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은 누가 건설해 왔는가. 한마디로 주인이 없다. 왜 주인이 없는가. 고급장교들에게 명예심과 정의감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외형적 조직을 보자. 한국군 조직은 한마디로 군살이 너무 많다. 한국군 조직은 전투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급적 많은 장군 자리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간부들에게 명예심이 있고, 애국심이 있다면 어떻게 장교들이 군을 밥벌이 수단으로 생각해왔겠는가.
이렇게 조직이 무분별하게 양산되다보니 무기 하나를 사는 데에도 60여 개 조직이 대들어 한 자락 씩 권한을 행사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인원만 해도 수백 명이다. 그러나 첨단무기를 평가하는 일은 이렇게 수많은 간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불과 몇 명의 슈퍼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전문가들이면 한 달만에 할 수 있는 일을, 이들 수백 명의 비전문가들은 각기 이권을 틀어쥐고 앉아 10년씩 보낸다. 공연히 시간만 보내다 장비가격만 2-3배로 올려놓는다. 사고 보면 구식무기요 수리부속도 고갈 난 상태다.
군이 이러한 조직을 이용하여 무기를 선택하고 구매하는 방법은 더욱 더 희극적이다. 장비에 대해 전혀 상식이 없는 간부들이 여기저기에서 단편적으로 얻어들은 상식을 가지고 오늘은 이 업체, 내일은 저 업체를 싸고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모든 율곡사업에 말들이 많다. 말이 많은 이유는 명백하다. 누구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권위 있는 분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없기 때문에 군간부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된다. 이는 다른 한쪽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다. 이 반발을 억제시키려다 보니 비공개 주의로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율곡사업에는 말이 많은 것이다.
앞으로의 전쟁은 합동전이다. 해군도 육군과 공군 작전에 익숙해야 한다. 이는 육해공군 3군에 모두 해당된다. 따라서 사관학교도 육해공군이 통합돼야 한다. 단지 전공만 달리 분류하면 된다. 각군 대학도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교육사령부도 통합돼야 한다. 인력과 예산이 절략 되기도 하지만 효과는 수십 배로 향상될 수 있다.
통신부대와 통신학교도 육해공군이 제각각 운영하고 있다. 동해안에 간첩선이 나타나면 J-201 망이라는 3군 통신망에 육해공군이 가입하여 항공기와 함정을 동시에 간첩선으로 유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육해공군 통신이 따로 논다. 각 군이 사용하는 무전기 종류와 성능이 제 각각이라 잡음이 심하다. 각 군이 사용하는 좌표체계가 상이하다. 각 군이 사용하는 통신용어도 상이하다. 예를 들어 [튀었다]라고 말하면 육군에서는 간첩선이 나타났다는 것을, 해군에서는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군은 보병이라야 출세하고, 공군은 조종사라야 출세한다. 따라서 통신장교들은 각 군에서 공히 찬밥신세다. 통신분야는 과학군의 상징이다. 이렇게 각 군에 쪼개져서 찬밥대접을 받고, 장래에 대한 비전이 없기 때문에 통신장교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연마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군 통신은 매우 낙후돼 있다. 엄청나게 비싼 통신장비를 수입했지만 허다한 장비들이 구입되자마자 창고 속으로 들어갔다. 레이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산 위에 각 군이 제각각 레이더를 설치했다. 장비에 대한 투자비도 3중, 시설공사도 3중, 그리고 인력과 운영예산도 3중이다. 그러면서도 레이더 상호간에 엄청난 전파간섭을 유발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국방비가 더덕더덕 풀칠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통신장교들을 가지고는, 누가 전자전 장비를 거저 준다해도 전자전을 수행할 수 없다. 왜 통신부대들을 국방부 직속으로 통합시켜 발전시키지 않는가. 군이 축소되고 많은 자리가 줄기 때문이다.
통신분야의 발전을 위해 육해공군 통신부대를 장관직속으로 통합해주겠다고 하면 통신장교들은 쌍수로 환영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에 가장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장교들이 바로 통신장교들이다. 이러한 속사정을 모르고 있는 보병 정책결정자들은 실무자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명분 하에 그들의 요구라면 무조건 수용했다.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비전과 두뇌가 없는 상관의 머리는 먼저 점령하는 사람이 임자였다. 통신장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인력절감용 첨단장비의 등장이다. 이러한 장비가 나타나면 그들은 반사적으로 저항한다. 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애국적 현상은 비단 통신장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군수장교들은 몇 수 위다. 군수부대들은 수도 많지만 규모도 대단하다. 예산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육해공군 군수부대들을 통합하면 10만 인력과 년간 2조 이상의 예산이 쉽게 절략될 수 있다. 군수부대를 통합해야 한다는 명분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군인은 없다. 그만큼 강력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이들은 왜 군수부대 통합에 저항하는가. 역시 자리와 이권 때문이다.
국가를 사랑하는 군인이라면, 인력, 예산을 절약하고도 군수지원 효과는 오히려 지금의 수십 배로 향상될 수 있는 이러한 명분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바로 여기에 군인정신이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군은 국토를 방위해야 한다. 국토를 방위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은 비합리적인 일을 많이 저질렀다. 그러는 동안 군의 명예는 당에 덜어진지 오래다. 장교들이 명예를 방위해야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병사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YS정부에 들어 군은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이로 인해 군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젊은 장교들이 농촌총각처럼 장가를 들지 못했다. 처음엔 문민정부가 때린 매를 원망했다. 그러나 실제로 군의 명예를 지키지 않는 것은 군인들 자신이었다. 군의 자세와 매너가 국가와 군의 명예를 지키기에는 너무나 함량미달이었다.
아직도 군부대에 전화를 걸면 이질감을 느낄 만큼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경우가 많다. 지금은 총력전이다. 군 혼자의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그리고 적진의 주민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군은 신뢰를 얻는 방법, 명예를 지키는 방법 그리고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 기초부터 교육받고 훈련해야 한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6.25 때 아군 입성을 열렬히 환영하는 북한 주민의 마음을 돌려세웠던 것이다.
전쟁이 나면 서울을 향해 분당 1만발씩 새까맣게 날아오는 대구경 포탄에 의해 삼품참사 현상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이는 십여년 전부터 걱정해온 위협이다. 그러나 한국군의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대책을 고민해오지 않았다. 모두가 보다 더 높은 계급만 바라보고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했다.
군대내의 다양한 보직은 이들에게 한낱 출세를 향해 놓여진 징검다리에 불과할 뿐 이들이 거처간 그 어디에도 쌓여진 자산은 없다. 군인은 공인이다. 그러나 한국 군대에는 샐러리맨은 많아도 공인은 그리 많지 않다. 전쟁이 나면 누가 누구를 위해 싸울 것인가. 군에 나타나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은 오직 이 하나의 사실로부터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200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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