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제1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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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벽파랑 작성일11-08-26 22:32 조회1,327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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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헌법(1948년) : 제헌국회에서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하여 헌법초안을 작성하였는데, "정부형태를 의원내각제로 하고, 국회의 구성은 양원제로 하며, 위헌법률심사권을 대법원에 부여" 하는 것이었다.(유진오案) 그런데 이승만과 미군정당국은 "정부형태는 대통령제로 하고, 국회의 구성은 단원제로 하며, 위헌법률심사권은 헌법위원회(지금의 헌법재판소)에 부여"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이승만측의 주장대로 대통령제와 단원제를 채택, 위헌법률심사권을 헌법위원회에 부여하고 의원내각제 중에서 국무원제와 국무총리제를 채택했다.
1차개헌(1952년) : 1950년 5월30일 국회의원총선 결과 -- 이때, 야당이 승리 -- 국회에서의 간선으로는 재선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은 양원제와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서둘러 제출했으나 부결됐다. 야당측에서는 의원내각제개헌안을 제출했는데, 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부결된 개헌안을 다시 제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야간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고 결국 대통령직선제에 야당측 개헌안의 국무원불신임제가 가미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2차개헌(1954년) : 1954년 5월20일에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인 자유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자, 대통령의 3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개헌안을 제출. 표결결과 국회재적의원 3분의 2에서 1표가 부족하여 부결이 선포되었다. 그런데 자유당의원만이 참석한 가운데 사사오입의 원칙을 주장하며 부결선포를 취소하고 가결을 선포하였다.
댓글목록
aufrhd님의 댓글
aufrhd 작성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민족이 사상 초유로 민주주의라는 것을 채택해서 새 나라라를 건설하고 막 출발한 단계였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갖난애기민주주의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그러한 가운데서도 북괴 김일성공산집단들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하여 빨갱이를 정계에 투입시키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차하면 정치권에 빨갱이들이 대거 침투해서 이제 막 출발한 민주주의가 말살당할 위험에 놓였던 것입니다.
이승만 자유당정권은 어렵게 마련한 좋은 정치제도(민주주의)를 고수하기 위해서 빨갱이가 국회에 진출할 수 없도록 단속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벽파랑님의 댓글
벽파랑 작성일맞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이 쓴 헌법책을 보면 이런 단속행위에 대해 헌법을 위반했다. 위헌적인 행사였다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발췌개헌도 그랬고 사사오입때도 그랬지만 야당의원 탄압, 절차와 협의가 무시된 위헌적인 행사였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