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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박사님께 여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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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7-15 13:03 조회1,52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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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총기난사 사고는 중대가 중대장 중심으로 뭉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늘 필자가 하는 말이지만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에 분란이 많고 부패가 만연하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정체돼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군의 모든 부대에 갈등이 있고, 상급자를 무시하고 기수열외 등의 고질명이 있는 것은 군대 지휘관들이 기풍을 제대로 진작시키지 않고 중대장이 아이들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합을 주고 구타를 한다해서 부대장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병사들의 마음을 얻고 병사들의 사고방식을 훈련시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병영문화가 소개돼 있지 않은 것은 한마디로 지휘관들이 부대에 대한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혹 도움이 될까 하여 필자가 30세에 월남에 가서 포대장을 하면서 거칠고 험하다는 병사들을 어떻게 지휘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조금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부대원들을 순한 양으로 만들었을 때 이웃 부대들에서는 총기사고들이 연발되었다. 부대의 성격은 전적으로 중대장이 만들기에 달렸다.    


 

                                      자다가 탄 훈장

                                      (나의 산책세계 중에서)     


중대장급 초급 지휘관은 매월 1회씩 병사와 신상면담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우기 철이 오기 전에 벙커 식 내무반 8개동과 상황실 및 포대장 벙커의 건축을 서둘러 끝내야 하는 병사들을 불러 가족사항으로부터 애로사항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 묻는다는 건 짜증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규정이라 해도 나는 1년 내내 병사들을 개별적으로 부르지 않았다. 대신 병사들이 쓰는 편지를 보기로 했다. 들어오는 편지는 개봉할 수 없어도 나가는 편지는 보안검열의 대상이 됐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보안검열을 하사관에게 맡겼다. 숫자가 담겨 졌는가만 체크한 후 편지를 봉해서 보내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편지 읽는 일을 스스로 맡아 했다. 개인별로 신상 파일을 만들어 놓고, 편지내용과 수신인과의 관계를 메모했다. 오는 편지는 주소와 성명만 메모했다. 한두 개의 편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많이 모이니까 신상파악이 제대로 됐다. 신상면담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사실들과 느낌들이 시시각각 들어 있었다.


트럭 운전병이 면허증 갱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옛날 면허증은 쉽게 따지는 것도 아닌데다, 3년마다 갱신해야 했다. 시한을 넘으면 면허증 자체가 취소됐다. 이를 회복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지옥 같은 획득 과정을 거치면서 돈을 써야 했다. 그런데 그 갱신 기간이 파월 기간 중에 걸려 있으니 얼마나 걱정이 됐겠는가?


나는 경남 도지사에게 정중하게 편지를 썼다. “전투에 전념해야 할 병사가 이런 일에 마음을 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고국의 모든 국민이 파월장병들을 위로합니다. 매일같이 편지와 위문품을 보내주십니다. 존경하는 도지사님, 이 병사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 대위의 간절한 소망에 도지사가 매우 친절하게 답장을 보내주었다. 도지사의 서명날인이 들어 있는 그 편지를 고이 간직했다가 귀국해서 운수교통과에 제시하면 무조건 갱신시켜 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나는 이 편지를 당번병을 통해 그 병사에게 전달했다. 생색내는 것이 싫어서였다.


또 다른 편지를 읽어보니 중태에 빠진 어머니를 걱정하는 병사가 있었다. 그를 위해 대대장께 특별휴가를 부탁했다. 주월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보잉 707 여객기의 좌석 하나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 병사를 불렀다.


“어머님이 몹시 아프시다며? 자네, 독자라고 했지?”


“…….”


병사는 눈만 크게 떴다.


“차를 내 줄 테니 대대본부 인사과로 가봐. 보름간의 휴가다. 사이공까지 가면 고국에 가는 보잉 707 여객기를 탈 수 있어. 모래 오전 11시에 떠나는 보잉기에 자네 자리를 마련했어. 잘 갔다 와.”


나는 그에게 20달러를 봉투에 넣어 주었다.


