從北 민노당과 盲北 민주당 그리고 그 추종자는 북한으로 추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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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전원 작성일10-07-05 22:47 조회2,8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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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은 從北, 민주당은 盲北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민주당 행태 비판.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의 손에 망하고, 민중을 따르면 민중과 함께 망한다>(푸르타크)
趙甲濟
話題의 글을 많이 쓰는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오늘 칼럼(아래 일부 발췌)에서 '엉터리 조사위원을 추천해놓고는 조사단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민주당을 향하여 "盲北主義라는 미망의 춤을 추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從北에 이어 盲北이란 造語가 등장하였다. 從北은 북한정권 추종세력이고, 盲北은 북한정권에 대하여는 맹목적으로 비호하려드는 세력을 말하는 듯하다. 從北은 흔히 민노당을 가리키는데, 민주당은 盲北이란 별명을 얻었다. 從北과 盲北이 결합되면 무슨 괴물이 나올까? 反北으로 성공한 대한민국 안에서 이런 괴물이 등장하였다는 것은 한국사회에 레드 바이러스를 잡아먹는 抗體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抗體의 저항력을 강화하는 임무를 맡은 자리가 대통령이다. 李 대통령은 '이념無用論'과 '中道실용론'을 선포, 抗體의 역할을 조롱하였다.
<그런 민주당 의원들이 공동체를 공격해서 젊은 군인 46명을 죽인 살인자를 규탄하는 걸 거부하고 있다. 그런 살인자를 감싸고 있다. 엉터리 인사를 조사위원이라고 추천해놓고는 조사단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천안함 조사단은 세계가 인정한 민·군·국제 합동조사단이다. 그런데도 ‘뉴 민주당 플랜’을 만들었던 당내 최고 인텔리가 이를 ‘관제(官制)’라고 비난한다. 의원들은 물론 대표와 대통령후보를 지낸 이들까지 맹북(盲北)주의라는 미망(迷妄)의 춤을 추고 있다. 그들은 어느 나라 의원인가. 자신들의 기름진 생활을 공급해주는 이가 누구인데 그들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 칼럼.)
名文을 쓰는 이우근 변호사는 오늘 중앙일보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역·이념·세대·계층·정파에 따라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이 가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표현의 자유’가 ‘거짓의 자유’일 리 없건만, 핵무기를 만들고 어뢰를 쏘아대는 북한을 평화통일의 주체로, 숱하게 퍼주고도 늘 얻어맞기만 하는 대한민국을 반통일 전쟁광으로 둔갑시킨다. 그렇게 광우병 촛불을 부추겼고, 그렇게 천안함 사태를 뒤엎으려 든다. 비전문가들이 다국적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를 헐뜯는 편지까지 유엔에 써 보낼 정도다. 조선의 사색당쟁도 이토록 그악스럽지는 않았겠다. 몸속에 ‘분열의 유전자, 증오의 DNA, 거짓말 염색체’라도 지니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독을 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중앙일보의 중앙시평, 이우근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한국 사회가 <몸속에 ‘분열의 유전자, 증오의 DNA, 거짓말 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비판이 소름끼친다. 이런 국민성이 法治를 파괴하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法治파괴는 민주주의 파괴이다. 민주라는 이름을 쓴 두 정당-민주당과 민노당은 최근 몇년간 법치파괴에 注力하였다. 民主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파괴에 앞장선 두 정당은 民主惡黨이라고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이우근 변호사는 이런 名言을 소개하였다.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의 손에 망하고, 민중을 따르면 민중과 함께 망한다>(푸르타크)
[ 2010-07-05, 11:06 ]
www.chogabje.com
민주당의 맹북주의 6·29
[김진의 시시각각]
[중앙일보]
