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출신 鄭雄 師團長과 金大中은 서로 무슨 관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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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마디 작성일10-05-20 00:38 조회2,290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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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웅 사단장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탈북단체인 북한군인단체가 증언집으로 만든 책5.18의 화려한 사기극 책에 의하면, 1979년 12월부터 1980년 1월 2월에 걸쳐 서해안으로 북괴군이 대량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이 지역을 맡고 있었던 31사 정웅 사단장이 그들은 목포지역으로 침투해 들어와 5월이 될 때까지 거사 준비를 착착 진행해 왔음에도 정웅 사단장은 서해안의 경계망이 뚫려 북괴군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도 몰랐고, 광주사태 거사를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음을 몰랐다면, 이게 말이 되는가? 그는 참 잘못되었다.
공수부대를 배속받은 정웅 사단장은 어찌하여 작전초기부터 강경진압을 지시했을까. 나는 이 점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정웅 사단장은 공수부대를 지휘하고 광주 학생들에게 초기 강경진압을 실시함으로 해서 광주사태를 더욱 크게 확대시켜 놓는데 일조한 장본인이다. 이러한 장본인이 1988년 김대중이 만든 평민당에서 공천을 받아 광주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이 자의 행동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마치 김대중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 같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光州출신 鄭雄 師團長과 金大中은 서로 무슨 관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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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 인사들의 건의
이날 오후 8시 40분 전남 출신인 박경원(朴璟遠), 고재필(高在珌), 전부일(全富一) 등 장성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장관 등의 고관현직을 역임한 사람들이 도착했다. 이들은 시내 유지들로부터 그 동안의 상황을 청취한 다음 강경진압을 완화시켜 주도록 계엄당국에 요청해달라는 건의를 받고 이날 밤 전남북 계엄분소장인 윤흥정 중장을 만나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이들의 건의는 그 다음날 받아들여져 강경진압이 다소 누그러지는 듯했다. 이에 대해 정웅 31사단장은 자신이 지휘권을 행사한 공수부대에 대해 무혈진압을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 자신의 공로로 내세웠었다.
그러나 나는 예비역 장성들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진압방법이 완화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웅 사단장은 18일 오후 2시 25분 제7여단소속 제33대대와 제35대대장에게 시내출동을 명령했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시내에 투입돼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은 전원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고 살상행위에 가까운 ‘과잉진압작전’을 벌임으로써 광주민중항쟁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광주 비극’의 시작을 명령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가 살상행위와 같은 진압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내면적인 다른 명령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수부대원들이 무자비한 행동을 벌여 ‘광주 비극’을 일으키게 했으므로 결과적으로 이들을 지휘한 정웅 사단장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없지 않다.
정웅 31사단장의 책임
특히 그는 공수부대원들의 ‘만행’을 안 것은 다음날 오후라고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했었다.
<<19일 15시로 기억되는데 광주의 모든 기관장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기관장들이 뭐라고 얘기했느냐 하면 이놈의 군대가 어느 나라 군대냐, 왜 국민을 상대로 과격하게 진압을 하느냐…….>>
정웅 사단장은 이날 밤 11시 33, 35대대장과 11공수여단장, 경찰국장, 자신의 휘하에 있는 연대장, 대대장 그리고 일반 및 특별참모를 불러 무혈진압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광주시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강경진압으로부터 무혈진압으로 전환하도록 명령했다는 것이다.
정사단장은 이 같은 무혈진압명령이 제대로 이행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20일 오후 두 대대장을 불렀으나 이들이 전교사사령관실에 윤흥정 전교사사령관 및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배속된 33, 35대대에 대한 지휘권이 사실상 박탈당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의 지휘권이 실질적으로 해제된 것은 21일 오후 4시다. 그 이후에는 전투병과 교육사령관이자 전남북 계엄분소장인 윤흥정 중장에게 지휘권이 넘어갔다.
어떤 형태였든 간에 5월 18일부터 21일 오후 4시까지의 공수부대 제7여단, 33, 35대대에 대한 지휘권은 제31사단장에게 있었다. 그는 제7여단뿐 아니라 19일 새벽에 도착한 제11여단에 대해서도 지휘권을 행사, 금남로에서 제7여단 병력과 교체하도록 잔전명령을 내렸었다. 다시 말하자면 광주민중항쟁의 비극은 18, 19일 벌어진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틀 동안 시위진압을 위해 투입돼 살상행위에 가까운 과잉진압작전을 편 33,35대대의 대대장에게 출동을 명령한 사람은 바로 정사단장이다.
