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대생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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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freesky 작성일11-05-25 09:50 조회2,0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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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1)-정명석과 처음 만나다.
이 엑소더스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읍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좀 도울수 있겠느냐고 ...
정명석의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에 관한 진행내용에 대한 예기를 메일로 받았읍니다...정말 할말이 없더군요.
제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는, 장난처럼 글을 올리는 사람이 됬건 ,가슴속에 응어리(전 MS라면 전심으로 섭리를 뛴다는 표현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가 있어서 괴로운 사람이 되었건 , 비록 작은 목소리가 될지언정 ..진실을 예기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믿는 건, 언젠가는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거라는 믿음이 있읍니다.
저는 1992년 부터 1994년까지 MS로 활동했으며 , 예술단에 있었지요. 오래된 예기지만 , 올려보도록 하겠읍니다.
<<1992년 , 저는 지방 모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집안에 큰 사고가 나서 어려운 처지였읍니다. 그 당시 저는 지방 미인대회에서 어떤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읍니다. 그때 쯤 학교캠퍼스 벤치에 앉아있는데 제게 다가오더군요. 착하게 생긴 여학생이 ...그 친구는 알고보니 간사라는 직책이었던것 같읍니다, 곧 바로 30개론 공부를 시작했죠 .그리고 수료식이 무엇인지도 배웠죠 - 곧 그것이 말씀으로 태어나는거라고 , 물론 지방교회에서 수료식은 끝냈지만, 그때 들은 이야기가 정명석에 관한 이야기였읍니다.
어느날 , MS들과 함께 본부 ( 지방교회 본부) 를 방문했죠. 쉽게 예기하는 목사님 부부와 몇몇 MS들 , 그리고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저를 평창동으로 데리고 간 보고자들이 세명 정도 있었죠. 그 친구들 역시 저처럼 대학 재학생들이었죠.
며칠 뒤, 그 친구들이 저를 부르더니 서울로 올라갈수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버스를 타고 평창동으로 올라갔죠.
왜 정장차림이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이층 거실에 저말고 다른 곳에서 온 많은 여자들이(아마도 30명 정도..) 아주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었는데 저 역시 그 정명석이라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기위해 하룻 밤을 지세웠던걸 기억합니다. 거실에는 여기저기서 보내 온 선물들 (수석, 장식품등 )이 있었구요.
저를 데리고 간, 보고자 역시 평창동에서는 오로지 기다리는거 외에는 방법이 없는것 처럼 ..초초하게 기다렸던것을 기억합니다.
아침이 되자 , 정명석이 방을 나왔지요.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여자들이 주위에서 눈치보고 조심스러워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할수 없었읍니다.
저를 데려온 보고자가 , 저를 거실에 남겨두고 먼저 방에 혼자들어가더군요, 한
참 후에 저를 불렀읍니다.
이후의 부부은 자세히 예기하지는 않도록 하겠읍니다. 아시는 분들은 충분히 너무나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헌데 처음 정명석을 만나면서 아주 모욕적인 기분이 들었던것을 쓰고자 합니다.
분명히 옷을 벗기고도, 그는 오랜동안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게 불만인듯 훝어보기만 하더라구요. 그게 무엇이었을까요 ? 글쎄요, 인간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누군가의 앞에 서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
일종의 모욕감이었다고 밖에 저는 표현할 길이 없네요. 또한 그는 정상적인 발기를 하지 않았읍니다. 또한 끝나고도 사정을 하지 않았읍니다. 즉 정상적이지 않았읍니다.
더욱 어린나이에 치욕적이었던건, 깨끗히 해야한다고 하면서 그의 침을 발라 손가락으로 휘젖듯 아픈데도 국부를 거칠게 다루고 , 제가 소리를 지르자 제 입을 틀어막고 , 저를 데려간 보고자가 방문을 틀어 잠궜던 것을 기억합니다.
귀에 스치는 많은 말들을 뒤로하고 , 오직 제게 드는 생각은 "남자가 여자를 강제로 가졌을 경우, 그 여자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소유하는게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일었읍니다.
오늘은 이만 줄이겠읍니다.
답장을 하실분들은 하셔도 됩니다.
아픔을 위로하고 같이 나눌수만 있다면 .....
작성자 : 5월 조회수: 414 , 줄수: 35
스토리(2)- 지방 보고자들
어제를 시작으로 제가 알고 , 제가 직접 경험했던 일들을 올리기로 했읍니다.
이 스토리는 정확히 시간적인 순서를 따르지는 못했읍니다.
<<정명석과 연결(?)된후 조심스럽게 알게 된 사람들이 , 지방 보고자들이었읍니다. 그때 당시는 제가 속해있는 본부교회에 (제가 알기로는 ..) 6~7명 정도 있었읍니다. 저는 보고자는 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보고자들과 친할수 있었읍니다.
