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 지표가 눈을 속이는 경우는 많다. 예비군에는 전쟁 발발 시 전방으로 투입되는 동원예비군과 자기 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향토예비군이 있다. 향토예비군의 경우, 우리나라 전체 통계(Agregate Statistics)를 보면 숫자는 필요 수량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보면 향토예비군 숫자가 모자라는 지역이 태반이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서울, 수도권, 대도시에 집중돼 있고, 정작 필요한 농어촌 지방에는 그 지방을 지키기 위해 싸울 최소한의 인력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중에는 공적자금 살포와 신용카드 남발로 돈이 넘쳐나게 풀려 있다. 하지만 시중에 풀린 돈은 향토예비군의 분포처럼 극히 부유층에 몰려있고, 서민들에겐 가지 못했다. 부유층에 몰려간 돈은 금융실명제 때문에 은행으로 가지 않고 캐비넷 속에 숨어 있다. 그런 돈은 사치와 향락과 해외도피에 사용되기 때문에 생산 부문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공장이 돌아가려면 많은 서민들이 물건을 사주어야 하는데 서민들은 카드 빚에 시달려 남대문 시장조차 찾지 못한다. 돈을 많이 가진 부자들은 남대문 시장을 찾지 않는다. 남대문시장이 썰렁하면 공장이 제품을 만들어내도 팔리지 않는다. 팔리지 않는 제품을 누가 더 생산하려 할 것인가. 기업의 숫자는 이렇게 해서 하루 하루 줄어만 간다.
이러한 축소지향적인 패턴을 뒤집기 위해서는 외국 자본이 들어와 공장을 짓고 서민들을 대량으로 고용해 주어야 한다. 고용된 사람이 늘어나야 다시 남대문 시장을 찾게 되고 새로운 기업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한국에 공장을 지으려고 들어오는 외국기업은 없다. 한국의 노조는 세계에서 가장 극렬하고 무경우하다는 악평이 나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한국경제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정부는 고용안정을 명분으로 노조와 한편이 돼왔다. 기업은 노조의 적이요, 정부의 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용안정’은 도덕적 명분이지 기업을 살리는 논리는 아니다. ‘고용안정’은 기업을 죽이고 국가를 가난하게 만드는 가장 큰 병균이다. 어째서 그런지 따져보자.
기업에 120명의 근로진이 있다고 하자. 영국인이나 미국인 시스템 전문가가 들여다보면 50명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지만 한국인 경영자들은 100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기업은 그 20명 마저 줄이지 못한다. 선진국 전문가와 한국 기업인 사이에 이러한 차별을 두는 이유는 선진국에서는 리엔지니어링이 성공하여 많은 기업이 사원의 숫자를 10%-50% 이하로까지 줄였지만, 한국기업 중에서 이러한 성공을 이룩한 사례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데 선진기업은 50명만 사용하고, 한국기업은 120명을 사용하면 우리기업은 제품단가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얻으려면 경영혁신을 과감하게 주도해야 한다. 경영혁신이란 무엇인가. 보다 적은 인력으로 남보다 더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일하는 방법의 혁신'이다. 그런데 정부의 고용안정 정책 때문에 기업은 그런 경영혁신을 포기한다.
기업이 사람을 줄이면 노조로부터 물리적 보복을 당하고 소송에 휘말리고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누가 감히 경영혁신을 주도하겠는가. 선진국은 50명에서 30명으로, 다시 30명에서 20명으로 줄여가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는 반면 한국기업은 앉아서 망할 날만 기다리는 것이다.
비싼 제품, 하자 많은 한국 제품을 사주는 외국 바이어는 없다. 국민 역시 싸고-좋고-첨단을 달리는 외국제품을 선호한다. 이런 식으로 경쟁력을 잃으면 한국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 망한 기업에 무슨 고용안정이 있는가. 세상에는 버려야만 얻는 것이 있다. 고용안정이 바로 그런 케이스이다. 고용안정을 버려야 기업이 살아나고 기업이 살아나야 고용이 다시 늘어나는 것이다.