무슨 운명의 점지(點指)인가. 한국의 현대사에서 6월 29일은 심장(深長)한 의미를 안고 있다. 1987년의 6·29 선언은 질식하는 국가의 숨통을 열어준 기관지 절개수술이었다. 8년 후 95년 6월 29일 서울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붕괴의 굉음은 고도 압축성장 속에 숨겨진 한국 사회의 부실이 터지는 소리였다. 7년 후인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의 공격으로 한국의 전함이 침몰하고 해군장병들이 죽었다. 제2연평해전은 공산주의자와의 위장된 평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생생히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2010년 6월 29일. 이날은 앞으로 ‘대한민국 공동체 위기 경고의 날’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북한의 천안함 도발을 규탄하는 국회 결의안에 이 나라의 제1야당이 반대한 것이다. 어뢰 추진체라는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고, 미국과 유럽·중남미·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북한을 규탄했는데도 피해국가의 제1야당이 살인자를 지목하는 것을 끝내 거부한 것이다. 천안함 사태 이래 민주당이 보여준 양태로 보아 예상됐고, 같은 날 세종시 수정안 표결이라는 큰 일에 묻혔지만, ‘2010년 6·29’는 다른 6·29 못지않게 충격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민주당은 한국 야당사의 종가(宗家)이자 명가(名家)다. 민주당은 55년 이승만 독재권력에 대항하는 야당 보수주의자들이 창당했다. 민주당은 독재라는 권력 방식에 대해 끈질기게 투쟁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절 민주당은 민주화라는 공동체 가치를 위해서라면 정권에 강력하게 맞섰다. 그러나 50~90년대의 민주화 투쟁 기간 중에도 국가안보라는 또 다른 가치에 관해선 민주당은 정권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장면·신익희·조병옥·유진산·김영삼·이철승 같은 민주당(이후 신민당)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의 위험을 누구보다도 꿰뚫고 있었다.
야당 지도자들은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야당이나 민주화 운동단체들도 존립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김대중의 또 다른 라이벌이었던 이철승은 더욱 그러했다. 그는 평생 반공투쟁에 종사했으며 박정희의 개발 독재가 국가안보 측면에선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굳이 야당 선조들의 철학을 빌리지 않더라도, 공동체가 있어야 야당도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기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고급 음식점에서 영양식을 즐기고, 국내외에서 의원님으로 대접받는 것도 다 공동체와 국민 세금 덕분이다.
그런 민주당 의원들이 공동체를 공격해서 젊은 군인 46명을 죽인 살인자를 규탄하는 걸 거부하고 있다. 그런 살인자를 감싸고 있다. 엉터리 인사를 조사위원이라고 추천해놓고는 조사단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천안함 조사단은 세계가 인정한 민·군·국제 합동조사단이다. 그런데도 ‘뉴 민주당 플랜’을 만들었던 당내 최고 인텔리가 이를 ‘관제(官制)’라고 비난한다. 의원들은 물론 대표와 대통령후보를 지낸 이들까지 맹북(盲北)주의라는 미망(迷妄)의 춤을 추고 있다. 그들은 어느 나라 의원인가. 자신들의 기름진 생활을 공급해주는 이가 누구인데 그들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그들에겐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북한을 규탄하지 않아도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했고, 친북파가 대거 당선됐다. ‘전쟁이냐 평화냐’만 외치면 20, 30대는 자신의 편이라고 그들은 믿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이 믿는 대로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당의 충격적인 맹북주의 6·29만큼은 규탄해 놓아야겠다.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도 국가안보만큼은 협력했던 민주당 선조들의 개탄을 모아, 87년 6·29를 이끌어낸 시민의 함성을 모아, 차가운 바닷물에 20여 년의 짧은 생을 던져야 했던 46인의 비명을 모아, 하늘 위에서 분노하고 있을 한주호 준위의 영혼을 불러,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어가 허용하는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민주당의 6·29’를 규탄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2010.07.05 00:41 입력 / 2010.07.05 14:36 수정
www.joins.com
분열의 유전자, 증오의 DNA
[중앙시평]
[중앙일보]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의 손에 망하고, 민중을 따르면 민중과 함께 망한다.” 그리스·로마의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크의 경고다. 대중을 무시하는 소통(疏通)결핍과 대중에게 영합하는 포퓰리즘을 한꺼번에 꾸짖는 촌철살인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포퓰리즘이 문제였고, 현 정부에서는 소통결핍이 논란거리다. 2000년 전에 한 그리스인이 남긴 통찰이 오늘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 여간 씁쓸하지 않다.
