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신문 중앙일보 - 왠 DJ 영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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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린아 작성일11-07-03 10:34 조회1,483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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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세력 절대 이탈 못합니다, 안심하고 DJP 하세요”
1996년 10월 6일 오후 5시쯤, ‘밤섬아지트’ 그러니까 마포 한신코아 오피스텔 1411호에서 DJ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총8개 항목에 대해 차기 대통령의 자질을 묻는 경향신문 조사였다. 다음 날 보도되는 걸 신문사에 부탁해 미리 받았다. 국민이 기대하는 대통령의 자질은 다음과 같았다. ▶강력한 지도력(26.8%) ▶경제 해결능력(25%) ▶도덕성(14.4%) ▶지역감정 해소능력(14.3%) ▶통일을 앞당길 능력(8.5%) ▶국제감각(4.3%) ▶개혁성(3.5%) ▶정치 경륜(3.5%).
DJ는 지도력, 지역감정 해소, 통일, 국제감각, 정치 경륜 등 5개 분야에서 1등을 했다. 종합적인 평점도 100점 만점에 20.7점으로 1위였다. 그 다음은 신한국당 박찬종 고문(16.6점)과 이회창 고문(15.4점) 순서였다. DJ는 흥분한 듯했다. “장 동지, 이 결과가 내일 분명히 신문에 나오나.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없을까?” 오피스텔엔 전화가 없었다. 도청을 우려해 처음부터 설치하지 않았다. 마포 가든호텔까지 걸어 내려가 공중전화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다음날 아침에 나간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DJ는 “이젠 국민이 대통령도 자질을 보고 뽑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며 기뻐했다. 그러고는 책상에 앉아 A4용지에다 8개 항목을 적고, 자신이 1위를 한 5개 항목을 따로 적었다. DJ는 특히 국민이 원하는 두 번째가 경제 해결능력이라는 사실에 대해 놀라면서도 안도했다. 앞으로 남북·지역 문제보다 경제가 더 중요해진다는 걸 감지한 것이다.
DJ는 1등을 하지 못한 항목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했다. 도덕성은 여당이 20억+알파설을 흘리고 정계 은퇴를 번복해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오해가 풀리면 앞으로 평가가 달라질 거라고 말했다. 개혁성에 대해선 나중에 높은 평가를 받을 자신이 있다고 여유를 부렸다. 궁금해 물어봤다 “총재님, 대체 무슨 방법이 있으십니까.” DJ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 사람아, 이 시대의 최대 개혁이 정권 교체 아닌가?” 그러니까 정권 교체를 하면 그게 바로 개혁이니 딴소리할 게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번 조사에서 정치 경륜의 중요성이 후순위로 나온 건 YS(김영삼 대통령)가 하도 세대 교체를 역설하니까 경륜이 무시돼 그런 거 아니에요? 세대교체에 맞서 경륜이 중요하다고 정면으로 주장해야 해요. 그럼, 나머지도 다 1위를 할 수 있어요. 강력히 밀고 가자구.”