33, 35대대장들이 31사단장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사전에 어떤 내밀한 교육이나 명령을 받고 정사단장의 의중과는 전혀 다르게 과잉진압을 전개함으로써 광주민중항쟁을 유발시켰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부대를 직접 지휘한 정사단장은 광주민중항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과잉진압’에 대한 지휘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특히 과잉진압 사실을 알게 된 그가 무혈진압명령을 내렸다면,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의 보고 이전에 현장에 나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그는 확인과정을 외면해버렸던 것이다. 심지어 헬기를 타고 돌아보니 ‘평온했었다’고까지 말했다.
그가 ‘평온했다’고 증언한 20일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시위와 농성을 계속하고 있던 날이었다. 시민과 공부수대간의 밀고 밀리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내는 폭풍전야와 같았었다. 여기에 ‘평온하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헬리콥터에서 보니 평온한 상황이 유지되고 있었고 33, 35대대로부터의 보고도 평온하게 진압해 정상적……’이었다고 증언했었다. 특히 정웅의 증언은 커다란 모순을 지니고 있다. 그는 청문회에서 ‘충정작전 자체가 과잉진압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그의 명령을 받고 18일 출동한 33, 35대대 병력이 시위진압을 어떻게 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19일 오후에야 과잉진압 사실을 알았닥 증언했고, 또 무혈진압 명령을 내린 후 헬기를 타고 확인해보니 평온했다거나, 평온하게 진압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여기에서 정사단장에 대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 대해 시민들로부터 어떤 제보나 항의를 받았는지, 또 어떻게 해서 19일 오후 기관장회의에 가서야 과잉진압을 알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윤흥정 계엄분소장은 19일 이미 시민들로부터 숱한 제보와 항의를 받고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정도였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정웅은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광주항쟁 당시 시민을 위해 커다란 역할 한 것처럼 소문나 있었다. 이 때문에 11대 선거 당시 영웅처럼 떠받들어졌었고 13대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국회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그는 ‘광주’에 대해 책임만 있을 뿐 그 엄청난 피해와 고난을 겪은 시민들을 위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음이 국회 청문회에서 정웅 자신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댓글목록
소강절님의 댓글
소강절 작성일
정웅 사단장의 충정작전 명령을 받은 군인분의 광주 5.18 청문회 증언이 있는데 뭐라 할 것입니까,
그 시대에도 빨갱이가 군 장교로 버젓이 있을 정도면 지금의 군은 정말 지박사님 말씀처럼 어처구니도 없겠군요.
어디서든 이제 난리만 나면 빨갱이들 맘대로 돼버리는 거는 국민학생도 알고 무서워라고 할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적 TV의 5.18 청문회를 볼 적에는 위 링크에 보여지는 동영상의 김대중 졸개들이 영웅으로 의인으로 보였습니다만, 정말 지금은 불량한 양아치 철부지들로 밖에는 안보이는 군요.
제가 바보같이 순수해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착잡하고 내장이 쓰린 느낌은 있는 데도 말로 구사하기가 힘듭니다만 정말 박멸해버리고 싶습니다...
자유대한의 사람들 생명이 문제되는 상황이 고양이 앞에 생선격으로 빨갱이들에게 맡겨지고 결국엔 그 슬프고 아픈 역사를 만들었다니...
날을 거듭할 수록 어두운 상자안에 있던 반딧불이들이 속에서 나와 밤하늘을 수놓듯 이제 밝혀질 것들이 하나 둘 밝혀지는 것이군요.
뭐 대한민국 인재들, 국민들이 지들보다 모두 멍청하고 모자란 것들로 보였나 봐요?...
양심불량, 동기불순에 됨됨이 제로의 쓰레기 작자들이 말이죠...
뒤통수를 스윙으로 때려버리고 그리고 무리 한복판에서 개망신을 주고 싶은데 말입니다.
이 작자들이 지들 속으로 예나 지금이나 국민들 속이면서 재미져하는 게 여실히 보입니다.
"시대의 역사는 정권을 잡은 자들의 구미에 맞춰 변경되고 만다. 때때로 그것은 진실이 아닌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그래서 역사는 실을 파헤치고 증명하는 역사학자의 손에 의해 쓰여져야 한다."
지만원 박사님이 2009년 광주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하셔서 인터뷰하신 내용입니다.
정확한 기억이 안나서 그 핵심 요점을 잡아서 토시에 살을 붙여서 제가 부족한 솜씨나마 올려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욕심이란게 얼마나 역사앞에 얼마나 어리석고 창피할 일이고 부끄러운 일인지
깨달음처럼 생각이 되어지는 군요.
정말 소름끼치는 인류 역사의 반복을 확인합니다.
엽기정권님의 댓글
엽기정권 작성일정웅이 저놈이 개대중이 똘마니 였던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