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렬장군의 증언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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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늘 작성일11-05-18 15:29 조회3,0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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肉彈10勇士의眞相이라는 이름으로 김익렬 장군의 證言이 2003년에
우리 公刊史 [國防部 軍史]에 登載 되었다
登載된 證言內容은 아래와 같음
제1사단 제13연대 연대장 대령 김익렬
0 일시: 1964년5월4일
0 장소: 전국방장관 박병권 자택
0 대담: 국방주 군사편찬위원회
0 송악산지구 육탄10용사의 진상
# 세부 증원 내용
이 이야기는 1964년 5월 4일 14:30~17:00에 걸쳐 전 국방부장관 박병권댁에서 제5연대 창설에 대한 간담회 석상에서 김xx이 공개한 내용이다.
나는 당시 김석원 장군이 지휘하는 제1사단 휘하 제13연대장으로 있었다.
적이 송악산을 점령하고 피아 교전이 전개되었을 때 제11연대(연대장 최경록 중령)가 공격하고 있었는데 제 11연대가 지탱하기가 곤란하면 제13연대(당시 예비연대)가 투입되겠끔 대기상태에 있었다.
제11연대장은 송악산에서 격전중인 일선부대에 박격포탄을 보급하기 위하여 공병소대장(박모)으로 하여금 10명을 공동 지휘하여 박격포탄을 짊어지고 송악산으로 출발시켰다. 그러나 박소위는 지형을 숙지하지 못하여 이동도중 적과 불의에 조우하게 되자 부하들을 수습지휘하지 못하고 혼자서 탈출하였다.
대원 10명은 박격포탄을 진채 모조리 적에게 포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정보주임은 계통에 따라 사단 G-2에 보고하였다. 사단장 김석원 장군은 대노햐여 당장 박소위를 총살하라 하였다.
이때 변호한 것이 제11연대장 최경록 중령이었다. 사실상 박소위와는 친구지간으로서 일본 학병의 동기인가 하여 막역한 사이였다. 따라서 박소위를 총살에서 구출하기 위하여서는 사단장에게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정식보고를 하는데 있어서 "사실은 참모보고는 사실이 아니고 대원 10명이 모조리 포탄을 안고 적진에서 자폭한 것이라고 정정보고를 하게 되었다."
이 보고를 듣고 사단장은 그 자리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일본군에는 육탄 3용사가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육탄 10용사가 나왔다고 하면서 이 사실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최중령이 자기 친구인 박소위를 살리기 위한 일시적인 임시조치에 지나지 않는 허위
조작한 보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단장은 연대장의 보고를 사실로 알고 상부에 건의하여 대대적인 장례식 행사준비를 하였는데 당시 채병덕 참모총장은 장례식 하루 전까지 행사를 불승인하였다.
그러나 이종찬, 이용문 대령 등이 채총장에게 육탄 10용사는 국군의 전통과 사기진작에도 좋으니 행사를 하자고 권고하게 되어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채장군은 어느 정도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당시 김석원 장군과 채장군과는 남북교역문제로 극히 감정대립이 악화되어 있었거 채장군으로서는 육탄10용사를 냈다고 이박사에게 보고하여 김장군의 사기가 올라가는 것에 시기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하간에 장례식행사는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그러나 자폭했다는 육탄10용사는 포로가 되어 평양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살아 있다는 방송도 하고 가족들에게 편지도 보냈다고 한다.
김익렬 장군이 평양에 입성하였을 때 육탄10용사가 꽃다발을 받고 있는 사진을 보고 놀랬다고 하면서 이는 순전히 최경록 중력의 조작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김석원 장군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당시의 북한방송 등을 녹음한 것이 정부기관에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
(주: 박모 소위는 대령으로 승진하여 예편하였는데 이름이 불명하다.)
**國防部 軍史編纂硏究所 6.25.參戰者 證言錄 [200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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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證言에 對하여 2005年부터 오늘날까지 6年間에 걸쳐 抗議와 削除要求를 끈질기게 한바
語不成說로 一貫하던 國防部가 突變하여 金益烈 將軍의 證言을 公刊史에서 削除하겠다는
處理內容을 通報 받았음니다
6年間의 憤怒가 사라지고 오히려 國防部의 劃期的인 決斷[削除處理]에
敬意를 表하고 싶은 心情임니다
處理結果 通報
[조동흡 님]께서
2011년 05월 02일 申請하신 民願에 對한 國防部의 答辯이 登錄되었습니다
處理結果 [答辯內容]
處理日 2011.05.13. 16:31:56
먼저 貴下께서 6.25 戰爭 參戰勇士로서 轉役 後에도 軍과 6.25戰史에 對해 無限한 愛情과 關心을 갖고 계시면서 2003年 當 硏究所에서 發刊한 "6.25戰爭 證言錄"의 事實과 다른
證言 內容을 指摘하여 주신데 대해 感謝의 말씀과 함께 尊敬을 表합니다.
貴下꼐서 指摘하신 바와 같이 肉彈10勇士에 對한 追悼式 行事는 國家 報勳處가 每年
主管하여 實施하고 있는 國家次元의 行使입니다.
肉彈 10勇士의 戰鬪地域인 開城 松嶽山 戰鬪에 對해서는 6.25戰爭 公刊史에서 이를
正確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國防部 軍史編纂硏究所, "6.25戰爭史 : 戰爭의 背景과 原因 "1卷 2004. 500~502쪽)
貴下께서 提起하신 要求事項에 對한 當 硏究所의 措置 事項
1) 1段階(2011년5월31일한) :
"6.25戰爭 參戰者 證言錄"의 內容 中 該當 部分(69~70쪽) 잧체를 온라인 상에서 " 削除"(인터넷 서비스 영구 중단)하여 온라인 상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더 이상
流布되지 않도록 措置할 것임.
2) 2段階(2011년8월 한 措置) :
이미 配布된 "6.25戰爭 參戰者 證言錄"의 該當 페이지(69~70쪽) 全體 內容을 '削除' 하기 爲해 이에 대한 正誤表를 아래와 같이 作成하여, 當 硏究所에서 今年 6月末 發刊할
"6.25戰爭史"(제8卷)配付 時 함께 同封하여 各 配付機關에 配布함으로써 이를 修正하도록 措置할 것임.
"6.25戰爭 參戰者 證言錄(69~70쪽)" 正誤表(2003년 國防部 軍史編纂硏究所 發刊)
~을 : '제1師團 13聯隊 聯隊長 大領 金益烈 證言' 內容(69~70쪽)
~으로 : 該當페이지(69~70쪽) 全體를 '削除'
다시한번 貴重한 時間을 割愛하여 問題를 提起해 주신 貴下의 關心과 配慮에 對해
깊은 感謝를 드립니다.
아울러 貴下의 當 硏究所 및 6.25戰史에 對한 깊은 關心에 對해서도 無限한 尊敬과
함께 感謝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럼 貴下의 家庭에 幸福과 健勝하심이 늘 함께 하기를 祈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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