“포대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996년 어느 날 나는 수원 소재의 경기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에 특강을 나간 적이 있었다. 앞에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학생이 있었다. 강의가 끝나자 그는 자기의 이름을 댔다. 바로 이렇게 휴가를 보내주었던 부하였다. 그는 지금은 귀뚜라미 보일러 대리점을 많이 가진 부자가 됐다고 했다.


그날, 그는 내게 동원참치 스페셜과 술을 대접하며 이런 말을 했다. “포대장님, 그때는 참 크게 보이시더군요. 패기의 화신이셨죠.” 당시 47kg의 바싹 마른 체구가 그때 당시의 병사들 눈에는 크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또 다른 병사는 내게 많은 보약을 만들어 주고 금전적 지원도 하고 있다. 또 다른 병사는 쌀을 보내고 인삼을 보내주고 있다.


또 다른 편지를 읽었다. 태권도 5단인 박병장이 갑자기 세상을 비관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평소에 쾌활하던 녀석이 왜 그럴까?……혹시…?'


나는 위생병을 불렀다.


“어이, 김상병. 박병장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해 볼래? 그 녀석 혹시 말 못할 병 걸린 거 아닌지 말야. 내가 그러더란 말은 하지 말고. 눈치 못 채게 물어봐.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곧 보고 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위생병이 다시 왔다. 눈이 커다래 가지고.,


“맞습니다. 그런데 포대장님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셨습니까?”


“얼마나 심하디?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건 자네 책임이야. 교육 좀 시켜.”


나는 연대 군의관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그 녀석으로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명약(?)을 구해 위생병에게 건네주었다. 포대장이 구해줬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이런 조치가 취해질 때마다 소문은 그날로 모든 병사들에 퍼졌다. 포대장은 자기들과 일일이 대화하지 않고서도 병사들의 행동과 애로를 귀신처럼 꿰뚫어보고 있다는 인식이 부대에 확산됐다. 그리고 포대장이 병사들에게 일일이 생색내지 않고 애로를 해결해 주듯이 그들 역시 포대장에게 생색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일을 찾아 했다.


하루는 연대 기지에서 보급품을 수령해오던 병사가 헌병 초소에서 뺨을 맞고 왔다. 인사계와 중위가 쉬쉬하며 소곤거리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뭐야?”


“아, 포대장님,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누가 맞았다구? 어서 말해봐.”


“김병장이 연대 헌병 초소에서 C-레이션을 빼앗기지 않으려다 뺨을 맞고 왔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김병장을 불러와.”


“포대장님, 졸병들은 원래 다니면서 헌병에게 맞게 돼 있습니다. 예사로운 걸 가지고 무얼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진정하십시오.”


2년 후배인 중위의 말이었다. 그는 후에 2성장군으로 예편했다. 나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다. 나는 우람하게 생긴 15명의 고참들에 총을 장전시킨 후 트럭에 태웠다. 날은 벌써 어두웠다. 트럭을 타고 가다가 베트콩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연대 정문 헌병대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세웠다. 


“야, 이 헌병 놈들 포위해.”


헌병들이 덜덜 떨었다. 뺨을 맞은 김병장을 앞으로 내세웠다.


“어느 놈이야, 나와.”


“접니다.”


“너, 임마 계급이 뭐야?”


“네, 상병입니다.”


“오라, 너 바로 하극상을 저질렀구나. 너 내일 영창에 넣을 꺼다.”


겁이 나자 그 녀석은 다시는 안 그럴 테니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한동안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다.


“야, 사단 헌병대장에게 전화 걸어.”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퇴근해 버렸다. 헌병 세 녀석 모두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비는 모습을 보는 병사들의 얼굴에 만족감이 흘렀다. 남의 부하들에게 혼만 내주고 그냥 돌아서 온다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져갔던 C-레이션 5개 박스를 던져 주면서 앞으로 필요하면 병사들에게 달라하지 말고 내게 직접 전화하라고 말했다. C-레이선 1개 박스는 당시 시중에서 5달러에 거래됐다.


그 후부터 녀석들은 우리 포대 차번호 ‘30포 2-’자만 보면 무사 통과시켰다. 이는 모든 병사들에게 신나는 무용담이 됐다.


