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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0대 불가사의와 천안함 격침[인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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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正道 작성일11-06-22 14:03 조회1,81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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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0대 불가사의와 천안함 격침

                                                

 

                                                      소개 말씀

 

자유 게시판에서 한광덕 장군님이 쓰신 글에 첨부를 시도하셨던 글을 사족을 달아 제 이름으로 올립니다. 이 글은 메일로 받아 이미 갖고 있었으며 한 장군께서 최근 건강문제로 통원 치료를 받고 게심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건강을 도와드리는 의미에서 제가 직접 소개드림을 밝힙니다.

 

전우여러분!  제가 소개드리는 이 글은 우리 참전 전우들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생생한 한 페이지로서 우리 모두가  필히 알아 두셔야할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꼭 한번 읽어 주시기를  간청해 마지않습니다.

한광덕 장군은 4.3위원회에서의 활동경험을 기초로 저변에 깔려 있는 이런저런 사실들을 전 애국 국민들이 분명하게 인지해야만 대한민국이 지켜진다는 생각을 갖고 글을 써 오셨으며  이 글도 그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한 장군님이 발휘하신 맹호 부대 두코(Duco) 전투에서의 활약상을 모르시는 전우들은 아마도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당시의 맹호 사단장이셨던 채명신 사령관님은 제주 4.3사건 당시의 소대장이셨고 두코 전투의 포병 관측장교 한광덕 장군은 예편을 하신 후 4.3위원회에서 활동하시면서 채명신 사령관님을 맞나 소대장 시절의 경험담을 많이 듣고 참고하셨다고 합니다. 

두 분의 애국자가 베트남 참전 전우들의 모임에 자리를 함께 하셨던 사진과 함께 6.25전쟁의 10대 불가사의와 천안함 격침을 소개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전우여러분 감사합니다.  

정재성 드림.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
금년은 6.25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로 지난 60년을 회상하고 반성과 감사와 결의를 다지는 기념사업과 행사들이 광범위하게 계획 및 추진되어 왔으나,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국민적 관심이 분산되어 그 의의가 반감된 것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천안함 격침은 6.25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워주는 일대사건이기에 북한의 불법 만행부터 규탄하며 온 나라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응조치에 나선 우리 군과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계속되면서 국회에서 조차 북한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대북 결의안 하나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지방 선거에서는 여당 찍으면 전쟁 나고 전쟁나면 핵이 터져 다 죽는다는 북한식 협박이 통한 듯싶더니 곧 이은 월드컵에서는 전국규모의 거리응원 함성 속에 모든 것을 통째로 묻어 버리는 듯한 분위기도 한편으론 불가사의 한 바, 이 불가사의들을 풀어내지 못하면 천안함 침몰이 대한민국함의 침몰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어 이 글을 씁니다.

역사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외부의 위협보다는 내부의 갈등으로 무너졌음을 보여주며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내 외로부터의 위협이 공존합니다. 위협의 핵심은 대한민국을 통째로 부정하는 북한이 연방제의 공산화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은 채 집요한 대남공작을 계속함에 있으며, 국무총리 예하의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필자의 눈에는 그 규모와 범위가 방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에 미군이 주둔하면 미국의 식민지입니까? 독일에도 일본에도 프랑스에도 미국군대는 주준하고 있지 않습니까? 빈부의 차이는 우리나라에만 있습니까? 미국 중국 일본에도 있으며, 특히 북한의 빈부 격차는 세계에 그 유례조차 없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의 과거에 한 때 독재로 인한 희생이 있었다지만 북한에는 지난 60년간의 부자 세습독재 하에 어떤 희생이 오늘까지도 강요되고 있는 것입니까?

따라서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며 자유민주적 체제와 가치를 부정하는 이 땅의 종북 세력은 북한의 선동에 박자를 맞추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공무집행 중의 경찰을 납치 감금하고 동료를 구출하려는 경찰들을 불태워 죽인 살인방화범들에게도 민주화 국가 유공자의 호칭부여가 가능한 것이었습니까?

진정한 민주화 유공자였다면 북의 부자세습 독재 권력에 대하여 더 크게 진노하고 질타하면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의 자유와 인권의 향상을 위해 진력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함구하면서 오히려 민주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의 과거사 공격에만 전념하지 않았습니까?

온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공에는 눈을 감고 과오와 실수만을 찾아 대한민국의 정통성 부정에 매달렸던 것이며 누란의 위기에서 우리를 구하고 지원했던 우방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커녕 오히려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을 벌렸던 것입니다.

