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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부대가 외부에서 온 불순세력임을 증명해 달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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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사논객 작성일10-01-10 20:15 조회3,608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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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님에게 끝장 토론을 제의하며 님이 이미 그 제안을 하셨다면 환영합니다.  제가 이데아님 글에 댓글로만 답변하는 것보다 때로 저도 새 글로도 답변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우선 님의 글 "그 김영택 기자가 감지했다는 내용 좀 봅시다. 복면부대가 외부에서 온 불순세력임을 증명하려면 확증이 있어야지"에 대한 답글을 드립니다.  제가 몇달이라도 시간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훨씬 더 많은 자료들을 공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 제가 이전에 공개했던 자료들이 좀 있어서 함께 제시해 드립니다.

복면부대는 광주시민들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불순세력이었으며, 그 불순세력의 침투방법은 먼저 잠수함을 타고 목포로 침투한 다음 목포에 대기하고 있던 시민군 차량으로 광주로 침투하였습니다.

복 면부대는 광주시민들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불순세력이었을 것이라는 의혹은 동아일보 김영택 기자가 처음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자 그럼 먼저 당시 카메라에 잡힌 복면부대 사진을 보시면서 김영택 기자의 증언 및 설명을 들어보도록 할까요?

시민군 편의 김영택 기자는 1987년 8월에 <「광주사태」그날의 5가지 의문점>이란 기사를 발표하면서 네번째 의문점에서 복면무장단체는 외지에서 온 불순세력이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분명하게 언급하였습니다.  이 기사에서 김기자는 "그들 중 일부가 만약 [불순세력]으로서 외부에서 들어와 신분을 감추기 위해 복면을 했다면"이라는 의미심장한 언급을 합니다 (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4208.html).
 



지프를 탄 5.18난동자들의 윗사진에서 맨앞의 복면 쓴 무장폭도의 제복을 주시해 보라. 더욱이, 이 폭도가 오른 손에 들고 있는 총은 M-16이다.
 



위의 사진에서도 복면을 쓰고 지프와 트럭 등 군용차량에 승차해 있는 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전투경찰 복장으로 위장한 복면 부대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위 사진에서 복면쓴 무장폭도의 보행 자세가 일반시민의 보행자세와 구별됨이 눈에띈다.
 



김영택 기자는 시민군 편 증인이었음에도 복면무장단체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의심을 또박또박 말하였다. 1989년 1월 26일자 광주청문회를 보도하는 위의 동영상에서 MBC 김석진 기자는 그 증언을 이렇게 요약한다:

<김영택 씨는 또 5월 22일에는 서울에서 왔다는 대학생 300여 명이 시위에 합류했으며 오후부터는 복면을 쓴 사람들이 시위 군중 속에 나타나 강경 구호를 외치거나 시민군의 총기 반납을 저지하는 등 석연치 않은 행동을 보여 이들의 정체에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위 동영상 시작후 1분 5초부터 1분 22초 사이)

그리고 김영택 기자는 이미 1987년 8월에 그 증언을 아래와 같이 상세하게 남긴바 있다:

<<<[복면부대]의 정체>

독자들은 광주사태 당시 복면을 한 이른바 [시민군]들이, 탈취한 차량을 타고 시내를 질주하는 광경을 텔레비젼 화면이나 신문의 사진에서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 [복면부대]는 18일과 19일의 시위, 특히 21일 시위대가 계엄군의 정면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만 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이 등장한 것은 계엄군이 철수하고 도청이 학생들의 수중에 들어가 이른바 [광주공화국]시대가 열리면서부터였다.
이들은 누구였을까? 이들이 과연 [민주화]를 외치는 순수한 시위대원들이었을까. 이것이 기자가 갖는 네 번째 의문이다.
학생데모대들은 처음부터 떳떳했다. 수사기관의 카메라에 찍히는 것도, 붙잡혀 감옥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14, 15, 16일의 평화적 시위 때는 더더구나 복면을 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20일 운전기사들이 차량을 몰고 나왔을 때나 21일 관광호텔 앞에서 계엄군과 대치해 협상을 시도할 때도 복면을 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21일 오후 계엄군이 도청에서 빠져나가고 학생들이 들어간 후부터 시위대원 중에는 복면을 한 사람이 부쩍 많이 눈에 띄었다.
만약 복면부대가 수사기관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나중에 검거되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다면 경찰이나 정보기관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던 18일부터 21일까지는 왜 없었을까. 왜 기자의 카메라조차 학생들로부터 의심받아 셔터를 누르기도 어렵던 22일 이후에 복면을 한 사람이 많았을까.
이들 복면부대는 한결같이 강경한 입장을 취한데다 적극적으로 시위를 선동했다. 무기반납을 방해하고, 차량을 타고 시내를 질주하면서 과격한 언사를 거침없이 썼다. 이들은 수습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도청 앞 광장의 수습회의나 대책회의에는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기자는 24일 오후 2시쯤 당시 도청 2층에 있던 학생수습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 김종배씨(35)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시민수습대책위원회에서 시민군의 무기를 반납하자는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을 때 학생측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갔다가 위원장대신 부위원장을 만났던 것. 
이대 김씨는 {우리는 총을 반납하겠습니다. 그리고 경찰과 군이 들어와 질서를 회복하면 맨손으로 금남로에 나가 다시 민주화를 외치겠습니다}며 총을 회수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때만 해도 김씨는 온건파였다. 이로부터 수시간 후 그는 조건부 강경파로 선회하게 되지만, 본심은 어떤 조건만 받아들여지면 총을 반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무기 반납 제지한 [복면부대]

