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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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공청년투사 작성일11-06-07 22:44 조회1,9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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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전두환 vs 광주혁명
인민재판이 있었다
전남대 교환 교수 였으며 , 자타가 공인하는 '5.18 전문가' 로서 2010년 '오월 어머니상' 까지 수상한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 1980년 광주혁명 기간 동안 인민재판이 열렸으며, 처형이 있었다" 라고 한다
5월 25일, 미국무장관 머시키의 전송 : "광주에서의 상황은 용납할 수 없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그의 정보원에 따르면
"온건파 시민위원회가 통제력을 상실하고 급진파가 상황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인민재판이 열렸고 몇 건의 처형이 벌어졌다.
학생 시위대는 혁명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하는 신원 미상의 무장급진세력들로 대부분 대체되었다. "
5월 26일 글라이스틴이 워싱턴에 보고하다 : 광주에서 상황은 더 나쁜 쪽으로 급격히 전개되었다. 민병대, 무장한 급진파의 복귀 , 심지어 인민재판과 처형에 관한 보고들이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
주유소의 주인들이 대부분의 시위대 차량게 기름을 조금씩 밖에 넣어주지 않았다. 다른 시위대 차량이 와서
기름을 달라고 하는데 없다고 하면 격해진 시위대가 주유소 시름들을 막무가내로 부숴버릴까 염려되었기 떄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기름을 분재해 주었기 떄문에 금방금방 기름이 떨어졌고 , 그럴 떄마다 차를 팽개치고 다른 차를 타곤 했다 [ 윤석진 , 5.18 연구소]
혁명군은 운행되고 있는 차량을 징발하고, 일반들이 사용하는 챠량에 대한 등록작업을 했다. 징발차량의
경우 흰색 페이트로 챠량 앞뒤에 크게 번호를 쓰고 운전자들의 신원을 확인하여 기록한 후 등록된 차량을 종류별 분류해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였는데
소형차량은 구호와 연락용으로 , 대형차량은 병력수송과 시민수송 그리고 보급과 연략용으로 , 균용지프는 지휘통제' 순찰 그리고 헌병용으로 , 군용트럭은 전투업무를 담방하도록 했다
광주 혁명 이전까지 전라남도 도청건물이던 혁명정부 건물에 출입하게 위해서는 혁명정부가 발급하는 '출입증' 지참해야 했다
치안대를 구성하여 폭력, 방화 , 절도 등을 단속하는 등 경찰업무를 담당하록 했다. 또한 특정 경제 범죄를 단속했는데 그것은 폭리를 엄금하여 생필품 품귀현상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었다. 경찰업무를 하는 치안대 이외에 지역경비를 담당하는 지역방위대 창설했다. 이런 면에서 당시 혁명정부는 군사정부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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