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북한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북한은 두 개의 요소로 구성돼 있다. 학대받는 주민이 있고, 학대하는 김정일 정권이 있다. 주민은 우리가 구해줘야 할 동족이지만 김정일 정권은 학대를 멈추지 않는 한, 그리고 남한을 북한 체제로 통일하려는 목표를 시스템적으로 버리지 않는 한, 우리의 적이다.
9.2 통일은 가능한가?
통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통일을 하는 과정은 세 가지로 접근될 수 있다.
1) 무력통일
무력통일은 북한만이 시도할 것이며, 남한은 결코 북한을 무력으로 침공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이 있는 한, 북한 역시 남한을 침공할 수 없다. 설사 북한이 땅굴을 이용하여 남한을 침공한다 해도 평양은 미국에 의해 핵 폭격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친북좌익들은 반미감정을 고조시켜 주한미군을 내보려고 노력해온 것이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한, 무력침략에 대한 위험성은 매우 낮지만, 주한미군이 철수한 다음부터는 무력침공에 의한 적화통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북한에 의한 무력통일의 길을 막으려면 반드시 주한미군을 한국에 주둔케 해야 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돈독하게 해야 한다. 미국이 중요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적화통일의 길을 원천 봉쇄하는 힘을 오직 미국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신사협정에 의한 통일
신사협정을 통해, 서울 정부와 평양 정부를 하나로 합치는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질사회 속에서 살아온 남북한 정치집단이 마음을 합쳐 하나의 정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북한의 고려연방제론도, 남한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론도 모두가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실효성이 없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론에는 야욕과 속임수가 숨어있으며, 남한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북한을 흡수통일하자는 것이어서 북한이 반대한다. 따라서 그 어느 통일방안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한반도에 평화통일은 없다. 평화와 통일이 따로 있다. 평화와 통일은 한 마리의 토끼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의 토끼다. 어느 토끼를 먼저 잡을 것인가.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통일을 잡으려 했다. 그 결과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쳤다. 우리는 통일에 대한 차가운 현실은 접어둔 채 통일이 주는 장미 빛 환상에만 매달려 왔다. 현실적으로 통일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다. 먹는 쪽은 주인이 되고 먹히는 쪽은 희생된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목소리가 북한에서 높으면 남한이 긴장했고, 남한에서 높으면 북한이 긴장해왔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긴장만 더 고조돼온 것이다. 바로 통일이 평화를 깨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통일은 물속의 그림자다. 잡으려 하면 사라지고, 가만 두어야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 통일의 파라독스’다. 통일은 버려야 얻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내일의 통일을 위해서는 오늘 하루만큼은 통일을 버리고 평화를 선택해야 한다.
평화는 평화공존 시스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서로의 주권을 인정하고 한반도에 두 개의 주권국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통일이 올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변화를 전제로 한다. 하나는 현재의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UN감시하의 상호감군을 하는 것이다. 캐나다와 미국을 보자.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한집 식구들처럼 자유롭게 왕래하지 않는가. 남북한도 이들처럼 지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통일이 아닌가.
이러한 ‘사회적 통일’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사회적 통일을 이루려면, 정치적 통일을 포기해야 한다. 정치적 통일은 정치집단간의 싸움만 불러온다. 남북한이 서로를 ‘정치적 통일’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회적 통일’은 없다. 남북한이 서로 먹고 먹힐 수 없도록 국제적 장치만 설치된다면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도 한ᐨ일 관계처럼 제각기 남남처럼 살아갔으면 한다. 민족이 하나이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다. 남북한 주민들은 60년 이상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다. 남북이 하나가 된다면 이는 수천만의 타잔들과 수천만의 도시인들이 섞여 사는 것이 된다. 이는 카오스다. 탈북자가 1만 명이나 된다. 이들은 시키는 일만 하던 버릇 때문에 너무나 방대한 자유의 바다에서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다. 세월과 하늘이 남북한 주민들의 동질성을 확보해 줄 때까지 남북한 주민들은 따로 살아야 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같은 민족이지만 따로따로 잘 살아간다.
가족이 씨족을 이루고, 씨족이 민족을 이룬다. 이런 개념의 아주 작은 단위로 형제들을 보자. 형제들이 제각기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살고, 거래를 남남 사이처럼 정확하게 할 때에 동기간의 우애가 오래 갈 수 있다. 형제사이에 내 것과 네 것이 어디 있느냐고 엉키다 보면 형제 사이는 원수지간으로 바뀌게 된다. 남북한 사이에도 엄격한 거래가 있어야 할 것이다.
