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의 치부 : 부가 내용( 사실 그대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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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비 작성일11-08-15 17:26 조회1,448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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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저도 지인을 통하여 민비의 피난행적을 좀 알고 있기에 짧은 지식이나마 보태려 합니다.
장호원에 인접한 음성군 감곡면에 위치한 6촌오빠 민응식(전 충주목사)의 집에 잠시 은거한 후 더 안전하다고 판단된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라는 산골짜기 동네에 최종 은신하였읍니다.
가신리인가 깡촌에서 잠시 머물면서 박소이인가라는 무속인을 만나 50%확률인 환궁을 예언받고
용기를 얻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요. 그 동네 뒷쪽 (북향)에 금봉산이라는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정상에 올라 북쪽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애기도 전해지는데 그후 국망산(나라국,바랄망)으로 불러지게 되었다는 말도 있읍니다 한양땅을 다시 밟고 곁에서 50%확율을 점친 무녀는 인생반전을 하였지요 참 한심한 사실이죠. 그러한 판단과 가치관으로 일국을 이끌었으니~
여주 IC 근처에 명성황후라는 유적지에 가보았지만 이러한 사실과 진실은 눈꼽만치라도 흔적을
찾을수 없었읍니다. 문화유적지를 조성하였을법한 그곳 지자체장님들의 역사의식과 수준도 알아봐야겠읍니다 * 충주시 노은면사무소 홈피 참조 (절반의 내용(은거)만 수록 )
박소이라는 무녀는 김옥균정전에 수록 . 지방자치단체는 후세들에게 있던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기록전달하는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집정관님,우주님 두분 말씀에 100% 동의합니다. 몇년전에 윤봉길의사 현판글씨가 박대통령의 친필이라 친일파의 현판을 떼어버린다고 개량한복 입은 자칭 무슨 시민단체인가 하는 젊은이를 TV 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이 친구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여기 이러한 사실과 진실이 있는데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려는가? . 민비와 박대통령과의 통치결과를 비교해 보았는가 ? (어떻게 깡패 몇십명으로 부터 자신의 처소도 경비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국력과 백성의 삶의 질을 ) 너희들 역사책 몇권이나 읽고 그런 치기를 부리느냐? 하고 말이죠 저는 종북 사기꾼이라 칭합니다. 그들은 역사 바로 세우길 이런 부분에서 시작해야 정말로 역사를 논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 아닌가요? 종북 사기꾼들이라 정확하게 이름짓는 일부터 주변에 알립시다. 살아가며 우리 후세들에게 공산주의라는 새빨간 마약에 취해 인생을 망가뜨리는 후회를 두고두고 안하게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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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정관님의 댓글
집정관 작성일한일합방때 자살한 의병장 황현이 기록한 매천야록에 보면 민비가 임오군란때 충청도 시골마을로 도망갔을때 한 시골 아낙이 "민빈지 뭔지 그년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라고 넋두리를 늘어놓은것을 민비가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해두고 있다가, 대원군을 몰아내고 권력을 회복하자 그 마을주민을 몰살시켰다고 하지요. 물론 매천야록이 야사적 성격이 강해서 진위여부는 알수 없습니다만, 지금처럼 무슨 국모니 뭐니 하는 좋은 이미지가 아니라 거의 마녀에 가까웠던거죠. 당대인들은 마녀로 생각하던 여자를 민비를 접해보지도 못한 100여년후 후손들이 성녀처럼 떠받들고 있는게 희극이자 비극입니다.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
좌빨들이 민비를 떠받드는 것은,
아마도 일본낭인들에 의해 살해되었으니, 친일파를 까기 위한 좋은 도구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좌파들은 "친일파 = 보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그동안 좌빨들이 그런 식으로 공작을 해왔죠.)
근데, 우낀건, 좌파 정치인들의 조상들이 오히려 친일파가 더 많더군요.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그러니 북괴의 초기 장관들을 보시면,
아주 잘 알게 돼지요
갸네들 대부분이 그 당시 친일파들이거나
그들의 딸랑이들이었다고 생각하는 데......
결국은 실컷 잘 부려먹고는 사형내지는 아오지행으로
마감한 걸로 알고 있지요
그러니 북괴를 예쁘게 볼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