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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건 소가 웃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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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우 작성일10-02-06 12:36 조회2,666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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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북한 지하교회 신자들이 보낸 편지


 “골이 터지고 갈비뼈 부러지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하나님을 말하지 못하는 것”)

 
“골이 터지고 갈비뼈 부러지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하나님을 말하지 못하는 것”
 
“설사 죽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안고 죽으면 영광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편집자 注] 月刊朝鮮은 2008년 11월호에서 북한 지하교회 교인들의 실상을 현장 취재해 보도했다. 취재 과정에서 북한 지하교인들이 쓴 편지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 편지를 쓴 이들은 북한-중국 접경지역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은 후 다시 북한으로 투입된 사람들이다. 편지를 쓴 사람과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모든 인명과 지명은 익명 또는 가명으로 대신했다.

 

 김철혁(가명·33)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3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던 북한의 한 지하교회 교인이 중국으로 탈북하여 선교사 교육을 받고, 선교를 목적으로 북한에 들어가기 직전에 쓴 편지.
 
북한 지하교인이 보낸 편지.

 제가 고통을 받은 것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솔직히 말하지 않았다고 해 15일간 허리를 90도 구부리고 서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밥 먹을 때도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먹어야 하였습니다.
 
 잠을 재워주지 않아 졸려서 넘어지면 수쇠(수갑)로 손을 채워 철창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또한 쇠몽둥이로 너무 때려 골이 터져 피가 나오는데도 매질은 계속되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고 담요를 씌워놓고 같은 감방에서 생활하는 수감자들이 모두 붙어 때리게 해 이빨이 다 부러졌습니다. 또 사람들을 시켜 공중으로 들었다가는 탁 놓아 땅에 떨어지게 하는 것을 10번 이상 하니 갈비뼈 3개가 부러졌습니다.
 
 난로에 불을 지펴 난로가 빨갛게 달궈지면 그 곁에 꽁꽁 묶어 놓고 3시간을 있게 했습니다. 또 도끼대로 마구 때려 팔이 부러져 3달 동안 팔을 쓰지 못했습니다. 변소 청소를 시키는데 걸레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맨손으로 대변통을 닦게 하였습니다. 곡식밭에 인분을 주는 것도 그릇으로 주지 못하게 하고 손으로 주게 하였습니다.
 
 겨울에는 옷을 몽땅 벗겨 눈밭을 기게 하고, 바가지로 찬물을 떠서 몸에 끼얹어 1시간 동안 밖에 세워놓아 온 몸이 동상에 걸렸습니다. 또 전기곤봉으로 전기를 투입, 감전시켜 정신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톱을 주지 않고 도끼로 직경이 60cm 이상 되는 나무를 하루에 15개씩 찍어야 했습니다.
 
 하루에 1200평(약 4000m²)씩 밭의 김을 매게 했는데,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고 몽둥이로 때리고, 황소도 끌기 힘든 통나무를 끌도록 강요했습니다. 학습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하며 한겨울에 옷을 몽땅 벗기고 팬티만 입혀 불도 때지 않은 콘크리트 바닥에 10일간 앉아 있게 해서 손발이 모두 얼고 깊은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한 끼에 통강냉이를 삶은 것 120g씩 주었는데 너무 배가 고파 돼지와 개 먹이를 먹었습니다. 어떤 때는 쇠똥에 박혀 있는 강냉이를 주워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하나님 계시는 하늘을 향해 눕지 못하고, ‘하나님’이란 말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리상수(가명·45)
 
 2008년 10월 13일 북한 지하교인의 이야기를 다룬 <붉은 예수쟁이>란 책 표지에 적어서 보낸 북한 지하교회 교인의 편지. <붉은 예수쟁이>는 현재 약 300권이 북한 내부에 비밀리에 전달됐다.
 
 북한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한국에 계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북한의 지하교회에 있는 형제입니다. 성령 안에서 만남은 주님의 뜻 안에서 만나는 것이니 정말 감사 드립니다.