이제부터는 보고자 언니들과 같이 지내면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려 합니다.
어느날, 나이가 많은 보고자 언니집에서 애인들끼리 모이게 되었읍니다.
집에 갔는데, 그 언니가 물어보더군요. - "선생님이 사랑해주셨어 ?" "혹시 용돈은 안주시든 ?" 그때 저는 평창동에 갔을때 차비하라고 제 손에 쥐어 진 빳빳한 만원짜리 몇장을 기억했읍니다. "선생님 너무 멋있지?" "이제 넌 구원 받은 거야" "나도 처음에는 잘 몰라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 이게 바로 하늘의 비밀이잖아, 선생님이 이땅에 오신걸 감사해야지" "참 너도 알다시피 이건 하늘과 애인들끼리의 비밀이야" 그리고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건 "너 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예기는 누구한테 하면 안된다. 알지? "
이렇게 저는 그 보고자들 틈에서 조금 마음이 편해졌던것 같읍니다.
앨범을 본적이 있었는데, MS라면 한번쯤 가지고 있을 법 한 정명석의 사인들 ..
정명석의 사진, 그리고 그 언니의 젊었을 적 사진 같은데 , 정명석 옆에서 찍은 사진이 몇장있었읍니다. 그 언니 말중에 생각나는 건 , "..이때가 좋았지. 암튼 이제 네가 잘해야 한다 ..." 처음에는 이해할수 없었죠.
보고자들에 대해 몇가지 궁금한게 있었지만, 차츰 제가 겪으면서 그 시스템을 익혀갔읍니다.
월명동이나 평창동을 가면 나이 든 애인들은 정명석에게 직접 나가지를 못했읍니다. 제 경우도 비록 제가 보고자는 아니었지만 , 최근에 연결된 덕분에 정명석에게 자주,가까이 갈수 있었고 , 언니들의 부탁을 받아 가끔 정명석에게 나이가 든 언니에 대해 만나달라고 말을 했읍니다. 그리고 가끔 언니와 둘이 또는 그 언니만 따로 방에 들어간 적도 있읍니다.
언젠가 월명동에서 축복식 면담을 위한 모임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월명동에 머물때였읍니다. 축복식 면담 신청을 한 언니(나이가 많았고, 정명석과 연결이 됬던)와 잠깐 예기했었는데, 그 언니는 절망적으로 예기했읍니다. "선생님이 이번에도 허락해주시지 않으면 어떡하지? ..."
이런 부분에 대해 , 게시판에서 많은 말들이 올라와 있더군요.
때로는 읽기에 거북한 표현들도 있구요.......
갑자기 생각나서 몇자 적어 보렵니다.
<< MS라면 잘 아실겁니다. 심정권을 가져온다는 것 ! 하늘의 심정을 맞추는 것 !즉 정명석의 심정을 맞추는 일이지요. 그것이 우리가 배웠던 데로 섭리의 길이니까요. 세례요한처럼 그 시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여 예수님을 죽인것 처럼 , 이 시대 역시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하여 그 섭리 역사를 그르친다면.......... 저 역시 그렇게 알고 뛰었던 MS였읍니다 >>
작성자 : 5월 조회수: 401 , 줄수: 21
스토리(3)-월명동에서
어찌보면 이 게시판은 전 MS들 보다, 현재 MS들이 많이 보면서 모니터링 하리라 생각한다. 어떤 반박을 하건 , 난 진실만을 말할 뿐이다.
92년도에는 지금처럼 월명동으로 들어오는 큰 길이 잘 닦여있지 않을때였다. 불편함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버스를 타고 내려서 생가 뒷산으로 난 꼬불꼬불한 길을 걸어 올라다니는걸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때는 작업반을 위한 막사가 있었고, 아직 컨테이너는 많이 들어서지 않을때였다. 정명석 생가또한 전적으로 개조되기 전이어서 서재는 밤에 보고자들이 불편한 새우잠을 자는곳이었고 부엌도 역시 개조전이어서 예전에 쓰던 찬장이니 ..그런것들이 그대로 있었던걸 기억한다.
애인들 , 보고자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정명석방에 들어갔다. 보고명목으로 , 상차림과 함께, 간식거리를 들고 등등 ..내가 아는 건 이런 정도이다.
아래의 이야기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용서 할수 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본인이 사과하고 싶다.
하루는 그의 방에서 정명석이 예기했다. "내가 비밀하나 알려줄까 ? 이건 이 시대 선생님이 왔으니까 푸는거야. 성경에도 나와 있잖아. 재림주가 다시 말씀을 다 풀겠다고 .. 예수님도 우리 관계처럼 사마리아 여인이랑 애인사이였다. 알잖아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마지막까지 울던 여자들 ...다 애인들이었다니까 .정말로 그들이 애인 사이여서 그렇게 까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오래갔던 거여 ~
"
전통적으로 카톨릭 집안이었고 , 일반 교회도 다녔던 내게 이말은 충격일수 밖에 없었다. 정말인가 ? 정말 그랬나 ? 그 역사에 비밀을 이제야 와서 , 이제 재림주가 푸는건가 !!
