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조기(弔旗)를 단 나는 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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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오 작성일10-06-06 13:38 조회3,060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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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아침 6시 정각, 창밖에 태극기를 내다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많은 80고개를 울며불며 넘기신 외숙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뒷부분 참조).
조반을 마치고 산책길에 뒷산을 올랐다가 둬 시간 후에 내려와 아파트단지를 한 바퀴 일부러 돌아서 들어왔습니다. 조기 게양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1시 30분 경, 15층 8개동 8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군청 소재지 아파트로서는 대단위 단지임에도 조기(弔旗)라고는 겨우 다섯 가구의 창밖에만 걸려 있었을 뿐, 내가 살고 있는 104동엔 내가 손수 걸어놓은 태극기 하나만 10층 창가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현충일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그 태극기는 서러워서 울었을 것이고 나는 사실 분노에 겨워 그랬습니다.
같은 단지에 살고 있는 별명이 ‘욕쟁이 할아버지’라던 6.25 참전용사 연(燕)노인께 전화를 드리면서 ‘왜, 현충일에 조기를 달지 않았습니까?’고 했다가 그만 그 예의 욕을 한 바가지나 얻어 먹어야 했습니다.
“김 선생이오? 그렇지 현충일이니까 태극기를 내다 걸어야지, 그러나 난 오늘 작정하고 내다 걸지 않았습니다. 큰 며느리가 ‘아버님 태극기...’하며 국기함을 내려 놓을 때 그만 두라고 했어요, ‘보시오 김선생, 국립묘지에 빨갱이 김대중이가 묻혔는데, 그래 ㅈ 빨려고 태극기를 내다 걸어요? 김선생이 바보요 멍청이요, 안 그렇습니까 김선생?”이라며 과연 욕쟁이 할아버지 답게 ‘ㅆ팔 ㅈ팔’을 거침없이 내 뱉고 있었습니다.
그 어른의 욕이야 직접 대 놓고 나에게 한 욕이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은 물론, 남북이 60년래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판에 '중도실리'라는 개떡같은 논리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끌고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욕이려니 하고 생각하니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도 사실은 이 욕쟁이 할아버지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그리고는 ‘연 선생님, 저는 바봅니다!’고 이실직고(以實直告)하고는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 놓았습니다. 기분 더럽게 언잖은 현충일의 아침나절이자 통쾌하기도 했던 욕바가지 였습니다.
<참고사항 ㅡ
낙동강줄기 내성천(乃城川)변의 외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6.25 전쟁 때 면서기(面書記)로 피란길에 올랐다가 낙동강 전선에서 현지 입대하여 서울 수복중 원주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셨다는 외아저씨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외아저씨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겨우 이름 석자(三字)만 새겨져 있을 뿐, 시신은 커녕 일점 유품도 없이 그렇게 산화하셨습니다. 그러기를 올해로 꼭 60년입니다.
80평생 홀로계신 외숙모님은, 6.25 직전 양가 노부모님들의 언약(言約)에 의해 약혼만 했을 뿐, 정식 결혼은 커녕 남편의 얼굴이라곤 흑백 사진 한 장을 봤을 뿐인데도 뒷날 전사하신 외아저씨와 영혼 결혼을 해서 오늘에 이르렀고, 남편 얼굴도 못봤으니 일점 혈육이라고는 있을턱도 없으신데, 그러는 사이 무정한 세월은 어느덧 바람결에 60년의 년륜이 덧없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 분이 바로 아침에 안부 전화를 드린바 있는 저의 외숙모님이십니다.>
10.06.06.
김종오.
댓글목록
조고아제님의 댓글
조고아제 작성일
저는 오늘 현충원을 다녀 왔습니다만
국민들 대부분 일요일과 겹치는 현충일을
잘 모르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호국영령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참전용사에게만 베테랑이라는
호칭을 써 주고 각 마을마다 참전용사
기념비가 있으며 대령만 되어도 대접이
대통령 이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stallon님의 댓글
stallon 작성일
늘 김종호님의 솔직담백하시고 논리정연하신 글 덕에 큰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란 평범한 표현만으론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김종오 님의 자세이시고 활약이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도 일찌감치 조기를 게양하고 현충원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길을 나서면서 늘 그랬지만 이 특정한날 조기 하나 내걸지 않는 대부분의 못된 국민성도 얄밉지만 국민들의 정서가 이렇게 썩어문드러지도록 방치한 위정자 놈들의 망국적 행태가 더더욱 괘씸한 것입니다.
작년 현충일 날에도 지하철 동작역서 인파 때문에 곤욕을 치렀는데 금년은 시간이 좀 일러 조금은 나은 듯 했지만 현충원 후문 쪽으로 향한 인도로 들어서니 잡상인들의 사전 점령 때문에 혈압이 또 치솟기 시작 했습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왜들 유독 6월6날만 그 토록 북새통을 이루면서 난리들을 펴는지 정말 짜증이 납니다.
통행인구가 갑작스럽게 늘어나는 좁은 인도를 제 안방인양 차지하고 악다구니를 부리면서 물품을 팔아대려는 자들은 또 생계형 어쩌고 얼버무리겠지만 도대체 공권력이 이 경건해야할 현충일에 그 잘난 잡상인들의 무법천지 하나 통제를 못해서 참배객들에게 혼란과 짜증을 자아내게 합니까.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방치하며 공권력이 직무유기를 버젓이 범하고 있다면 이는 해당 치안 담당책임자를 엄벌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