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 | 품질관리의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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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7:15 조회15,3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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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관리 이론의 시조는 미국의 슈하트(W.A.Shewhart) 박사이며 그는 통계학자였다. 1926년 그는 벨연구소에서 제조공장을 위해 '슈하트 컨트롤 차트'라는 것을 창안해 냈다. 각 공정에 대한 작업결과를 수치로 측정하여 이 수치가 일정 범위 내에 들게 되면 합격시키고 범위를 벗어나면 불합격시키는 데 사용한 차트였다. 이것은 2차대전시 군용품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전시규격에 응용됐다. 이는 'Z-1표준'으로 불렸으며 당시 미군은 이로 인해 대량의 군수품을 빠르고 값싸게 생산할 수 있었다.
1935년 영국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 통계학자였던 E.S.Pearson의 통계학 이론을 응용하여 영국표준600 (BS-600)을 만들었으나 그 후 곧 미국의 Z-1표준을 그대로 도입해 사용했다.
일본에 먼저 도입된 것은 영국표준(British Standard)600이었다. 그러나 이는 고등통계학을 그대로 옮긴 것이어서 일반 기업의 학벌을 가지고는 해독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은 곧 미국표준 Z-1을 그대로 도입해 사용했다. 1945년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으로 하여금 미국식 QC를 그대로 적용할 것을 강요했고, 통계적 품질관리 기법을 적용하는 업체에게 군납의 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는 일본사회에 품질관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 일으켰고, 일본의 통계학자들인 가오루 이시까와 박사, 다구치 박사가 뛰어 들면서 일본의 품질관리는 미국을 모방하는 선을 넘어 미국을 앞서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품질검사(Quality Inspection)가 유행할 때 일본도 이를 즉각 도입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인들의 근본치유 철학에 전혀 맞지 않았다. 제품이 이미 만들어 지고 난 다음에 계측기들을 가지고 불량품을 골라낸다는 것은 100% 골라내지도 못하겠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착안점은 사후에 불량품을 걸라낸다 해도 불량품을 만드는 데 투입된 비용은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사전품질관리에 착안하게 되었다. 일본이 이렇게 새로운 개념을 뚫고 나가는 동안 미국인들은 사후 경찰관식 검사에 안주했다. 일본에서의 품질관리는 최고경영자의 최대 관심사였다. 반면 미국의 최고 경영자들은 품질관리를 중간 관리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며 일임했다. 품질관리는 품질검사 요원들이 각종 측정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슈하트 차트와 대조하여 합격이냐 불합격이냐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945년 일본표준협회가 결성됐고, 1946년에는 일본산업표준위원회(JIS)가 결성됐고, 역시 같은 해에, 고장이 잦은 장거리 전화시스템에 통계적 품질관리 이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1949년에 산업표준법이 제정되고 1950년에는 일본농업표준법이 공표됐다. 한국에 KS마크가 있듯이 당시 일본에서는 JIS마크가 공신력의 상징이었다. 이 모든 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자산은 일본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비영리 조직으로 결성한 JUSE(Japanese Union of Scientist and Engineers) 라는 단체였다. JUSE는 산업체, 학교 그리고 정부부처에 QC연구 그룹을 조직해서 QC이론과 기술을 보급하고 QC활동을 격려했다. 품질관리 운동이 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사회적으로 전개됐던 것이다.
JUSE가 내걸고 있는 조직의 활동목표는 산업합리화, 수출촉진 그리고 생활수준 향상이었다. 1949년 이들은 한 달에 3일간씩 산업체 기술자들을 대상으로 QC 교육을 실시했다. 최초의 교과서는 영국표준과 미국표준을 번역한 것이었으나 이는 곧 일본인 고유의 교과서로 대체됐다. 1950년 JUSE는 미국의 데밍 박사를 초청하여 8일간의 세미나를 열었다. 마치 예수가 이스라엘 밖에서 더 많은 추앙을 받았듯이 데밍 박사는 일본품질관리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다. 품질관리는 일본이 최고이며 일본에서 품질관리 최고상을 받으면 세계의 최고가 된다. 데밍상은 산업계의 노벨상인 것이다.
슈하트 박사는 일본에 SQC(Statistic Quality Control)라고 하는 통계적 품질관리를 가르쳐 주었고, 쥬란 박사는 문제를 프로젝트 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데밍 박사는 '의사결정을 여론이나 직관에 의해 하지 말고 자료와 사실에 기초해서 하라'고 가르쳐 주었고, GE의 품질책임자로 있던 피겐바움(Fiegenbaum) 박사는 TQC 이론을 가르쳐 주었다. “모든 의사결정은 통계자료에 의해서만 하라. 통계자료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신(God)뿐이다." 통계적 품질관리의 모토였다. 모두 1950년대의 일들이었다. 통계자료가 없으면 품질을 관리할 수 없다는 인식들이 팽배하면서부터 일본인들은 오늘날까지 자료를 기록하는 데 세계에서 가장 철저한 국민이 됐다. 미국인 거장들에 의해 품질 이론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일본은 그 후 그들 특유의 응용능력을 활용하여 일본 고유의 품질 문화와 기법들을 창조해 냈고 이는 미국의 품질관리 개념과 기법들보다 한 차원 높이 올라서 있는 것들이었다.
반면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우리 산업계에서 TQC를 모른다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TQC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일본식 TQC는 한국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1990년대 초반, 한국공진청이 TQM(Total Quality Management) 이라는 용어를 새삼스럽게 확산시킨 바 있다. 이 TQM은 한동안 TV에서도 방영됐다. 하지만 출연자 자신들도 TQM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TQC는 구식이고 TQM이 신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TQM은 미국인들의 극히 일부가 일본에게 빼앗긴 기선을 되찾아 보려는 동기에서 만들어낸 용어에 불과했고, 핵심이 없었기에 곧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일본의 TQC는 일명 CWQC(Company Wide QC)라고도 불린다. 전사원이 참여하는 품질관리라는 뜻이다. 화장실이 불결하면 사원의 마음이 상한다. 식사메뉴가 깔끔하지 않아도 마음이 상한다. 매너 없이 던진 말에도 기분이 상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면 수많은 기분 상하는 요소들이 있고, 이 모든 것들이 품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비원, 교환원, 수위들까지도 회사의 분위기를 밝게 하고 각기의 업무에 정확을 기하는 데 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TQM은 관리자 주도로 품질관리를 하는 것으로 터를 잡았기에 미국식 QC 개념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일본식 TQC 정신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통계적 접근방법이 응용되지 않는 품질관리(TQC)는 일본식 품질관리도 아니고 과학적 품질관리도 아니다. 공장에서 통계자료를 기록하고 있지 않고 있으면 TQC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것이고, 전 사원이 참여하지 않으면 TQC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장 현장에서 통계자료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는 기업은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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