북한서 기독교인 102명 발각돼 순교

지난 2005년 남포 지역에서… 라디오 통해 예수 영접 [2008-07-24 07:50]

  • 몇 년 전 공개돼 충격을 준 북한의 공개처형 동영상. 발각된 102인 중 40인이 이같은 처형을 당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 몇 년 전 공개돼 충격을 준 북한의 공개처형 동영상. 발각된 102인 중 40인이 이같은 처형을 당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북한 남포 지역에서 지난 2005년 102명의 기독교인이 순교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북한 최대의 기독교인 박해 사건이며, 믿을만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래한국신문이 보도했다. 더욱이 이 102명의 북한 사람들은 서울에서 송출되는 극동방송(AM 1188Khz, 1566Khz)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된 것으로 알려져 놀라움이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10일 미래한국신문 김창범 편집위원을 만난 북한 안전부 출신의 한 탈북자에 의해 알려지게 됐는데, 그는 기밀문건으로 분류된 이 사건 보고서를 직접 열람한 적이 있으며, 상부에 업무보고차 출장 왔던 남포 출신 한 보안서 요원으로부터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편집위원은 미래한국신문에 이 사건을 보도한 데 이어 한국교회에 이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메일을 통해 본지에 이 사건을 알려왔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을 중심으로 생겨난 지하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한 대학생이 성경에 대해 말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된 남포시 보안서 소속 한 안전소조원이 이를 고발했고, 이 사건은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에게까지 보고됐다. 이후 북한은 정치책임자까지 파견해 1년간 비밀수사를 벌였고, 전모를 밝혀내 결국 관련자 102명이 모두 체포됐다.

체포된 102명 중 40명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를 숨긴 채 남조선 녹화물을 불법 시청했다는 죄목으로 비공개 총살형에 처해졌으며, 나머지 62명은 정치범수용소인 요덕 15관리소로 보내져 현재는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람’ 통해 1백명까지 복음 전파돼

이들의 신앙생활은 지난 2003년 남포시 주민인 50대 한 남성에 의해 시작됐다. 김씨 성을 가진 것으로만 알려진 이 남성은 우연히 극동방송 설교를 듣게 됐고, 마음에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보는 내용들이라 호기심을 갖고 경청하던 그는 점차 믿음을 갖게 됐고, 넉 달간 청취한 방송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무려 7백 쪽에 이르는 양이었다.

그는 이후 성경을 구해 기록한 내용과 비교하며 5개월간 연구한 끝에 성경 대부분을 이해하게 됐고, 깊은 영적인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의 은혜를 느낀 그는 믿음의 확신을 갖고 아내와 두 아들, 가까운 친척과 친구, 이웃들에게도 성경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까지 그는 ‘성경’이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직접적인 말을 아끼면서 성경의 내용을 전했고, 그들에게 ‘우리 앞길을 밝혀주는 이와 같은 진리가 있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그것이 복음인 줄도 모른 상태에서도 이와 같은 진리는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고 한다. 부담없는 접근을 통해 복음에 감동한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이 다시 그 감동을 전하면서 몇달 새 기독교인은 무려 50명을 넘어섰다.

이 무렵 그는 이 내용이 성경에 써 있음을 실토했다. 그러나 이미 깊은 은혜를 체험한 그들은 공개 총살형이라는 위협 속에서도 신앙을 떠나지 않고 사도행전 속 초대교회 사람들처럼 서로 돕고 의지하며 서로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이후 그는 방송 청취시설을 대담하게 설치해 ‘성도들‘과 함께 극동방송을 청취했고, 이 파급효과는 지하교인을 1백 명으로 늘렸다. 한 사람으로 시작된 복음의 씨앗이 성경말씀 그대로 1백 배가 된 것이다.

