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민투표’는 북괴의 ‘흑백’ 공개투표와 동질.. 공권력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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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elotin 작성일11-08-27 13:40 조회1,3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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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선거, 투표제도는 어떤가? 우선 후보는 한 사람뿐이다. 투표장에 비치되어있는 투표함은 ‘검은색과 흰색 통 두 개가 있다. 예를 들어 김정일이 후보로 추대되었다면, 그를 찬성하면 흰색 함에, 반대하면 검은 색 함에 투표지를 넣게 되어 있다.
그런데 투표소에는 인민위원회 간부들 혹은 감시위원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인민들이 어느 함에 투표지를 넣는지를 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일종의 공개투표인 셈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감히 그 감시인들의 번뜩이는 눈초리 앞에서 ‘흑색 투표함’에 투표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북한의 선거 결과는 언제나 100% 투표율에, 100% 찬성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물론, 제도나 방식은 다르지만, 이번 8,24 서울시의 주민투표도 일종의 ‘흑 백, 공개투표와’같은 성격의 선거였다고 본다.
우선, 북한의 투표가, 누가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공개되는 것 같이, 이번 서울의 주민투표도 누가 찬성하는지, 누가 반대하는지가 다 알려지는 선거였다. 투표장에 가면, 그는 오세훈 시장 측의 ‘단계적 무상급식 안’에 찬성하는 사람이고, 투표장에 안 가면 그는 ‘오세훈 안’에 대한 반대자라는 것이 공개되는 선거였다.
일반 선거란, 반드시 ‘비밀투표’가 원칙이다. 내가 누구를 찍었는지, 혹은 어떤 ‘안’에 투표했는지의 비밀이 보장되어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의 선거가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주민투표는, 투표장에 가고, 안 가고를 통해서 자기의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적 의사표시가 공공연하게 들어나게 되는 그런 일종의 ‘공개 투표’였다. 그러므로 누가 기쁘게 그런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어떤 유명한 논객은 투표장에 가는 것이 마치 ‘인민재판 대’에 오르는듯한 기분이었다고 까지 말했다. 그러므로 오세훈의 ‘단계적 복지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가 주위 동료들에게서, 혹 ‘보수 우파 꼴통’ 소리 들을까 보아 투표장으로 선뜻 나서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반 정부적’ 성향이 많은 대학생들, 젊은이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오세훈의 단계적 무상급식 안’을 찬성해도, 아마 ‘쪽 팔려서’ 투표장에는 못 나갔을 것이다. 이것이 여론조사에서는 오세훈의 ‘안’에 찬성이 60여 %나 되었는데도, 투표율은 25.7%에 그친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현행 주민투표제도는 대폭 개정되어야 한다. 우선, 33.3 % 투표율이 나와야 개함한다는 규정을 없애던지, 그렇지 않으면 ‘투표 거부 운동’을 금지시켜야 할 것이다. 33.3 % 규정이 살아있는 한 투표거부 운동은 계속될 것이며, 이번처럼 선거의 성격 자체가 변질되게 되는 것이다.
정책 주민 투표는 그 정책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는 것이다. ‘기권’(투표 불참)을 (결과적으로) 반대 의사 표시로 만드는 현행 제도는 잘못된 제도이다.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의 찬반 의사 표시에 의하여, 정책의 채택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만일, 위의 요건들이 다 채택되기 어렵다면, 주민투표는 ‘우편 투표’로 하는 ‘안’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편투표로 한다면 비밀 투표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주민투표는 ‘대의(代議)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충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물론 국회의원이나 지방 의회 의원들은 국민(주민)들이 선출한 ‘대표’들이다. 그러나 그 ‘대의원’들이, 때로, 국민(주민)의 의사를 대표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게 된다.