그런데 총을 회수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김씨를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납은 안된다는 강경파들이었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것이다. 가로막는 이들 강경파의 거의가 복면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김씨는 이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어쩌지 못하고 다시 2층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복면의 강경파들은 이렇다 할 수습안을 내놓지도 않았다. 무조건 반대였다. 때문에 이들은 사태를 악화시키려는 [불순세력]이나 [배후세력]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당시 기획위원이었던 이양현씨(37)의 말을 들어보자.
“잘은 모르지만 뒤에 검거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복면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불순세력이 침투해 들어와 복면을 하고 행동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 같은 상황에 대해 우리도 어느정도 대비하기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가려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광주사태 이후 과격한 정치집회에는 으레 복면부대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5·3인천 시위에서 그러했고, 통일민주당 지구당 창당대회 난동사건에서 그러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복면을 했고, 손에는 각목이나 몽둥이가 들려졌다. 인천시위에서는 민주세력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었고, 민주당 창당대회에서는 열렬한 신민당원으로 자처했다.
물론 복면부대가 모두 그런 사람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21일 계엄군이 철수한 이후의 광주는 객관적으로 무정부의 상태였다. 이미 정부가 없는 상태, 그것은 엄격하게 [내란]의 상태다.
더구나 시위대는 무장을 했다. 정부가 있을 때 그 정부에 대항하여 시위를 벌이는 것과 정부가 없는 상태에서 [내란]에 가담하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복면을 한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차이를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계엄군의 철수 후 사태의 수습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강경하지 않았다. 무기를 반납하고 시의 외곽을 에워싸고 있는 계엄군과 협상할 것을 시도했다. 복면부대는 이 수습노력을 저지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격렬한 선동을 계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복면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가 만약 [불순세력]으로서 외부에서 들어와 신분을 감추기 위해 복면을 했다면, 그런 사람들은 선량한 시민들의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4208.html
) >>
 

자, 이제 광주사태 당시 광주시민군과 별도로 정체가 수상한 복면부대가 등장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요?  그럼 이제 그들이 어디서 온 누구였는지를 살펴 봅시다.

5.18 자료들과 탈북군인 증언들이 신기하게 일치하는 점은 외부에서 온 불순세력은 300 명씩 두 떼로 600명이었으며, 목포를 경유하여 광주로 침투하였다는 것입니다.  5.18자료는 이른바 가짜 연고생이 300명씩 두 떼로 광주시민군을 지원할 목적으로 목포에서 광주로 들어왔다는 설을 제시합니다.  탈북군인 역시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300명씩 두 떼로 잠수함을 타고 남한으로 침투하였으며, 그 중 일부는 목포를 경유하여 광주로 침투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어떻게 300명씩 두 떼거리의 무장단체에 대한 증언 혹은 기록이 5.18측 자료와 북한 자료가 일치할 수 있는지 연구해보실 흥미를 느끼지 않으십니까?

여 기 이 사진을 보세요.  계엄군 사진이 아닙니다.  광주경찰 사진도 아닙니다.  광주경찰은 5월 21일자로 없어졌아요.  아래 사진은 시민군 작전 사진입니다.  그리고 목포를 경유하여 침투한 무장단체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있는 이 시점에서 이 사진만으로는 우리기 이 무장단체가 광주시민들이라고 판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광주사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진도 연구 관심거리입니다.  시민군 각부대 지휘관은 누구였는가요?
 

그 러면 다시 복면부대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복면부대는 제일 먼저 목포에서 출현하였는데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 시민군을 지휘휘했던 북한군의 내연의 처 탈북여성의 증언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광주사태 아지트가 목포에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광주사태가 목포는 아무 관련이 없다구요?  천만에 말씀.  큰 관련이 있습니다.  광주사태의 어원이 목포사태였습니다.  목포를 장악한 북한군이 5월 22일 처음으로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그 용어를 그대로 받아 그날 서울대 학생회가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를 제작한 것이 광주사태라는 명칭의 어원이었으니까요.  그때부터 비로서 언론들이 광주사태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목포가 광주사태 아지트였다는 탈북여성의 증언을 입증하는 남한 문건 중 하나가 바로 아래의 당시 취재일지입니다.
 

