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전이나 지금이나...(광주 감옥에서 온 지만원 죄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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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오 작성일11-08-28 09:03 조회1,519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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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만원 박사께 '죄수'라 해서 죄송합니다.
2002년 12월 24일자 북광주 우체국 일부인이 찍혀 있었던 190원짜리 무궁화 문양의 우표를 만지작 거리다가 9년전에 보내 주셨던 지만원 박사의 옥중 서신(12월 18일 밤)을 다시 꺼내 읽어보고 있습니다.
2002년의 가을 그리고 겨울,
'빛고을'이기는 커녕, 칠흑(漆黑)같았던 전라도라 광주(光州) 땅으로 오뉴월 개 끌려가듯 끌려가서 온갖 수모를 몸소 당했던 광주 감옥속의 지만원 박사!
그 지만원 박사는 나의 6번째의 편지를 받고 '고맙다'는 답신을 쓰면서 "(전략)대명천지에 이런 야만과 이런 억지가 자행되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야만에 대한민국 전체가 속수무책이거나 무감각 하다는 것이 더욱 놀랍습니다." 면서, "버텨내기가 대단히 힘겹습니다만, 이겨내야 나가서 이들과 맞붙어 싸울것이 아니겠습니까?(후략)" 라면서 불의에 대한 전의(戰意)를 재확인 시켜 주셨더군요.
이후, 제7신을 03년 1월16일에 보내드렸고, 바로 그 다음 10 여일 후(1월 28일)에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선고'로 석방되자, 나는 또 "지만원 박사, 99박 100일만에 광주 감옥을 나오시다!"는 출소 환영시(詩)를 쓴바 있었지요.
그런 9년전의 그 암울했던 사회상이나,
오늘의 사회상이 아직도 '그 나물에 그 밥'인 것만 같으니, 젠장 이명박의 대한민국호는 지금 어디로 항진 중인가요?
11.08.28.
김종오.
2002년 12월 24일자 북광주 우체국 일부인이 찍혀 있었던 190원짜리 무궁화 문양의 우표를 만지작 거리다가 9년전에 보내 주셨던 지만원 박사의 옥중 서신(12월 18일 밤)을 다시 꺼내 읽어보고 있습니다.
2002년의 가을 그리고 겨울,
'빛고을'이기는 커녕, 칠흑(漆黑)같았던 전라도라 광주(光州) 땅으로 오뉴월 개 끌려가듯 끌려가서 온갖 수모를 몸소 당했던 광주 감옥속의 지만원 박사!
그 지만원 박사는 나의 6번째의 편지를 받고 '고맙다'는 답신을 쓰면서 "(전략)대명천지에 이런 야만과 이런 억지가 자행되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야만에 대한민국 전체가 속수무책이거나 무감각 하다는 것이 더욱 놀랍습니다." 면서, "버텨내기가 대단히 힘겹습니다만, 이겨내야 나가서 이들과 맞붙어 싸울것이 아니겠습니까?(후략)" 라면서 불의에 대한 전의(戰意)를 재확인 시켜 주셨더군요.
이후, 제7신을 03년 1월16일에 보내드렸고, 바로 그 다음 10 여일 후(1월 28일)에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선고'로 석방되자, 나는 또 "지만원 박사, 99박 100일만에 광주 감옥을 나오시다!"는 출소 환영시(詩)를 쓴바 있었지요.
그런 9년전의 그 암울했던 사회상이나,
오늘의 사회상이 아직도 '그 나물에 그 밥'인 것만 같으니, 젠장 이명박의 대한민국호는 지금 어디로 항진 중인가요?
11.08.28.
김종오.
댓글목록
빵구님의 댓글
빵구 작성일
속수무책이었지요. 정말로...
그러나, 그 사건이후 많은 분들이 호남사람들의 행패에, 그리고 빨갱이들의 준동에 우익으로 돌아섰습니다. 아무것도 할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나로 뭉치는 구심점은 되었다고 봅니다.
"지만원 면벽 40일 드디어 득도" 이런 제목으로 어떤 홍어가 글을 올려서 많은 분들이 분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애향은 애국이다 란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 호남이지요. 애향은 매국이다와 같다란 말을 누군가 하셨던데 아이디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