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어디로 가고있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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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좋은나라 작성일11-09-25 19:41 조회1,572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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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난19일 국회 교육과학부 국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자유 민주주의 용어에 이의를 제기 하면서 벌떼처럼 일어나자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자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에 가서 국회의원 하라고 발언하자 사과하라며 퇴장하는 파행을 겪었다. 왜 민주주의 단어를 자유 민주주의라 하여 이 난리를 피우는 것일까?.
지 금 우리 근대사가 지난 좌파정권 시절부터 왜곡되어 학생들에게 가리처지고 있어 남북관계 인식의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예를 들어 6.25가 북침 이라는 등 기라성 같은 증인(40년생 이상)들이 살아있는데도 많은 역사학자들의 막 무관해 식으로 왜곡하여 학생들이 붉은 이념(理念)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아래 글은 우리 근대사의 근간으로서 참고가 될까하여 옮긴다.
★ 글쓴이: 신 현택
◆ 주한미군을 침략군으로 와 있다는 거짓주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3.1절85주년 기념사에서 미군이 용산 미군기지에 침략군으로 와 있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과연 그러한가. 세계2차 대전은 동(東)으로는 일본. 서(西)쪽으로는 독일 히틀러에 의해 일어났다.
1945 년 4월30일 히틀러가 애인과 함께 자살하고 5월8일 독일이 항복하자 소련군(현 러시아)이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하여 극동(동북아)으로 이동 하였고 미국이 일본에 대하여 원폭을 투하하자 소련은 일본의 점령 하에 있던 만주(현 중국)와 한반도를 점령했다. 목적은 공산정권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이때 미국은 소련의 의도를 눈치 채고 소련으로 하여금 38도선을 넘지 못하도록 경고했다. 미군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함으로서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미 군은 한반도에 있는 일본군 35만 명의 항복을 받기 위하여 한국에 상륙하자 남로당과 좌파들이 극렬 반대함으로서 1949년6월 전면철수하고 그후 인민군은 소련과 중공(중국)의 지원을 받아6.25남침을 감행했다 미국은 한국에 재 파병할 뜻이 없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으로 6.25때 한국에 재 파병하게 되었다. 미군이 아니었으면 해방도 자유대한민국도 없었으며 당시 공산화가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침략군으로 왔다고 하는가? 공산화를 막기 위해 우리정부가 강력히 요청하여 온 것이다. 미군이 침략군으로 왔다고 하는 것은 친북좌파들의 반미 사상을 가진 남로당 후예들의 거짓 선동이다.
◆ 한국 분단의 책임은 미국의 있다는 거짓주장!
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기울어지자 미국의 루스벨트와 영국의 처칠과 소련의 스탈린은 여러번의 회담을 통하여 전후 문제를 상의 하였으나 독일 문제로 인하여 한국 문제는 중심 의제가 아니였다.
그 러나 소련의 스탈린은 소련이 일본 패전에 기여한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만주와 일본과 한반도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 이에 맞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한반도 전후처리와 건국에 참여하게 되었다. 만약 당시 미국이 소련의 주장을 방관 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루 스벨트의 관심사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과 독일 이었고 한국문제에 대하여는 소극적인 자세였다. 그러나 원폭 투하 후 소련이 한반도까지 점령하자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38도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소련이 받아들여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이다.
분단의 책임이 미국의 있다고 하는 자들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 하려고 했을때 미국이 동의. 점령하게 해 공산화가 되게 했어야했단 말인가. 참으로 거짓된 주장들이다.
◆6.25 전쟁은 북침 이라는 거짓주장에 대하여!
지금 한국사회는 6.25전쟁을 북침 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친북좌파 교수. 한총련. 전교조. 일부 좌파 시민 단체들과 정치인들로 인하여 큰 혼돈에 빠져있다.
과 연 6.25는 북침인가? 남침인가? 이문제는 재론할 여지가 없다. 6.25당시 소련의 극비문서(몇년전 러시아 정부가 공개).중국과 소련 참전용사들의 증언. 그당시 38선 주위에 살았던 양쪽 주민들의 증언과 심지어 북한군으로 참전했던 자들까지도 6.25는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공산화 하기 위하여 일으킨 전쟁이란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또 남한의 40년생 이상이 이같은 사실을 겪었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존해있는 상황에서의 역사 왜곡은 한심 스럽기 그지없다.
만 약 6.25가 북침으로 시작되었다면 ▲단 1미터라도 공격자가 북으로 진격한 흔적이 있어야 할것이다. 1950년6월25일 새벽4시에 인민군 11만명. 소련에서 지원받은 탱크 240대로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감행하여 9시30분에 개성이 점령되고 3일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됐다. ▲6.25당시 전방의 배치되어 있던군인 3분의1이 모내기 휴가를 나간 일요일 이었다. 전쟁을 하려고 했다면 어떤 나라가 전방에 군인들에게 휴가를 내 보내겠는가? ▲전쟁 전력상 남한은 전차도 화력도 무기 체계가 갖추어져 잊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였다. 그런데 북한은 소련제 신형탱크 240대를 지원받아 밀고 내려온 것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과 사회 일각에서 끊임없이 퍼트리는 북침설과 이에 동조하여 가르치는 전교조 교사들에 의해 우리 학생들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특히 곽노현(서울-구속). 김상곤(경기)등 좌파 교육감들이 교육계를 장악 함으로서 더큰 우려를 낳고있다.
※출처: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천만 운동본부.WWW.npst.co.kr
( 하 늘 소 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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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수님의 댓글
생명수 작성일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