지혜를 모아 국론을 통일하고 국정을 미래 지향적으로 선도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오늘까지도 끝없는 당쟁과 정쟁으로 분열만을 조장하고 있어 천안함 침몰 이후의 정국은 그야말로 해방정국의 혼란을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4.3사건의 불가사의

필자는 국방부의 위촉으로 2000년 8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4.3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제주도 밖으로부터의 지령이 분명히 작동했던 4.3 무장 폭동을 순박한 제주도 주민들만의 순수한 봉기로 해석하면서, 초대 건국 대통령이 하달한 계엄령 하에서 진압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국군의 선배들을 양민학살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1948년 4월3일, 인민무장대의 경찰지서 공격으로 시작된 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이전의 미소 군정기간에 발생하였음으로, 공산주의 지향세력과 자유민주주의 지향세력간의 대등한 쌍방충돌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탄생된 1948년 8월 15일 이후에도 한라산에 인공기를 올리고 확대되었든 무장 폭동은 대한민국에 대한 무장폭동이며 반란이었던 것입니다.

순박했던 제주도민의 희생에 대해서는 그 아픔을 함께 하며 국가의 책임임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대통령이 하달한 계엄령 하에서 폭동 진압 임무를 수행했던 군과 경찰을 양민학살로 몰아 간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의 채택은 결코 인정할 수 없어 국방부와 경찰 측 위촉위원 3명 전원은 2003년 10월 15일, 협조 란에 동의할 수 없다는 서명을 하고 일괄사퇴를 했던 것입니다. 4.3폭동이 진압되지 않고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속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으나 이 사실조차도 사회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신문들이 침묵을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6개월 전인, 4.3사건 발생 55주년 하루 전인 2003년 4월 2일, 4.3위원들은 청와대 오찬에 초청되었으며, 기회를 포착한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우측에 앉아서 4.3사건의 배경에 관련한 다음 내용을 설명한 바 있었습니다.

 

(1) 4.3폭동의 배경으로 작동된 45년 9월 20일자 스탈린 비밀지령이 1993년에 발견되었고, (2) 소련군의 정치부사령관이 남노당 당수 박헌영에게 지침을 내리고 공작자금을 제공한 기록이 실린 스티코프 비망록이 발견되었으며, (3) 4.3폭동의 주동자 김달삼이 폭동 발발 4개월 후, 북한 해주의 민족 대표자회의에 참석, 4.3사건 전과를 보고하며 말미에 "우리의 조국 해방군인 위대한 소련군과 그의 천재적 영도자 스탈린 대원수 만세!" 를 부른 연설문이 발견되었고, (4) 북한의 애국 열사능에 있는 그의 가묘에 ‘남조선 혁명가’의 비문이 쓰여져 있는 것이 발견된 사실 등을 얘기하면서, 4.3무장폭동의 배후에 소련과 남노당의 개입이 있었음을 강조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어떤 반론도 없었고 고건 국무총리도 참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는 6개월 후인 2003년 10월 15일, 국방부와 경찰 측 위촉인원 3명 전원이 부동의 했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채택했던 것이며, 이 보고서를 기초로 대통령 노무현은 4.3폭동의 진압과 관련하여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했던 것입니다. 4.3사건 당시의 유아가 17대 대통령이 되어 초대 대통령의 군 통수권 행사에 관해 5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공식 사과하는 불가사의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필자가 4.3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4.3 무장폭동의 진압임무를 맡았던 11연대장 박진경 대령 암살사건(48.6.18) 후의 군법회의 때 좌익계 부하들의 상관 살해를 민족정기의 발로로 극구찬양하고 피살된 연대장을 친일파 매국노로 질타하는 ‘조선중앙일보’의 보도였습니다. (제주 4.3사건 자료집 제2권의 조선중앙일보 48.8.20, 8.25, 8.28일 기사 참조). ‘조선중앙일보’를 ‘중앙일보’의 전신으로 알고 있었기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던 필자는 4년 후인 2007년 10월, 이 불가사의를 풀어주는 열쇠 하나를 얻었습니다.

