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삐라에 기재된 텍스트에 관한 그 뒷받침 근거 확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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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머스 작성일22-03-11 23:43 조회2,164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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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온삐라에 기재된 텍스트에 관한 그 뒷받침 근거 확인 (1) >
1. 출처
A: 2012.2.23. 파주시 해이리마을 [근현대사 박물관], 3층 [불온삐라 코너] 전시
82년도 북한 불온삐라
B: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p591, 8~14행기재내용
조국통일사, 1982
2. 표시내용
A(불온삐라):
광주대학살 잊지 말자
광주대학살 5,000여명
총기로 사살한수 2,600여명
장갑차로 깔아죽인수 150여명
화장하여 죽인수 920여명
대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때려죽인수 330여명
생매장 하여 죽인수 1,700여명
중경상자 1만4,000여명
광주용사들의 소원 자주, 민주, 통일이었건만…
바탕배경의 내용이 포함된 선동적인 내용이 표시된 삐라형태이다.
배경화면은 80.5.19일자 계엄군이 청년을 진압봉으로 내리치는 대표적 사진이다.
5점의 주검(얼굴)이 잔인하게 죽은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원인별로 사상자의 인원수가 기재되어 있다.
글내용에서 광주용사들의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이간 모략전술)
글자를 두드러지게 강조하기 위해 가장자리 색이 표시되어 있다.
(궁금한 점)
그 삐라의 바탕배경의 사진에 대해서,
그 바탕배경의 사진은 나경택기자가 80.5.19일자 촬영한 것이라 한다.
5.18기념재단에서는 "오월, 민주주의 승리"의 제목하에 사진집을 1991년5월10일에 발행하였다.
이 바탕배경의 사진이 최초로 공개된 것은 언제일까?
당시 보도통제가 있었을텐데, 신문에 그 사진이 게재되었을까?
82년도 북한에서 제작한 삐라이다.
그 바탕배경의 사진을 북한은 누구로부터? 언제? 어떤 방법으로 구했을까?
B(주체의 기치 따라~):
"력사는 아직 단 며칠사이에 한꺼번에 수만명의 동족이 무참히
살상당한 대량살륙의 실례를 알지 못한다.
광주에서 희생된 수는 5천여명에 달하는데 총기류에 의해 살해
당한 수는 2,600여명, 장갑차 등에 깔려죽은 수는 150여명, 생매장
당한 수는 1,700여명, 화장당한 수는 920여명, 대검에 찔리우고 총
탁에 맞아죽은 수는 330여명이며 중경상자는 1만4천여명이나 된다.
광주에서만이 아니라 항쟁에 나섰던 목포, 화순, 라주, 려수, 순
천, 장성 등지에서도 참혹한 살륙만행이 벌어져 1,700여명이나 살
상되었다.
(설명)
글자 “력사”, “라주”, “려수"라는 표시에서 북한의 표현내용임을 알 수 있다.
“동족”, “살륙”, “총탁”, “만행”, 피동형의 문구 “당한”, 의 표현은
우리는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3. 동일점
기재내용중에 '사상자의 인원수에 대한 표현이 동일하다'.
'사상자의 인원수에 대한 표현이 동일하다'는 것은
A(불온삐라)의 표시내용이
B(주체의 기치 따라~)의 기재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B(주체의 기치따라~)는 북한 조국통일사에서 1982년에 발행하였다.
따라서, B(주체의 기치 따라~)의 기재내용을 인용하여 제작된
A(불온삐라)는 북한에서 제작된 것은 확실하다.
댓글목록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위의 삐라글은 북한인들의 용어인것같군요.
남한에서{ㅇ]:북한에서는[ㄹ]
5.18이후 좌파인 황석영외 자들이 북한을 드나들었으며
김일성에게 돈까지 받았다고함!
남한에서 월북한 윤기권 5.18유공자도있다는것!
남한에는 간첩들이 득실 거린다는것!참고.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systemclub.co.kr/data/editor/2203/20220311235811_5a3078e76ad53ccec3ec6065e4bf495c_zjxu.png
↗ 위 사진 색체는 마치 '어린 시절에 딱지 그림 색채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도 북괴에서 인쇄한 삐라임이 여실함. ,,. /////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당시 시민군들이 카빈총으로
광주시민을 학살시켰다.는 결론!
21일 1시반경에서 2사이 5.18기간중
가장많은 희생자 발생함.그외 광주시민들의 망자들은
시민군들이나 북한군이 죽인자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