소통은 입이 아니라 귀에서 시작된다. 귀를 열어야 마음이 열린다. 성스러울 성(聖)자는 귀(耳)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입(口)을 쓴다. 예부터 입보다 귀를 먼저 여는 임금을 성군(聖君)이라 했다. 오늘의 국민주권시대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혀에는 뼈가 없다. 혀가 부드러운 이유다. 그러나 혀가 늘 부드러운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뼈대 없는 집안에서 막 자란 아이처럼 거칠고 못된 말을 내뱉기도 한다. 강아지가 귀여운 것은 혀를 흔들지 않고 꼬리를 흔들기 때문이다. 꼬리 대신 혓바닥을 놀려 짖어대기만 하면 발길질을 당하기 십상이다. 국민의 소리를 거스르고 제 목소리만 내다가 발길질을 당한 정권이 하나 둘이 아니다.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 들으면 소통이 될 수 없다. 권력의 두 귀는 좌와 우 양쪽에 고루 열려 있어야 한다. “가진 자들의 부패, 기득권층의 비리가 서민들을 슬프게 한다.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정부는 경제지표의 수치만 읊어댄다. 나라의 요직을 특정지역, 특정인맥이 장악하고 있다. 국가안보 라인에 병역미필자가 태반이다. 전방 철책선에서 고위공직자의 자제들을 볼 수 없다. 천안함·세종시·4대 강 등 국가 주요 현안을 다루는 정부의 역량이 미덥지 못하다. 여당은 선거에 지고도 파벌싸움으로 정신이 없다….” 이 분노와 조롱과 탄식의 소리가 들리는가? 들리지 않는다면, 국민과의 소통은 단절된 것이다. 플루타르크가 경고한 ‘민중의 손’이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소통결핍은 비단 집권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야권은 포퓰리즘이라는 편리한 정치 메커니즘에 기대어 누구 말마따나 재미를 좀 보았다. 그러나 포퓰리즘이라는 것이 국민의 진정한 갈망을 책임 있게 담아내기보다는, 당장의 이해(利害)를 내세워 본질을 덮는 미봉책이거나 일시적 감성(感性)을 자극하여 표만 낚아채려는 정치적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고 보면, 야권 역시 국민과의 올바른 소통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권자인 국민을 단지 ‘미봉책이나 바라고, 속임수에 넘어가기나 하는’ 우중(愚衆)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00E9> Ortega y Gasset)는 표피적인 선동에 휘둘리는 대중시대의 포퓰리즘을 ‘문화와 이성에 대한 반역’이라고 질타했다. 대중에게 권력의 완장을 채워주고 냉철한 이성, 합리적 지성을 핍박하도록 충동질하는 사회는 반문화적 광기(狂氣)에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증언이다. 나치에 열광한 독일의 극우 민족주의, 홍위병에게 박수를 쳐댄 중국의 극좌 문화혁명은 플루타르크의 ‘민중과 함께 망하는’ 두 길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 극우·극좌의 두 길을 동시에 달려가는 것이 ‘우리 민족끼리’의 폐쇄적 주체사상이요, 선군(先軍)독재의 사회주의 혁명노선이다. 그 종착지가 어디일지를 굳이 물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지역·이념·세대·계층·정파에 따라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이 가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표현의 자유’가 ‘거짓의 자유’일 리 없건만, 핵무기를 만들고 어뢰를 쏘아대는 북한을 평화통일의 주체로, 숱하게 퍼주고도 늘 얻어맞기만 하는 대한민국을 반통일 전쟁광으로 둔갑시킨다. 그렇게 광우병 촛불을 부추겼고, 그렇게 천안함 사태를 뒤엎으려 든다. 비전문가들이 다국적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를 헐뜯는 편지까지 유엔에 써 보낼 정도다. 조선의 사색당쟁도 이토록 그악스럽지는 않았겠다. 몸속에 ‘분열의 유전자, 증오의 DNA, 거짓말 염색체’라도 지니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독을 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도덕경에 “올곧은 이는 말이 없고, 말 많은 자는 바르지 않다(善者不辯 辯者不善)”고 했다. 남의 흠은 혹독하게 몰아치면서도 제 잘못은 돌아보는 법이 결코 없는, 항상 옳고 늘 당당하기만 한 여야 정치인들과 시민운동가들이 두 귀를 틀어막은 채 자기 말만 쏟아내고 있는 터에, 무슨 수로 소통을 기대하겠는가?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2010.07.05 00: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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