사건 이후 성경의 부패성 알리는 강연 강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소유하다 북한 당국에 발각돼 불타버린 성경책. 김정일 정권의 악착같은 탄압에도 성령의 역사는 북한에서 계속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들은 체포된 이후 모두 남포보안서 구류장에 구금됐다. 그러나 보안서 사람들은 이들의 두려움 없는 믿음에 오히려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이들은 정오만 되면 울리는 고동 소리에 일제히 일어나 큰 소리로 주기도문을 암송했는데, 기도가 시작되면 보안요원들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렸지만 기도를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김정일 정권은 성경의 부패성과 반동성을 전하는 데 열을 올렸고, 성경의 위험을 알리는 각종 강연행사를 강화시켰다고 보안서 요원 출신 탈북자는 밝혔다. 북한은 성경에 의한 피해사례로 한 가족의 죽음을 드는데, ‘당신네 가족이 잘 살기 위해 온 가족이 폭포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하나님이 받아주시기 때문에 죽지 않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6명의 가족이 뛰어내렸는데 셋째 아들은 이를 거부해 살아났다’는 등 성경을 퇴폐적인 책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 사람들에게 성경이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중국을 통해 반입된 성경들이 해산과 청진, 회령, 무산 등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북한에 성경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모퉁이돌선교회 한 관계자는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성경 반입은 더 어려워졌지만, 성경을 보내달라는 요구는 더욱 늘고 있다”고 밝혔다. 발전한 나라일수록 성경에 대해 많이 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도한 김창범 편집위원은 “이 사건은 북한에서 복음이 전도자 없이도 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외부와 단절된 북한 사람들에게는 성경말씀이 마치 폭탄과 같은 위력을 지녔음을 보여준 실제적인 증거”라며 “처형된 이들 102인의 북한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탄압한 김정일 정권에 의해 희생된 남포지역 북한기독교순교자들로 한국교회사에 기록돼야 하고, 뜻있는 한국교회들이 나서서 그들의 불굴의 신앙과 순교를 기리는 별도의 추모행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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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 절망한다"는 탈북자
한국교회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1
金成昱   

 어제 만난 한 탈북자단체 대표는 『한국 교회에 절망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성경을 계속 보내기 위한 後援(후원) 교회를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퇴짜 맞은 교회 중에는 대형교회들은 물론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상당수 교회들이 포함돼 있었다. 가짜 기독교단체인 조선그리스도연맹에게는 천문학적 헌금을 주면서 탈북자단체는 외면하는 모습을 보며, 같은 기독교인인 그는 속이 많이 상해있었다.
 
  이런 얘기는 북한에 풍선을 날리는 다른 탈북기독교인들에게서도 많이 듣게 된다. 『북한선교』를 외치면서 김정일을 도울 뿐, 김정일에 폭압당하며 죽어가는 북한동포는 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
 
  국제 기독교 선교단체인 「오픈 도어즈(Open Doors)」는 2009년 2월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을 7년 연속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가」로 지목했다. 오픈 도어즈는 『이 세상 어디에도 북한에서처럼 기독교인들이 끔찍하고 잔인하게 박해 받는 곳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기독교를 『국가제도 顚覆(전복) 실현 수단』으로 규정하고 극단적 탄압을 계속해왔다. 기독교인은 정치범수용소·로동교화소에 끌려가거나, 「공개처형」당한다.
 
  한국의 대다수 교회는 이러한 참상에 침묵해왔다. 탄압받는 북한의 기독교인(地下敎人(지하교인))을 돕는 대신 이들을 탄압하는 북한정권을 돕는데 앞장서왔다. 『북한에도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거짓 주장을 퍼뜨리며, 「金正日(김정일) 돕기」를 인도적 對北(대북)지원 내지 북한선교로 假裝(가장)해왔다.
 
  북한정권의 행태는 매우 宗敎的(종교적)이며, 실제로 神政國家(신정국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노골적으로 惡靈(악령)이 통치하는 북한정권은 聖靈(성령)을 따르는 지하교인을 죽이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북한처럼 기독교인들이 끔찍하고 잔인하게 박해 받는 곳은 없다』고 할 정도의 탄압 속에서 지금도 殉敎(순교)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는 예수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사탄의 편에 서 있는가? 성령을 따르는가, 악령에 미혹당하고 있는가? 빛의 길을 걷고 있는가, 어둠의 길을 걷고 있는가?
 

[ 2009-03-25, 23:08 ]



[인터뷰] 최근 脫出해 온 북한 지하교회 여성 신자

 

 

 
『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있다구요, 웃기는 얘기죠』
 
裵振榮 月刊朝鮮 기자 (ironheel@chosun.com
李在禎의 희한한 북한종교觀
 李在禎(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월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대답했다.
 
  『북한에 장로회, 천주교가 있고 교회를 짓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역사의 발전이라 생각한다』
 
  성공회 성직자라는 사람이, 그것도 통일부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북한에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고, 교회가 신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그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2005년 4월, 한 북한인권단체 사무실에서 만났던 정은혜(23·가명)씨였다. 앳되지만 야무져 보이는 아가씨였다.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는 당시 『저 아이는 북한에 있을 때 기독교를 믿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아버지는 10여 년 전에 강제수용소로 끌려갔고, 가족을 북한에 남겨 둔 채 혼자서 북한을 탈출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 정양이 말로만 듣던 북한 지하교회의 신자라는 말이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이라도 인터뷰하고 싶었지만, 가족이 아직 북한에, 그것도 강제수용소에 있다는 얘기에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李在禎씨의 인사청문회 발언을 접하고 난 후, 정은혜씨에게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은혜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고려해 사진촬영을 하지 않고, 人的사항과 관련되는 문제들은 보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12월5일 만난 정은혜씨는 우리나라의 평범한 여대생들과 다를 바 없이 밝고 활달한 모습이었다. 이따금 튀어 나오는 평안도 억양이 그녀가 北에서 내려왔음을 짐작케 했다.
 