이건 또 하나의 에피소드이다. 앞뒤 다른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이말 한마디와 그의 모션" 너 알어 ? 하나님 자지는 이떼만하다 ~ "하면서 그의 검고 맨질맨질한 팔뚝을 내 앞에 불쑥 내밀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쓰지 않겠다.
아 ~.....과연 정말 하나님이 아니래도 좋다. 신이 있다면 , 신앞에서 이런 예기를 뱉을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
구역질이 난다.
작성자 : 5월 조회수: 256 , 줄수: 28
스토리(4)-구타와 폭력에 대하여
어제 올린 글에 대해 누군가가 이런 답장을 써놓은 걸 봤다.
"당신 어떤 업을 짊어지려고 이런글을 쓰오?" ...오히려 내가 역으로 묻고싶다. 이글을 올린 사람이 아닌, 바로 정명석에게 말이다.
솔직히 본인은 정명석에게 직접 구타등을 당해본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MS에 있는 동안, 구타를 당한 본인에게 들었던 일도 있고, 애인사이에서 쉬쉬하며 벌어졌던 일들도 있다.
본인이 94년에 MS를 탈퇴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던 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 언니는 약 10년정도 MS로 활동을 했었다. 그 언니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하늘에 대한 마음이나 정명석에 대한 심정..이러한 것들은 정말 너무나 순수하고 고결했음을 알고 있다. 왜냐면 내가 MS에 있는 동안 그 언니 집에서 신세를 많이 지고 같이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앨범에는 그 언니와 내가 나란히 기도굴앞에서 환한 얼굴로 웃고있는 사진이 있다.
오늘은 ,그녀가 정명석에게 폭행을 당하고 , 결국 MS를 탈퇴하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 일을 쓰고 싶다.
<<월명동 생가 옆 기도 굴에서 정명석과 면담을 하던 중이었다한다. 정명석이
기도굴에서 그녀에게 어떤 장부를 보여주면서 , 돈 예기를 하더란다. 자신이 허락해서 개인사업을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이게 뭐냐고 ...>>
그녀의 예기를 듣다가 내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이전에도 정명석에게 쭉 사업 수익의 일부를 갔다바쳤느냐고 ..허나 그녀는 말이 없었다. - 중략 -
<< 그러다가 그녀가 이건 아니다 싶어 섭리를 나가겠다고 예기했단다. 그때 정명석이 욕과 함께 , 옆에있던 플라스틱의자를 집어들고 몸의 여기저기를 구타하고 , 구둣발로 가슴이며 허리며 몸을 짓이겼다한다. 정말 그녀는 ..너무 아파서 ....다시는 다시는 나가지 않겠다고 예기한 끝에 결국 동굴 밖을 나왔다한다 .
그때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볼까봐 창피해서 얼른 다른데로 피했는데, 머리쪽이 뭔가 이상해서 만져보니 머리가 찢어져 피가 머리카락과 엉겨있더라는것 ! 그녀가 가슴에 있는 것을 다 토해내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나 역시 그녀와 마주 앉아 눈물을 흘렸다 >>
얼마전에 기쁜 소식이 들렸다. 그녀의 딸이 돐을 맞았다고 ..기뻤다.
아주 건강하고 예쁜 딸이다. 아주 그녀를 꼭 닮은 ..
갑자기 정명석의 저주 스러운 말이 생각난다. <<너희들, 선생님 배신하면 알어 ?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벌이 바로 하늘에 대한 배신이여. 선생님 배신하고 결혼들 혀봐. 느그들 다 유산될거고 병신새끼 나을거여 ...>>
어찌 일반 MS들이 이런 말들을 상상할수나 있겠는가 ?
오늘은 무사히 MS를 탈퇴해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친구들....그들의 행복을 바란다.
작성자 : 5월 조회수: 261 , 줄수: 32
스토리(5)-눈썹 이야기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할수는 없다 또한 어떤 동기로 정명석이 이런 예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여름날 , 정명석이 엄포를 놓았다. 여자 MS들 눈썹 그리는 모양에 대해서 ..그때당시 유행했던 여자들의 눈썹 모양은 눈썹의 2/3 지점에 각을 넣어서 좀 날카롭게 그리는 그런 스타일이었던걸로 기억하고 있다.
헌데, 그런 눈썹 모양은 사탄들의 눈썹모양이라며 , 모든 MS들은 반달모양으로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리라고 말씀이 선포 (그때 표현이다) 되었다. 섭리의 여인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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