위의 조선일보 취재일지에서 박홍서 기자는 5월 22일 새벽의 목포 상황을 이렇게 보고합니다:

* 새벽 1시20분 무안동 코롬방다과점, 수퍼마케트 일원 식품가게를 부수고 들어가 빵, 음료수를 실어가.
* 새벽 2시 목포역 대합실 전부 파괴, 연동 파출소 모기관 목포지부 방화. 항동 파출소 무기고 태우고, 시내 파출소 전부 파괴. 해안경찰서, 세무서 파괴.
* 새벽 3시 남양어망 공장 부수고, 열차불통, 시외·시내 버스 불통. 중·고 학교장 재량 휴교령. 각목, 카빈 공포 쏘고 다녀. 무기 휴대한 젊은이 복면하고 1백명 정도. 다른 데모대 1천여 명. 시민호응 안해. 시내상가 모두 철시. 군대는 안보여.

이렇듯 동아일보 김영택 기자가 5월 22일 오후에 복면부대를 발견하기 한참 전이었던 그 날 새벽 목포에 먼저 북면부대가 출현하였습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불순세력이 새벽 두 시 목포를 장악함과 거의 동시에 복면부대가 출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아일보 기자가 본 복면부대를 조선일보 기자도 보았습니다.  "미공개 자료·조선일보 취재일지" 22일자 취재 메모에서 기자는 저 복면부대의 정체성을 이렇게 보고합니다:  "무장한 시위대가 탄 지프·트럭·버스 등은 주택가를 계속 누볐다. 어떤 청년들은 경찰데모진압용 철모에 군복차림이었으나 차량을 운전하는 어떤 청년은 눈만 남긴 채 복면을 하기도 했다. 트럭에 LMG를 장치한 중무장도 보였다. 시민들은 동이 트면서부터 대문 앞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웅성웅성댔다."  이 복면부대의 모습은 탈북자들이 묘사하는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여기서 먼저 목포에 출현하였던 복면부대의 정체성의 문재는 "단 한명의 경관도 군인도 없었던 목포에 백 명 정도의 복면부대가 출현하여 해안경찰서를 파괴할 필요가 무엇이었겠는가?"의 질문과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당시 북한군 잠수함이 북한군 특수부대를 침투시키고 있었다는 사실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이전에 썼던 글과 동영상 자료들을 아래에 그대로 올려놓겠습니다.  제가 님의 다른 질문들과 답변들도 읽어보아야 하니까요.  탈북군인들은 광주사태에 대하여 우리가 몰랐던 사실,즉 북한군잠수함을 타고 침투하였으며, 정체가 노출될 위험이 있을 때는 자폭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데아님은 물으실지 모릅니다.  과연 잠수함으로 침투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그리고 설마 북한군이 자폭하였겠냐고.  그런데, 김염삼 대통령 시절이었던 1996년에도 실제로 그와 매우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었으며, 그때는 북한군이 잠수함으로 침투하였으며 체포 직전 자폭하였음을 입증하는 영상이 그대로 촬영되었습니다. 

_________________


문민독재자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여론몰이로 5.18재판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는지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으나, 그의 간담을 서늘케 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무장공비들이 잠수함 타고 침투한 사건이었다. 5.18재판 여론몰이에 묻혀 국민에게는 잘 보도되지 않았으나, 북한군 14명과 싸우기 위해 우리 편에서는 십만 배가 넘는 무려 150만명이 동원되어 장장 51 일간 걸린 대간첩 작전이 있었다. 위 동영상을 보면 북한군이 광주사태를 일으키기 6개월 전 잠수함 타고 목포로 침투하였을 때 (74~75쪽), 그리고 광주사태가 끝난지 두 달 후 강원도 동해안으로 이동하였을 때 (88쪽),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다.

탈북여성의 증언의 수확적 정확성은 잠수함 타고 침투한 북한군은 11영씩 한 조였다는 증언으로 확인된다: "조 편성 발표가 끝나고 사복차림의 지휘관은 타격대장을 책임자로 하는 11명의 조는 즉시 잠수함에 승선할 것을 지시했고" (74쪽); "다른 때와 같은 가상적인 훈련이 아니라 이번만은 실제적인 상황이라는 현실이 배안에 타고 있던 11명의 전투요원들을 긴장시켰다" (75쪽). "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 (76쪽), "미리 침투해있던 7명의 인원들과 합류한 안창식을 비롯한 11명의 인원들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여 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 (81쪽).

