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같은 조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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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막사리 작성일11-08-29 09:48 조회1,425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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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우리 아버지는
31세의 청년 나이로
총칼을 찬 빨갱이 들에 의하여
생을 마치셨다.
띠 동갑이셨던 어머니는
우리
오 남매를
죽이지 않고 키우셨다.
내가 이민 오던날,
"엄니, 돈 잘 벌어서 엄니 편히 모실께 울지 마 ~"
아버지가 외국에 가셔서
수판 대회 때 상으로 받으셨다는,
그러나, 별로 입지 않으셔서 아직 천(기지)은 좋아
소매 길이와 카라를 조금 고쳐서 이민 선물로 주신
어머니의 바느질 손길이 흠뻑 밴 외투를 가지고
나는 서북 항공 후불제 ("Fly Now Pay Later" of the NWAir)에 몸을 싣고
단 돈 200달러를 이민 자금으로 들고
그렇게 그리운 고국, 어머니와 식구들을 뒤에 두고
내 나이 아주 청년의 때에 이민을 떠나 왔다.
한달에 200 달러만 보내드리면
종암동 언덕에 사셨던 어머니는
동네 할머니들에게
"우리 셋째 아덜이... 우리 셌째 아덜이 글쎄...."
효도하는 상 아들 났다고 자랑하셨다 하셨다.
그러던 어머니를,
돈벌어 호강 시켜 드리겠다던 어머니를,
나는 단 세차레 밖에 뵙지 못하고,
그것도 세번째는 위독하실때 나가서 뵈었던 것이고...
다시는 뵈올수 없는 한 서린 사별을 하고야 말았다.
오늘은 유달리 어머니 생각이 나서
Google Earth로 어머니가 누워계시는
고향선산을 찾아가 어머니 산소를 찾았었다.
효도라는 말도 모두 거짓말이고,
내일 두고 보자는 말도 거짓이었고,
그리고 열심히 일하던 노동의 댓가도
다시 오지 못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 마다,
내가 뭐하는 놈인가? 이렇게 늘 자책하며 살아왔다.
"밥 할매"라는 제목의 글을
"빨갱이 감별..."님이 받아오신 글을
팔광님이 감동받고 읽기도 좋게
"무상급식 종결 이야기"라는 제목아래 다시제작하여
무상급식의 무위함을 교훈하는 좋은 글로 올려 주셨다.
"밥 할매" - 그 분은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셨고, 우리의 조국이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그렇게 자녀들을 키우셨다.
가난하지만, 공부하는 학생들이 배고파 하면
그렇게 마음을 비우시고, 모르는 척 하시며 도우셨던 어머니 들이시다.
이러한 정성으로 자라난 우리들이
오늘날 어머니 같은 조국을 배반하여
좌파 빨갱이 들에게 속아 넘어가
옥이야 금이야 길러주시고 품어주신
조국을 등지는 패역이 하늘에 사무치는 계절이 되었으니....
이 어찌 조국을 향하여 애국심에 젖은 한 이 사무치지 아니하랴!
돈 벌어 잘 모셔 보겠다는 말 들.... 모두 거짓말이 되기 쉽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500만
대한민국을 가꾸고 떠 받쳐야 하는
지금의 행동 애국이어야 내일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밥 할매"는 오늘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어머니가 늘 나에게 감동을 주셨던 것 처럼...,
그리고,
"1000 원이 없어서"라는
지만원 박사님의 글이 나를 감동 시킨 적이 있었다.
애국하려하면,
큰 것에서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 해 보이는 일상의 것에서
늘 감사하고, 늘 기도할 때 -
그렇게 문득 문득 눈물을 흘리게하는
감동의 은혜가 넘치는 것이다.
......
오막사리
11.8.29.
댓글목록
東素河님의 댓글
東素河 작성일
오막살이님!
눈물 넘치는 사연입니다. 지난날엔 밥 할매같은 우리들의 어머니가 여기저기에 서거나 앉아 계셨습니다. 인간이 사는 사회, 정이 넘치는 사회, 나이 들어 힘들어도 마냥 기분 좋았던 사회였습니다. 길가다.. 동내에서.. 꾸벅 어르신 또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이리 주세요. 제가 들고 갈께요.. 이거 하나 들어 보세요.. 산업화에 따른 물질문화의 성장으로 이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더니만.. 급기야 이제는 '야 이새끼야.. 나이 더럽게 쳐먹었네..' '방구석에 처박혀있지 지랄한다고 싸다니나'로 변했네요. 변하라고 있는 게 세월이니 변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더럽게 변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겠나요.. 보람된 한주 되시기 바랍니다..
용바우님의 댓글
용바우 작성일
그리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현우님의 댓글
현우 작성일
감동의 글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 같은 내 조국 무슨일이 있어도 끝까지 잘 지키고 아끼고
자손만대 이어가도록 해야하겠습니다.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작성일
오막사리 韓 선생님!
강원도 어느 산골마을 얘기를 미국(워싱턴/주)에서 해 주셨지만,
저는 금초(벌초/伐草) 하느라 엊그제 고향(경북 예천) 에 내려갔다가,
부모님도 안계신 그 허허로운 빈집 마당에 무성한 잡초들을 보고는,
오막사리 韓 선생님의 심정으로 하염없는 눈물을 뿌렸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엔 다 헛소리에 불과하지만,
옛시조(古時調) 한 수를 읊조리며 스스로 마음을 달래곤 그 잡초들을 베어냈습니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닲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못할일 이뿐인가 하노라.
오막사리님의 댓글
오막사리 작성일날씨가 아직 더운데 저희 집에 마을 오시고 덕담을 주셨는데 냉 커피 한잔도 대접하여 드리지 못하여 송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