DJP연합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근거가 대체 뭐냐.DJ는 그걸 찾는 게 절실했다. 사진은 장성민이 교수 3명의 자문을 거쳐 1996년 10월 10일 제출한 보고서. DJP 연합의 근거를 유럽의 협의민주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4·11 총선 때도 DJ는 패배가 아니고 약진이라고 주장했었다. 이번도 마찬가지지만 DJ는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부정적인 내용이 있으면 절대로 그냥 수긍하지 않았다. 부정을 긍정으로 뒤집을 수 있는 논리를 먼저 생각해 내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그 방향으로 밀어붙였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을 맞아도 손톱만큼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게 있으면 그걸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그건 어쩌면 성공하는 정치인들의 필수 DNA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좀 빗나가지만 DJ는 어지간해선 참모들을 칭찬하지 않았다. “고생했다”거나 “수고했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보스를 위해 뭔가 했다는 생각에 우쭐하거나 자만하는 참모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어제까지 아무리 잘했어도 오늘 태만하면 DJ는 금방 냉정해졌다. DJ의 눈길을 받기 위해선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게 하려고 끊임없이 페달을 밟듯 계속 뭔가를 해야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랬다. 예를 들면 96년 당시 국민회의 박지원 기조실장은 부천에 살았다. 걸핏하면 기자들과 술자리를 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새벽에 들어갔지만 박 실장은 다음 날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일산 자택으로 보고를 왔다. 새벽 출근길에 박 기조실장이 DJ 자택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운전기사와 둘이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져 있는 걸 본 적도 많다. “이제 들어가야죠” 하고 소리치면 부스스 일어나 DJ 자택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옷매무새를 만진 뒤 보고를 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DJ의 용인술은 참 지독했다. 하지만 성과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며칠 뒤인 10월 10일 ‘밤섬 아지트’에서 DJP 공조에 대한 1차 보고서를 제출했다. ‘협의민주주의의 한국적 수용과 DJP 연합’이라는 제목이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유가 있다. DJ는 JP(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공조를 추진하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JP와 손을 잡지 않으면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건 현실이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내각제도 아닌데 체질이 다른 두 당이 어떻게 연립한다는 건지, 진보 성향의 대통령과 보수 총리가 과연 가능한지, 3당 합당과 다른 게 뭔지 등 DJ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면 주저하는 게 DJ다. JP와의 공조는 집권욕에 불과하다는 비난에 논리적으로 맞설 수 없다는 게 DJ를 계속 괴롭혔다. 게다가 더 두려운 건 JP와 손을 잡아도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실패하면 결과는 끔찍했다. DJ는 틈만 나면 YS의 3당 합당을 야합이라고 비난해 왔다. 야합이든 뭐든 YS는 집권했다. 그런데 JP와 손을 잡고도 집권을 못 하면 어쩔 것인가. 결과로 말하는 게 정치다. 만일 지게 되면 민주투사의 명예, 양심, 진보 진영의 신뢰, 호남의 지지 등 모든 게 한꺼번에 날아갈 게 뻔했다. DJ는 이런 상황을 돌파할 이론적 근거가 절실했다. 내가 DJ에게 들고 간 첫 보고서는 그 같은 갈증을 풀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그 당시 일급으로 평가받던 대학교수 3명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들에게 물었다. “첫째, DJ가 JP와 손잡는 걸 정치이론으로 설명하는 게 가능한가. 둘째, 다른 나라의 사례는 있는가. 셋째, DJP가 성공하려면 어떤 모델로 가야 하는가.” 이들로부터 해답을 얻었다. 그게 바로 네덜란드 정치학자 아렌드 레이파트(Arend Lijphart)가 정립한 ‘협의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라는 개념이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원칙이지만 지역과 계층이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으면 소수그룹은 영원히 집권이 불가능하다. 정치적 권리로부터도 계속 배제된다. 영남이 다수여서 호남과 충청 등 다른 지역의 집권이 거의 불가능했던 한국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사회 전체의 안정성이 깨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이파트가 제시한 게 협의민주주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수적인 우열과 상관없이 정당들끼리 권력을 공유해 사회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이론에 따르면 보수와 진보의 연합은 결코 이상한 게 아니었다.
보고서를 읽고 난 DJ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장 동지, 이 이론을 누구한테 얻었다고 했지?” “교수 세 분으로부터 얘길 들었습니다.” “그럼, 그중 대표적인 사람을 한 번 데려와 보세요.”
10월 22일 오후 3시쯤, DJ와의 면담을 위해 창천동 아태재단 이사장실로 Q교수를 데리고 갔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전도유망한 소장학자였다. 다음은 대화 내용.