분대장 이상과의 간부회의가 매일 2시간씩 계속됐다. 첫 번째 회의는 “어떤 내무반을 지어야 하는가”가 의제였다. 베트콩의 박격포 공세 때문에 내무반 지붕을 지면과 일치하도록 땅에 묻으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다. 빨간 진흙 속에 내무반을 지붕까지 묻으면 더위에 숨이 막히고 냄새가 나며 우기에는 습기가 차고, 마루 밑에서 물이 솟아 밤새내 물을 퍼내야 했다.


아무리 상부의 명령이라지만 이러한 내무반에서는 나도 살기 싫었다. 밤늦도록 나는 병사들이 남기고 간 작업장에 쪼그리고 앉아 궁리를 했다. 이틀만의 궁리 끝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물을 퍼내지 않으려면 물이 마루 밑에서 자동적으로 흘러나가도록 해야 했다.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바닥을 좌우로 수평이 되도록 판다. 그런데 나는 가로와 세로가 다 같이 한쪽 귀퉁이로 기울어지도록 땅을 팔 생각을 했다. 네 개의 코너 중에서 한 개의 코너를 향해 물이 흐르도록 경사지게 파는 것이었다. 마루 밑에서 샘물처럼 솟아난 흙물은 가장 낮은 한쪽 코너를 향해 내려갈 것이고, 거기에 드럼통을 묻으면 맹물은 위에 뜨고 흙은 가라앉게 된다. 맹물은 파이프를 연결해서 자연스럽게 배수시키고, 흙은 가끔씩 마루 뚜껑을 열어 퍼내면 될 일이었다.


쾌적한 내무반, 바람도 잘 통하고 채광도 잘 되고 시원한 내무반을 짓기 위해서는 벽의 50%만 땅에 묻기로 작정했다. 병사를 박격포 파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철판과 흙으로 덮인 튼튼한 지붕을 벽에서 3m 정도 길게 내뽑기로 작정했다. 지붕 위에 떨어지는 박격포는 모두 안전할 것이다. 지붕 밖에 떨어지는 포탄의 파편이 내무반에 들어오려면 3m의 거리를 수평으로 이동해서 직각으로 낙하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동하는 파편은 없다. 지붕 하나만 넓게 빼면 내무반의 50%만 땅에 묻어도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그리고 신이 났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지시하면 병사들은 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다음날 회의에 이 문제를 회부했다.


“내무반을 지금 짓는 방식대로 지으면 우기 철에 마루 밑에서 샘이 솟는다. 그러면 밤새내 물을 퍼내야 한다. 물을 퍼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집을 지을 수는 없을까?”


“그런 방법이 있으면 다른 부대에서 벌써 했게요?”


좀 늙어 보이는 상사가 가소롭다는 생각으로 던진 말이었다. 기분이 좀 상했지만 모른 체 했다.


“방법이 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도 있다. 반드시 있으니 찾아내야 한다. 자, 우리 분대장들 중에 누가 먼저 말해 볼까?”


내 눈이 가는 데마다 하사들은 마주치지 않으려고 얼굴을 숙였다.


“야, 맥주 한 깡씩만 가져와라. 커피 좀 끓여오고. 마시고 나면 말해야 해”


10여분 후에 제2분대장을 지명했다. 그는 말을 약간 더듬어서 고문관으로 불렸다. 그가 얼떨결에 한참 중얼거렸다.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중사가 그에게 면박을 주었다.


“니는 마, 좀 알아 묵도록 말해라. 도대체 무슨 말인겨?”


“아 아, 김중사, 여기에는 계급이 없습니다. 모두 다 편하게 말하는 대화의 장소입니다. 2분대장 말을 들으니 나는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가 한 말 중에서 살릴 수 있는 몇 개의 단어를 찾아내 내가 생각해낸 방안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듣기에도 그럴듯한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마 맞습니다. 포 포 포대장님, 바로 그런 말인데 제가 말하는 게 서툴렀습니다. 감사합니다. 포 포 포대장님.”


나는 김중사를 돌아봤다.


“거 봐요. 김중사, 2분대장이 일리 있는 말을 했잖아요.”


나는 그 하사에게 여러 번 발표 내용을 따라하게 했다.


