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문화정책
우리는 과거 한때의 찬란했던 문화를 자랑한다. 그러나 현재의 문화가 별로이면 그 찬란했던 문화는 한낱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문화가 아름다울 때만 과거의 문화가 돋보이는 것이다.
‘문화’하면 ‘과거’만 떠올린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과거의 문화를 지킬 수 있는 능력만 있고, 현재의 문화를 가꿀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말인가? 우리는 현재의 문화부터 가꾸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국민매너를 국제수준으로 가꾸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관광자원은 물체가 아니라 ‘사람’이다.
지금은 문화에 의한 경영을 해야 한다. 문화가 정착되면 통제 없이도 누구나 열심히 일한다. 국가 경영에서도 문화 창조는 필수다. 문화 창조 없이는 경영의 발전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가경영에는 문화 창조가 없다. 문화는 시스템의 산물이다.
열 그루의 나무와 열 조각의 돌을 정원사에게 맡기면 훌륭한 정원이 탄생되지만 공무원에게 맡기면 볼품없이 나열만 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공공시설들은 공무원의 작품이다. 그래서 문화가 없다. 하나의 시설을 예술적으로 만들어 내는 손은 공무원의 손이 아니라 정원사의 손이다. 사회를 가꾸는 일은 한 사람의 정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예술과 과학을 배합할 수 있는 두뇌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OS 없는 컴퓨터가 고물에 불과하듯이 운용시스템 없는 사회는 혼란스럽고 삭막할 뿐이다.
시설물은 하드 인프라이지만 운용시스템은 소프트 인프라이다. 우리는 하드 인프라에만 투자했지 소프트 인프라에는 투자하지 못했다. 선진사회는 소프트 인프라에 많은 돈을 쓰지만 후진국은 하드 인프라에만 투자한다.
서울거리를 운용하는 가장 단순한 신호등에도 시스템이 없다. 교통의 흐름을 도와주어야 할 신호등이 흐름은 무시한 채 제멋대로 불을 바꾼다. 서울 거리의 신호등은 무엇인가? 어느 장사꾼 교수의 소개로 정부가 일본 교통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를 사다가 그대로 설치한 것이다. 서울에 설치된 신호등 주기는 바로 일본의 어느 거리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는 훌륭한 교통문화를 창조할 수 없다.
인생에서 태교가 중요하듯이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개념이다. 개념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건축비와 유지비 규모가 결정된다. 설계에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인다 해도 설계비의 절대 액은 건축비와 유지비의 불과 1~2%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설계에 돈을 쓰지 않는다. 설계가 없는 건축물에는 문화가 없다. 싱가포르 건축물 문화 중의 하나는 코너 문화라는 게 있다. 건물의 코너에는 조그만 분수나 꽃이 있고 음악이 흐른다.
싱가포르 공항에 갔더니 공항관리자들이 짐을 벤딩해 주었다. 벤딩하는 동안 짐 검사가 이뤄진 것이다. 이 끈을 김포공항에서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았더니 보이지 않았다. 안내양에게 쓰레기통이 있는 곳을 물으니 퉁명스럽게 쳐다보면서 턱으로 가리켰다. 턱 쪽을 향해 돌아보아도 쓰레기통이 없었다. 다시 물어보자 “저 기둥 옆에 있잖아요” 하면서 쏘아 붙였다. 그곳에 가보니 5리터짜리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아무리 건물이 훌륭하다 해도 이러한 문화를 가지고는 후진국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현재의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이것이 문화관광부 장관의 주 임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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