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교수 사회주의 선동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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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1-10-14 12:18 조회1,437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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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교수의 公正주장에 反論
장하성 교수(이하 존칭 생략)가 오늘 14일 조선닷컴에 게재한 칼럼 “‘우리 사회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충격적인 결과”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요약을 해 놓았다.
“공정경쟁은 시장경제의 바탕인데, 일 할 기회가 없는 청년세대와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엔 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고,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믿는 젊은 층이 많으면 미래는 어두워”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라는 정부 주도의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했으며 이를 충격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우선 이런 결과를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렇게도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73%의 응답자는 자신이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에 부와 명성을 얻어 행복한 삶을 살아 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추정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각자가 바라는 행복한 삶의 기준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런 요인들을 무시하고 단순하게 공정한지 아닌지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공정한 여론조사라고 볼 수 없지 않는가?
한편으로 28%의 공정하다고 답한 사람들은 과연 그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답했을까? 그 행복은 공정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조건이라고 볼 것인가? 행복은 인간 개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거한다는 말을 전제로 한다면, 정부에서 실시한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여론조사 자체가 어쩌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 할 것 같다. 공정이란 단어는 당연히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치명적 하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공정 경쟁이 시장경제의 바탕이라는 말은 교과서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시비할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일 할 기회가 없는 청년세대와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엔 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말에는 선뜻 동조할 수 없다. 일 할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고 구직자가 원하는 일자리와 임금을 고집하면서 일자리를 찾기 때문에 일 할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고, 분수를 모르고 남과 물리적인 평등만을 꿈꾸기 때문에 일 할 기회를 얻기가 어려워 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진국에서 유학을 한 장하성은 지금 대한민국의 공정성이 미국과 영국의 공정성보다 과연 얼마나 뒤쳐져 있는지를 비교해 보기 바란다. 선진국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는 나라가 많고 대한민국의 50%+10-30% 할증 율을 생각하면 장하성의 대기업에 대한 불공정 강조는 그 초점이 어긋나고 있다. 정부의 불공정에 대한 법 집행이 대기업체들의 불공정한 부의 축적을 부채질 하는 것이지 그들의 불공정 경쟁이 잘못이라 할 수 없다.
혹시 장하성이 공정성을 출발점부터 같아야 하며, 패자 부활의 기회도 주어야 하고, 승자와 가진 자는 패자와 무산자에게 경쟁의 산물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가 소위 사회주의 체제를 꿈꾸는 지식인들의 선전선동을 지금 획책하고 있음을 나는 직감한다. 그는 지금 일종의 유토피아적 사고에 젖어 인간의 본능을 박제하려 했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강의하려 하고 있지 않는지 의심스럽다.
자본주의가 경쟁을 통한 발전과 생산효율극대화를 이루어 냈다는 점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오직 경쟁의 불공정과 분배의 불공정만을 따지려 한다면, 그 경쟁은 훨씬 위축될 것이며 노력한 대가로 얻어지는 산물마저 간섭을 받음으로써 애초부터 경쟁 할 의욕을 없애 버리기 십상이다.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가 겪었던 가슴 아픈 교훈이 아니었던가? 소련과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할 때는 그들 스스로 인민들의 먹고 살 식량부터 형편없이 부족함을 자인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바로 경쟁을 통한 생산성과 모든 면에서의 발전이 자본주의 체제가 최적임을 자인한 결과이다.
대한민국에서의 불공정성은 모두 대기업이나 부자들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잘못은 기업의 횡포나 불공정을 관리하고 감시할 법 집행을 담당하는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젊은 세대들이 분수를 모르고 자신들이 보고 듣는 남의 부와 명성만을 탐하여 그것을 이루지 못함을 불평하는 것이 또한 잘못이다. 일 할 기회가 없다고 주장만 하는 것은 젊은이들을 사회불만세력으로 키우는 선동적 구호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어느 자본주의 나라에서 출발점부터 모두 같이 만들어 주는 경쟁이 있는가 장하성은 대 보라. 고졸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일은 대체 어떻게 성명할 것인가? 대기업이 처음부터 대기업이 아니었고 이 땅에서 생겨 나고 사라진 기업체들로 수없이 많다. 중소기업이 경쟁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한 것은 장하성이 처음부터 출발점이 같지 않다는 전제를 너무 강조했기 때문에 나온 주장이다. 분수를 알고 노력하며 희망을 가진 자는 반드시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행복한 삶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평등이니 공정만을 따지고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경쟁 할 의욕도 의지도 사라지는 법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인구 11억의 인도에서는 가난이 수치도 아니며 얻어 먹는 것도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단순한 종교적 신념 혹은 생활철학이 가난한 자들에게 잠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불안이 없이 분수껏 사회가 굴러 간다. 그런 인도 사회를 누가 형편없다고 비난 할 것인가? 배운 자들이 물리적 평등만을 사회적으로 외쳐 대면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분수도 모르고 물리적 평등을 요구하며 공정하지 못한 경쟁을 주장할 것이다. 경쟁을 위축시키지 말고 가진 자들의 사회적 기부행위를 촉구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이상.
댓글목록
PATRIOTISM님의 댓글
PATRIOTISM 작성일“일 할 기회가 없는 청년세대와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엔 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말에는 선뜻 동조할 수 없다. 일 할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고 구직자가 원하는 일자리와 임금을 고집하면서 일자리를 찾기 때문에 일 할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고, 분수를 모르고 남과 물리적인 평등만을 꿈꾸기 때문에 일 할 기회를 얻기가 어려워 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 동감
장학포님의 댓글
장학포 작성일
위 PATRIOSM님의 댓글과 공감합니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 눈높이가 분수를 모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힘든일은 하기싫고 소 중소기업엔 아예 들어가질 않으려 합니다.
그러니 이주 외국 근로자들에 일터를 내 줄수밖에....
그러면서도 쥐뿔도없는 분수에 하고싶은 욕망은 다 얻으려고 하니 사회적 불만만 팽배하고 삐뚤게 나가지요! 첨부터 마음에 맞는 일터가 없드래도 중소기업에라도 들어가 차근차근 성장할수있는 자기개발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물론 중소기업의 근무환경을 쇄신토록 정부가 나서서 리모델링도해주고 지원해주며 감독도 해야합니다.
만토스님의 정확한 지적에 공감합니다!
한가람님의 댓글
한가람 작성일이누무 잉간들은 와 이꼬락서니들을 하까???
서양돼지님의 댓글
서양돼지 작성일
명리학 책을 좀보다보니,인간이라는것은 태어 날 대부터 그등급이 아홉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하네요.
자기도모르게 분수에맞게 살아간다는이야기지요.(많은사람들이)
예를들면 옷에관한한 앙드레김이 있는반면 길거리에서 난전을펴고 장사를 하고 있는사람도 있다는거
지요.앙과 난전장수사이에는 그등급에따라 해먹고 사는사람들이 있고요,그런데
이 팔자에도없는 짓거리를하는놈들은 정신에 이상이 있다고하네요.책에서의 예문에는(정신병자,술
주정뱅이,의부 의처증환자,마약중독자등드르등등,,,)이런자들이라하네요,그러면 우리가 보구있는자
들은 뻔한거아니겠어요????,,,,잘알지도 몾하면서 재미로 몇자적엇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