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당시 연 고대생들은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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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기병 작성일11-05-28 21:11 조회1,794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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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광주 5.18사건은 성공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추모공원도 조성되었고
국가에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희생자들을 위한 다양한 보상책도
마련해주었다.
5.18측으로선 이 이상 가는 영광이 없을 것이다.
허나 사회의 일각에선 5.18민주화운동의 순수성에 대하여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니까 5.18민주화 운동은 알려진 그 이름과는 달리
북한과 국내의 불순세력들이 연계하여 일으킨
반국가 무장 폭동이라는 것이다.
그를 입증하기위해 탈북군인들이 증언을 하고 있으며
지만원 박사는 당시의 공적 기록들을 연구 분석하여
5.18사태의 발단과 전개과정에 있어서의 비상식적인 부분,
그러니까 도저히 순수 광주 시민들의 소행이라고 볼 수 없는
부분들을 북한 특수군의 개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5.18측에서는 당시 서울서 600여명의 연 고대생들이
광주에 내려와 시위에 합세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양측 공히 인정하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과연 무엇이었느냐의 정체여하에 따라 5.18이 순수 민주화운동이었는지
아니면 북한특수군 개입에 의한 반국가 무장폭동이었는지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부탁컨대 이제 나이 50줄에 접어들었을 당시 연 고대생들은
필히 나타나 증언하기를 바란다.
‘내가 당시 연 고대생이었소.’라고 말이다.
일반인들의 판단으로선 만일 당시 광주시민이 아닌 일단의 무리들이
북한군이었다면 나타날 리 없을 것이며 연 고대생들이었다면
영광스런 5.18민주화운동 거사에 동참했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나타날 것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너무나 이상하게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왜 아직 단 한사람의 연 고대생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정하거니와 그들은 역시 북한 특수군이라는 것이다.
5.18은 말해보라....!
댓글목록
기린아님의 댓글
기린아 작성일
한 학교에서 300명씩 움직인다면은, 분명 연고대의 전교생은 전부 다 자세하게 알고 있어야 맞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친구 중에 최소 1명 이상은 광주에 내려갔을 확률)
그 때 입학정원을 저도 잘 모르지마는, 총 학생이 만 명이라고 가정한다면(적게잡은 수치), 연고대 합쳐 최소 2만명 + 교수진, 운영진, 학생 가족들까지 최소 10만명은 증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10만명 중 단 한 명도, 그런 일에 대해 말 한 적이 없으니,,,
10만명 중 단 한사람도!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
바로 그러한 이유로 5.18은 북한 특수군이 개입한
반국가 무장 폭동이었다라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