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군에 불과했던 530GP 8인의 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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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제갈윤 작성일11-09-11 21:13 조회1,4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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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530GP사건 당시 바로 옆 GOP사단인 연천군 25XX 71R 소속 예비역 모병장(가명) 입니다.
2005년 사건 당일 GOP근무 상황병으로 있었으며 저도 몇가지 제보가 될까 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연천의 GOP사단은 25사단과 28사단 뿐이니까요.
1. 최초 상황전파된 시간.
-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나지만 당시 상황병이였던 제가 새벽02시를 조금 넘어 당시 상황을 긴급사고로 상황일지에 기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접부대 사고로 안적을수 없는 위에서 내려온 긴급 타전이였으니까요…
2. 상황전파된 내용.
- 당시 상황전파 내용은 극박했습니다. 인접부대 사고라 관심을 안가질수도 없었고 가까운 25xx 71R 지역도 결코 안전치 않을것이란 생각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상황을 전파 받았을 때 상황병인 저는 인접부대인 28xx 지역에서 난 사고가 맞는지 재차 확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최초내용은 이렇습니다. 제가 직접 받았기에 이것만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 28xx 530GP 지역. 적 GP에서 아군 GP쪽으로 북한군 총격 도발…”
그후 몇분후에는 다시 상황 전파로
“아군.. 적 GP향해 대응 사격..” 이런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후로 몇시간 동안은 더 이상의 상황전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아해 했죠…
상황병으로써 추가 상황이 전파되지 않으니 말이죠.
1.아군측 피해는 없는지…
2.어떻게 되어가는지….
3.경계태세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전 이 세가지 의문을 가지고 당시 선임상황병과 막 이야기를 나눴습니다…이런다 전쟁나는거 아니냐는 농담과…28xx GP걱정을 하면서 말입니다.
3. 상황종료시간…
최근접 부대인 저희로도 더 이상의 상황전파는 없었고 딱히 상황종료라하는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황병인 저도, 제 선임도 궁금했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더 웃기면서도 저희가 아침에 놀랐던 것은………….
아침에 기상과 동시에 6시 뉴스를 틀었는데………...
아침뉴스 첫 속보로 “경기도 연천군 oo사단 총기 난사 사건발생” 이란 속보가 나가고 있는것이였습니다.
그것도 아군이 아군을 향해 난사했다는… 연천군 OO사단은 25사단과 28사단 밖에 없었기에 아침뉴스를 보고 소초 일반전화로 가족 및 친지들의 전화가 그 후로
계속에서 안부확인 및 걱정 전화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상황병이였던 저와 제 선임은 ‘상황전파도 더 이상 없었고…종료도 없었는데…어떻게 언론이 우리보다 난사사건을 먼저 알았을까?’
하는 놀라움과 궁금증에 어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그사이 정보를 흘렸겠거니 했지만 저희도 몰랐던.. 최근접부대인 당시 GOP를 같이 지키고 있는 현역군인들도 몰랐던 소식을 어떻게 언론에서
일제히 그것도 아군이 아군을 향해 난사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이 미친듯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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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의 아들 박한길은 한명숙이가 두 번의 장관을 거치고, 여당 국회의원으로 있던 2005년 2월 군에 입대해 공병학교 훈련을 거치며 '지뢰병'이라는 전투병과 주특기를 받았으나 지뢰병 동기들 중 유일하게 1611 야전공병 주특기로 변경됐다.
그뿐만 아니라 공병여단에 배치된 이후 다른 동기들은 모두 예하 야전공병대대로 갔으나 한명숙의 아들만 여단장 당번병으로 차출되어 편안한 군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명숙,박성준이 살고 있는 집과 10여 km거리에 있는 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아들의 주특기 변경과 당번병으로의 보직변경, 근무지변경 등이 한명숙 후보의 입김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면, 아들을 전투부대에서 빼오기 위해 누군가 어떤 보통사람의 아들을 대신 전투부대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2010. 5. 24
한나라당 중앙선대위대변인 안형환
태극기를 ㅤㅂㅏㄾ고 선 빨갱이,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빨갱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빨갱이, 주체사상의 본래 명칭 사람중심 서울을 만들겠다는 빨갱이도 자기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소중한 사람의 아들인가 보다.
