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은 군이 앞장서고 국민이 주인인 시민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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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고아제 작성일11-05-18 13:36 조회1,749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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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구테타를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혁명은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체제를 바꾸는 것이고
구테타는 권력 내 권력 싸움 정도로 이해 할 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럼 1961년 당시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이 혁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었느냐를 따져 봐야 할 것입니다.
국민소득 68불 짜리 국민이었습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난 후 8년쯤 지났지만
여전히 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말마따나 화재로 불탄
폐가 상태였습니다.
그 전해에 315 부정선거에 이은 학생이 주도하고 시민이 합세한
419혁명으로 장면 정부가 들어 섰으나 국가 경력 능력이
전무하여 무능의 극치를 이루어 5.16혁명이 일으났을때도
국민들이 별로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반기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당시 테크노크라프트의 거의가 군부에 있었습니다.
미 육사에서 2년을 교육 받은 엘리트 장교들이 군내 20~30%였습니다.
그나마 국가 경력 능력이 있는 집단은 현대식 교육을 받은
군부 밖에 없었든 것입니다.
지금 북한을 봅시다.
북한의 GNP가 대한민국의 1/10인 2000불 정도 됩니다.
그것도 워낙 환율이 낮아서 그렇지 실제는 50불도 안됩니다.
철권통치하 이기는 하지만 북한 동포들이 혁명을 일으킬
역량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북한도 혁명을 하려면 군부가 앞장 서고 동포들이 합세해야 할 것입니다.
1961년 당시의 대한민국은 현재의 북한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군이 앞장 설수 밖에 없었습니다.
혁명을 일으키고 장면을 잡으러 가니 수도원으로 도망
가 버렸고 윤보선은 왜 이제 왔느냐고 했고 군대 동원도 반대 했습니다.
혁명을 막아야 할 정부마저도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울고 싶은데 빰 맞은 격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권력 내 권력 싸움이 아닌 국민이 원하는 혁명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총리가 도망가고 대통령이 반기는 꼴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5.16혁명은 군인이 나섰지만 실은 국민이 나선
진정한 시민혁명인 것입니다.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1961.5.16 발발 시! ㅡ ㅡ ㅡ ㅡ ㅡ ㅡ 당시 대통령 '윤 보선'은; '장 도영' 총장님과 '박'정희' 소장님과를 청와대에서, 긴급 면담.접견 차 만나, 무심코 나온 첫 마듸 말은?! ↙
"올 것이 왔구면!" {"The thing should come has come!"}
내종에 너무나도 유명해지고 만, 탄식성 튀어 나온 자연스런 신음성 발언! ,,. /// ^*^
저는 당시 江原道 원주에서 고1이던 때였는데; 原州는 온 市內가 발칵 뒤집어졌었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