 
  할머니에게서 기독교 배워
 
  ─어떻게 기독교를 믿게 됐습니까.
 
  『조부모님 때부터 집안이 기독교를 믿었습니다. 원래 우리 집안은 황해도에서 살았는데, 金日成이 정권을 잡고 기독교를 청산할 때, 기독교를 믿던 이웃들과 함께 평북 산간오지로 쫓겨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북한이 공산화된 이후 50년 동안 가족이 신앙을 계속 지켰습니까.
 
  『네,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몰래 예배를 보아 왔다고 합니다』
 
  ─예배에는 가족들만 참석했나요.
 
  『가족들 말고도 인근 마을에 사는 분들이 적으면 5~6명, 많으면 7~10명 정도 참석했습니다』
 
  ─그들의 나이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대개 50代 후반에서 60代였습니다. 우리가 「회령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60代 할아버지의 딸도 같이 왔는데, 그는 30代 중반쯤이었습니다』
 
  ─예배는 누가 이끌었습니까.
 
  『80세가 넘은 할머니가 이끄셨습니다』
 
  ─정은혜씨도 예배에 참석했나요.
 
  『저는 나이가 어려서 동생이랑 밖에서 망을 봤습니다』
 
  ─그럼 기독교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무릎에 저희들을 앉혀 놓고,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金日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것이다. 잠시라도 하나님을 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송가도 많이 불렀고요』
 
2003년 3월 남북한 종교인들의 3·1절 민족대회차 명동성당을 방문한 북한「천주교」신도들. 金日成이 唯一神인 북한에서 「종교의 자유」는 철저한 박멸의 대상이다.

 
  할머니의 성경책
 
  ─성경책이 있었습니까.
 
  『日帝 시대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시던 세로쓰기를 한 오래된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그 성경책은 한문으로 되어 있어 아버지도 보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그 성경책을 한글로 풀어 손으로 쓰셨는데, 그게 열 권쯤 됐습니다. 한국에서 나온 작은 성경책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나온 성경은 어떻게 구했습니까.
 
  『아버지가 중국에 있는 먼 친척뻘 되는 조선족 목사로부터 얻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종교에 대해 뭐라고 배웠습니까.
 
  『학교에서는 「종교는 마약이다」라고 배웠어요』
 
  ─종교에 대해 집에서 들은 것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서로 달라 갈등을 겪지는 않았나요.
 
  『종교를 비난하는 강의를 듣거나, 종교를 부정적으로 그린 「성황당」 같은 영화를 볼 때는 조금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워낙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해 들어 왔기 때문에 큰 갈등은 없었습니다』
 
  ─지하교회가 들통 난 것은 언제였습니까.
 
  『金日成이 죽기 전 해인 1993년 가을이었습니다』
 
  ─낌새가 있었나요.
 
  『망을 보는데, 예배 보러 온 이웃마을 아저씨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낯선 사람이 한동안 지켜보다가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어요. 집에 들어가서 어른들께 그 말씀을 드리니까, 그 아저씨도 「누가 따라 붙는 것 같았다」고 하시더군요.
 
  얼마 후부터는 아버지께서 「평소 가까이 지내지 않던 黨간부들이 자꾸 아는 척을 하고 이것저것 묻는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가 잡혀가던 날, 어땠는지 기억하세요.
 
  『1993년 10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옷가지 등이 밖에 팽개쳐져 있고, 집안 여기저기 발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겁에 질려 울고 계셨고…. 다음날부터 어머니와 언니, 오빠들이 보위부에 불려가 10여 일 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그 후 아버지 소식은 못 들었습니까.
 
  『네』
 
  ─그 후 어떻게 됐나요.
 
  『한동안 그 마을에 살다가 1994년 말, 가족 모두 더 깊은 산간오지로 추방됐습니다』
 
  ─다른 친척들은 피해를 보지 않았나요.
 