정당의 정책, 이익 집단과의 유착, 로비, 심지여 뇌물, 혹은 여러 가지 지연, 학연, 이념 등, 개인적 ‘관계’에 따라서 국민들(주민들)의 의사와 반대되는 ‘법이나 규정 혹은 어떤 ‘안’을 결의할 수도 있다. 그럴 때 국민(주민)들은 ‘국민(주민)투표’라는 방법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번의 ‘세종시’ 건(件)을 보면,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은 ‘세종시 법’을 통과시켰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여론 조사에서는 국민 다수가 ‘행정부서가 분활되는 세종시 ‘안’을 반대하였었다. 이럴경우, 국민들이 ‘직접 민주주의’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하는것이다. 미국 같으면 분명히 ‘국민투표’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매년 선거일(Election Day, 11월 둘째 화요일)에, 투표장에 가보면, 투표 용지 에, 공직자 선거 수보다 더 많은 주민투표 안건들이 올라 와 있다.
주민투표는 ‘풀 뿌리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앞으로 ‘주민투표법’이 합리적으로 개정되어, 필요할 때 국민들이 주민투표 권리를 바르게 시행할수 있는, 발전된 민주주의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이번 서울시에서의 주민투표를 ‘보편적 복지주의’의 승리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꽁짜 주의’가 승리한것이다. 이제 앞으로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는 소위 ‘보편적 복지 정책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올 모양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은, 유럽, 남미 등 이미 세계 여러 나라의 예에서 보듯이 결국 국가 재정 파탄을 가져오는 ‘망국’의 길인 것이다.
국가 ‘웰페어’(복지,welfare)제도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때로 사람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며, 자립정신을 해치며, 더 나아가 ‘거지 의식’을 조장시켜주기도 한다.
미국 원주민(아메리칸 인디언) ‘보호구역’ (reservation)에 사는 원주민들에게는 국가가 수많은 ‘웰페어 혜택’을 주고 있다. 물론 완전 무료 학교 교육 혜택도 주고 있다. 내가 어떤 ‘보호구역’에 갔을 때, 그곳 교육감과 만나 애기를 나눈적이 있었는데, 그의 교육 구에, 4년 전, 약 5백 여명의 고교 신입생이 입학했었으나, 4년 후(미국 고등학교는 4년제이다) 졸업생은 불과 11명이었다고 한다. 알코홀, 마약, 범죄, 게으름, 희망상실 등으로 모두 중간에 학교를 빠져 나갔다는 것이다.
‘약자’들인 원주민을 도와준다는 ‘많은 무료 복지 혜택’이 결국 그 원주민들의 정신마저 병들게 했고, 그들의 인구수까지 계속 줄어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복지 정책이란 한번 결정하면 변경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노인들, 저소득층 혹은 무소득 층, 병약 자 등에게 혜택을 주는 ‘웰페어’ (복지 혜택, welfare)는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이 종류가 많다. 최근 국가 재정이 어려워저, ‘복지 혜택’을 줄이려고 해도, 쉽지가 않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에는 수천 명의 홈리스(homeless 노숙자)들이 있고, 그들에게 무료 잠자리(shelte), 식사, 의료혜택 등을 공공 예산으로, 연간 약 2억불($200million)을 지출하고 있다. 그런데 시(市)나 주(州) 의 재정 사정이 약화되어, 그 중 몇가지를 없애려 해도 쉽게 그것을 시행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공짜’를 좋아한다. 그래서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말도 있다. 이 ‘공짜 좋아하는 심리’를 무분별하게 ‘표에 연결시키려는 정치인들, 그들은 국가의 장래보다도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정신이 썩은자 내지 사기꾼’들임에 틀림없다. 마치 부모가 허리띠 졸라매고 간신히 돈을 좀 모았더니, 그 자식이 허랑방탕하여 부모의 돈을 다 탕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보릿고개의 허기를 면한지가 이제 겨우 40여 년밖에 안되었는데, 졸부가 되었다고 흥청 망청 돈을 쓰려고 하는 것인가? 아직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지 못했다. ‘뱁새가 황새걸음 흉내내듯’ 국민소득 4만불대의 선진국 흉낸를 내려다가는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현시점에서 전면 무상 시리스의 ‘보편적 복지보다, ‘단계적, 점진적 복지 확대’가 타당한 정책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은 일찍이 케네디 대통령이 했던 저 유명한 말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라!”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Quoted from 김 피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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