3) 흡수통일
첫째,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경우다.
경제가 어려워 북한에 무정부사태가 발생하면 바로 그 때 흡수통일하자는 것이 국민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이는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북한사회가 혼란해지면 인민군이 계엄군으로 무장된다. 북한사회를 접수하려면 가장 먼저 한국군이 38선을 넘어야 한다. 이는 북침이요, 전쟁이다.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주변국들도 이를 좌시하지 않는다. 경제가 어려우면, 정권은 망할 수 있어도 국가는 망하지 않는다. 북한에서 누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면 그가 북한을 남한에 바치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이 남한을 흡수 통일하는 경우다.
최근 들어 이는 그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우리는 지난 5년간 김대중이라는 골수 간첩에게 국가를 맡겼다. 2001년 2월 그는 월남의 경우처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제2의 월남화를 기도했다가 미국에 의해 저지됐다. 수장이 나라를 바치는데 군대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막강한 군사력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땅굴을 찾아내서 폭로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금 남한 사회는 정권ᐨ언론ᐨ교사ᐨ교수ᐨ친북단체들에 의해 집단 최면 되어 사상적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남한의 적화세력과 김정일 정권이 내통 연합하여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을 선포하는 소위 날치기식 통일을 획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은 실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태로운 시기다.
셋째,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여 김정일 정권을 몰아내고 북한을 이라크처럼 통치할 경우다.
중국의 입장이 고려돼야 한다. 중국은 북한의 핵을 매우 싫어한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대만이 갖게 되고, 대만이 가지면 중국통일은 물 건너간 것이다. 그런데도 요사이 중국은 김정일 정권을 싸고돈다. 대만이 핵무기를 갖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국의 힘이 압록강까지 미치는 상황을 맞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점령하고, 북한에 주둔하면 이는 중국에게 [대만의 핵]보다 더 무서운 악몽이다.
미국의 입장도 고려돼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다른 나라들이 핵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핵무기는 매우 흔한 무기가 되어 테러 단체들에 마구 흘러간다. 이는 미국의 멸망을 의미한다.
일본 역시 한반도 통일을 싫어한다. 미국은 일본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반도를 통일시키는 데 주저할 것이다. 더구나 핵무기를 가진 독재자 김정일이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은 일본에 참을 수 없는 악몽이다. 김정일을 도려내려면 미국과 일본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우리 역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가 아니면 오히려 분단을 원해야 한다. 우리 독자적인 힘만을 가지고 통일을 주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일을 주도하기는커녕 통일 당할 것을 우려해야 한다. 이러한 우려를 원천 봉쇄하려면 통일의 길을 닫아야 한다. 통일의 길이 열려 있으면 적화통일의 길도 열려 있는 것이다. 적화통일의 길을 막으려면 통일의 길 자체를 막아야 한다.
이렇듯 바둑판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한반도 통일은 어차피 불가능해 보인다. 불가능할 바에야 하루라도 빨리 남남으로 갈라서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유엔 관리 하에 남북한 영구분단체제를 시스템화하고,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재래식 무기를 대폭 감축하여 상대방을 기습 공격할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엉거주춤한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는 언제나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9.3 통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사상과 생활양식이 같으면 이민족 간에도 사랑을 하지만 그것이 다르면 부자지간에도 살인을 한다. 민족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국가가 잘 살고 못 살고는 각급 지도자들의 경영능력에 달려있다. 남한 반쪽만의 사회를 가지고도 경영능력이 모자라 역사는 후퇴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북한의 이질집단까지 합치면 한반도는 다시 4분5열될 것이다. 경영능력이 발전하고 경제적, 문화적 수위가 같아질 때까지 영구분단에 의한 평화공존이 바람직할 것이다.
국가 규모가 작다고 군사력에 의해 점령되는 시대는 지났다. 싱가포르,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들을 군사력으로 점령할 나라는 없다. 기업도 사회도 소단위로 쪼개져야 경쟁력이 생기고 잘 산다. 땅이 크고 인구가 많아야 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옛날의 생각이다. 통일의 지름길은 곧 영구분단인 것이다. 패러독스처럼 들리는 이 말을 하루라도 빨리 이해하는 것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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