“자, 이렇게 말하니까 알아듣겠나?”


“예, 알아먹겠습니다.”


이 얼마나 멀고 먼 길인가? 나는 토의가 막힐 때마다 힌트를 주면서 하사들을 표 나지 않게 유도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내가 생각했던 결론이 그들로부터 나왔다.


“첫째, 지붕을 넓게 내뽑을 것, 둘째, 바닥을 경사지게 팔 것, 이 두 가지만 준수하고 각 분대는 마음대로 집을 지어라. 원형으로 지어도 좋고, 빨갛게 지어도 좋다. 이의 없지?”


그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들이 시행하는 것이라 주인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토의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루를 거르면 열흘을 거를 수 있다. 열흘을 거르지 않으려면 단 하루도 거르면 안 된다. 하사들은 매일 무엇을 착안해야 포대장에게 예쁨을 받고 동료들에게 쭉정이가 안 될까 생각하면서 일했다. 분대원들의 도움도 받았다.


내무반에서는 분대장을 중심으로 모든 병사들이 토의를 했다. 착안사항이 날로 예리하고 다양해 졌다. 어제까지는 예사로 지나치던 것들이 오늘은 문제로 부각됐다. 관찰력이 향상되어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4개월을 훈련하니까 다음부터는 내가 참석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검열이나 전투력 점검이 언제 있는지 등에 대한 외부 정보를 얻어 무전기로 포대에 알렸다. 알리기만 하면 금방 시행됐다. 이처럼 시스템을 설치하고 궤도에 올리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단 시스템이 돌아가고 나니까 포대장은 여유를 가지고 보다 큰 것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병사들은 그들이 갖게 될 내무반 설계를 매우 좋아했다. 좋아하는 것만큼 진도가 빨랐다.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이라던 작업이 불과 3개월 만에 끝났다. 병사들마다 철침대가 있었다. 내무반은 웬만한 가정집보다 더 깨끗하고 넓고 시원했다. 휴양을 가라고 해도 “여기가 최고”라며 가지 않았다.


나는 외부에 나가 교환병의 친절 정도를 체크했다. 교환병과 정문 보초병의 매너는 그 부대의 대외 이미지를 좌우했다. 지적만 해주면 교육은 하사들이 알아서 철저하게 시켜 주었다.


전쟁터에서는 포성이 자장가였다. 고요와 적막은 오히려 긴장과 공포를 유발했다. 필자가 너무도 곤히 잠들었던 어느 날 밤, 나민하 소위가 매복을 나가 모두 42명의 베트콩을 사살했다. 1970년 11월이었다. 나민하 소위는 그날로 특진을 했고, 영웅이 되어 고국을 방문했다. 그가 김포에 도착하자 국회의원들까지 공항에 나와 그를 영접했다.


바로 그 매복전에서 우리 포대의 장교들과 병사들은 나를 깨우지 않고 베트공 퇴로에 1,800발의 포탄을 밤새내 날렸다. 당시에는 미군이 포탄 사용량을 통제했기 때문에

댓글목록

panama님의 댓글

panama 작성일

국가경영도 문무(文武)를 겸한- 준비, 판단, 역량,이 좌우한다는 것은 현장경험이 있는 사람은 기히 다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우리 현실을 보면 모기발에 워카를 신겨 놓은 꼬라지가 되어 있습니다. 군대도 안가본 인간들이 뭘 알아? 어저께 밤 외화 "We were Soldiers"를 보고 하버드 석사출신 무어중령과 젊은 군인 395명을 베트남 아이드란 계곡에서의 전투를 보고, 지휘관의 길이 어떤한가에 대한 위대함을 보았죠.

