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창, 노명박 그리고 이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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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암 작성일12-01-19 17:49 조회1,882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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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을 목전에둔 상황에서 대통령인 김영삼과 여당 후보인 이회창간의 불화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상태였다.
현직 대통령인 YS가 차남 현철의 공천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린 이회창의 대쪽이 문제였다.
게다가 이회창은 한술 더 떠서 무엄하게도 대왕을 향해 '당을 떠나라' 라고 욱박지르기 까지 했다.
이렇게해서 생긴게 이인제의 반란 이었고, 김대중/김종필의 야합도 순조로웠으며, 김대중을 한방에 날릴 수 있는 대형금품비리 사건의 수사도 흐지부지해 버린것이다.
여자가 恨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만 대왕이 한을 품어도 오뉴월에 서리는 내린다.
결국 이회창의 대쪽이 문제의 발단이되어 청와대행의 길을 막아버린것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압도적인 지지율을 자랑하던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BBK라는 악재에걸려 위기에 몰리자 궁여지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뭏튼 야당후보 주제에 언감생심 현직 대통령을 예방하고 단독밀담을 나누는 행운을 누린후 세상사람들은 이때부터 이명박을 향하여 노명박이라 불렀다.
당시 노무현의 국민지지율이 10% 내외의 땅바닥을기자 노무현 덕분에 출세가도를 달리던 열우당 떨거지들이 줄줄이 고무신을 거꾸로신고 탈당하더니 드디어 노무현의 위세를업고 어렵사리 창당한 열우당마져 깨트려버리고 통합민주신당에 흡수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고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그때의 노무현은 아마도 인생무상을 느끼며 난생처음 인생의 좌절을 느꼈을것이다.
그런 와중에 적군이나 다름없는 야당후보가 압도적인 지지율을 등에업고 밀담을 요청해온 것이다.
이런걸 두고 물실호기(勿失好機)라고 하던가?
아뭏튼 이후 열우당 패거리들은 대선에서 보기좋게 패잔병이 되었고 적장 이명박은 승자가되어 이후 노명박 이라는 이름답게 노무현의 신분에는 터럭끝하나 건드리지 않는 자비를 베풀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엔 비상이 걸렸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며 대책을 강구해 보더라도 노명박에 의해 죄업을 사함 받던 욱일승천하는 좌파 야당을 이길 승산이 없어 보이자, 비상대책위원회 라는것을 결성하고 이미 한나라당의 실질적인 당권을 잡은 박근혜가 그 위원장 자리를 틀어쥐고 전권을 장악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속 시원한 대책이 나올리가 없다.
이미 '보수'라는 혼(魂)을 버리므로서 좌파들과의 차별화를 잃어버렸고, 친李들의 걸림돌이 당내에 존재 하는한 박근혜를 중심으로한 총선과 대선에 켜진 빨간불을 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묘안으로 비대위원의 입을 빌려 내놓은 '묘책'이 친李를 거세하기 위한 일차적인 목표가 대통령의 탈당 권유 였으리라.
국민의 지탄(?)을 받는 대통령을 내쫓고 겸하여 친李들을 몰아낸다면 친박끼리 똘똘 뭉쳐서 양대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였으리라.
그러나 그렇게해서 친박끼리 똘똘 뭉친다고 일이 잘 풀릴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온고지신(溫故知新)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아직도 김회창, 노명박 효과가 무엇인지 모르는것 같다.
댓글목록
종치기님의 댓글
종치기 작성일
문암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사람들 이런 글 절대 읽지 않는 모양 같습니다.
한나라당은 친이, 친박 패거리들이 다 망쳐놓고 무슨 비상대책인가?
마음에 안 맞았으면 처음부터 갈라섰어야지
친이, 친박 이제 와서 비상사태인줄 안다면, 정말 한심한 집단 아닌가?
비상사태인데 매일 무슨 회의를 그렇게 느려터지게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아직도 덜 비상이 걸린것 같다........
대통령, 더구나 국회의장까지 도움을 안 주는 집단이니!
비대위 사람들, 느낌이 없으니 국민들이 웃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