위의 동영상은 1996년 김영상 정부가 한창 5.18(인민)재판을 진행시키던 무렵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는데, 잠수함 타고 침투한 무장공비들은 11명씩 한조가 되어 움직였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광주사태에 대하여 또 하나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사실은 광주에 침투하였던 북한군들 중 자폭한 북한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의 탈북여성도 "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 고 증언했다 (76쪽).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반신반의한다. 그러나,
http://cafe.daum.net/issue21/5304/110
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아래의 동영상은 1996년 9월 17일의 강릉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8일 16시30분 청학산에서 11명의 북한군이 자폭하였다.

과연 잠수함으로 침투한 북한군이 있었으며, 침투한 북한군 중 일부가 자폭한 사실이 있었는가?  만약 "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는 제목의 지난 해 11월의 조갑제 기자의 글의 관점만을 전제로 한다면 이 증언은 허황된 이야기로 부정된다.  그러나, 역으로 "북한군이 잠수함으로 침투한 사실이 없으며, 그 어느 북한군도 남한에서 자폭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1996년 9월에도 실제로 북한군이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자폭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아래의 두 뉴스 동영상은 1996년 9월 18일 MBC가 방송했던 영상 뉴스이다:

<<오늘새벽 1시를 전후해 이곳 해안으로 침투한 것으로 추정되는 20명 가운데 11명은오후 2시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5km정도 떨어진 강릉시 강동면 청학산 정상부근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잔당 가운데 한명인 31살이 강수는 인근 지역에서 생포되고 8명이 현재 계속 군경의 추적을 받고 있습니다. 숨진 채 발견된 11명은 침투조가 아닌 승무원으로 추정되며, 비무장의 광부복장으로 머리에 총살을 입고 있어서 자살했거나 도주한 잔당들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체발견에 앞서 오전 10시 20분쯤 청학산 부근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려 교전으로 한때 오인이 됐지만 이때 11명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85_6172.html)


● 신상길 준장(합참 작전차장): 금일 17시경에 육군 68사단 173연대 수색병에 의해 최초 침투지점으로부터 서남방 5km 떨어진 청학산 부근에서 북괴 무장간첩 11명이 자폭한 것을 발견하였으며 또한 1명을 생포, 조사 중이며 우리 軍은 나머지 잔당을 계속 추적 중에 있습니다.

● 기자: 또 생포된 간첩의 신원은 최종적으로 인민 무력부 정찰부 소속 이강수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89_6172.html)

________________
 

자, 위의 보도대로 1980년대에도 일년에 10 여건 북한군 침투 사실일진대, 광주사태 때만 침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요. 그리고 위의 뉴스는 무장간첩단의 침투 저지를 위해 해안경찰서가 얼마나 큰 기여를 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면 왜 목포에 출현한 복면부대가 제일 먼저한 일이 해안경찰서 파괴였는지 알만하지 않습니까?



(2010년 1월 9일 두 논객 역사학도와 이데아간의 공개토론 중 역사학도의 글)

복음과 문화
  
  ☞ 왜 우리는 광주사태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가?
    
  탈북자 5.18 증언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증거들(1)
  
  북한 534부대 지휘관의 5.18사건 고백(1): 자폭서약
  
  오늘의 광주사태 관련 끝장토론 참관 게시판 (2010년 1월에 진행 중인 토론)

  광주사태 연구사료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오뉴월 엿가락 늘어나듯 연기만 되어가는 5.18재판! 누구에게 유리케해주려고 저렁 구는다? ,,.
100년 뒤에 판결내 주지, 차라리! ,,. 개새끼들! ,,. 퉤~!
쿠테타가 일어서 눈치보느라고 사팔뜨기가 다 되어가는 판사놈들 모조리 대갈통을 뽀개버려야~! ///

비전원님의 댓글

비전원 작성일

시사논객님의 끝장토론을  전폭 응원합니다. 화이팅 하세요.

동탄님의 댓글

동탄 작성일

시사논객님이 자유롭게 부담없이 토론에 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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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 이명박 엑기스 (2009년) 댓글(2) 클래식 2010-01-10 4184 3
700 공산북괴 하수인들의 정치권 장악과 용산반란 댓글(1) 북괴공산당박멸 2010-01-10 2964 21
699 박근혜... 신선도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댓글(3) 달마 2010-01-10 2955 8
698 돌박(朴)영상 3탄 (화장실과 밥만) 댓글(2) 클래식 2010-01-10 3174 5
697 박근혜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몽니부리는 사람들에게 댓글(4) 장수영 2010-01-10 3117 24
696 남조선 빨갱이= 알카에다. bananaboy 2010-01-10 2943 11
695 애국시민여러분! 이동영상을 한번 보세요. 댓글(2) 김진철 2010-01-10 66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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