이앤떠블류님의 댓글

이앤떠블류 작성일

하루에도 몇번씩 박사님의 글을 읽고 나름 무장해서 가족들 그리고 주위에 설파하는 사람입니다.
박사님의 다른 처방은 모두 옳습니다만. 80년도 중반에 포항해병 1사단 전역자로서 해병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함에 있어서 복무시 느낀 간단한 팩트 하나를 전하고자 합니다.
海兵隊 부대 이름 자체에 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해병대는 兵들에의한 군대라는 인식이 병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대를하고 장교나 하사관들은 해병대를 제대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떠드는 사람들을 별로 없는듯합니다. 물론 해병전우회 간부단에선 있겠지요. 제대를해도 몽땅 기수이고 휴가를 나와도 기수였습니다. 그러므로 군복무시 중대장.소대장 지시 따로 하사관지시 따로였던것 같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중대장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던것 같습니다. 하사관들과 병들의 사이는 거의 철천지 원수 수준이었고 권력이 없는 병들이다보니 자신들의 보호막으로 장교들을 대했고 하사관들과 불협화음이 많았기에 장교들과 사병들간의 사이는 돈독했던것 같습니다. <해병대>라는 부대명칭에서 兵을 빼버린다면 양상이 조금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兵이라는 한자를 해병대 사병들은 일반과 달리 해석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래전에는 兵이 주인인 해병대에 하사관들의 말이 너무 많다고(특히 일반하사-병들과 같은 기간 훈련받고 같은 기간을 복무하고 전역하는 하사관) 지금의 기수열외처럼 하사관들을 조직적으로 열외시켰던 문화가 팽배했었습니다.  저또한 그런 일반하사관과의 트러블로 중대 선임하사관에게 보고되어 심각한 위기에 빠졌습니다만,(당시 교련으로 인한 병역기간 단축제 45일x2년=90일인데 군대 영창 15일을 수감되면 복무기간은 105일이 늘어나게되었습니다.) 당시 중대장의 도움으로 자갈무장구보 1주일 그리고 다른 잡역으로 15일을 떼운적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사병들과 하사관들은 아웅다웅 싸우는 형태였으나 장교들 또한 하사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터라 원래 그런것처럼 지냈던것 같습니다.  하사관들도 사람 나름일테지만 어떤 경우에는 야영시 A형텐트는 몇개가 결합을해야 텐트가되어 비로소 비.바람을 막을 수 있지만 일부 분대장은 병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여 혼자서  A형텐트를 이불삼아 밤이슬을 피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아마도 밤새도록 사병들에대한 복수심으로 이를갈면서 잠을 청했을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공수부대의 경우에는 하사관들이 워낙많다보니 이런 문제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부대이름을 바꾸든지 원래 기대하고 입대한것처럼 강인한 훈련을 계속시키든지하면 나아질지 모르겠는데 부대장들은 안전사고를 염려해야하므로 또 극한 훈련은 중지시키고무엇인가 획기적인 돌파구가 있어야되지 않을까 모르겟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한편으로 경험상 가혹행위의 주범들은 광주출신들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정확한 통게를 저는 모르겠지만 제 주위의 병사들의 절반을 전라도 병사들이 차지했었는데 처음 배치받은 소대에는 왕고참 중간고참 신병들 군기잡는고참 모두 광주일고 동문이었고 그 사람들이 내무반 분위기를 지옥으로 만들었다가 평화롭게 만들었다 했던것 같습니다. 상배낭.하배낭하는 소위 따블빽들이 절반을 차지하는 부대 아마도 해병대뿐일듯합니다.
전군의 중대장들이 지만원 박사처럼 아이디어가 샘솟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군대 또한 획기적인 시스템이 발굴되기전에는 문제점이 해결되기 어려울듯합니다. 당시 1사단 울타리 밖에는 미해병부대가 있어서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한국군과 달랐습니다. 무장구보를하다가 컨디션 난조로 낙오를하여도 누가보건 안보건간에 반환점을 돌아올때까지 제자리 달리기를 하는 모습들... 팀스피리드 훈련시 미군들과 한국군들이 훈련중에 술을 마십니다.(물론 불법이지만 취침 시간중에) 그러나 근무자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았던 모습에서 선진화된 군인상을 많이 느꼈습니다. 요즘 광고중에서 <남자에게 좋긴한데 이거 뭐라 표현할 방법이없네~> 바로 이것이 미군들의 방식.. 시스템에서 처음 로그인했는데 앞뒤 엉터리라도 이해하여 주십시오. 항상 지박사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좌파성향의 친구들을 멀리하게될 정도로 지박님에게 흠뻑 빠져 있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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