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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통일이냐, 삶의 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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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9 14:38 조회12,7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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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냐, 삶의 질이냐


1988년12월 7일 고르바초프가 UN에서 불과 253자에 해당하는 짧은 연설을 했다. 이 짧은 연설문이 그 엄청났던 냉전의 벽을 허물어 버렸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인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던 이데오르기적 가치관이 사라져 버리고, 이제 세계인들의 마음 속엔 [삶의질]이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자리하게 됐다. 이 새로운 가치관이 두개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는 벽없는 세계로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경영화 세계로의 변화다.

냉전시대에는 국가와 국가간에도 장벽들이 있었다. 이 장벽들이 국가와 국가간에 문물의 흐름을 차단했고, 이로 인해 세계인들의 [삶의질]이 침해당해 왔다. 이 장벽으로 인해 미국인들이 200달러에 사 쓰는 가전제품을 우리는 700달러에 사 썼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저 하는 세계인들의 욕구는 이러한 장벽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그동안 저품질 제품만 강요받던 국민들은 이제 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고품질 제품을 싼값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됐다. 바로 WTO의 세계인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는 가격파괴, 서비스 파괴를 비롯한 기존질서의 파괴현상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본, 기술, 노동력 그리고 문화, 사상, 유행이 세계 곳곳을 국경 없이 흘러다니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차단할 때에 삶의 질은 손상받게 될 것이다.

내 나라보다 외국이 더 좋으면 기업도 개인도 고국을 떠난다.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위해서다. 이에 따라 애국의 개념도 냉전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삶의 질을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을 비애국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시대착오다. [애국이 먼저냐 삶의 질이 먼저냐]라는 질문에 대해 이제 세계인들은 서슴없이 삶의 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통일보다는 애국이 먼저요, 애국보다는 삶의 질이 먼저인 것이다. 애국이 삶의 질을 파괴한다면 누구든지 애국의 길을 버릴 수 있다. 하물며 통일이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면 누구든 통일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이기주의가 아니다.

애국도 통일도 [삶의 질] 앞에서는 언제나 포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살기 좋은 환경과 풍요로운 사회로 이 땅을 가꾸기 전에는 점점 더 많은 기업과 국민이 보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외국으로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내 땅을 살기 좋은 땅으로 가꾸지 못하면, 북한 땅은커녕 우리 땅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 땅마저 제대로 가꾸지 못해 절절 매고 있지 않은가.

통일보다 더 급한 것은 허트러진 남한사회부터 가꾸는 일이다. 아름다운 국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 더욱 시급한 것이다. 반쪽만의 남쪽사회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실력을 가지고 북한 사회까지 떠맡아 보라. 남북한은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친족이 영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온 가족이 기뻐했다. 그 가정은 즉시 그 친척을 초청했다. 처음엔 반가웠지만 1주일이 지나자 살림에 구김살이 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친척은 불청객으로 느껴졌다.

이 하나의 사례에서 통일 비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의 남한 경제를 가지고는 북한으로부터 유입되는 난민을 단 100만 명도 수용하지 못한 채 실증부터 느끼게 될 것이다. 하물며 북한경제 전체를 떠 맡아보라. 누가 짜증스러워 하지 않겠는가.

동독인구는 서독인구의 25%에 불과했다. 그러나 북한인구는 남한인구의 50%나 된다. 서독의 엄청난 경제력을 가지고도 25%의 인구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남한 자체의 경제적 생존도 보장하지 못하는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어떻게 50%의 인구증가를 감당해 내려 하는가.

그러면 우리에게 있어 통일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통일이 되면 사회질서가 마비될 수 있고, 국민 각자의 경제적 부담이 짜증스러울 만큼 급증한다. 통일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겐 엄청난 아픔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과연 지금도 통일은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꼭 이뤄야 하는 절대절명의 목표인가. 그것은 분명히 아니다. 누가 통일을 거저 갖다준다 해도 많은 국민들은 그 엄청난 선물을 받을까 말까 저울질할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부국강병이 최고의 가치였다. 강해야 남으로부터 침략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는 이데오르기 때문에 전쟁을 했다. 승산만 있다면 삶의 질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희생하면서 쟁취하고 싶었던 절대절명의 목표가 바로 통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삶의 질]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다. 국가가 작다고 설움받는 시대가 아니라 발상전환이 모자라 설움을 받는 시대인 것이다. 이데오르기가 지배하는 냉전시대에서는 통일이 최고의 목표였지만, 삶의 질이 지배하는 지금의 새로운 시대, 국경이 없는 시대에는 통일은 단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 수단이 행복을 파괴하고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면 언제나 다른 수단으로 바뀌어 질 수 있는 것이다.


2009.9.3.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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