 

                           1997년 5월 26일자 노동신문 특집보도

 

그것은 한 북한 전문가가 제공해 준 북한 노동신문의 특집보도로서 이미 10년이 지난 구문이었습니다. “민족의 영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열사”라는 제목아래 상상도 못했던 내용들이 담겨져 있었는데 특히 필자의 눈을 끈 것은 김일성의 비밀특사인 성시백이 “남한의 각 정당과 산하단체를 정당협의회로 묶는 ‘통일전선’ 형성과 ‘선전공작’을 하면서 ‘조선중앙일보’와 ‘광명일보’등의 10여개 신문사를 경영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선중앙일보의 4.3사건 관련 당시 기사들을 다른 신문들과 비교만 해도 김일성의 4.3사건 개입이 증명됨으로서 대통령의 공식사과 수정도 가능하게 되어 국군과 경찰의 명예도 회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 특집보도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제 나름의 글쓰기를 계속해 왔으나 이미 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묵묵부답입니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이 진행되는 중요한 시기에 무슨 엉뚱한 소리냐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저에겐 한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 특집보도는 4.3무장폭동 발발 1년 4개월 전인 1947년 초에 성시백이 평양에 올라가 김일성을 만나 회중 금시계를 선물 받는 장면으로부터 서울복귀 후 전개하는 대남공작활동들을 소개하는 데, 육군의 ‘사단’ 예하 ‘대대’와 ‘헌병대’, ‘사관학교’, ‘육군정보국’까지 ‘조직선’을 늘려 국군의 와해공작을 했고 당시 서울에서 활동했던 ‘유엔 임시조선위원단’ 조직의 와해 및 방해공작은 물론, 김구 선생에게 접근하여 김일성의 특사임을 밝히고 1948년 4월의 ‘남북연석회의’ 초청장을 전달하고 참가하게 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전문은 www.vietnamwar.co.kr 인강칼럼 헤드라인의 “10년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 참조)

 

                                 이 형근 대장과 6.25전쟁 10대 불가사의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이형근 대장은 “군번 1번의 외길 인생”이란 회고록에서 “6.25전쟁의 10대 불가사의”를 열거하면서 이 불가사의가 풀려야만 국가의 백년대계가 보장될 것이란 기록을 남기셨는데,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특집보도를 읽게 되면 서울이 남침 3일 만에 함락된 배경에 성시백이 있었고 그 공로로 인민공화국 영웅 1호가 되었다는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형근 장군의 6.25전쟁의 10대 불가사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일선부대의 남침징후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

2. 6.25발발 2주전에 단행된 각급 주요 지휘관의 대규모 인사이동

3. 6월 13-20일간에 단행된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

4. 6월 11일부터 발령되어있던 비상 경계령이 6월 24일 0시에 해제.

5. 비상경계령 해제와 함께 전 장병의 1/2에게 휴가 외출외박을 허용

6. 6월 24일 저녁에 개최된 육군 장교 클럽에서의 고급장교 댄스 파티

7. 서울 북방으로의 축차적 병력투입으로 불필요한 희생 발생초래

8. 6월 25-27일간의 국군후퇴를 반격, 북진 중으로 허위 보도한 중앙방송

9. 한강교의 조기 폭파단행

10. 한강교를 폭파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 사형집행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의미의 북한 노동신문 특별보도가 1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 사회에 공론화되지 않는 것은 불가사의의 극치입니다. 4.3위원으로 활동했던 필자의 의문은 ‘50년의 6.25남침도, 87년의 KAL기 폭파도 모두 남쪽의 자작극으로 오리발을 내밀던 북한이 왜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97년 5월에는 남침직전까지의 대남공작을 공식인정하고 찬양했나? 이며 김, 노 두 전직 대통령은 어찌하여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그가 공식인정한 대남공작의 중단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는가에 있어 왔습니다.

 

노동신문 특집보도의 존재에 대한 보고가 없었던지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이를 무시했던지 간에 이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큰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대남공작을 묵인한 결과가 초래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대남공작은 집요하게 계속되는데도 우리는 일방적으로 대북 심리전 방송과 비무장 지대에서의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던 것이며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는 대통령의 발언까지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은, 특집보도 1년 전, 영삼 대통령시절에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가 북송되었고 3년 후인 김대중 정권 시절엔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집단으로 북송되어 모두 성시백의 뒤를 잇는 공화국 영웅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후에 남쪽과 북쪽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남쪽에서 암약하던 북한 간첩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그들을 체포하고 수사했던 대한민국 대공수사 요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짐으로서 우리의 국가보안법은 산송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97.5.26 노동신문 특집보도의 공론화가 구국(救國)의 길

 

