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保守)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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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소리 작성일11-06-09 00:01 조회2,24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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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순서가 있다. 그 변화와 운동은 인간관계와 생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우리는 이런 가치를 '질서'라고 말 한다. 선후(先後)가 뒤바뀐다든지 나중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앞서게 되면 질서는 흔들리며 깨지게 된다. 예컨대 여름이 봄보다 먼저 오는 일이 없으며, 가을이 지나면 겨울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사실 인간은 자연이 아니기 때문에 순서와 절차를 뛰어 넘는 것을 창조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자위한다. 하지만 한편에서 연령의 상하관계의 경직성이 일의 능률성을 해치며, 젊은 세대들의 진출을 저해시킨다고 비판하기도 받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 한 가지 관념에 빠져 더 새로운 것을 개척하지 못한다고 '보수' 라는 이름을 붙여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시대는 복잡성과 다양성이 버무러진 변혁(變革)의 시대이다. 뒤집어 보면 변혁의 폭풍속에서 요구되는 지혜를 찾아야 하는 전환점일 수도 있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어쩌면 이른바 '보수'를 자임하는 세력들에게 이 시대가 묻고, 또 요구하고 있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봐도 스스로 회초리를 채찍하지 않고서 개혁이 되는 사례는 없었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오늘의 보수세력들은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옹호와 시장경제를 그럴 듯 하게 외친다. 하지만 막상 정치개혁, 경제개혁, 사회개혁에 앞장서기는 커녕 뒷장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예 문제가 터지고 난 뒤에야 뒷북을 치거나 아예 뒷걸음친다. 오늘의 보수가 받고 고민해야할 질문은 무엇일까?
보수세력은 있어도 보수이념은 없다? 보수세력의 오류 가운데 하나는 니힐리즘이다. 자문해 본다. 우리사회에서 보수주의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있었을까? 가치의 정립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 그 정체를 규정할 수 없는 한국 보수주의 현실 속에서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땅에는 깃발도 꼽기 전에 삼폐인을 먼저 터트리는 보수와, 그 깃발을 꼽아 본 적도 없는 자들이 마치 꼽아 본 것처럼 허세부리는 진보라고 자임하는 세력들만이 득세하고 있다. 질서화된 자유야 말로 향유할 만한 유일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유다. 즉 무슨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보수는 추구하는 가치를 보듬고 지키는 것이다.
이 복잡한 시대에 '원칙이 밥먹여주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 질서가 잡히고 윤리가 바로 선다. 이것이 진정한 보수의 가치가 아닐까? 가령 질서 없는 사람들을 우리 집에서 재우면 지저분해지 듯이 질서 없는 사상은 우리들의 두뇌를 혼란하게 한다. 정치에 둔감한 사람도 감(感)이라는 것이 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에도 두려워 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두려워 해야 할 때 두려워 하지 않은 것은 더 어리석은 일이다. '천하 사람들이 쫓아가는 것은 오로지 세(勢)요, 서로 다투어 얻으려는 것은 명(名)과 리(利)뿐이다' 연암 박지원의 말이다.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을 것이요, 민심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 것이다. 그 중심에 정치가 있다.
결국 정치는 실행되어야 하고 정당은 정권획득이 목적이지만, 나름대로의 이념과 정책을 통해 정권을 획득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올해 현충일 경향신문에 '이것이 한국 보수의 현실이다' 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가 눈에 띈다. 요즘 우후죽순처럼 태어나는 보수단체를 빗대어 '현충일인 6일은 보수의 날이였다'라고 마치 빈정거리는 투로 쓴 것이다. 양적 팽창에 비해 미미한 질적 향상과 비교시켜보면 일면 틀임이 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면 그것 나름대로 가치는 있다. 지킬 때 가치가 더 빛나는 것이 보수라면 분명히 존재의 이유가 있다. 보수는 질서와 추구하는 가치가 같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에서 호전적(好戰的) 무질서의 상징인 김일성 3대세습 집단이 버티고 있는 한 365일 보수(保守)의 날이 되어야 할 당위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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