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신이란 국가 위기 때 군주에게 진리를 간언 할 줄 아는 신하이다- - 고대 중국 주(周)나라 말엽 주안왕(周安王)때 중국은 제후들의 위세로 쇠퇴(衰退)한 왕실의 명을 무시하고 제후들이 각자 왕이라 참칭하며 천하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서로 심하게 대립 할 때의 이야기이다(김구용 역 열국지 1967년 어문각, 글 참조)/화곡 김찬수가 다시 엮음. 제나라 인제(因齊)가 제위왕(齊威王)으로 오른 이후 그는 날마다 주색을 일 삼고 음악만 즐기고 나라 정사는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9년 동안 주색잡기(酒色雜技)로 즐겼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고 주변국들 한, 위, 노, 조 등 여러 나라는 툭하면 제나라를 침범하여서 제나라 국민들은 도탄에 빠졌다. 그러나 임금이 이러 할 때 신하라도 똑똑하면 그런대로 다행이겠는데 모두 한통속으로 대책없이 나댓으니 나라 위상이 과연 어떠하였겠는가.
어느날 한 선비가 제나라 궁문 앞에 와서 청했다. '나는 원래 제나라 사람으로 이름을 추기(騶忌)라 하오. 재주는 거문고를 타는 것 뿐인데 왕께서 음악을 좋아 하신다기에 뵈오러 왔오.' 하고 궁문지기에 청하였다. 이 사실을 궁문지기가 왕께 아뢰니 제위왕은 그 선비를 불러 들어오게 했다. 안내를 받고 들어온 추기는 제위왕에게 절을 하였다. 절을 받고난 제위왕이 측근을 시켜 추기에게 거문고를 갖다 주고 탄주게 하였다.
그러나 추기는 거문고 줄만 쓰다듬을 뿐 탄주하지 않았다. 제위왕이 이르기를 '선생이 거문고를 잘 탄다 하니 과인은 그 소리를 듣고자 하오. 이제 줄만 쓰다듬고 탄주하지 않으니 거문고가 좋지 않아서 그러오? 또는 과인을 위해서는 탄주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추기가 거문고를 밀어놓고 옷깃을 여미고 대답하기를 '신이 아는 것은 거문고에 관한 이치(理致)입니다. 거문고를 탄주해서 소리를 아뢰는 것은 악공들이 할 일입니다. 신이 비록 탄주할 줄은 알지만 족히 왕에게 들려 드릴만한 것은 못됩니다.' '그럼 거문고에 관한 이치를 들려주오'
추기가 대답한다 '원래 금(琴)은 금(禁)자와 같은 뜻입니다. 즉 음(淫)하고 사(邪)한 것을 금지하고 모든것을 바르게(正 = 政)한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복희씨(伏羲氏)가 처음으로 거문고를 만들었을 때 그 길이가 삼척 육촌 육푼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일년 삼백육십육일을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또 그 넓이가 육촌이었으니 그것은 육합(六合 = 동,서,남,북,상,하)을 상징한 것이 었습니다. 또 앞은 넓고 뒤를 좁게 만든것은 존귀하고 비천한 것을 상징한 것이며 위는 둥글고 밑이 모(方)가 진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한 것이며 줄(絃)을 다섯개로 한것은 오행(五行 = 목,화,수,토,금)을 상징한 것입니다.그러고 큰 줄로 임금을 상징했고 조그만한 줄로 신하를 상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소리는 느린것과 급한걸로써 청탁(淸濁)을 삼았습니다. 즉 탁음은 너그럽되 느리지(弛) 않으니 바로 임금의 도(道)이며 청음은 청렴하되 어지럽지 않으니 바로 신하의 도리입니다. 또 다섯줄로 궁(宮),상(商),각(角).징(徵),우(羽)의 다섯 음계를 나눴습니다. 그후 문왕(文王)은 문현(文絃)이라는 줄을 더 첨부해서 소궁(小宮)이라 했고 무왕(武王)은 무현(武絃)이란 줄을 하나 더 첨부해서 소상(小商)이라고 했으니 이는 임금과 신하의 은혜를 서로 합쳤다는 뜻입니다.그러므로 훌륭한 임금과 훌륭한 신하가 서로 만나고 그 정령(政令)이 백성과 조화를 이루면 이 이상 나라를 잘 다스리는 길은 없습니다.' 제위왕이 감탄한다. '착하도다! 선생이 이미 거문고의 이치를 다 알았으니 반드시 거문고도 잘 탄주할지라. 과인을 위해서 한 곡조 들려주오.'
추기가 대답한다. '신은 거문고에 뜻이 있기 때문에 늘 거문고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 왔지만 대왕은 국가를 맡으신 어른으로서 왜 나라일에 힘쓰지 않으십니까? 이제 대왕이 나라일을 맡고 있으면서도 다스리지 않는것과 신이 거문고를 만지면서도 탄주하지 않는것과 뭣이 다릅니까? 신이 거문고만 만지고 탄주하지 않으면 대왕을 기쁘게 할 수 없드시 대왕도 나라만 맡아 있고 다스리지 않으시면 만백성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제위왕이 놀라면서 말한다. '선생이 거문고로서 과인을 간하니 내 어찌 선생의 분부를 듣지 않을 수 있으리오.' 마침내 제위왕은 추기를 우실(右室)에 머물게 했다. 이튿날 제위왕은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다시 추기를 불러 국사를 논했다.
추기가 제위왕께 아뢴다. '대왕은 술을 절음(節飮) 하시고 여색(女色)을 멀리하고 모든 일을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하시고 충신(忠臣)과 간신(奸臣)을 구별하시고 백성을 사랑하사 패왕(覇王)의 대업을 경영하십시오.' 이어 제위왕은 추기를 정승으로 임명하였는데 과연 추기의 정승직 직무 충실은 놀랍고 반듯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게 하고 상 하, 좌 우의 분별(秩序)이 분명케하여 온 나라안이 자기 직분에 충실하여 서로가 존경하며 하나로 화합케 되니 여태껏 제나라의 실정(失政)을 빌미로 침범을 무시로 하던 주위의 다른 나라 제후들이 제나라 국력의 위세에 움츠러들어 침범을 감히 못했고 이후에 제위왕은 전국초기칠웅(戰國初期七雄)중 가장 으뜸인 패자(覇者)위치에 자연 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제나라 백성은 이로서 전국천하(戰國天下)에서 평화와 풍요를 되찾는 제일가는 삶을 누리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