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반란 주동자 김달삼, 월북 성공 후 6.25 때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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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thfinder12 작성일22-04-03 10:10 조회2,263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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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한 블로그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블로그 주인이 빨갱이 같음)
원본 블로그 : https://bit.ly/3K6lrKu
김달삼.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고 제주 대정 사람이다. 제주 4.3항쟁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4.3항쟁이 일어나던 1948년, 그의 나이는 22살(1925년 생)이었고, 대정읍에 있는 대정중학원 사회과 교사였다. 그는 4.3 무장 투쟁 때 유격대 총사령관을 맡았다. 48년, 8월 해주 인민대표자대회에 남한 대표로 참석차 북으로 간다. 이후, 4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 백두대간을 타고 경북 일월산까지 내려와 빨치산 투쟁을 전개한다.
퇴로에 오른 김달삼부대 100여명은 1950년 3월 20일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서 18km 떨어진 삼운리에서 국군 제185부대의 수색대와 맞닥뜨리게 된다. 당시 부대장은 이형근 준장이었으며, 토벌대가 반론산을 포위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3월 21일 오후 1시부터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6시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김달삼부대는 전멸했다. 토벌대는 다음 날인 22일 새벽부터 부터 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달삼의 시체를 발견한 것은 22일 오전 9시 30분. 반론산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경리 마을에서 였다. 토벌대는 그가 소지하고 있던 권총인 모젤1호와 러시아어로 작성된 작전수첩 등을 회수하면서 그가 김달삼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對非正規戰史 대비정규전사(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9)에도 같은 날짜에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일기의 회고소설 '북위3.8도선'
성일기의 회고소설 '북위3.8도선' 에 따르면 기존 기록과는 다르다. 이 소설엔 김달삼과의 세번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
월북해서 강동정치학원에 있을 때, 첫번째, 두번째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성일기는 강동정치학원 간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곤 했다. 하루는 식당에서 막 자리를 잡는데 한 떼의 청년 군관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들어섰다. 나이는 모두 30세쯤 되었을까, 키가 훤칠하고 준수한데 하나같이 인텔리의 인상으로 여느 군관들과는 확연히 다른 산뜻한 모습들이었다. 그 가운데 성은 뜻밖에 낯익은 로이드 안경을 발견했다. 김달삼이었다.
제주도 손님중에 이승진이라고 있었다. 그는 일본 후쿠치야마 육군 예비사관학교 출신 육군 소위로 광복 후 제주도 대정 중학교 교사로 있었다. 이승진은 철저한 공산당원이던 장인 강문석의 영향을 받아 광복 후 남로당원이 되었다. 제주도4·3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려서 큰 관심이 없었으나 후에 주모자 김달삼이 바로 이승진이라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김달삼은 성일기를 대번에 알아보고 몹시 반가워했다. 성일기도 이역에서 형님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김달삼의 키가 작았다는 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간부 식당에 나타난 김달삼은 용명을 떨친 1군 고위 군관들을 대동하고 있었는데, 김달삼은 성일기에게 그들을 일일이 소개시켜 주어서 인사를 나누었다. "
세번째 만남, '북위3.8도선' p205
조선인민유격대 총사령관 이승엽은 움푹 패인 눈으로 정족산 너머 남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아끼던 정예 제1군단은 문자 그대로 궤멸했다. 이호제 사령관이 정선에서 사망한 뒤, 김달삼은 경북 영양군 일월산까지 쳐내려갔다가 거기서 참패당하여 북상 도중 정치위원 박치우가 죽었고, 눈이 부리부리한 광주의 거인장사 '쇠누깔'차병걸, 경북의 씨름꾼 강인호 등도 태백산, 오대산 어디에선가 모두 전사했다. 부사령관 김달삼, 참모장 서철, 제1대대장 강정수, 제2대대장 남도부 등만이 기적처럼 살았다.
그들이 모두 악이 바쳐 무장하고 나서는데, 사선을 넘은 병정들이 삼삼오오 힘 빠진 걸음으로 하산하는 것과 마주쳤다. 무심히 그들 옆을 질러가는데 그 흐트러진 대열 속에서 유독 쭈뼛이 키 큰 사나이가 돋보였다. 앞섶을 특이하게 벌린 외투에 로이드 안경이 낯익었다. 김달삼이었다. 강동정치학원에서 만난지 거의 일 년 만이었다. 그것은 전멸한 제1군의 생존자들 -부사령관 김달삼, 참모장 서철, 제1대대장 강정수, 제2대대장 남도부 등이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하산하는 순간이었다.
줄여서 말하자면 50년 4월 초에, 50년 3월 22일 반론산전투에서 살아남아 하산하는 김달삼을 양양에서 만났다는 얘기다.
[* 주: 김달삼의 묘비에는 1950년 9월 전사로 되어 있음. 1950년 3월에 죽지 않고 월북, 인민군으로 참전한 것으로 보임. ]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설령, '김 달삼{이 승진}'이가 태백산맥{북괴 용어 - 백두 대간}을 타고 남하, 경북 일월산 까지 남하, 내려와서, '빨치산 투쟁'을 하다가; 토벌대에 쫒겨 북상;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 , 삼운리, 반문리 일대의 '반론산'을 포위한 '이 형근'준장님의 토벌대에게 사살되어져 '지경리'에서 시체로 발견되어지지 않았다 손 가정하여, 월북 도주에 성공; 인민군 소속으로 1950.9 월에 사망한 건 '숙청'으로 봐야한다는 생각도 드듦! ,,. 그까짓 롬 조곰도 아깝지 않죠. ,,. 돈 많은 지주 출신 집안이라서 일본 유학까지 해서 소위 '인텔리겐쟈'라면 이용해먹고는 숙청감이죠! ,,. 잘 난체 안경 쓰고 거들먹 거리는 놈들 눈드고 않.못 봐줄 종자들일 터이니,,. ^ )^ 그까짓 껑갱이 싸구려 선동, 사회주의 이론 좀 읽었다고 거들먹 거리는 인문계{문과}출신 선생이라면 더 더욱! ,,. '와이셔츠에 넥타이'맨 모습은 쟤들로선 못 봐줄 롬이었을 터! ,,. '인민복 카라' 사진인데,,. 합성했군요. ,,. 게릴라 여자 3명! ,,. 참혹하달까,,. 제대로 공부할려면 '리공계{자연계}'로 진출했어야 하는데 '문과[인문계}'로 들어선 게 불행의 시작으로 볾! 불쌍하지만 철저히 배격시켜야! ,,. '윤 석렬'차기 대통령 당선ㅁ자가 제주 4.3사태 '경찰 군인 전사자'들 묘지 참배,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군요. ,,. 자료 제공, 고맙읍니다. '이 형근'대장님은 공로가 크시군요. ,,. /////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