성시백의 정체를 알면 문제의 심각성이 보입니다. 성시백은 상해 임시정부시절 장개석 총통의 ‘수도경비사령관’에 해당되는 胡宗南 장군의 유능한 참모로 알려졌으나, 실제는 18세 때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골수당원으로 대 국민당 공작원으로 활약한 중국공산혁명의 공로자로서 중국 사람들도 그가 조선 사람임을 몰랐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대남공작 적임자를 물색하던 중 그가 조선 사람임을 알고 주은래에게 “성시백을 우리에게 보내주어 조선 혁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고 주은래가 그를 조선 공작조직에 인계했던 것입니다. 북한공작원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은 성시백은 일본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여 대북 무역회사 대표로 위장하여 대남 공작활동을 하다가 50년 5월에 검거되어 6.25전쟁 발발 이틀 후인 6월 27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던 것입니다. (태윤기 저 ‘회상(回想)의 황하(黃河)’ 제5장 중공의 서울 연안은 어떤 곳인가와 기무사의 “남파간첩 성시백 특집보도 활용관련 참고자료”에서 필자가 정리)

 

남과 북은 동일화폐를 사용하다가 북한이 47년 12월 1일, 화폐개혁을 비밀리에 단행했고 남한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48년 4월 16일부로 화폐를 개혁함으로서, 대북 무역회사 대표인 성시백에게는 무한대의 공작금이 가용한 데다 장개석 휘하 ‘수도경비사령관’의 명 참모였다는 명성까지 이용하여 이승만 정부의 요인들을 자유롭게 만나며 10개의 신문사를 운영했다고 하니 그의 영향력의 끝은 어디까지였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 집니다.

 

4.3폭동 초기에 인민 해방군들에겐 순경 1만원, 형사 2만원, 경위이상 3만원, 그리고 경찰 유력자에게는 100만원(당시 쌀 한가마니가 3백원)의 살해 현상금을 걸고 “목포까지 김일성 군이 내도하였으니 안심하라”는 선전 선동으로 살인을 독려했다(동아일보, 48.5.8)는 보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폭동 진압임무를 수행했던 국군과 경찰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을까는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필자는 97.5.26 노동신문의 특집보도가 성시백의 유령을 살려내는 총동원령이었다고 보면서 오늘 현재에는 김정일의 비밀 특사가 어떤 직함으로 어떤 규모의 공작금으로 어디서 누구를 만나며 몇 개의 신문 혹은 방송을 운영하고 있을 것인가에 온 국민의 관심이 생겨나서 각자의 주변을 살펴보는 경계심으로 무장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북한의 집요한 대남공작도 문제지만 대남공작이 통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여건이 더 큰 문제입니다.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들부터 매사에 모범을 보이며 공무원들이 공무집행이 정확하고 공정하며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잘 한 사람들이 박수를 받는 분위기가 확산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북한의 대남공작에 눈감은 채 정당 간에, 지역 간에, 노사 간에, 머리 터지는 싸움을 계속하다가는 모두 함께 공멸하고 우리의 후손들까지도 부자 세습독재 체제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최악의 가능성에 대비만 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 이룩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영원무궁한 발전은 튼튼히 보장되리라 확신하며 여기서 줄입니다.

 

2010년 6월 25일

글쓴이;전.국방대학원장 .예비역 육군 소장 한광덕

댓글목록

다니엘님의 댓글

다니엘 작성일

박대통령때 그렇게 잘나가던 정보부가 김영삼때에는 개판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무궁화꽃이 피었읍니다..는 정말 허무맹랑한 소설에 불과한 것일까?
박통정치의 핵심이 정보부에 있었다는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말을 할 자격이

5,6공정치는 군인이용 정치, 박통은 정보원이용 정치.
전쟁이 허구헌날 일어나는것도 아니고 평상시엔 정보부가 더 중요한것인데
그점을 잘알았던 박통과는달리 56공 전노통은  군인밖에 몰랐다.참으로 어리석다.

그래서 군인들로 정치를 하니까 5,18이 발생한거고..정보부가 잘했다면
그런일이 생길수도 없었던..
언제였나..야구하던 사람이 정보부 최고책임자가 되는걸 본적이 있다.
이게 무슨 코미디인지..

6.25전쟁도 멍청한 미국정보부의 책임이 크지 않나?
감사도 안받는 무한자금을 이용해서 쓸데없는 일에다 돈을 펑펑 쓰면서..
이사이트에서 그렇게 질타하는 작금의 사태가 한국과 미국의 돌대가리 정보부 때문이라는거
아직도 모르나?

FBI의 전설 후버가 미국 국민들(민간인,주요인물 총망라)의 동향을 손바닥보듯이 파악한게 비록 불법적 요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게 얼마나 국가안보에 중요한 것인지 아직도 모르나?

세계최고의 정보조직을 운영하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운영중인 정보부는 왜 이모양인가?
모사드 10분의 1이라도 해바라.

이렇게 개판인 중에서도 그나마 한국의 저력이 이만큼이라도 남아있음이 천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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