최전방에서 조국을 수호하다 처참하게 전사한 530GP 8인의 용사들은 사람중심사상으로는 괴뢰군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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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6일
국보법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역사를 바로 이끌고자 하는
양심세력을 무참히 잘라냈다』며
2004년 10월 국보법폐지안을 공동 발의했고, 3월24일 총리 지명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국보법 폐지 당론에 찬성하는 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2005년 6월27일
국회에서 북한의 핵보유 선언(2005.2.10)과 관련,
『북한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기 때문』이라 옹호하면서
『미국에게 대북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요청하라』고 정부 측에 촉구했다.
『북(北)은 북(北)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고 미국은 미국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기 때문에
북핵문제가 쉽게 해결되리라고 보지 않는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이 동시 제안이라든지 대북체제보장과 경제지원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진전된 안을 내놓도록 우리가 요청한다든지 제안을 강력하게 정부가 해야 한다』
<라이스의 北위폐 문제제기에 美 비난>
韓은 미국이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 문제를 제기하자,
2006년 2월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미국은 6자회담의 성사 이후 모처럼 마련된 평화정착의 기운에 증거 없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
고 비난했다.
북한의 위폐(僞幣) 제작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미(韓美) 정보당국은 2006년
『북한이 지폐를 제조하는 곳에서 100달러 위조지폐인 수퍼노트를 생산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정보당국이 공인한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증거 없다』며 미국을 비난
2005년 6월21일
한명숙의 미국 비판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북한 정권의 성격은 자명하다』는 발언 당시 집요하게 계속됐다.
『라이스 장관의 발언은 모처럼 조성된 6자회담 재개의 긍정적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면서
『한미(韓美) 외교채널을 통해 적극적인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튿날에도『「폭정의 전초기지」발언은 6자회담 복귀 자세를 갖춘 북한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자, 한미정상 간 합의정신에도 반하는 것』이라며
『국내적으로도 장관급회담 북한 대표단이 들어올 때 보수단체가
자극적인 플래카드를 붙이고 시위를 했는데, 우리 국민도 예의를 지키고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며
자국민 납치와 같은 북한의 테러행위를 규탄하는 보수단체를 『예의 없다』고 몰아세웠다.
2005년 7월4일
『지금 미국은 북측에서 요구하는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중단하라는데 대한
답변이 확실히 없는데, 미국은 전 세계 초강대국답게 6자회담 7월 중 개최를 위해
확실한 답변을 해줬으면 한다』고 다시 주장했다.
한명숙은 2005년 7월21일
일본 토쿄에서 열린
「6·15선언 발표 5주년 기념 남북해외합동강연회에서 김정일의 전위대 노릇을 자처해 온
반국가단체 조총련 인사들이 함께 참석한 강연에서 국보법 폐지 등을 주장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6.15공동선언 실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국가보안법이지만
지금은 거의 사문화돼 상징성으로 남아 있다』며
『올해 보안법 문제가 수면 위로 뜨면 이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주장했다.
또 『통일문제는 민족 내부문제이자 국제문제라서 민족공조와 국제공조 모두 필요하지만
그래도 기본은 민족공조』라며 『일본에서도 민단과 조총련이 함께 만나
서로 양보를 해서 내부 문제가 있다면 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같은 날 공동발제자로 나온 조총련 산하 일본(日本)조선대학교 한동성 조교수는
『北에서는 주체사상(主體思想)의 기치 밑에 제국주의와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 속에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한 비타협적 투쟁이 일관되게 진행됐다』며
『민족공조가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주체적 역량을 강화해 준다면
선군(先軍)정치는 그를 위한 물리적 담보를 마련해 준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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