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의 의거는 처음부터 실패하도록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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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thfinder12 작성일24-08-24 23:31 조회4,5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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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에 대한 자세한 내용
이봉창에 대한 내용이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을 쓴 정안기 박사로부터 나와 공유합니다.
지만원 박사님의 글 내용에는 이봉창이 일본인의 양자가 됐고 일본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승진이 되지 않아 반감을 가졌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후, 이봉창은 중국으로 갔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아래에 있음.
다음은 정안기 박사의 설명(뉴데일리TV)을 정리한 글임.
이봉창은 술도 잘먹고 일본어도 잘 하며 잘 노는 허세꾼이었는데, 사실 학력이 높은 편이고 일본어 실력이 출중해 처음에는 취업이 잘되었다. 조선과 일본에서 취업이 잘되었지만 횡령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상해에 좋은 직장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해로 왔다고 한다.
이봉창은 일본어를 잘하고 일본 복식을 입고 다녀서 상해 민단 사람들에게는 '일본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봉창은 임정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일본에 있었을 때 천황 보니까 테러하기 쉽겠더라. 당신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면서 허세를 부렸다고 한다. 순간 김구는 정신이 번쩍 들어, 이봉창에게 테러를 맡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류탄을 2개 주었는데, 1개는 천황에게 던지고, 1개는 이봉창이 자살용으로 사용하라고 주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구는 이봉창에게 폭발력이 약한 연습용 수류탄을 2개 주었다고 한다. 즉 김구는 이 '의거'를 실패하도록 기획해 놓았다.
그래서 이봉창이 막상 수류탄을 던지자 사망자는 나오지 않고 부상자만 발생했다.
한편 이봉창은 상해에서 파견되어 천황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김구의 이름을 몰랐다고 한다. 김구는 이봉창에게 자신이 백정선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혀서야 그 사람이 백정선이 아니라 김구라는 것을 알았다.
이상이 뉴데일리TV에서 설명된 내용이며, 의거가 실패한 이유는 아마도 김구가 천황이 타격을 입을 경우 후폭풍이 염려되어서였을 것이다. 한 사람을 죽여서 독립할 수는 없지만, 일본으로부터의 보복은 클 수 있다.
또한 다른 면으로는, 김구가 이러한 천황 테러 내용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도록 유도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동아일보 1932/1/10, 조선중앙일보 1932/1/10일자로 보도되었다 함) 이리하여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과 기부를 유도한 게 아닌가 한다.
또한 이봉창의 알려진 사진은 이상하게도 곧 죽을 사람임에도 웃는 얼굴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찍어놓은 사진이 흐릿하자 이것을 이봉창의 얼굴 부분만 다른 사진을 붙여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즉 김구가 이봉창의 의거를 홍보하기 위해 또렷한 사진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왼쪽의 조작된 사진과 오른쪽의 진짜 촬영된 사진)
즉 천황이 죽지 않으면서도, 의거를 했다는 사실만 보도되면 임정이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한편, 폭탄 투척 이후 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때 경찰들은 이봉창 의사가 던진 줄 모르고 이봉창 의사 앞에 있던 일본인을 범인으로 여겨 구타하자 이봉창 의사는 이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자수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22.11.04.)
참고자료: 조선일보 원문 (이봉창의 사진이 조작됐음도 밝히고 있음)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2/11/04/PKDQPSLLTJEHVI2IQM4YAWCR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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