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을 점령한 점령군이 있습니다. 386세력입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그들이 내걸고 있는 ‘이즘’의 키워드부터 정리해 봅니다.
1. '한미공조'는 필요 없다. '민족공조'가 우선이다. 한미공조를 단번에 파기하지 못하는 것은 반대세력인 우익들의 저항을 의식해서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갑자기 넣으면 실패의 위험이 따름으로 서서히 온도를 높여 가는 방법으로 처리한다.
2. '반미'는 곧 '반전'이다. 전쟁은 미국만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6.25는 남침이 아니라 미국이 제국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술적으로 유도한 전쟁이다. 이 세상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는 오직 미국뿐이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이다. 따라서 미국만 내보내면 전쟁이 없을 것이다. 북한은 절대로 우리를 무력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북한을 경계하자는 것은 우익들이 정권유지용으로 만든 거짓이다. 반미운동의 성과를 극대화시키려면 반전운동도 같이 펴야 한다. 반미와 반전은 서로 돕는 상승관계의 운동이다.
3. '자주국방'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북한은 절대 민족을 공격하지 않는다. 지금 자주국방을 정부가 내거는 것은 수구세력의 반발 때문에 마지못해 내거는 것이다. 자주국방은 반전-평화 정신에 어울릴 수 없다.
4. 앞으로 한국이 핵 회담에 참석하면 북한 편을 들어야 한다.
5. 우익은 철천지 원수다. 우리는 우익들로부터 박해를 받아왔다. 그래서 김정일보다 더 증오한다. 우익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김정일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 김정일은 미국과 일본을 미워하지만 우익은 미국과 일본을 좋아한다. 우리의 적은 외세이며 또한 외세를 추종하는 우익세력이다. 김정일은 이에 힘을 합칠 수 있는 동지세력이지 결코 적이 아니다.
6. 우익들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권을 다시 넘겨줄 수 없다. 가짜 전자개표기를 동원하여 눈속임을 해서라도 다시는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
7. 그래서 인사는 철저히 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선의 원칙을 충성심과 코드로 삼아야 한다. 유능하고 설득력 있는 우익에 대해서는 모든 종류의 탄압을 가해 잠재워야 한다. 언론도 잠재워야 한다.
8. 대화를 오래 하면 색깔과 논리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래서 대화를 금해야 하고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탄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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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력을 특징짓는 위의 8가지 특성(attributes)들은 뜻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다소 직설적으로 표현돼 있지만 제가 요사이 찾아낸 알맹이들입니다. 저는 이를 찾아내기 위해 ‘이념투쟁’에서 실망하고 전향(?)한 40대들을 만났습니다. 아직은 점령군의 다수와 절친한 친분관계를 가지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분들도 만났습니다.
지난 4월 17일, 저는 일본에서 잘 나가는 작가 ‘무라카미 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곧 북한에 대한 소설을 쓴다며 그의 최신작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을 제게 선사했습니다.
20대의 젊은이가 샐러리맨 집안의 맏아들이었습니다. 여동생이 고등학교 졸업생입니다. 이 청년이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히키고모리’라는 자폐증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원래 쾌활했습니다. 그런데 성적이 안 좋아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좋아한 여학생에 접근했지만 대화기술이 어설퍼서 그 여학생은 눈길 하나 주지 않고 피했습니다. 그 때부터 자신을 잃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게 싫었습니다.
그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기 위해 온 방을 검은 종이로 발랐습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그야말로 캄캄한 밤의 공간에서 24시간을 지냅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어머니도 때리고 아버지도 때립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지독하게 맞아 실신을 했습니다. 의사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가 집을 나가야 했지만 그럴만한 돈이 없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가장은 48세, 남매와 부인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스스로를 위해서는 라면까지도 아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가장은 쫓겨나고 그가 일생 내내 힘들게 일해서 마련한 집은 어리광에 도취돼 있는 아들녀석에게 빼앗기는 순간이 그야말로 기가 막혔습니다. 아버지는 남루하고 비좁은 독방을 얻어 나가 삽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합니다. 구조조정으로 내일 잘릴지 모래 잘릴지 몰라 불안해하면서도 소형회사 차장으로 받는 빠듯한 월급을 가지고 가까스로 수지를 맞추면서 운명의 날을 기다립니다.
그 ‘히키고모리’(자폐증)는 어두운 방에 구멍을 뚫어놓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앞집을 엿봅니다. 어느 날 매맞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 후 이 아름다운 여인을 구하기 위해 자폐증에서 벗어나 기지와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는 오직 그 여인을 향한 집념만 가지고 삽니다. 다른 사람, 다른 일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걸리적거리는 사람에게는 가차없이 폭력을 휘두릅니다.