  『아버지가 잡혀간 지 석 달 후, 청진에 살던 외숙모가 보위부에 잡혀갔습니다. 우리 집에 왔다가 아버지가 잡혀가셨다는 말을 듣고, 「우리 집에 있는 성경도 얼른 감춰야겠다」며 급히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미 보위부에서 사람이 나와 있더래요. 보위부원이 「너, 하나님을 믿는가」라고 묻자, 「그렇다. 나는 예수를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잡혀갔답니다. 외숙모 가족들도 오지로 추방됐는데, 광주리 같은 데 사람을 담아 위에서 끌어올려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직장에서 작업반장 등으로 있던 친척들도 다 撤職(철직·해임)됐습니다』
 
  ─추방지에서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인민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산골짝으로 쫓겨가 나무뿌리를 들추고 뙈기밭을 만들어 곡식을 심어 가족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1996년 「고난의 행군」 때가 특히 힘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잡혀가기 전에는 그래도 제법 사는 편이어서 쌀밥을 먹었는데, 「고난의 행군」 때 처음으로 죽을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시래기 등을 넣어 죽을 끓여 주셨는데, 그게 목에 넘어가지 않아 울면, 내게는 묽은 쌀죽을 끓여 주셨어요』
 
  ─학교는 어떻게 다녔습니까.
 
  『친척 집 신세를 지면서 고등중학교를 마쳤습니다』
 
1997년 9월 평양 칠골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남북한 개신교도들.

 
  脫北
 
  ─신앙생활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버지께서 식사 때면 성경 말씀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성경 말씀과 북한의 현실을 비교해서 말씀해 주신 것들, 특히 종말에 대해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고 한 마가복음(13장12절) 말씀을 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일은.
 
  『추방지에서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가족끼리 예배도 못 보고…』
 
  ─북한은 언제 떠나왔습니까.
 
  『2003년 여름에 언니와 떠났습니다』
 
  ─어떻게 북한을 떠나게 됐나요.
 
  『1990년대 초 우리 집을 찾아와 성경을 전해 주셨던 조선족 친척 목사님이 2003년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목사님은 아버지가 잡혀간 후 우리 가족들이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지, 도울 방법이 없는지 등을 알아보려 사람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보위부에서 우리를 떠보려고 보낸 사람인 줄 알고, 그냥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이 험한 길을 사흘 동안 계속 찾아온 사람이니, 믿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 사람 편에 보낸 휴대폰으로 목사님과 통화를 했는데,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아 한밤중에 언니와 산꼭대기에 올라가 추위에 떨면서 통화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부모님 이름, 전에 살던 집 구조 등을 꼬치꼬치 물어보더군요. 목사님이 우리에게 「중국으로 넘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를 위해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가나. 고생을 해도 같이 하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 천국에서 목사님을 뵙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너희는 아직 젊다. 그곳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평생을 보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어차피 시집을 가게 되면 어머니 곁을 떠날 수밖에 없지 않느냐.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서 더 배우고 세상 보는 눈을 넓혀야 한다」고 간곡히 설득하시더군요. 어머니께서도 「목사님 말씀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정은혜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당시 갓 쉰이 넘으신 나이였는데, 그때 벌써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가 하얗게 샜어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아주머니들이 예쁘게 꾸미고 계신 것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막 나요』
 
  ─어떻게 脫北했나요.
 
  『목사님이 보낸 안내인과 함께 밤중에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물이 허리까지 차더군요. 한 15분쯤 지나니 중국땅이더군요』
 
  ─중국에서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친척 목사님께서 보살펴 주셨습니다』
 
  ─중국에서 교회에 처음 가봤겠네요.
 
  『네, 교회라고 하면 집에서 몰래 조용히 예배 보던 것을 생각했는데, 건물에 커다란 십자가가 걸려 있고, 증폭기(앰프)에서는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이러다가 잡혀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더군요. 교회 안에서는 일어나 춤추고 율동하면서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그때 느낌이 어땠습니까.
 
  『눈물이 막 나왔습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세상이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여태까지 이런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골 국경 넘다가 언니는 잡혀
 
  정은혜씨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한국에는 잘 온 것 같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금방 밝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지금 다니는 대학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습니까.
 
