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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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완벽 작성일10-08-05 11:44 조회1,940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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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살아있는가?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인간사회에서는 정의(正義)라는 말이 존재해왔다. 인간사회를 위해서 이 정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이 정의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고, 또 정의 속에 있는 일들이 인간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종종 인간사회에서는 정의가 실종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고 또 정의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해 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는 인간사회를 밝히는 빛이라고 말하면 틀리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관찰해 온 바에 의하면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서는 온갖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부정과 부패가 만연했고 탐관오리가 득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기와 협잡, 거짓이 난무함으로써 그 사회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정의가 바로 서 있는 사회는 부정과 부패가 없고 탐관오리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사기와 협잡, 거짓이 발을 붙이기 힘들었다.
만일 우리가 정의를 잊어버리게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그 사회는 밝은 세상을 만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사회에서 정의는 필수 불가결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 정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정의를 제대로 설명하고 가르치는 적이 없었다. 이 나라가 건국된지 50년, 그리고 이 민족이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5천년의 역사 속에서 정의에 대해 토론하고 정확한 뜻을 발표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의가 없는 상황 속에서는 사회를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아무리 많은 법을 제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히려 인간 사회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기현상(奇現象)을 낳게 된다는 점을 아직도 사람들은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정의가 없는 사회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무서운가 하는 예를 중국의 고사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 노(魯)나라시대에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깊은 산을 넘게 되었는데 인가가 없는 산 속에서 한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공자는 왜 인적이 드문 이런 곳에서 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들리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동행하던 제자 자로(子路)를 보내어 사연을 알아보게 했다. 자로가 여인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혼자서 산 속에서 이토록 구슬프게 울고 있는가?"
그러자 그 여인은,
"여기는 아주 무서운 곳입니다. 수년 전에 저의 시아버님이 호환(虎患)을 당하시더니 작년에는 남편이 해를 당했고 이제는 자식까지 호랑이에게 물려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무덤을 만들어 놓고 울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자로는,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살지 않고 이 깊은 산 속에서 살다가 그런 일을 당했느냐."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이 산 속에는 호랑이는 있어도 탐관오리는 없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여러 제자들 앞에서
'탐관오리의 횡포는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가르침'이라고 말했다는 고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정의가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질이 높다. 따라서 부패나 부정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세상에는 그런 사회가 여러 곳에 있다. 반대로 이 정의가 상실됨으로써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그보다 더 많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를 볼 때마다 매우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점점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도 누구하나 그 진실을 밝히려는 자가 없고, 그 진실을 아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 신문에는 <건국 50주년> 이라는 특집이 연일 지면을 채우고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새로운 건국을 하자> 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프로그램들이 많이 방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구호들은 단지 그들만의 생각과 주장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세상에는 하나의 뜻이 있어서 그 뜻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고, 모든 현상은 그 뜻에 있어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뜻은 이치 속에 있는 일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이치는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제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만일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바로 서 있다면, 어느 누구도 자기만의 생각이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을 대중 앞에서 스스로 주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세상의 뜻을 거역하지 말아야 하고, 이치 속에 있는 일을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렇지가 않다.
정의는 있는 일을 밝히고, 인간 사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 사회를 존속하게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정의이다.
인간 사회에서 이 정의가 빠져버리면 아무 것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우리가 자동차를 움직일 때 그 동력을 전달하는 장치를 빼어버리면 자동차는 있어도 제 구실을 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의는 국가사회에 큰 힘을 만들어내고, 그 힘의 원동력이 되는 근본이다.
만일 우리가 정의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우리 자신이 옳게 살겠다는 모든 희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회에 정의가 무시되고 바로 서지 않는다면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정의가 없는 사회에서는 옳고 그름이 사라지게 되며 옳고 그름이 없어진 사회에서는 힘을 가진 자가 그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가 되어 버린다.
정의가 존재하고 바로 서 있는 사회에서는 통치자가 국민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정의가 없어진 사회에서는 통치자가 국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회의 법은 진실을 밝히고 진리를 밝히는 목적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통치수단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법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능력 없는 자들이 권력에 붙어서 크게 득세를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사회는 점차 망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들에 대해 결코 소홀히 보아 넘겨선 안 된다.
정의는 사회를 밝히는 빛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정의가 사라진다면 그 사회는 어둠에 덮였다고 말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고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댓글목록
유현호님의 댓글
유현호 작성일
정의의 다른 한 편에는 자비가 있습니다.
정의와 자비. 이것이 균형을 이룰 때 그 다음 스테이지를 밟을 준비가 됩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정의는 고사하고 무자비한 야만성이 넘쳐나죠.
그래서 국가의 격이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보기 힘들죠.
모외교관이나 최근 퇴진한 고위급 대학 교수가 국격의 업그레이드가 되었다고 노래를 불러도 절대 믿질 않습니다.
정의도 자비도 찾기 어려운데 어떻게 국격이 올라간다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