영국의 대처수상은 여기에 위대한 조치를 단행했다. 실업이 늘어날 때, 그녀는 오히려 대량실업을 가속화시켰다. 기업에 경영혁신을 독려했고, 공무원을 반으로 줄였고, 공기업을 민영화시켰다. 이 세 가지 조치 모두가 대량 실업을 양산했다. 그 결과 영국은 국제경쟁력을 회복했다. 외국자본을 과감히 유입하여 대량실업을 소화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업이 고용을 스스로 창조해냈다. 고용안정과 경쟁력은 두 마리의 토끼다. 경쟁력을 먼저 잡으면 고용안정도 잡을 수 있지만, 고용안정을 먼저 잡으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잇다,
한국 경제의 엔진은 기능공이지만, 경쟁국 경제의 엔진은 설계인력이다. 설계인력이 많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제품을 남보다 먼저 시장에 내놓을 수 있고, 부가가치가 높으며,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까지 외국설계에 의존했다. 높은 부가가치도, 일자리도 창조해낼 수 없는 것이다.
3공 걸음마 시절엔 정부가 외국기술을 들여다 업체에 주었다. 업체에는 외국 기술자료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정부가 외국으로부터 과학기술자들을 유치해다 업체를 지도케 했다. 이때부터 업체들은, “기술과 설계는 거져 얻는 것”으로 생각했다. 기술과 설계에 돈을 쳐주지 않는 풍토에서는 두뇌들이 설계분야에 투신할 수 없었다. 3공 때에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상수라는 정서가 확산됐다. 지금은 설계가 가장 유망한 길이라는 정서를 확산시켜야 할 때다.
그러자면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공사에 시스템 설계를 의무화하고, 설계에 돈을 쳐주어야 한다. 그래야 두뇌들이 설계분야에 몰려든다. 설계가 없는 시설을 보자. 스웨덴에서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진국들의 지하철역에는 역무원이 2명이지만, 우리 지하철역에는 역무원이 22명이다. 선진국의 환승역은 지하 1층-2층으로 돼 있어서 지하공간이 매우 좁아 에어컨까지 가동된다.
우리의 환승역은 어떤가. 그 넓은 지하공간에 야기된 나쁜 공기를 무슨 수로 정화시키는가. 평당건설비는 얼마인가. 15-20분이 소요되는 환승과정에서 낭비되는 시간과 정력은 얼마인가. 기분상한 사람들에게서 무슨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고속전철 사업을 보자. 불과 수십억원의 설계비를 아낀 결과 눈에 보이게 증발된 비용만해도 4조가 넘는다.
설계에 돈을 쳐주지 않는 경제는 불필요한 일자리만 만들어낼 것이다. 유흥업소와 골프장에 있는 일자리도 선진국에는 없다. 자동차 면허과정과 등록업소에 있는 일자리들도 선진국에는 없다. 같은 땅을 다섯 차례씩이나 파고 묻는 일자리도 선진국에는 없다. 성업공사는 땅을 사서 불품 없이 파헤치면서 부지만 만들어 팔 것이 아니라, 지하턴넬을 만들고, 오페수처리 시스템을 설치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상.하수도관, 통신선, 가스관 등의 지하시설 업체들이 돈을 내고 그 턴넬을 이용할 것이다. 환경정화 시스템에 들어간 돈도 입주자들이 부담할 것이다. 이것이 시스템 사회다.
정부가 방만한 정부기구를 거느리며 세금을 많이 걷어다 쓴다. 국내 가용자금은 제한돼 있다. 그 제한된 자금 중에서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어다가 비효울적으로 낭비하면 사기업에 돌아갈 돈이 없다. 사기업은 이렇게 해서도 망가진다. 미국의 세출예산은 GNP의 18%다. 그 돈을 가지고 미국정부는 훌륭한 인프라시설, 살기 좋은 사회시스템, 보호된 환경, 실험실 있는 교육, 복지혜택 등을 제공하고 있다. 젊었을 때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은 늙어서 엄청난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준조세까지 합쳐 GNP의 26%나 걷어가면서도 아무런 혜택이 없다. 세금을 적게 걷고, 세출예산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공무원도 소수정예화해야 한다. 인허가 행정도 경영행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도 일부 선진국처럼 은행으로 하여금 땅을 담보로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땅을 가진 사람들이 땅을 다투어 내놓을 것이다. 땅을 담보로 받지 않고 신용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은행은 아직도 신용을 평가할 줄 모른다. 은행을 통제하려고 자기사람들을 내보내는 집권세력들은 있어도 은행의 선진화를 독려하는 집권세력은 아직 보지 못했다.
2003. 5. 2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