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적인 恨... 서편제와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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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기병 작성일11-05-22 19:54 조회1,905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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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엷게 또는 짙게 나름의 恨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한은 하늘이 有限者에게 내려준 자연스런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통해 사람들은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전라도의 한은
서편제의 김명곤이가 제 딸 송화의 눈을 고의로 失明시켜 증폭시키듯,
스스로 만든 한, 작위적인 한, 그러니까 自業自得의 성격이 매우 강한
뒤틀린 한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타 지역 사람들이 그 한을 같이 안고 가기엔
힘에 부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이라던가 ‘김대중 大選 몰표’ 같은 사건도
알고보면 일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송화 눈 찌르기 식 행위'와
다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이 한을 부르는 것이죠. 한의 惡循環입니다.
그 오버액션이 타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거리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비탈로즈님의 글에 靈感을 얻어 글을 올렸습니다.)
댓글목록
비탈로즈님의 댓글
비탈로즈 작성일
눈이 몸의 90%라고 하는데요.
눈이 없어도 인간승리 드라마는 가능하겠지만 업적을 남기거나 큰 일을 하는 것
하물려 일상 생활도 불편합니다. 눈을 잃은 서편제 송화(오정해)는 판소리라는 목적에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것도 상상과 픽션의 세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인생은 망가진 것입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도 스쳐간 남자겠지요.
예수님도 부처님도 아인슈타인도 눈이 없으면 성인, 세계적인 과학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후견인이 없는 송화는 유진박처럼 활동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말이 서툴고 음악 밖에 모르고 순진한 유진박은 남에게 이용 당하다가 언론의 도움을 받고서야 헤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송화의 인생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이룰 만한 정말 대단한 판소리라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서편제를 쓰고 연출 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을 극대화시키려고 시도한 것이 실명을 통한 한의 응축으로 조성된 환경 속에서의 판소리에 의한 판소리를 위한 판소리의, 거기다가 의남매가 상봉도 외면하면서까지 이루려던 비현실, 우주 속에서의 찰나보다 짧은 시간에 불과한, 명예조차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리려고 했던, 영화 속에서의 판소리 한판이었습니다. 거기에 백만 관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예찬을 했고, 그 이면을 들여다 보지 않고 감전되었더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픽션적 요소를 허용하니 감동도 있었으므로 그 자체로 성공작으로 평가해 줄 수 있지만, 친딸이 아니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는 의문을 부르는 양부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유사 천륜 파괴 행위를 임종 직전의 사죄 한마디로 얼버무려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송화의 딸이 어머니의 악순환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답습한다면 판소리는 뭘까요?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판소리는 한의 악순환... 한이 한을 부르는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