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사태! 1980년도에 있었던 5.18 광주사태가, 과연 광주 시민들의 순수한 '민주화운동'이었나, 아니면 북괴 두목 김일성과 그의 남조선 대리인인 김대중이 야합해서 저지른 무고한 광주시민을 볼모로한 '살륙폭동이었나'를 두고 피를 튀기는 열 일여덟 차례의 재판에서 피고의 입장에 섰던 지만원 박사가 드디어 개선 장군이 된바 있었습니다. 승소 했다는 얘깁니다.
그리하여 이제 겨우 숨을 돌리려는가 싶었는데, 그 죽은 김대중이가 땅속에서 기어나와 지만원 박사의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늘어진 것이 바로 이날에 있었던 이희호에 의한 대지만원 고소사건이었습니다.
그날에 있었던 자상한 방청 후기는 강바람 님의 글과 사진에서 자세히 설명이 됐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다만 '공판 기록의 불성실한 작성'을 두고 서석구 변호사님의 강력한 항의에 의해 다음재판(5월 26일 목요일 오후 2시) 때는 녹음 녹취를 하기로 재판부가 꼬리를 내리는(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것으로 이날의 공판은 바로 끝났습니다.
이 날의 공판 때도 전례와 다름없이 서울 근교는 물론, 춘천 구미 용인 음성 등 멀리 지방에서 많은 시스템클럽 동료 애국지사들이 오셨고, 특히 다음 재판 때는 '이 몸을 던져서라도 김대중의 정체를 입증해 주는 증인이 돼 주겠다'는 열성 애국지사도 계셨습니다.
가랑빈지 이슬빈지, 방사선이 어떻다는 그 비를 맞으며 시스템클럽 사무실로 옮겨 간 우리 10 여명의 동료들이 2~3 시간의 당소를 나눈 후, 그냥 헤어짐이 아쉬워서 그 이웃 먹자골목의 고깃집에 들려 아침이슬인가 저녁노을인가를 둬 병씩 각각 비워대다 보니 해는 이미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아틀란타에서 새벽에 오신 형님 내외분이 그렇게도 기다리고 계셨으나, 대충 알고 있는 미국 얘기 보다는 북괴를 탈출하여 월남한 2만 여명의 탈북인들 가운데 북한 괴뢰군 계급으로는 가장 윗 자리라던 상좌 출신의 김ㄹㅅ 선생과의 얘기가 더 가슴에 닿아왔기에 다시 술자리를 옮겨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자정이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런 하루 저런 이틀을 서울에서 지나다 보니 집엔 겨우 오늘에야 내려와 이제사 죽은 김대중과 시퍼렇게 살아있는 반공 애국지사 지만원 박사와의 한 판 승부 그 첫 결전 소감을 이렇게 마무리 해 두렵니다.
참고 / 다음 재판은, 5월 26일(목) 오후 2시 중앙지법 526호 법정입니다. 이 날도 많이 오셔서 지만원 박사의 우군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11.04.10. 김종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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