  『원래는 신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들께서 「아직 나이도 어리고 한국 사회도 잘 모르는데, 일단은 일반 대학에 진학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경험을 쌓는 게 좋다」고 권하셔서, 일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됐습니다』
 
  ─대학 생활은 어떻습니까.
 
  『영어공부 하는 게 조금 어렵습니다. 북한에서는 영어를 별로 중시하지 않거든요. 北에서 내가 못 배운 것을 인정하고, 새 땅에서 한 살짜리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배워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 마음이 편하고, 배우는 것들이 재미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추방지에서는 우리 집 양쪽에 있는 집에서 감시를 했고, 집안에 도청장치가 있어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할 말이 있으면 집 밖에 나와서 해야 했습니다. 학교에 가면 「새끼반동」이라고 놀리면서, 아무도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와서는 내가 바른 행동을 하면 주위 분들이 칭찬하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럴 때면 정말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명절 때면 가족이 보고 싶어서 많이 웁니다. 같이 몽골 국경을 넘다가 잡혀간 언니를 생각하면…. 몽골 국경을 넘기 위해 중국을 떠난 날이 언니 생일이었어요. 「집에 그대로 있었으면 어머니와 함께 생일을 보냈을 텐데, 우리는 자유를 찾겠다고 길 위에서 생일을 보내는구나. 한국에 가서 생일을 쇠자」고 했는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정은혜씨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으며 한참을 흐느꼈다. 「아차」 싶었다. 정은혜씨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 몽골 국경을 넘을 때의 일을 물어보았다.
 
  『나와 언니, 10대 중반의 소년, 그리고 안내인이 일행이었어요. 인적 없는 사막을 한참 동안 걸어가다가 밤이 되자, 안내인이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가리키며 「저기가 몽골에 있는 우리 목적지다. 철조망을 세 개만 넘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철조망을 두 개 넘었는데, 세 번째 철조망 근처에 중국 공안들이 매복해 있었어요.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나는 도망치다가 모래를 파 구덩이를 만들어 숨었습니다. 밤새 공안들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탐조등을 비춰 댔어요. 밤새 울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날이 밝은 후 보니 아무도 없더군요. 돌아갈 수도 없어서 철조망을 넘어 몽골로 들어갔다가 몽골군에게 붙잡혔습니다』
 
  ─언니 소식은 그 후 못 들었습니까.
 
  『네, 북한으로 보내져 강제수용소에 갇혔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어머니나 다른 가족 소식은 들은 적이 있나요.
 
  『못 들었습니다』
 
 
  『한국 목사들 방북, 진정 하나님을 위한 일인가』
 
  ─한국에서 목사들이 남북 기독교인 교류를 한다고 북한에 가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관계자들과 함께 예배를 보고 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이 나오자 정은혜씨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얘기죠. 저는 북한에 봉수교회·칠골교회가 있다는 것을 중국에 가서야 처음 알았어요.
 
  유명한 목사님들이 북한에 가서 金日成이나 金正日을 만나고 와서 마치 남북화해를 위해 큰일을 하고 온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볼 때면, 우습고 가슴이 아파요. 그들이 봉수교회에서 조그련 사람들이랑 형식적인 예배를 볼 때, 숨어서 숨죽이고 예배를 보다가 잡혀가는 진정한 信者(신자)들을 잠시라도 생각했는지 묻고 싶어요』 ●

 

- 출처 : 월간조선 2007년 01월호 




김정일은 악마 그 자체;영하 35도에 발가벗겨 고문"

(탈북자 이순옥씨 프랑스 라디오 증언에서 발췌)


저는 북한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근 50여년을

북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96년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제가 영문도 모른 채 지하 감옥소에서 모진
고문과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을 극적으로 취소한다는 통지와 함께
정치범 수용에 보내졌을 때
수용소안에서 겪은 북한 신자들의 모습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김일성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유일하게
6,000여명의 수용된 그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생산 지휘와 모든 재정업무를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땨문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들을
이곳저곳 마음대로 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를 담당하는 재정부장 교도관이 저를
불러놓고 단단히 교육시켰습니다.
"너는 오늘부터 매일 어떤 공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공장에는 미친 정신병자놈들만 모여 있다.
그 미친 정신병자놈들은 당과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자들이니 너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곳에 가야한다.
그리고 그 미친자들하고는 절대 눈길
한번 마주치지 말아라.
그렇지 않고 네가 그 자들이 믿는 하늘을 믿게 되면
네 목숨은 여기서 끝나게 되는 줄 알아라."

