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정치적 통일’ 즉 1체제 1국가 형태의 통일을 지향하는 한, 평등을 전제로 하는 평화통일은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하게 마련이다. 남한이 경제력을 가지고 북한을 흡수하려고 하면 북한은 무력으로 남한을 흡수하려 할 것이다.
무력에 의한 통일에서는 남한이 열세하기 때문에 남한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존심을 송두리째 버려 가면서 주한 미군에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반면에 평화 통일에서는 북한이 열세하기 때문에 북한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통일하는 쪽은 좋겠지만, 당하는 쪽은 멸문을 의미한다. 통일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그럴듯해도 먹고 먹히는 게임이다. 우리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북한은 이러한 사실을 신념처럼 믿고 있다. 만일 우리가 북한에 의해 통일당하면 군인, 경찰, 재벌 그리고 모든 기득권자들의 가족들이 학살당할 것이다. 북한의 기득권자들도 이와 똑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흡수 통일할 의사가 없다며 만천하에 공표해도 북한에서 이를 액면 그대로 믿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한의 국민도 남한 당국을 믿어 줄 사람이 없는데 하물며 북한의 기득권 세력들이 어찌 남한 당국의 진실을 진실로 믿어주겠는가.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면서도 북한의 불바다 선언에 꼬리를 감출 수밖에 없는 군사력을 가지고 무슨 근거로 북한을 만만하게 보는가. 무력에 의해 통일당하고 싶지 않으면, 우리도 북한에게 개방과 통일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강요하면 할수록 남북한 간에는 긴장만 고조될 뿐이다.
지금의 남북한 관계는 대결의 관계다. 대결 관계를 해소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이들은 화해하고 교류하는 길만이 서로가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화해와 교류 속에는 북한 체제가 싫어하는 독약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또 북한이 그러한 고루한 생각에서 벗어나 하루 빨리 국제 추세에 적응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식의 당위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입장만 고려한 것이다. 지난 반세기를 폐쇄 사회에서 살아 온 북한 정권이 정권의 멸망을 자초하면서까지 개방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만일 서방 세계가 북한 경제를 단번에 소생시킬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경제적 도움을 준다 해도 그것이 북한 정권의 종말과 맞바꿔지는 것이라면 북한 정권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1체제 1국가 통일을 목표로 하는 한 남북한은 언제 전쟁을 치르게 될지 모른다. 긴장의 최후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의 대결 관계를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첫째는 1체제 1국가 통일 목표를 버려야 한다. 둘째는 개방과 교류를 제의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셋째는 상호 군축을 내용으로 하는 공존 공영의 평화 체제를 열어야 한다.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사람들이 왜 군사력은 줄이려 하지 않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평화 체제를 이룩하는 방법인가. 각각의 몫을 국제적으로 보장해 주는 방법이다. 몫이 보장되지 않는 한 남북한은 언제나 상대방의 통일 기도를 경계하면서 긴장해야 한다. 이 얼마나 불행한 삶이며 민족적 낭비인가. 통일은 상대방 몫을 침범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평화 체제는 상대방의 몫을 보장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류와 협력을 하자는 말은 북한 사회를 침범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정치 군사적 틀부터 짜자고 하는 것은 두 개의 지방 정부가 호혜 평등을 원칙으로 공존 공영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주의자들은 지금부터 남북한이 서로를 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님격인 남한부터 그렇게 생각하자고 말한다. 사회는 이렇게 낭만적인 생각 하나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
‘1체제 1국가 통일’을 목표로 하는 한 우리는 언제든지 북한에 의해 무력 통일당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에 원치 않으면 욕심을 버리고 지금부터 평화 공존 시대를 열어야 한다. 마치 남한과 일본이 공존하듯이 남북한도 서로 침략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금의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평화공존, 휴전선의 국경선화, 두개의 독립 국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매우 이상한 현상이 있다. 많은 이들이 평화공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수긍하면서도 ‘휴전선의 국경선화’ ‘두 개의 독립 국가화’ ‘분단의 영구화’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엄청난 거부반응을 보인다. 범민족적 통일 정서에 어긋나는 단어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일정서가 분석되지 않은 단순한 감상적 정서이거나, 욕심있는 통일 정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감상적 통일 정서, 욕심 있는 통일 정서; 이들 분석되지 않은 통일 정서가 따지고 보면 남북한 긴장의 원천이요 통일을 가로막아 온 가장 큰 장애물인 것이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 속에 비쳐진 그림자에 불과하다. 잡으려 하면 없어지고 가만두어야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는 과거 50년 간 통일을 외치면서 살아 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통일의 목소리를 가장 소리높게 외치고 있는 지금, 통일은 얼마나 멀리 도망가 있는가. 통일은 물 속의 그림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남북한 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지 않은가.
‘통일’은 단 하나뿐이다. 하나밖에 없는 그 ‘통일’에다 남한은 파랑색을 칠하려 하고, 북한은 빨강색을 칠하려 한다. 통일은 곧 분쟁의 씨앗이요 긴장의 원천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가. 통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만 한다. 통일을 추구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 얼마나 바보스런 선택인가. 분단이 공식화돼서 몫이 보장돼야만 비로소 긴장이 없어지고 신뢰가 생길수 있다. 신뢰가 생겨야 교류와 협력이 가능해진다. 교류와 협력이 일상화되면 동족간에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연합도 연방도 그리고 통일도 모두 다 할 수 있다. 휴전선의 국경선화, 분단의 영구화만이 가장 빠른 통일의 지름길인 것이다. 이 어인 통일의 패러독스인가. 그러나 이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흡수 통일에 대한 정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해 경고하고자 한다. ‘북한 체제가 전복되고 대량 난민이 발생하면 바로 그 시기가 흡수 통일을 위한 결정적인 시기가 아니겠느냐’,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듯이 기울어져 가는 북한 사회를 접수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먼저 휴전선을 넘어야 한다. 누가 먼저 넘어야 하나. 바로 한국 군이다. 이는 북침인 것이다. 6.25 남친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6.25 직전에 남한은 어떠했는가. 사회는 극도로 혼란했고, 군사력도 볼품 없었다. 남한 전역에 북한 동조 세력이 얼마나 뿌리깊게 확산돼 있었는가. 38선만 넘으면 간단히 접수할 수 있는 여건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38선을 넘은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남침이요 엄청난 비극이었다. 왜 이것을 상기하려 하지 않는가.
독일식 통일은 한국에서 바랄 수 없다. 언제 동독이 봉기와 무질서로 붕괴된 적이 있었던가. 언제 서독군이 붕괴된 동독으로 침공해서 동독 사회를 접수했던 적이 있었던가. 통일 당시 동독에는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질서가 유지돼 있는 사회, 군, 그리고 정부를 동독 정권이 서독에 접수시킨 것이다. 북한의 누가 동독 정권처럼 북한의 질서를 완전히 장악한 채 그 질서 자체를 고스란히 남한에 갖다 바치겠는가. 꿈이요 환상인 것이다.
평화 공존 단계를 뛰어넘는 통일이란 이렇듯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하루 빨리 통일의 마음을 평화공존의 마음으로 바꿔야 한다. 평화공존이 무엇인가. 그것은 통일과 진배없는 보배이다. 남북한 간에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교류와 협력이 일상화된다면 국민에겐 그것이 바로 통일이 아닌가. 이렇게만 되면 정치적인 통일은 언제 와도 상관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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