TNT 탈취 당함4) 전남도청 피습 및 폭발물 설치당함 + 5) 간첩이 다수 복역중인 교도소 5~6회 피습당함 + 6) 신원불명의 시체 431구 청주에 암매장 발견됨. 이는 광주시민이 결코 수행 불가능한 군사작전이었다. 또한 청주에서 발견된 신원 불명의 431구 유골이 광주시민이었다면, 광주시민 행불자기 +431 명 증가했어야 한다. 그런데 431명이 유공자라면 무엇으로 유공자가 된 것인가 ? 왜 대한민국에 유공자인가 ?
또한 윗 사진에서 칼빈소총은 44개 무기고에서 약탈한 총기류이며, 광주시민 피살자는 대부분 칼빈 소총으로 살해 되었고, 폭도들이 점거한 전남도청으로
칼빈총 무장한 괴청년들에 의해 광주(전남) 시민이 포박 당해 끌려 들어가는 사진이 있는데, 끌고 들어가는 괴한들과 끌려가는 시민의 정체는 무엇인가 ?
도청안으로 끌려가 살해되었는데, 그렇다면 누가 왜 누구를 살해했으며, 피살자가 우리 국민이면 살해자와 위 폭동의 주체는 누구인가 ? 피살자도 민주화 유공자고
위 폭동 주체도 민주화 유공자인가 ? 무장으로 교도소를 습격하다 죽은 431구도 민주화 유공자이면 행불자 +431명도 유전자 검사를 해서 유공자로 대우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 5.18 유공자에 대해서는 국가가 국민의 의혹을 해소할 책임이 있고, 보훈처가 보훈부로 승격한다 하니 광주의 의구심은 정리가 되어야 할것이다.
jmok님의 댓글
jmok 작성일광주의 유공자는 누가 누구에게 유공자인가 ? 광주를 지킨 국군에 항적 해도 유공자 광주시민을 끌고가 살해해도 유공자인가 ?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녹두서점의 5.18!
남민전전과자 김상윤!교사 정현애!부부는
녹두서점운영ㅡ1977년에서1981년까지!
녹두서점은 5.18의산실!
좌파의 시국토론실!
김상윤가족은 6명이 5.18유공자!
김상윤.김상집.김현주.
정현애.정현순.엄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