지금 한국을 점령하고 있는 점령군, 386세력들이 바로 이러한 ‘히키고모리’와 유사한 과(科)에 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직 한가지만을 위해 돌진하고 그 돌진에 장애물이 되거나 걸리적거리는 존재에 대해서는 폭력을 사용하는 위험한 ‘히키고모리’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베트남이 통일된지 28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베트남은 40년전의 베트남보다 훨씬 더 낙후돼 있습니다. 베트남을 점령한 점령군이 '히키고모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로 세계의 발전과 담을 쌓습니다.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세계인들과 어울리면 열등감만 들어 스스로 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때려 내쫓습니다. 한국은 앞으로 제2의 베트남이 될 것입니다.
이념에 몰두하고 투쟁에 몰두한 젊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정말 자폐증 환자와 비슷한 점들을 발견합니다. 세상을 투쟁개념과 열등의식으로 보아오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여유나 인정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거의 100% 가족들에게도 인기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저와 같은 사람을 ‘수구꼴통’이라 부릅니다. 과연 제가 그들에 비해 꼴통이고 구식만 고집하는 수구일까요?
지금도 저는 국제여행을 하면 저 혼자 앞 감당을 합니다. 특히 미국에는 미국인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가족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매너도 국제매너입니다. 상대방 이야기도 잘 듣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지 않게 합니다. 조금만 이야기해도 곧 친구가 되며 호감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미국에 가보지도 않고 그들과 어울려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미국인들을 나쁜 놈이라고 매도하며 대원군처럼 벽을 쌓아 올립니다. 도대체 사교라는 걸 모릅니다. 미국 주도의 현 국제질서에서 어떻게 하려고 미국과 적대관계를 가지려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습니다.
제가 34세였을 때입니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왔을 때입니다. 여러 가족들이 대중음식점엘 갔습니다. 반찬 하나가 맛이 있어 금방 동이 났습니다. 서브를 하는 아가씨에게 손짓을 하면서 반찬그릇을 들고 살피는 척 했습니다. 아가씨는 반찬에 혹 머리카락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하면서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이 반찬 말이야, 아가씨, 어떻게 만들었는데 이렇게 맛있어?”. 잔뜩 긴장했던 아가씨가 실실 웃으면서 반찬을 곱빼기로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실실 웃으면서 다가와서는 “뭐 필요한 거 더 있으세요?”하고 물어주었습니다. 주위의 여자분들은 제가 미국에 갔다 오더니 유머와 매너가 남다르다고들 말했습니다.
엊그제의 일이었습니다. 시골에 꽃나무를 좀 심으려고 양재동 근처의 묘목원에서 묘목을 사서 짚 차에 가득 싣고 가다가 시골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습니다. 면장갑이 2개 필요했습니다. “선생님, 제 차안을 좀 들여다보세요”. 그는 영문모르고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무가 가득 찼지요? 저걸 다 심으려면 아무래도 장갑이 2개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30세가 조금 넘었을 그 아저씨는 자기도 센스가 있다는 듯이 씨익- 웃으면서 두 말없이 면장갑을 2개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갔더니 실실 웃으면서 또 차안을 들여다보더군요.
미국에서는 이러한 센스가 있어야 지식층과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라 센스를 주고받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미국인 친구들의 가족과도 매우 허물없이 지냈습니다. 이런 유머는 한국에 살면서도 늘 있었습니다. 어떤 동기생 부인은 저만 쳐다보고서도 웃음을 참지 못해 2-3분씩 웃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60평생 경쟁의식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유를 체질화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투쟁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투쟁을 했습니다. 하지만 유머 감각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이런 제가 오늘도 많은 사람들 입에서 ‘극우 꼴통 보수’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도 프리랜서만을 고집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환갑을 넘긴 사람이 무슨 다른 욕심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염려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미워하는 386세대와 그 이후의 어린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마치 ‘히키고모리’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집을 나가듯이 우리 늙은 세대는 집을 나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하지만 뼈 빠지게 일해서 자기를 먹여 살리고 자기에게 아늑한 독방까지 마련해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마구 구타하는 ‘히키고모리’에게 그 집을 영원히 맡길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저는 노정부가 하루 빨리 ‘히키고모리’ 세력들로부터 환멸을 느끼고 경제건설-사회건설 능력과 국제시각과 외교적 매너를 길러온 중후한 실력파들을 중용하기를 바랍니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를 이유 있게 공격한 사람들을 중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코드가 같고 충성심 있는 ‘히키고모리’들만이 등용됩니다. 이런 세대들은 곧 자기들끼리 충돌하고 대통령과도 충돌을 빚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사람들만의 모임이 어찌 국가를 제대로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200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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