그런데 거기 가서 그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무리같지 않았습니다.
1.500도 이상 시뻘겋게 타오르는 용광로의
고열 노동 작업장이었는데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때,
무슨 짐승의 무리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도무지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얼굴은 해골같고 이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키가 다 줄어들어서 120센티,130센티 요렇게
땅에 딱 붙은 난쟁이들만 움직였습니다.

나는 가까이에 가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 너무나 놀랐습니다.
잡혀 올 때는 정상인이었는데
거기와서 하루 열 여섯시간, 열 여덟시간씩
먹지도 못하고
그 고열 속에서 노동하며 고문받다보니
그 사람들은 척추가 녹아 내려서 뒷잔등에
혹이 되어 버렸고
몸이 다 휘어져서 앞가슴하고 배가 마주
붙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 그렇게 육체가
망가져 기형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프레스 기계로 찍어도 한 판에 그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찍기는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에는 교도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교도관들은 말로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소가죽 채찍을 윙윙 휘두르고 다니면서 묵묵히
일을하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의 몸에는 옷이 입혀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사람들을 멀리서 보았을 때
모두가 꺼먼 옷을 입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찬찬히 보니
그 사람들은 맨 살가죽에다 앞에 시커먼
고무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용광로의 뜨거운 불꽃이 앙상하게 말라붙은 살가죽에
튀고 또 튀고 딱지가 앉고
그 자리에 쇳물이 떨어지고 또 떨어져서
타버리고 해서
그 사람들의 피부는 한 곳도 성한곳이 없었고
마치 들짐승의 가죽과 같았습니다.

어느날 저는 그 곳에서 정말 말로 전하기 힘든,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오후, 제가 공장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공장안이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작업장 한 가운데 수백명의 죄수아닌
죄수를 모아놓고
담당 교도관들 두 명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친듯이 고함을 치며 날뛰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문 옆 한쪽에 비켜
서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수령님을 믿지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정신병자놈들이라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그 사람들을 차고, 때리고 하면서
인간이하의 취급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대열 앞에 나서라.
하늘을 믿지않고 수령님을 믿겠다고 하면
자유세상으로 보내서 잘 살수있게 해 주겠다"
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하늘을 거부하라고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
수 백명의 그 사람들은 왜 그런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침묵으로 맞섰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는데,
그래야 오늘 누가 맞아죽지 않을텐데
왜 계속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나..
저러고 있으면 또 누구를 끌어내다가 밟아
죽일지 모르는데,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생각하며 문 옆에 서서
무서움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데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은 계속해서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때 독이 오른 교도관이 그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여덟명을 끌어 내다가 땅바닥에
엎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구둣발로 내리밟고 짓이겼습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허리며 팔 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신음소리를 냈는데
그 신음소리가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 때, 주님이 누군지,하나님이 누군지
전혀 몰랐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부서지면서
신음소리처럼 애타게 불렀던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당했던 고통의 천 만분의 일도
제대로 여러분에게 전해주지 못합니다.

미쳐 날뛰던 교도관들은 "
수령님과 당을 믿는 우리가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너희가 사는가 보자"하면서
달려가더니 펄펄끓는 쇳물통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는 피투성이가 된 그 신자들 위에 부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고 뼈가 타면서
숯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숯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그 충격이 컸던지,
그 곳을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기억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신적 충격으로 눈만 감으면
눈 앞에 숯덩이가 된 사람들이 어른거려서
도무지 눈을 감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으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음속 한구석에
실오라기 만큼이라도 수령님과 당에 대해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꽉 붙잡어야 된다는 것을
저는 그때 뼈져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다시,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하늘에 기도했다는
그 하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하늘을 찾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불에 타 죽으면서도
거부하지 않고, 목숨걸고 믿는 하늘이,
진짜로 그 하늘이 어디에 계시다면 나를
좀 살려달라고.....
그리고 저렇게 무서운 짓을 하는 저 자들에게
하늘에서 정말 벌을 내려 줘야되지 않겠냐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자나깨나 꿈속에서도 하늘을 찾고 또 찾고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주님께서 그 간절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한달이 멀다하고 공개처형이 있었는데
어느날 누구를 또 공개처형 시키려는지
6천명이나 되는 수용소 사람들을 한자리에
다 모이게 했습니다.
공개처형 때는 반드시 하늘을 믿는 사람들을
맨 앞줄에 앉힙니다.
그런데 하늘을 믿는 자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하라는
김일성의 특별지시와 규정이 있어서
하늘을 믿는 그 사람들을 앉힐 때에는
무릎사이에 목을 끼우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죽어서도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죽은 시체도 목을 꺽어 거적에 말아서
어두컴컴한 산골짜기 나무 밑에 파묻게 규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신자들은 하늘을 조금도 보지 못하도록
목을 무릎사이에 끼우고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 뒤쪽으로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를 또 공개처형하려는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쇠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것처럼
정신이 아찔하여 대답을 할 수 없었고,
일어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수들이 나를 끌어내다가 앞에 세웠습니다.
내가 군중들 앞에 섰을 때, 수용소 소장이 나에게
"고마운 수령님과 당의 은덕으로 너는 이 시각에
석방이다"라고 통보를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목을 무릎에다 끼우고 맨 앞줄에 엎드려 있던 신자들이
내가 석방된다는 소리에 약속이나 한듯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분들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은 눈빛으로 간절히 간절히 말했습니다.
"밖에 나가거든 자기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 달라"고...