▶DJ=협의민주주의에 대한 보고서를 봤는데 많은 참고가 된 것 같습니다. 독일의 경우 좌파인 사민당과 우파인 자민당 간에 연립정부를 구성한 적도 있던데 좌우 연합이 유럽에선 흔한 일입니까? ▶Q교수=흔하지 않지만 집권을 위해 종종 발생하는 케이스라고 보면 됩니다. 이 경우 소수 정당이 연정 구성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됩니다. ▶DJ=그럼 DJP의 경우처럼 내각책임제가 아닌 대통령제하에서도 연립정부 구성이 가능하겠습니까? ▶Q교수=내각각료에 대한 권력분점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프랑스에서 좌파 미테랑 대통령과 우파 자크 시라크 총리가 동거정부를 만든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불화(不和)의 동거였지만 지금과 같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DJP는 유화(有和)의 동거정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만 해도 DJ로선 흡족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DJ가 정말로 궁금했던 건 바로 다음 질문이었다. ▶DJ=교수님은 DJP를 이뤘을 경우 과거에 나를 지지했던 재야나 진보 인사들이 대거 이탈할 것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보수 세력들이 내 쪽으로 많이 이동할 것으로 보십니까. ▶Q교수=이탈자보다는 보수 세력들이 총재님께 더 많이 올 수 있도록 해야죠. 그러려면 보수 세력에 보다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정치 행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DJ=왜 그렇게 보세요? ▶Q교수=정권 교체 가능성이 크고, 보수 세력도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진보 세력은 정권 교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절대 이탈하지 못합니다. 안심하고 DJP를 해도 됩니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DJ는 Q교수에게 나의 길 나의 사상(한길사)이라는 자신의 저서와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새겨진 아태재단 볼펜을 선물했다. “앞으로 저를 많이 도와주세요”라는 당부도 했다. 이날의 대화가 가진 의미는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 310쪽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느 날 아태재단을 다녀온 그(DJ)는 심각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자민련과 연대를 해야 할 것 같소. 야권을 통합하고 지역구도를 깰 방법은 그 길뿐인 것 같소” “그래도 어떻게 유신세력과 함께….” “그렇다고 우리 정체성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닙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유럽에선 집권을 위해 정당끼리 일시적으로 연합을 하지 않소” 어느 교수의 말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누군가의 마음속을 알긴 정말 어렵다. 하지만 나는 DJ가 JP와의 공조를 결심한 날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96년 10월 2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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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조중동에 기대도 안했지만, 간첩 김대중을 미화하다니 많이 불쾌합니다.
게다가, 집에서 보고 있는 중앙일보인데, 광고지를 같이 받으면서 오히려 돈 받고 무료로 보는 신문이라 바꿀 수도 없고, 부모님이 구독하시는 거라서,,
간첩을 당선시키는데 공을 세운 DJP연합을 이렇게 미화하면, 나라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어느 날 아태재단을 다녀온 그(DJ)는 심각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자민련과 연대를 해야 할 것 같소. 야권을 통합하고 지역구도를 깰 방법은 그 길뿐인 것 같소” “그래도 어떻게 유신세력과 함께….” “그렇다고 우리 정체성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닙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유럽에선 집권을 위해 정당끼리 일시적으로 연합을 하지 않소” 어느 교수의 말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누군가의 마음속을 알긴 정말 어렵다. 하지만 나는 DJ가 JP와의 공조를 결심한 날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96년 10월 2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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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조중동에 기대도 안했지만, 간첩 김대중을 미화하다니 많이 불쾌합니다.
게다가, 집에서 보고 있는 중앙일보인데, 광고지를 같이 받으면서 오히려 돈 받고 무료로 보는 신문이라 바꿀 수도 없고, 부모님이 구독하시는 거라서,,
간첩을 당선시키는데 공을 세운 DJP연합을 이렇게 미화하면, 나라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댓글목록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작성일
나라는 바다도 산도 아닌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거겠죠...
그걸 바라는 개대중 아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