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케 작전의 배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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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1-10 23:38 조회1,920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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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케 작전의 배경
베트남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1번 도로의 중부지역에서 갈라져 나온 19번 도로는 캄보디아 국경과 인접한 내륙지방 플레이쿠에 주둔한 월남군 제 2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였다.
퀴논 항에서 식량, 탄약, 유류, 장비 등 각종 보급품을 적재한 대형차량이 매일 1백여 대 이상이 통과하는 주요 군사도로였다.
앙케 패스 19번 도로와 앙케 고개에는 원래 미 제101 공수사단의 예하부대가 장악하고 있던 책임 전술지역이었다.
미 제101 공수사단이 1970년 7월에 본국으로 철수함에 따라 맹호 기갑연대 제1대대 1중대가 인수하여 지키고 있었다.
맹호 기갑연대 제1대대 1중대는 19번 도로의 산악능선에 나있는 급커브를 Q-커브라고 명명하였다.
남서쪽 600고지에 제1중대 책임 전술기지로 점령하고 있었다.
이 19번 도로는 약 7.5km에 달하는 고개로서 이 통로는 해발 500m 내외의 산악지역인데다 원시림이 무성한 정글지역이었다.
일대의 주요지역은 앙케 고개의 정상인 638고지를 비롯하여 553고지, 544고지, 무명고지, 240고지, 168고지 등으로 높고 낮은 고지 군으로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638고지는 Q-커브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다.
앙케 패스 일대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요지였다.
19번 도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역할을 해왔던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다.
앙케 패스 638고지가 위치해 있는 지역은 제1중대 소도산 전술기지의 중대본부를 비롯한 전 작전지역을 감제 관측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이곳 638고지에는 미 제101 공수사단이 장악하고 있을 때는, 약 1개 소대규모가 파견되어 주둔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데 맹호 기갑연대 제1대대 제1중대가 인수하면서 그만 폐쇄해 버리고 말았다.
1971년 8월 주 월 사령부의 소대훈련 강화지시로 폐쇄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638고지는 제1중대 소도산 아군전술기지 보다 약 38m나 더 높은 천혜의 요새와 같은 아주 중요한 책임 전술기지였다.
전술 상,
월남전에서 주 월 한국군이 부대전술기지를 방어하는 작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임무였다.
부대와 중대의 전술기지 주변에 높은 고지나 적의 박격포 사정거리 안에 들어있는 지역이거나 취약한 지역에는 아군병력을 주둔시켜 부대전술기지 방어 작전을 하는 것이 월남전에서는 무엇보다도 기본 전술전략상 대단히 중요하였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앙케 패스 기갑 제1중대 책임 전술기지에서는 전략과 전술작전의 기본 방침을 무시하였다.
600고지에 위치해 있는 아군 전술기지 보다 약 38m정도가 높고, 적들의 직사포와 박격포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있었다.
이처럼 중요한 638고지의 전술기지를 폐 쇠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하던 매복 작전과 경계를 하지 않고 방치하였던 것이다.
약 3개월 동안 방치를 하였다.
때문에, 적들에게 아군의 허점을 노출시킴으로써 아주 중대한 실책을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작전 상 오판의 결과,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는 앙케 패스 638고지 방어 작전에 중대 실책과 허점을 적들에게 노출시키고 말았다. 월맹정규군의 대공세 감행으로 말미암아 발생하지 않아도 될 앙케 전투로 피아간에 수많은 전사자와 전상자가 발생했던 처절한 전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도, 패할 수도 있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피아간에 공방전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해와 희생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앙케 작전을 지휘했던 지휘관들은 방어 작전에 실패한 것은 반성은커녕, 진실을 강요된 침묵 속에 숨긴 채 역사는 왜곡되고 미화된 드라마와 조작된 영웅담으로 대신 채워짐으로써 인류 전쟁사에 오점을 남기게 되고 만 것이다.
한편, 월맹정규군 제3사단 12연대와 제95B연대 63대대 제450특공대대 등 증강된 1개 연대 병력이 638고지 밑에 있는 350고지 능선으로 뻗어 내린 개활지 저지대로부터 638고지 뒤쪽 능선을 따라 올라오다가 능선 중간쯤 천연동굴에 월맹정규군 제12연대 본부 상황실을 설치하였다.
계속 능선을 따라 올라오면서 638고지 정상과 그 주변 19번 도로의 일부분을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가 주인 없는 빈집에 들어오듯 무혈입성, 점령하게 되었다.
맹호 기갑연대 제1중대 전우들이 638고지 뒤쪽에 경계와 매복 작전을 하기 위해 벙커 두 개를 구축해 놓았다. 한국으로 철수준비와 소대 강화 훈련을 하느라 경계와 매복 작전을 나가지 않고 방치하였다.
때문에, 월맹군들이 무단으로 이 두개의 벙커도 점령하게 되었다.
적들은 이 두개의 벙커를 천혜의 요새처럼 이용하였다.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가 철통같이 방어 작전으로 사수를 하였다.
아군은 난공불락과 같은 638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막대한 전비와 엄청난 희생과 피해가 발생했다.
주 월 한국군 맹호용사들과 지원 나온 백마용사들과 미 항공 폭격과 무장헬기 폭격의 지원을 받으면서까지 천혜의 요새, 638고지 탈환작전과 차단된 19번 도로를 개통하기위한 物量戰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 계속 -
댓글목록
stallon님의 댓글
stallon 작성일
우선 베트남전 참전자의 한사람으로서 안케눈물의 저자 권태준 전우님의 치열했던 638고지 탈환작전에 얽힌 전투체험수기를 이곳 시스템크럽 회원님들에게 소개하게 됨을 더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생사의 기로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권태준 전우님(전 주 월 맹호부대 기갑연대 수색중대요원)의 진솔한 전투체험수기가 많은 분들에게 읽혀져 과연 공산주의 침략자들과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위한 혈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가 자세히 또 가슴깊이 새겨지기를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권 전우님의 건투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자랑스러운 주월한국군(www.rokfv.com)운영자
만토스님의 댓글
만토스 작성일stallon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쟁과 전투기록에서 후세는 반드시 배울점과 반성해야 할 점을 찾아 내서 교훈으로 삼는 것이 전쟁역사를 배우는 목적 중에 가장 중요한 항목일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역사기록에 왜곡과 날조가 깃들어 있다면, 후세는 역사에서 배울 점이 모두 사라지고 말겠지요. 제주4.3반란의 역사, 5.18폭동반란의 역사, 연천530GP 사건 등도 현재 공식적으로는 모두 왜곡 날조된채로 국민들 앞에 버려져 있습니다. 이런 국가의 역사를 사실대로 바로 잡으려면 이처럼 사건의 중심에서 체험한 분들의 양심적 기록이 나타나야 하겠지요. 감사합니다. 권 파월 전우님의 건투를 빕니다.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아! 정말 고맙습니다. 역사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안케님의 댓글
안케 작성일
주월 한국군 운영자님, 만토스 선생님, 금강인 선생님 저의 글에 이렇게 댓글로 격려와 용기를 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저로서는 무한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내 행운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