지금도 제 가슴에는 그 분들의 간절한 눈빛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평생 빌고 또 빌은 그 하늘이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그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저를 살려 주셨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모자를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한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 그 신자들의 눈빛을
절대로 잊을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분들이 이 시대의 순.교.자.라고 봅니다.

저의 증언으로 인해 북한 신자들의 인권문제가
150여개 나라에 나갔고 세계가 떠들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 100여명이 프랑스에 모여
북한 신자들의 인권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것에 대해 추천 18

댓글목록

현우님의 댓글

현우 작성일

아직도
세계 유일의 돌연변이, 개망나니 정권의 뉴스를 그대로 믿고
판단하고 결론내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지요.
이제는 북한 사람들도 심지어 북한 빨갱이들도 북한 정권을 믿지 않는데
심지어 북한정권 대변인이 되어 김정일 나팔수처럼 행동하고 있는
남한내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인간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생각같아선 몽둥이가 최고겠지만...

bananaboy님의 댓글

bananaboy 작성일

대한민국의 재벌목사님들은 지금 지하세계에서 있는분들을 도우십시오.

김정일 추종세력들 위해 돈갖다주고 학교지어줘봐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한 복음전파를 위해서라면 더욱더 그리스도님이 간절한 북한의 진정한 신앙인들을 위해 도우십시오.

이강현님의 댓글

이강현 작성일

남한의 북한을 돕는 교회들은 허영에 들 떠 있다면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요????
북한에 가장 큰 건물 지어주겠다고....
그래서 그 가장 큰 건물이 자기네 교회에서 지어준 건물이노라고?????
허허.....
그걸 누가 이용할 거라는 생각들은 다들 해 보셨을까????

북괴공산당박멸님의 댓글

북괴공산당박멸 작성일

박 선교사는 위대한 결단을 하고, 북에 들어갔으나.
그는 군대생활을 한국에서 해보지 않아서 북괴의 악랄하고 잔인한 속성을
몰랐습니다.

순수한 신의 전도사로 들어간 것만으로는 몽둥이와 총칼의 위협에 대처하는
각오가 되어있는 전사의 태도가 결여되어 있어서,
북괴공산군의 위협에 거짓증언을 한 것입니다.

군생활시에 기억나는 게 있는데,
나는 적의 포로가 되더라도 절대 계급,성명,군번외에 어떤 사실도 말하지 않겠고,
나아가 적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며 항상 탈출하기를 시도하여
아군의 기지로 돌아와 적을 몰살하는 전사로 다시 싸우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내용은 내 인생의 지표이며 지금도 유효하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온갖구타와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는 전사, 그게 나다.

우리 국민 모두가 나와 같아야 한다.

박 선교사는 적의 위협과 구타와 고문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살아 나와 자유체제에서 북괴공산군의 실상을 알리고자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해주는 척 한 것이다.

북괴공산군 놈들은 지들이 요구한 목적대로 구술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공산체제가 좋다는 거짓말에 박 선교사를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북괴공산군의 인형노릇하는 신문기사를 보고도 ,박 선교사가 북괴군 통치하는 영토에
들어간 것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열등인간들은 생존의 가치가 전혀 없는
인간 쓰레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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